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3’맵 조작 사건 폭로한 이중헌
“악몽 같은 5일이 내게 큰 교훈을 남겨 주었다!”
MBC게임 ‘워3’ 프라임리그의 맵 조작 사건(본지 165호 기사)으로 3월 초부터 e스포츠계가 떠들썩했다. 이 비도덕적 사건과 관련해 승부조작을 일삼은 장재영의 비리를 폭로한 이가 바로 지난 해 은퇴를 선언했던 프로게이머 이중헌이다. 이중헌은 프라임리그 맵 분석을 통해 엄청난 조작 사건을 밝혀내고 만천하에 공개하기까지 일주일간을 고민했다.
‘워3’ 리그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밝힐 건 밝혀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실행에 옮겼지만 파장은 생각보다 컸다. 이로 인해 가치관의 혼란을 겪게 된 이중헌은 인생의 극과 극을 체험하며 결국 e스포츠계 복귀를 결심하게 됐다. 맵 조작 사건 파장 이후 가까스로 안정을 되찾은 이중헌을 만났다.
부평역 근처에서 이중헌을 만난 건 새벽 2시경. 가까운 PC방으로 향했다. 너무나 짧은 시간동안 많은 사건들이 터져 났고 그로 인해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사건의 파장이 다소 가라앉은 지금, 이중헌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현재 진행 중인 WEG에 미칠 파장을 생각해 3월 말에 공개할 생각이었는데 일정보다 빨라졌어요.”
장재영이 당시 3월 6일 예선인 프라임리그Ⅵ 를 앞두고 이중헌에게 시드권을 주겠다고 제안해 온 것이다. “은퇴하고 공백기가 있었기에 실력도 모자란 상태인데 제가 시드권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었고 받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이중헌은 장재영을 ‘나를 많이 아낀 형이자 둘만의 비밀을 가질 정도로 친한 사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가까운 사이였기에 장재영의 만행에 더더욱 화가 치밀었고 배신감마저 느끼게 된 것. 은퇴한 자신에게 시드권을 준다는 장재영의 의도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더 이상 장재영의 만행을 두고 볼 순 없다는 판단에서 예상보다 빨리 맵조작 사건을 폭로하게 된 것이다.
“VOD를 분석하고 맵 프로그램을 열어본 뒤 훗날 ‘워3’리그 전체에 큰 타격이 일 것을 예상, 하루 빨리 수습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맵이 조작된 경기는 프라임리그Ⅴ의 4차전부터였다. 프라임리그 중 가장 성공적이었던 프라임리그Ⅴ. 소위 결승전도 대박이었고 조작한 맵에 관객들이 열광했다는 사실이 이중헌을 더 힘들게 했지만 더 이상 숨길 일이 아니었다.
이중헌은 이 사건을 처음 공개한 지난 2일을 시작으로 5일간을 자신의 인생에서 기억하기 싫은 최악의 날들이라고 표현했다. 2일 증거까지 첨부해 프라임Ⅴ의 ‘워3’ 조작설을 폭로했고 장재영의 억지스러운 공식 입장글(프라임Ⅰ부터 이미 맵조작이 있었고 이는 ‘워3’ 스타인 이중헌을 우승시키기 위해서였다는 내용)에 분노해 ‘죽여버린다’는 과격한 두 번째 글을 공개했다.
이후 폐인처럼 방안에 틀어박혀 가치관의 혼란을 겪게되었고 이성적인 판단이 흐려졌다. ‘워3’리그를 위해서라도 바로 잡고자 했던 일들이었지만 자신 때문에 모든 게 엉망이 되어 버렸다는 자책감에 빠졌다. “나 혼자 입다물고 있는 게 더 나을 뻔했나 하는 착각도 들었습니다. 내 자신이 미친 사람 같았어요. 동전의 양면을 뒤집듯 하루에도 수 십 번 마음이 뒤바뀌며 미칠 것 같았어요.”
이중헌은 그 혼란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4일 장재영을 비롯한 ‘워3’ 관계자들에게 용서의 글을 올렸다. 이중헌의 이 같은 번복은 ‘나로 인해 ‘워3’가 혼란에 빠졌다’, ‘오히려 장재영이 지혜로운 사람이었구나’, ‘결과만 좋다면 어느 정도의 불법은 묵인된다’는 등의 자책 속에서 비집고 나온 돌발행동 같은 것이였다. “미친 사람처럼 몇 일을 보내다가 지인과 메신저로 대화를 나눴고 사건 이후 처음으로 술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게 됐다는 이중헌. 지난 4일간의 사건들을 되짚어보며 결국 다시 게임을 하겠다는 복귀의사를 밝혔다. 이날이 6일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다. 곪아서 터지기 전에 일찌감치 상처를 치료해 준다는 의미에서 지금의 그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혼란을 겪었습니다. 진실을 가장한 거짓, 즉 맵 조작으로 인해 게이머들을 약하게(거짓으로) 만들어 진실이 통하지 않도록 만든 사건이었기에 제가 대신 총대를 맨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중헌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안티 팬 하나 없던 자신에게 손가락 질 하는 안티가 생겼고 저변이 좁아 자신의 존재감 마저 상실했던 ‘워3’ 영역에서 희망의 빛을 발견했다. “게임으로 말하겠습니다. 비록 안티지만 나를 봐주는 팬들이 있고 ‘워3’리그를 위해 걱정해주시는 많은 분들이 계시기에 제가 게임을 다시 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워3’ 최고의 프로게이머로 두터운 팬 층을 지녔던 이중헌. ‘워3’리그의 저변확대를 위해 아무리 발버둥치고 노력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상실감에 은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그였지만 이제 게임을 다시 할 수 있는 동기가 생긴 것이다.
김수연 기자 jagiya@kyunghyang.com <2005년 03월 28일 19: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