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웹툰 <부기영화>의 표현을 빌리자면, 관람이 아닌 '목격'하는 영화를 잘 못봅니다. 정확하게는 그런 류의 한국 영화를 잘 못 보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안 보거나 혹은 못 보거나 하는 이유는 이런 저런 이유를 댈 수 있지만, (예를 들면, 상영 극장이 근처에 없다거나, 바쁘다거나, 뭐 그런 이유들요.) 이번 <다음 소희>를 보면서 조금은 외면해왔던 이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소희>는 전주 콜센터 현장 실습 학생 자살 사건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전반부는 '소희'가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가, 그리고 후반부는 '오유진' 형사가 어떻게 상황에 대해 알게 되었는가에 대한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개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가,에 대한 전반부와 그게 시스템에서 어떤 결점이 있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되는 후반부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저는 이게 아주 매끄럽진 않았어요. 전환이나 혹은 감정선이 조금은 미묘하게 어긋나 있는 느낌이 들었고, 구조적으로 지나치게 후반부는 교훈적이었거든요. 저는 그러니까, 이 영화의 후반부는 차라리 생략하거나 없앴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같은 댄스 동아리 내지 학원 수강생이었고, 어떤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고, 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행동과 대사가 일침에 집중하고 있는 느낌이 없잖아 들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추천, 혹은 보시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이런 류 영화를 못 봤던 이유와 어느 정도는 맞닿아있는 이유인데요. 저도 모든 것들이 긍정적이고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제가 이런 류 영화를 피해왔던 이유는 '두려워서' 였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가 <기생충>을 정말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고, 뛰어난 영화라고 글까지 썼지만, 그걸 두 번 보진 못했던 이유와 동일한 이유라고 이해해 주시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세븐>의 마지막 대사를 자의적으로 따오자면, 세상은 싸울 가치가 있지만, 아름답지는 않다는 이야기에 공감하지만, 그걸 직시하고 바라보는 건 저에게 다른 용기가 필요한 성격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다음 소희>는 너무나도 서늘하고, 너무나도 아픕니다. 저는 제목의 그 '다음'과 '소희'가 이렇게 서늘하고 복잡한 감정을 일으켜 버릴 지, 너무나도 적절하면서도 아픈 제목이 되어버릴지 보기 전엔 몰랐어요. 저는 그러니까, 형사의 캐릭터가 지나치게 일침에, 소위 말하는 '사이다'에 몰려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걸 제외하더라도, 영화의 시선과 영화의 톤이 충분히 건조하고 또 담담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상처는, 어떤 아픔은 그저 손대지 못하고 가만히 바라보게 됩니다. 섣불리 손댈 수도, 제멋대로 고쳐보겠다고 건드릴 수 없는 그런 상처들이요. <다음 소희>는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은 아슬아슬합니다. 지나치게 뜨거워질 때가 있고, 감정적으로 과잉이 될 뻔한 순간들이 없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상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억지 힐링이 아니라, 억지 사이다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상처를 바라보고 상처에 대해 말하는 시선도 저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p.s. 저는 왜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루시드폴의 <평범한 사람>이 귀를 자꾸 맴도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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