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라인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신랑 '엘스다'(오른쪽·이상오씨)와 신부 '이쁜이하나1'(최금순씨)
한직장에서 만나 사랑을 키워온 두사람은 지난 92년 10월 1일 결혼했다. 그러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식을 미루다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훌쩍 10년을 넘겼다고 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이 결혼식을 보챘다. 친구 부모님들의 결혼사진을 본 큰딸 하나(경산 중앙초등 5년)와 동수(중앙초등 2년)는 “왜 엄마 아빠는 결혼식 사진이 없어”라고 질문공세를 폈다. 소망이던 결혼식을 올리기로 계획을 세우고 ‘자금’도 모았다. 그런데 일이 터졌다. 지난해 1월 남편이 갑작스레 뇌출혈로 쓰러진 것. 예전에 큰 교통사고를 당한 적도 있는 남편은 몸 오른쪽이 완전히 마비되는 중증을 앓게 됐다. 하지만 부인의 극진한 간호로 지금은 마비가 많이 풀려 걸어다니고 움직일 수 있을 만큼 회복했다. 아직 정밀한 동작은 해낼 수 없다고 한다. 부인은 게임이라도 하면 신경회복에 좋겠다는 지인의 권유에 따라 남편에게 컴퓨터 게임을 권했다.
부인 최씨는 현재 경산 중산동의 협신모직에서 일하며 남편과 아이들을 돌본다. 사글셋방 생활은 어렵지만 부인의 헌신적인 노력은 단란한 가정을 굳게 지키는 주춧돌이었다.
▲ 제 2의 신혼을 맞았다는 최순금(뒷줄 왼쪽)·이상오씨 부부와 아이들의 표정이 아주 행복해 보이네요. 아들 동수는 "엄마 아빠(캐릭터)가 웨딩마치할 때가 제일 신기했다"고 했습니다.
게임 공간에서 이들의 딱한 사정을 전해들은 게이머들이 사이버 결혼식을 열어주기로 했다. 너도나도 나서서 십시일반 게임 머니와 노력을 모았다. 주례와 사회자가 선정됐고 신랑·신부 들러리 6명, 10명의 도열단이 모였다. 소문이 퍼지면서 ‘사이버 하객’들도 수백명이 찾아왔다.
결혼식 장소는 리니지Ⅱ 제2서버 지그하르트의 아덴 신전. 하객들은 몸에 지닌 각종 무기를 ‘해제’하는 예를 갖춘 뒤 식장에 들어섰다. 흰색 예복을 차려입은 신랑 ‘엘스다’(이상오)와 신부 ‘이쁜이하나1’(최순금)이 사회의 인도에 따라 식장에 입장. 주례를 맡은 총군주는 “두 사람의 과거가 비록 고통과 인내의 시간들이었다 해도 신뢰와 사랑으로 오늘을 맞이했다면 곧 두 분의 아름다운 승리라 믿는다”며 성혼을 선언했다.
이날 결혼식을 게임상에서 취재한 ‘사이버기자’ Nonny는 “리니지 II 액션 기능 중에 키스 동작이 없어 아쉬웠다”며 “결혼의 형식이 (가상공간으로) 바뀌었을 뿐 그 속에 담긴 마음과 정성은 현실의 결혼식과 다름없이 소중했다”고 적었다.
비록 사이버 결혼식이었지만 컴퓨터 스크린을 쳐다보는 부인과 남편 모두 긴장했다고 한다. 부인은 예식 도중 눈물을 흘렸고 잔뜩 긴장한 남편은 식이 끝난 뒤 3일간 앓아누웠다. 그들의 결혼 앨범에는 인화된 사진 대신 스크린 샷이 남았고 방명록 대신 300개가 넘는 리플이 하드 디스크에 저장됐다.
사이버 결혼식은 두 사람의 사는 모습을 어떻게 바꿨을까. 부인은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됐다”고 얼굴을 붉혔고 남편은 “제2의 신혼 아니겠느냐”고 했다. 두 사람은 사이버 결혼식 날인 10월 24일을 공식 결혼기념일로 잡기로 했다. 온라인 결혼식에 이은 ‘오프라인 신혼여행’도 계획 중. 둘은 “올겨울 가까운 온천에서 신혼의 즐거움을 만끽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