`게임에 미친' 동료와 동거동락
하루 평균 15시간 연습 또 연습
"기상"
프로게이머 홍진호(24ㆍ사진ㆍKTF매직엔스 소속)의 하루는 같은 팀 동료이자 주
장인 강민의 채근으로 시작된다. 프로게이머의 하루 일과는 일반인에 비해 다소
늦은 아침 10시쯤 시작된다. 밤늦도록 연습하는 올빼미 체질 때문이다.
세수를 한 뒤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친 홍진호 선수는 PC앞에 서둘러 앉는다. 지난
밤에 연습했던 `빌드 오더'의 경기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한 순간이라도 놓치
면 잊어버릴 지도 모르는 미세한 감과 타이밍을 다시 한번 몸으로 익혀둬야 하기
때문이다.
홍진호 선수를 만나기 위해 수서역에서 2Km 남짓 떨어진 KTF매직엔스 숙소를 찾
았다. 수서역으로부터 남쪽으로 논밭 길을 따라 약 30분 정도 걷다보면 서울 강남
구 자곡동 못골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곳곳에 비닐하우스와 주말 농장이 자리잡고
있어 마치 시골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KTF 숙소는 못골마을에서도 가장 안쪽에 위치해 있다. 지하층까지 모두 3층 100여
평의 널찍한 공간에 마당까지 갖춘 전원주택에서 연습생을 포함해 20여명의 선수가
합숙생활을 하고 있다.
KTF는 e스포츠 분야에서 처음으로 합숙소를 운영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게임단
만의 독창적인 훈련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이 분야에서는 개척자로 통한다. 게임단
훈련시스템에 `독창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것은 훈련 일정이 일반적인
프로스포츠 팀과는 전혀 다르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예컨대, 홍진호를 비롯한 모든 선수의 아침 기상 시간은 오전 10시다. 주장 강민이
홍진호를 비롯해 모든 선수를 깨운다. 일어나서 세수하고 아침(?) 식사를 하고 나면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연습을 진행한다. 오후 2시부터 점심식사를 한 뒤 3시
가 되면 다시 9시까지 맹연습에 들어간다.
저녁 식사는 오후 9시부터이며, 밤 10시부터 자정까지 또 다시 연습의 연속이다.
자정이 되면 팀 연습은 종료되지만 사실 개인연습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새벽 4시까지 개인연습에 몰입한 뒤에야 비로소 잠을 청한다.
홍진호 같은 고참 선수가 잠을 잊은 채 개인 연습을 하노라면 후배들은 좋든 싫든
연습을 할 수 밖에 없다. 팀 내에 예비역 선수들이 `훈련할 때 만큼은 군대같은 분
위기'라고 말하는 것도 과장은 아닌 듯 싶다.
일반적인 프로스포츠가 새벽에 훈련을 시작해 저녁에 끝내는 것과는 달리 프로게
이머들은 올빼미 스타일로 훈련하는 방식에 익숙해 있다. 특히, 경기가 없는 날이
면 이런 방식으로 평균 15시간을 연습에 매달린다는 것이 홍진호 선수의 말이다.
그런데도 선수들 얼굴에는 지겹다는 표정 대신 활력이 넘치니 그저 신기할 뿐이다.
경기가 있는 날은 오후부터 각자 경기 스케줄에 맞춰 공개 경기장이 있는 서울 삼성
동으로 향한다. 삼성동으로 발길을 향하면서 프로게이머들은 가슴이 설렌다고 한
다. 경기를 앞둔 상황에서의 긴장감과 함께 환호해 주는 팬들이 늘 존재한다는 사
실이 신기하고 놀라울 뿐이라는 것이 홍 선수의 설명이다.
실제 프로게이머 홍진호는 최근 인기 상종가를 달리고 있는 e스포츠 분야의 대표
적인 스타로 꼽힌다. 지난 2000년에 프로게이머의 길로 접어든 홍진호는 1세대 프
로게이머로 분류되는 선수로, 원년부터 지금까지 정상권을 늘 유지하고 있다.
그의 별명은 `폭풍저그'. 한번 몰아치기 시작하면 상대방이 `지지'(GG : Good Ga
me)를 선언할 때까지 혼을 쏙 빼놓는 특유의 경기 스타일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다. 10만명이 넘는 팬카페 회원들은 홍진호의 `공격 일변도' 스타일에 열광하며
환호한다.
10대 후반에 프로게이머의 길을 선택한 홍진호는 지난 4년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
장 특별했다고 한다. 20대 초반 나이로는 감히 넘보기 어려운 부와 명예를 동시를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최근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증가하는 것도 홍진호나 임요환 같은 스타
게이머들의 활약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게이머 지망 청소년들은 이구동성으
로 "좋아하는 게임에 푹 빠지면서 큰 돈까지 벌 수 있지 않느냐"고 답한다.
하지만 홍선수 뿐 아니라 프로게이머 대다수가 "보이는 화려함이 전부는 아니다"라
고 말하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와 인기를 얻는 대신 `반납해야 하는 것'도
적지 않다는 얘기다. 홍 선수는 프로게이머가 되기 위해서는 또래 친구들이 누리는
일상적인 즐거움과 자유를 완전히 포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남들과 똑같이 즐기
다가는 프로세계에서 결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날도 오전 10시부터 연습을 시작한 홍진호는 오후 늦게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 연
습에 매달렸다. 이제는 힘들어도 후배들의 모범이 돼야 하기에 게으름도 피울 수 없
다고 한다. 하지만 홍진호도 늦은 저녁이 되자 한계에 도달한 듯 했다.
그는 "매일 똑 같은 자리에서 똑 같은 게임을 연습하다 보면 나중에 게임을 쳐다보
기도 싫어질 때가 있다"며 "그래도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야 하며, 이때는 서글픈 생
각이 들기도 한다"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혹독한 훈련 외에도 힘든 것이 있다. 숙소
의 규칙을 지키는 것과 외부와의 단절이 그것이다. 프로 생활을 오래한 고참들은 잘
참지만 이제 막 선수 생활을 시작한 연습생들은 지옥훈련 같은 합숙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가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모든 것을 참고 연습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 성적이 떨어질 때는 `정말 죽
고 싶은 심정'이 된다는 것이 홍 선수의 말이다. 팀 리그에서 자신의 실수로 팀이
패하거나 탈락했을 경우에도 견디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경기석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선수들의 심정을 일반인들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고 그는 덧붙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게이머들은 스스로 e스포츠라는 신개념 스포츠 분야를 개
척해 나가는 선구자라는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있다. 홍진호는 "나를 비롯한 많
은 프로게이머들이 e스포츠의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으로 훈련에 임하
고 있다"며 "나중에 등장할 프로게이머들에게 좋은 선배로 기억되고, e스포츠 역
사에 이름을 남긴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매일 같이 힘
들다는 생각을 하지만, e스포츠가 아니었으면 평생을 가도 만나지 못했을 `게임
에 미친' 동료들을 만나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행
운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택수기자@디지털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