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아버지·손자 '온라인 게임 전쟁'
“할아버지 공격 들어갈게요.크크” “오너라 손자녀석, 막아주마.ㅜㅜ”
게임가족 부천 이호백씨네 “설날엔 至尊경쟁 세대차 못느껴요”
[조선일보 이위재 기자]
“크크 할아버지 ‘와우’ 어때요”(손자 이병현군), “스타보다 재밌긴 한데 좀 어렵다 ㅜ.ㅜ” (할아버지 이호백씨).
경기도 포천에 사는 할아버지 이호백(65)씨가 경기도 부천에 있는 손자 병현(13·초등6년)군과 인터넷 채팅으로 나누는 대화다. 대화 창은 온라인 게임 속에 있다. 52년이라는 세월의 벽이 사이버 공간 속에서 허물어지는 순간이다.
원래 이씨는 게임의 ‘ㄱ’자도 모르던 농사꾼 출신. 농사를 접은 4년 전 아들 근주(39)씨가 충북 음성에서 PC방을 잠시 운영할 때 도우러 들렀다가 게임세계에 발을 들여놨다. 그 전엔 게임에 푹 빠진 손자·손녀(이현민·14·중1)가 멀게만 느껴졌다. “뭐가 그리 좋은지 모니터 앞에서 일어날 줄 모르는 아이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며 “그럴 시간에 책이라도 한 자 더 읽지”라고 걱정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러다간 손자들과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하겠다”는 불안감이 앞섰다. 그리곤 PC 앞에 앉았다. 인터넷 검색, 이메일 등을 배우고 스타크래프트, 리니지, 포트리스 등 각종 게임을 섭렵하면서 손자들과 말문을 틔웠다. 이제 할아버지와 손자는 “테란이 어쩌고, 길드가 저쩌고, 임요환이 이번엔 어땠다”는 등 나이 차를 넘어 ‘게이머’로서 눈높이를 맞추고 있다.
할아버지·손자 사이에 ‘2대’ 근주씨도 끼어들었다. 근주씨는 광주에서 소프트웨어 관련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 삼대(三代)는 요즘 ‘와우(WOW)’로 통하는 ‘월드 오브 워 크래프트’에 열중하고 있다. 와우는 스타크래프트 제작사 블리자드가 만든 온라인 게임.
이 ‘게임가족’은 이번 설에 가족 대항 게임 지존(至尊) 가리기를 특별행사로 준비, 7일 부천 근주씨 집 가까운 PC방에 모여 정겨운 한 때를 가졌다. 평소 포천, 광주광역시, 부천으로 떨어져 살아온 가족들이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렇게 ‘오프라인’으로 모이기 전에도 이들은 ‘온라인’에서 1주일에 두세 번씩 만나왔다. 아이들 수업과 학원이 끝난 저녁 8~10시가 접속 시간대. 근주씨는 “온라인 대화지만 이를 통해 서먹서먹했던 가족 분위기가 밝아졌다”고 했다. 시아버지·남편·자녀들이 게임에서 유대를 다지자 며느리 서미란(40)씨도 “나만 빠질 수 있냐”며 지난해 9월 게임을 배웠다. 병현군은 친구들이 “할아버지, 아빠와 게임을 한단 말이야?”라며 부러워한다고 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지나치게 게임에 집착하려 하면 냉정하게 대한다. 서씨는 “다행히 공부 시간과 게임 시간을 알아서 지켜준다”며 “하루 최대 2시간만 허락하고, 그날 숙제를 마치지 않으면 컴퓨터를 못 만지게 한다”고 했다. 또 “과잉이 문제지 게임 자체는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올 초엔 할아버지 PC를 최신 기종으로 바꿨다. 아들 근주씨 선물. 그는 “이 PC 덕에 온 가족이 화목한데 더 좋은 시스템으로 바꿔야 더 화목해지죠”라고 말했다.
(이위재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wjlee.chosun.com])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미안)-
------------------------------------------------------------------------------
부...부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