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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4/05/01 20:20:07 |
Name |
The Siria |
Subject |
(미디어다음)게임으로 세상을 지배한 프로게이머 강민 |
3억 3천 다년계약 성공, '강민 시대' 예고
컴퓨터 한 대와 두 손만으로 세상을 정복하겠다는 청년이 있다. 프로게이머 강민(23).
"어느 누구도 넘보지 못할 성적과 업적으로 프로게임계의 역사를 쓰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하얀 얼굴에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 23살의 청년, 강민의 목표는 단단하고 야무졌다.
E-sports의 주력 상품인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크')가 대중 속으로 파고든 지 6년, 그 동안 스타크는 수많은 스타와 숱한 화제를 만들어냈다. 아직 많은 이들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강민은 '포스트 임요환'의 선두 주자로 화려하게 부상한 스타다.
지난 해 7월, 스타우트배 MBC게임 스타리그 첫 출전에서 우승한 이후, 그는 거침없는 우승 행진을 계속해 왔다.
마이큐브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지만, 네오위즈 피망배 프로리그 우승과 NHN 한게임배 온게임넷 스타리그를 모두 석권했다. 팀간 리그로 진행된 프로리그에서는 소속팀 슈마 GO를 우승으로 견인하며 'MVP'를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최근의 인텔배 베스트 커플전 우승까지 올 들어서만 3차례나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대기업 스폰서 KTF 매직엔스팀에 새 둥지를 틀면서 3년간 3억 3천만원에 연봉 계약도 맺었다. 프로게임 사상 최초의 다년 계약으로 명실공히 '강민시대'를 만천하에 천명한 것이다.
무일푼에 컵라면으로 PC방 전전하기도
게임으로 '인생 역전'을 이룬 강민의 신화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물론 아니다. 고교 졸업과 동시에 게임계에 뛰어든 이후 그의 여정은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어려워진 집안 형편 때문에 당시 그는 하루라도 빨리 직장을 구해야만 했다. 견습 직원으로 일하며 불확실한 미래에 방황할 무렵, 게임계에는 임요환이라는 걸출한 스타가 나타났다. 강민의 잠재된 욕망에 불이 붙기 시작한 것이 그 때다.
임요환을 보며 '나도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강민은 집안의 반대도 무릅쓰고 무작정 게이머의 길로 들어섰다. "말이 좋아 게이머지, 일정한 거처도 없이 이곳 저곳의 PC방을 전전하는 생활이었죠"
집안에서 용돈을 타 쓰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처지에 수입마저 한 푼 없던 그는 말 그대로 노숙자나 다름 없는 상황이었다. 게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던 시절, 하루 30-40게임을 소화했다. 손바닥에는 굳은 살이 박혀 병원까지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였다. 남들 보기엔 그저 한심한 폐인일 뿐이었다. '꿈'과 '희망'이 그가 가진 전부였다.
"집안 사정도 어렵고, 프로게이머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어느 누구도 잘 해 보라고하는 사람이 없었던 시절이었어요. 그냥 고집을 피운 거죠. 내가 좋아하는 거니까.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으니까"
그는 '밥만 먹고 게임만 하는데도 대회만 나가면 예선에서 탈락하던 때'라고 그 때를 회상했다. 강민의 게임센스는 천부적이다. 어렸을 때부터 200원만 있으면 하루 종일 오락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임신동으로 유명했다. 그런 그에게도 프로의 세계는 전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좌절의 늪에 빠져있던 강민의 게임 인생에 서광이 비친 것은 2002년 프로게임단 'GO'에 입단하면서부터다.
프로게임계의 이단아, 몽상가의 꿈은 어디까지인가?
강민은 인복이 많은 사나이다. 무명시절부터 그의 가능성을 믿고 후원회를 만들어준 직장인 팬도 있었고, 정처 없이 해매던 그를 받아준 'GO'팀이 있었다.
"마우스도 제대로 작동 안 되고 컴퓨터도 다운되기 일쑤고, 공짜로 게임을 할 수 있는 PC방을 찾아 나서는 일 자체가 정말 절망적이었어요. 처음 게임팀에 들어갔을 때 월급은 없어도 내 컴퓨터, 내 공간, 함께 연습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너무 행복했어요."
정식 팀원이 되고 나서도 강민은 한동안 '미완의 대기'일 뿐이었다. 이윤열, 박정석 등 물량과 컨트롤에 의존하는 '정통파'들이 득세하는 게임계에서 '엽기 전략'을 고집하는 강민의 설자리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듯 했다.
"저한테 대 놓고 '넌 안돼'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특이한 게임 스타일이 처음엔 먹힐지 몰라도 이기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충고였죠. 사람들이 아무리 떠들어도 전 혼자 속으로 다짐했어요. 두고 봐라, 내가 어떻게 성공하는지"
연패를 거듭할수록 강민은 이기는 법을 터득해갔고 특유의 독기와 고집은 결국 스타리그 우승이라는 결실로 만개했다. 새롭게 탄생한 강민의 존재는 단순한 '승리 제조기'가 아니었다.
'몽상가 토스', '아트토스'라는 그의 닉네임이 말하듯 그의 플레이에서는 스타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듯한 독창성과 예술성이 느껴진다는 게 관계자들의 한결 같은 찬사다.
프로게임계의 이단아 강민. 그는 스타크에서 오랫동안 통용됐던 '공식'들을 하나 둘씩 부숴나갔다. 프로게이머의 실력이라면 방어탑을 짓는 소극적인 대응 대신 유닛을 뽑아서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캐논(방어탑)을 집중적으로 건설해 '꽃밭토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테란을 상대로도 캐논을 짓고 프로토스를 상대로 커세어, 다크 체제를 선보이는 등 유닛 상성을 무시한 아무도 하지 않았던 엽기 발랄한 전략도 선보였다.
그가 던진 충격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물량토스' 박정석을 상대로 더 많은 물량을 쏟아내고, 최고의 팀플레이어로 명성을 떨치며 '개인전을 잘하는 선수는 팀플레이는 허술하다'는 편견을 허무는 등 예측을 불허하는 플레이로 신들린 듯한 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게임 전문가들은 "기본기와 전략을 겸비한 그의 아성이 당분간 무너지기는 힘들 것"이라고 점치고 있다. 일부에서는 "임요환을 뛰어넘는, 스타크가 탄생시킨 역대 최고의 선수"라는 평가를 조심스레 내놓기도 한다.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은퇴 후엔 게임 해설자가 꿈
강민은 지난 달 홍진호와 임요환을 제치고 프로게이머 랭킹 2위로 등극했다. 이제 남은 상대는 1년여간 독주체제를 굳혔던 '천재 테란' 이윤열 뿐이다.
"특별한 라이벌 상대는 없어요. 이윤열, 임요환, 홍진호 등 저보다 경력이 많은 선수들이 다 라이벌이죠. 앞으로 누구도 넘보지 못할 경력들을 쌓고 싶어요, 우선 결승에 최대한 많이 올라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시종일관 낙천적이고 열정적이다. 게임을 해온 지 7년째지만 단 한 번도 질리거나 싫증난 적이 없단다. 자신이 하는 일을 마음껏 즐기고 도전한 것에는 끝장을 보고야 마는 요즘 세대의 건강함이 느껴졌다. "'프로'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할 수 없다"며 의젓함을 보이지만 연습 때문에 여자친구를 자주 만날 수 없는 게 가장 큰 걱정 거리다. 스물 셋의 나이에 억대 연봉의 신화를 이룬 그의 성공 비결은 바로 어린 나이 답지 않은 치밀함, 그리고 성실함이었다.
"지금 너무 행복해요. 억대 연봉을 받는다고 해도 이것 저것 쓰고 나면 남는 게 없을 거 같아서 착실히 적금을 부을까 계획중이에요. 전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고 배가 고파요."
자신에게 더욱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는 강민의 상승세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시간이 허락하는 한 게임을 계속하고 싶다"는 그는 "은퇴 후에는 게임해설자나 게임캐스터가 꿈"이라며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지칠 줄 모르는 그의 승부욕이 게임계를 뒤흔들 새 역사를 쓸 수 있을지 강민의 도전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미래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무명 때는 매일 미래만 생각했는데 대회만 나가면 떨어지고 되는 일은 하나도 없더라고요.(웃음) 항상 '현재 진행형'으로 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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