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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01/17 09:55:18
Name 김승구
Subject 착한 일과 돈 벌기 - 요양원 이야기3 (수정됨)
대학 시절 사회적기업에 관심이 많았었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돈을 버는 데 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관계된 주변 모두를 이롭게 하는 것.
실제로 그런 의미에 중심을 두고 사업을 꾸려 나가는 사업가를 직간접적으로 접하면서 제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다만 한 가지 질문은 머리를 떠나지 않아 강연을 가거나 업계에 계신 분들을 만날 때면 항상 묻고는 했습니다.

“사회적 기업가가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은 이해 상충적이지는 않나요? 괜찮은 걸까요?”

단순히 생각하면 별문제가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기업이라 하더라도 어쨌든 사업체를 운영 하면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왜 문제겠습니까?
다만 실례를 들어보면 생각이 조금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결식아동을 돕는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면,
독립유공자를 위한 사회적 기업을 하고 있다면,
그들을 돕는다는 미션으로 사업을 꾸려 나가면서 번 돈으로 사치를 하는 것은 정당한 것일까?
동일한 비용이면 한 명이라도 더 배불리 음식을 대접할 수 있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사람도 아닌 사회적기업 대표가 비싼 차를 타고, 비싼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은 괜찮은 걸까요?

지난번 글에서 소개 드린 요리아리 요양원을 방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방문 전 메일을 주고받을 때부터 들뜬 마음이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고대하던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방문하기 전과 정반대로 어느 때보다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제가 겪고 있던 문제를 그곳이라고 겪지 않는 것은 아니었고,
결국 이곳에도 정답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절망적이었던 건
그렇게 헌신적으로 온몸을 내어 바칠 자신이 제게는 없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매주 시설 비용 충당을 위해 바자회를, 그리고 카페를 여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와 같은 헌신이 제게는 절망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스스로 사명감은 있으나 종교인의 그것 같은 고귀함은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어르신을 위한 시설을 운영 해야겠다는 야망은 있었으나,
그만큼 세속적인 욕심도 부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참으로 힘이 많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1

영화 쉰들러 리스트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독일인 사업가 쉰들러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을 살리기 위해
본인의 자산을 팔아가면서까지 로비하고, 유대인들을 직원으로 고용하면서
수많은 생명을 구하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영화 후반부에 쉰들러는 울먹이며 절규합니다.
본인이 자동차를 팔았더라면, 자신이 사적인 욕심을 조금 더 줄였더라면
소중한 목숨을 한 명, 두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었을 텐데 하고 말이죠.

그의 절규가 마치 저에게 외치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자신이 없다면,
적어도 요리아리 운영자만큼 본인을 희생할 자신이 없다면
이 업을 더 이상 지속해서는 안 된다는 말처럼 말이에요.

2

그러던 중 며칠 지나지 않아 그 영화를 또다시 떠오르게 되었던 계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요양원 일을 하기로 마음먹고 이곳저곳 봉사활동을 많이 다녔었는데요,
일반 개인이 운영하는 곳,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곳,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립요양원까지 다양하게 다녔습니다.
그날 방문하기로 했던 곳은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 요양원이었는데
매우 많은 인원이 입소를 위해 대기하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외부자인 제가 봉사활동으로 방문하였음에도
부조리한 일들은 제 눈앞에서 많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하루의 경험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느껴 아예 실습을 신청하고 몇 달간 방문하게 되었음에도
적어도 제가 있었던 그 기간 동안은 그렇게 대기하며 갈 만한 요양시설은 분명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쉰들러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자랑스럽고 떳떳한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는 시설이 늘어나는데
업계 전체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그래서 부조리한 대우를 받으시던 수많은 어르신을
저런 시설로부터 구출해야겠다는 생각을 말입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오만하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 말을 할 자격이 되나?
하는 생각에 정말 많이 부끄럽기도 합니다만, 아무튼 그런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본 요리아리 케이스를 보면서 요양산업 발전을 위해 힘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요리아리의 잡지가 인기를 끌고 나서 많은 사회복지과 졸업생이 요리아리에 입사 원서를 냈다고 하니까요.
다만 온몸을 갈아 넣는 헌신이 아니더라도,
어르신들께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인력과 인프라를 갖추고,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들에게 떳떳이 그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며,
마지막으로 시설 역시 그에 대한 수익성을 보장받는 시설의 모델을 만들어 냈을 때,
그런 꿈 같은 요양시설이 절대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때,
미치는 영향 역시 크리라 믿게 되었고 그 마음으로 요양원 일을 지속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역시나 현실적인 문제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요양원을 더 잘 운영한다고 해서 비용을 더 지급하지 않는 현재의 시스템상,
결국에는 급여 항목이 아닌 부분에서 수익 창출을 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시설에 대한 투자도, 인력에 대한 투자도, 그리고 그 투자에 대한 수익도 가능해집니다.
그리고 그 항목은 현재 시스템상 상급 침실료가 유일하며,
그 돈은 보호자의 손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결국 상상 속 그 요양시설은 1인실, 2인실 위주의 시설이 될 테고 수혜자는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이들이 되겠지요.

다만 이번에는 미리 좌절하고 자기비판에 빠지기보다는
이 도전 그 자체가 갖는 영향력에 대해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요양업계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퍼져 나갈 영향을 말입니다.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경종이든,
‘이게 되네?’ 하고 생각하게 된 업계 종사자이든, 운영자이든 말이지요.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사회적 기업가가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은 이해 상충적이지는 않나요? 괜찮은 걸까요?”
위 질문에 다양한 대답을 들었으나 결국은 많은 세상사가 그러하듯 스스로의 답을 찾았습니다.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라는 관념에 대한 도전이 그것입니다.
그 목표를 위해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다음에 또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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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17 10:55
수정 아이콘
멋지네요 화이팅입니다!
저는 모든 기업이 (사회적 기업 포함) 단기 성과보다는 '계속 일할수 있는 지속가능성'을 고민해봐야 하지 않나 요새 고민중입니다.
SAS Tony Parker
23/01/17 13:33
수정 아이콘
지인 이름과 같아서 흠칫흠칫 하네요 크크 화이팅입니다
23/01/17 14:27
수정 아이콘
돈을 어떻게 버는지와 번 돈을 어떻게 쓰는지는 다른 일 같습니다.
빌게이츠나 일론머스크나 돈을 버는 건 똑같은데 쓰는 게 다른 것처럼..

그리고 법인은 법인이고 사장은 사장이죠. 법인=/=사장.
법인이 벌 수 있는 돈을 안벌고 사장 마음대로 제3자에게 손해보며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런 건 배임이 될 수 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진짜로 부자들만을 대상으로 요양원을 한다고 한들 그게 또 무슨 잘못이겠습니까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정당하게 서비스를 제공해서 돈을 버는 일인걸요.
벤츠파는 사람들이 죄책감 느껴야하는 것도 아니고..

근데 공립요양원의 부조리함이 어떤 건지는 모르겠는데
그들이 일부러 그러는게 아니라면 구조적, 재정적인 한계때문에 그러는 건 아닐까요?
그걸 극복하고 비슷한 가격에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지 궁금하네요.
김승구
23/01/17 19:10
수정 아이콘
주신 말씀 잘 생각해 보겠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정확히 따져보니 공립요양원이 아니라 종교시설 사회복지법인 요양원이었습니다. (관련 내용 수정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아래 언급하는 내용은 모든 종교시설 요양원이 아닌 제가 경험했던 한 곳의 요양원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임을 먼저 말씀 드립니다.

-------

제가 접한 그 요양원은 규모가 컸기 때문에 노조도 설립되어서 주기적으로 노사 간 주기적으로 회의를 했었습니다.
따라서 서비스 제공 방침이나 운영 방식 등의 논의는 잘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웃긴 것이, 요양원에서는 불합리한 행위를 잡아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내부자 제보인데,
요양원 운영진과 근로자간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어르신에 대한 언어적/물리적 폭행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공론화 될 방법이 딱히 없었으며 운영진 또한 이에 별 관심도 갖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결론이 이상하게 운영진과 근로자 둘 사이가 서로 견제관계에 있어야 좋다는 것처럼 들립니다만,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요양원은 반드시 어르신의 욕구에 대한 관심과
이에 상응하는 서비스가 제공되는지 지속적인 평가가 필요하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그 평가는 내부에서 스스로 하는 평가가 가장 중요합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린 그 요양원은 그럴 필요가 없었지요.
종교시설이라는 것 때문인지, 사회복지법인에서 운영하는 곳이라는 것 때문인지 아무튼 대기 인원이 수백명은 되었으니까요.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공단에서는 주기적으로 평가를 실시합니다.
3년에 한번씩 이요. 당연하게도 서류와 면담조사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 한계는 명확합니다.
심지어 그곳도 A 등급 이었습니다.
실제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보다 평가를 잘 받기 위한 서류 작업에 매진한 덕이겠지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문제를 구조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신다면,
글쎄요, 저도 정확한 답을 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우리 부모님을 모시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라고 개인적으로 물으신다면,
부모님을 모시기 전에 관심 있는 요양시설으로 봉사 활동을 꼭 가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모든 것을 파악할 수는 없겠으나 그래도 정말 아닌 곳은 거를 수 있을 테니까요.

더 나아가 이처럼 직접 자주 가서 보고, 소비자의 눈이 높아짐에 따라
도태될 곳은 도태되는 것이 요양산업 발전에 가장 이상적인 그림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23/01/17 20:31
수정 아이콘
저도 좀 더 생각해봤는데 백종원이 괜찮은 예시 같습니다.
가격대비 괜찮은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하면서 본인도 잘사는..
고민 많이 하시고 좋은 요양원을 운영하시길 바랍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23/01/17 16:47
수정 아이콘
유니세프 건물 보면 으리으리하고 뭐 그렇잖아요? 근데 그게 부자들에게 기부금을 받으려면 어느정도는 대응인력들도 고급인력이 필요하고 , 응대할때도 조금 좋은 시설이 필요하고.. 그런것들이 중요하긴 하다고 생각해요.

일반 사기업 대비해서 과한 이익을 원하는게 아니라면은 어느정도의 '용인할만한' 사치의 선은 괜찮다고 봐요.. 건강한 고민하시는것, 멋있어보이고 존경스럽습니다. 꼭 삶도 윤택하게 살면서 긍정적인 영향력도 끼치는 멋진 사회적기업가가 되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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