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우승 향한 집념 내가 최고”
최근 들어 프로게임단의 역할과 소속 선수들간의 팀웍이 중요시되고 있다. 이처럼 선수 개인의 기량보다 팀의 비중이 높아진 건 <프로리그>나 <팀리그> 등 팀대항전 형식의 리그들이 생겨나면서부터다. 특히 온게임넷에서 진행하는 프로리그는 그 규모 면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프로리그에 참여하는 게임단은 거대 스폰서를 백그라운드로 둔 여유만만 팀에서부터 한끼 끼니 걱정을 해야만 하는 헝그리한 팀까지 포함해 총 11개 팀. 하지만 팀의 우승을 향한 집념만은 그 서열을 가리기 힘들다. 선수 개인기보다 팀의 역량이 부각되고 있는 요즘, 덩달아 감독의 역할도 커졌다.
감독이 팔짱끼고 서서 ‘감놔라 배놔라’ 팔자 좋게 지시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 감독이 단순히 선수들의 스케쥴을 관리하고 팀을 운영하던 시기는 지났다.
상대팀을 분석해 최상의 엔트리를 구성하는 것부터 감독의 몫. 선수들과 함께 머리를 짜내 적절한 전략과 전술을 짜내는 데에도 감독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내 11개 프로게임단을 진두지휘하는 감독들을 만나본다.
■ 헥사트론 ‘드림팀’ 데니얼 리 : “2004년 명감독 꿈꾼다!”
데니얼 리(30)는 다국적 프로게임군단인 헥사트론 드림팀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지난 2월 PC방 프랜차이즈 업체인 아이스타존과 계약, 헥사트론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달게 됐다.
이 감독은 4년 전 기욤과의 인연으로 감독 일을 시작했다. 15년 간의 외국생활이 큰 도움이 됐다. 게임을 워낙 좋아하기도 했지만 기욤을 비롯해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선수들이 언어장벽 때문에 힘들어하는 게 안타까워 시작한 일이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헥사트론 드림팀은 현재 진행중인 프로리그에서 4위에 올라있다.
“시작이 좋았기에 일단 만족스럽고 이대로 결승까지 갈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 감독이 생각하는 감독의 첫째 조건은 ‘인내심’이다. “나이 차가 많다보니 선수들과의 마찰이 자주 생기지만 되도록 선수들과 맞서지 않도록 현명하게 대처하는 편입니다.” 또한 선수들과 눈높이를 맞춰 무슨 일이든 대화로 풀어나가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감독에게는 ‘약팀’이라는 이미지를 벗어 던지는 것이 이번 하반기 목표다. “피망배 이후 AMD와의 재계약이 결렬되면서 팀 분위기가 많이 다운됐었습니다.”
때문에 선수들의 컨디션도 난조를 겪었던 것. 그러나 아이스타존과 계약한 이후 선수들이 서서히 예전 컨디션을 되찾아 가고 있다. 특히 전년도 WCG 미국 예선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레클(Rekul, ID)을 새로이 영입할 계획이다.
이 감독은 이번 한 해를 휩쓸어 자신의 이름 앞에 명감독, 최고의 전략가의 수식어가 붙는 게 소원이다. “감독은 애들에게 좋은 환경만 만들어 주면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최근 들어 많이 깨달았죠. 선수들과 함께 전략을 짜고 연습도 하면서 혼연일체가 되어 꼭 최고의 팀을 이끄는 최고의 감독으로 우뚝 서고 싶습니다.”
■ 슈마 ‘지오’ 조규남 : “단체전 우승 3차례나 이끈 명감독”
조규남(33) 감독은 <MBC 팀리그 1,2차>와 <네오위즈 피망컵 온게임넷 프로리그> 등 역대 5차례의 단체전 가운데 총 3차례나 팀을 우승으로 이끈 명감독이다.
조 감독은 얼음장같은 승부사적 기질을 타고났으나 선수들에게만은 더없이 따뜻한 형 같은 존재다. 조 감독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혼자 힘으로 지오팀을 구성할 2002년 무렵. 정식 게임단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조직을 갖춰가기 시작할 때다.
선수들의 연습실 운영비와 식대가 만만치 않았지만 선수들의 사기가 떨어질 까봐 두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니며 스폰서 작업을 했다. 하지만 가장 힘들었을 때도 선수들만 생각하면 힘이 저절로 솟았다. “나를 믿고 따르는 선수들은 제 동생이나 다름없습니다. 또 그들을 생각하면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이를 악물게되죠.”
조 감독은 선수들과의 공감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선수들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어떤 무엇도 공감할 수 없다는 게 조 감독의 지론. 조 감독은 가능성을 꿰뚫어 보는 탁월한 안목을 지녔다. 특히 선수들 스스로가 느끼고 깨우쳐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담당한다.
슈마 지오는 현재 진행중인 프로리그 성적이 저조해 강민의 공백이라는 여론이 분분하다. 하지만 조 감독은 개의치 않는다. 지오팀 내부적으로는 올 하반기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나이 어린 선수들이 경쟁력을 갖추는 데 신경을 쓰고 있지만 그렇다고 프로리그를 포기한 건 아닙니다. 아직 많은 경기가 남아 있으니까요.”
앞으로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폭넓은 선수를 기용, 개인전에 치중하여 팀의 무게감을 더할 생각이다.
“지오팀 선수개개인에게서 지오스러움이 느껴질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역할입니다. 최강 지오의 이름이 바래지 않도록 감독과 선수가 서로 이해하고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달릴 수 있는 그런 팀이고 싶습니다.”
■ SK텔레콤 ‘T1’ 주훈 : “단체전, 전승으로 결승까지 오를 터!”
주훈(31) 감독은 서울대학교 대학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스포츠심리에 관한 석사 논문을 준비하던 중 게임과 인연을 맺었다. 주 감독은 당시 아이디얼 스페이스(IS) 소속 선수들을 대상으로 ‘심리기술훈련’을 담당했었다. 이후 임요환이 동양 오리온과 계약하면서 감독으로 변신, 일반 게임단과는 차별화 된 훈련방식을 도입해 주목받고 있다.
주 감독이 추구하는 ‘심리기술훈련’이란 선수 개인별로 각각의 심리기술 프로그램을 도입해 훈련하는 방식이다. 이는 긴장을 이완시키고 집중력과 자신감을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게 주 감독의 주장. 심리적 안정이 밑받침되어야 연습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타 감독들에 비해 다소 늦은 시기에 게임계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현재는 SK텔레콤 T1의 감독 자리에까지 올랐다. 주 감독은 ‘테란의 황제’ 임요환 뿐만 아니라 최연성 박용욱 이창훈 등 수많은 선수들을 옥석으로 키워내는데 큰 공헌을 해왔다. 이는 동양제과 오리온 시절에 ‘임요환 이외엔 볼 것도 없다’는 팀 이미지를 360도 바꾸어 놓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국내 최고의 스폰을 받고 있는 만큼 주 감독의 연봉 또한 감독들 중 단연 최고다. 프로리그에서 전승으로 결승전까지 오르는 것이 SK텔레콤 T1의 목표다.
“숙소 세팅이 덜된 상태라 아직은 불안정한 요소들이 많지만 선수들이 의욕적인 만큼 곧 제 실력을 발휘하게 될 겁니다.”
■ 삼성전자 ‘칸’ 김가을 : “강하면서 부러지지 않는 유연함”
삼성전자의 김가을(26) 감독은 프로게임단 최초의 여성 감독이다. ‘가을의 전설’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10여 차례나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기도 했다. 여성 최강의 프로게이머로 군림하던 중 돌연 학업을 위해 게이머 은퇴를 선언했고 지난 해 8월에 삼성전자 칸의 감독으로 복귀해 파란을 일으켰다.
삼성전자 칸은 타 게임단과 달리 멤버쉽 체제의 운영방안으로 정식 감독이 아닌 삼성전자 직원이 선수들을 관리해 왔다. 이로 인해 선수관리 및 게임단 운영에 있어 미흡한 부분들이 속속 드러났고 결국 김 감독이 투입된 것.
김 감독 영입 후 삼성전자는 선수들에 대한 대우나 환경이 상당부분 개선되었다. 그러나 단체전에서의 팀 성적에서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요즘은 선수들한테 하도 고함을 질러 미안하기도 해요. 경기에만 나가면 실수를 범해 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니 속이 상하더라구요.”
권위적인 감독의 모습에서 한 발짝 물러서 강하면서도 부러지지 않는 유연함으로 선수들을 대하려 노력하지만 최근 프로리그에서의 4연패는 견디기 힘든 시련이다.
“실전에서 얻은 풍부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팀 운영을 해내겠다고 약속했는데 아직은 제가 많이 미흡한가봅니다.”
하지만 남은 다섯 경기는 꼭 잡아내 기필코 2라운드에 진출한다는 게 김 감독의 포부다.
■ 소울(SouL)팀 김은동 : “안정적인 팀 기반 만들어갈 계획”
김은동(33) 감독이 정식으로 감독으로 데뷔한 건 2000년 7월. PC방을 운영하면서 조용호 나경보 등 실력 있는 선수들을 대회장에 데리고 다니면서부터다.
김 감독은 소울팀을 이끄는 감독이자 한국프로게임협회 선수협의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선수협의회 업무와 팀 운영을 동시에 진행하다보니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다. 하지만 선수협의회 일이 곧 프로게이머들을 위한 일이라는 보람으로 버텨나간다.
“스폰서가 없는 팀이라 많이 힘이 들지만 그렇다고 선수들을 발굴 육성하는 일에 소홀해지면 안되죠.”
김 감독은 최근 총 12명의 연습생을 새로 영입했다. 현재 숙소가 협소해 6월에는 대림동으로 이사를 할 계획이다. 합숙을 통해 팀원들간의 결속력을 다지고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할 예정이다.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인성교육을 강조한다. 좋은 경기를 펼치고 우수한 성적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는 것이 프로다운 모습이라는 게 김 감독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이제 새로운 식구들도 맞이했으니 안정적인 팀의 기반을 만들어 나가는 게 급선무라 생각합니다.” 대기업들이 많이 참여해 게임단이 좀 더 활성화될 수 있었으면 하는 게 선수협의회 회장으로서의 김 감독 바람이다.
김수연 기자 < jagiya@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