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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12 09:52
엘시를 현대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인공지능, 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하면 머신러닝이 이루어지기 전 초기모델 정도로 보입니다
그래서 초기 조건값을 똑같이 입력하면 항상 일정한 값이 나오고 그 선택지가 일정한 인과로 묶이기 때문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거죠 심지어 결과가 도출되면 원인을 알 수 있는(약혼했다->사랑하니까) 수준이기 때문에 선택을 하지 않는 이는 비교우위의 차선이 없으니 죄가 없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다가 알파고쯤으로 업글되고 선택에 인과를 알기 어렵게 되면서 좀더 옳은거 같은데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거 아닌가 싶고 인간으로서 더 성장한거라 생각합니다 나늬는 당연히 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달비부위는 달리기로 이끌었다면 아실은 사상으로 이끈거죠 아실의 영향력이 레콘에 한정된것으로 보인다면 어디에도 없는 신이 돌아와 던진 윷놀이에 참가한 영향이라고 보입니다 이번에 움직이는 말은 레콘만 조지는걸로요 모디사 헨로는 행복했을거 같지만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죄가 있는 인간이다보니 생각이 바뀌었을지도요
22/08/12 10:50
1. 피마새 시대의 나늬는 정우라고 생각합니다. 나늬는 모든 종족에게 사랑받는다는 특성 외에도 미모든, 달리기든 특유의 특성으로 자신을 따르게 만드는 인간 여인이라는 2가지 조건이 있는데, 아실은 레콘에게밖에 충족되지 못했고 도깨비, 레콘, 인간 모두의 사랑과 동인(정우를 성채매장자로 만들어준 것은 레콘입니다.) 받는 정우의 행보는 그 무엇보다 나늬였습니다. 판단할 근거는 적지만 아실은 레콘의 보늬, 니어엘은 인간의 보늬가 아닐까요.
2. 모디사 헨로는 행복하기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행복의 근원을 본인 내면에서 찾지 못하는 이는 어떻게 되든 불행하기 마련입니다. 설사 부냐가 엘시의 짝이 되어 황후가 되었다 해도 본인에 대한 대접이 격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불평을 계속했을 이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대체 엘시가 타이모의 난을 취검으로 어떻게 제압한 것인지에 대한 단편을 기다리며 타자 굿즈 불매를 할까 합니다.
22/08/12 11:17
이영도 작가 작품을 어릴 적 좋아해서 폴라리스 랩소디, 눈마새 전집을 소장하고 있는데도,
피마새는 한창 대학가서 놀던 시절이기도 하고 다른 작품들보다 좀 안 읽혀져서.. 중간에 보다가 흐지부지 되고 안 봤는데 다시 도전해봐야겠습니다.
22/08/12 11:43
저는 단순하게
죄 = 욕망 = 자유의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욕망이 없으니 스스로 뭘 하고싶은 자유의지가 없고 그러니 죄가 없죠. 죄라는것은 남에게 피해를 입혀서라도 뭔가를 가지고 싶고 이루고 싶을때 짓는 것이니까요. 그런 자신에게서 벗어나보자 했던 것이 부냐에 대한 사랑을 시도해본 것이구요. 처음 소설을 읽었을때는 나늬가 정우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 받으니까요. 하다못해 그 엘시에더리가 죄를 짓게 만들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여러번 읽다가 보니 나늬는 아실이라는 생각이 더 강해졌습니다. 나늬에 대한 확실한 정보는 특이하다, 모든 종족에게 아름답게 보인다. 모든 종족이 자신을 따르게 만든다. 입니다. 둘다 어찌보면 특이하고 어찌보면 자신과 관련된 대부분의 이들이 자신을 따르게 만듭니다. 아실을 레콘만이 따른다고 해서 아니라고 하기엔 락토 빌파야 말로 진정한 아실의 광신도죠. 그래서 저는 결론내렸습니다. 이것은 작가님이 우리에게 열어놓은 오픈월드다. 둘다 일수도있고 둘다 아닐수도있다. 모딧사 헨로는 단언컨데 불행했을겁니다. 왜냐하면 니어엘 헨로가 어떻게든 어머니가 좋아하지 않을 방법을 찾아서 왕이 됐을테니까요. 그리고 모딧사 헨로 또한 어떤 행복속에서라도 어떻게든 불행할 요소를 찾아서 불행해 했을테니. 이건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22/08/12 12:10
개인적으로 2대 영웅왕은 히베리를 밀고 싶습니다. 왕이 없는 시대에서 왕이 된 대호왕의 전례를 보면 왕으로서의 자질을 가늠할만한 커리어도 없고 본인도 별생각 없던 사람이 되는게 재미있지 않나 싶어서 그렇긴 한데...
22/08/12 13:05
엘시는 아마 치천제가 16000년을 거쳐 만들려고 했던 사람의 프로토타입같은 형태였다고 생각합니다. 치천제의 구상 속에서 16000년 후에는 사람들은 모두 엘시처럼 행동하는거죠(물론 엘시같은 능력을 갖진 않겠지만).
더 나아가서는 먼저 승천한 첫째 종족도 아마 엘시처럼 다른 사람들을 대했으리라 봅니다. 다만 아주 큰 차이는 엘시는 그걸 자발적으로 기쁘게 한다기보단 죄를 갖지 못했단 내면의 공허감에 몸부림치면서도 어쩔수없이 하는거고 첫째 종족은 진심으로 기쁨에 차서 그렇게 했겠죠. 이렇게 보면 엘시가 죄를 갖자마자 치천제가 바로 현타와서 다 던진것도 어찌보면 이해가 가는게...니가 16000년 걸려서 만들려는것이 사실 이렇게 몇년만에 도로아미타불 될수도 있는 취약한 것이라고 눈앞에 들이밀어진거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렇지만 않았어도(예컨대 엘시를 쓸수 없게 됐지만 그냥 죽어버리는 형태로 쓸수 없게 된것 뿐이라던가) 치천제 본인이 말한대로 스카리를 가져다 플랜B를 돌리건 어쩌건 원시제의 유지를 계속 지키려고 했을겁니다.
22/08/12 20:27
개인적으로는 엘시가 부냐를 사랑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헤어질 무렵에는 내가 저 사람을 왜 사랑했을까, 그게 정말 사랑이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처럼요. 그리고 만약 부냐가 엘시의 첫 연인이었다면 첫사랑은 보통 실패한다는 금언을 떠올릴 때 엘시가 설령 부냐를 사랑했더라도 그런 생각을 하는 게 특이한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궤로 엘시의 욕망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데로시? 그 황제의 첩이 엘시는 욕망의 실현을 위해, 곧 빵을 위해 농업을 증진시키는 사람이라고 평한 것처럼요. 엘시의 죄라는 것도, 단순히 규범을 어기는 것을 떠나서 그 규범이 왜 존재하였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면 약간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피마새를 보면서 니체를, 특히 도덕의 계보를 많이 떠올렸습니다. 특히 말씀주신 쵸지가 나늬에 대해 보이는 태도, '남들이 모두 아름답다고 인정하는 나늬를 찾기' -> ''내'가 원하는, 그 나늬를 찾기'에서, 또 힌치오가 사리타본에서 외치는 장면에서 보이는 힘에의 의지('나'와 '내가 욕망하는 것'을 바탕으로 성립하는 관점과 판단. 이에 반대되는 경우로 남이 부여하는 '작위'에 매달리는 모디사 헨로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우의 '아이'다운, 하지만 어리숙하지는 않은 태도(그러한 욕망 자체에 집중함으로써 기존의 피상적 규범의 탈피) 등에서 그런 맥락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죄라는 것은 절대적인 규범의 위반이 아닌, 도덕의 계보에서의 니체가 제시한 추론에 따르면, 단순히 채무관계에서 비롯된 것이고 또 규범과 벌 또한 그러한 채무관계의 정식화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엘시는 빚을 지지 않습니다. 욕망의 실현에 있어 본인의 능력이 지나치게 출중하기도 하고 그렇기에 남에게 책을 잡히지 않는, 빵을 먹고 싶으면 농업을 중흥시키는 사람이니 그저 남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게끔 하면서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해내는, 빚을 지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죠. 사실 고전에서 獨夫, 혹은 因緣과 같은 표현들, 또 초등학교 때 배우는 '밥 한 공기가 우리에게 오기까지~' 등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이는 엘시의 아압도적인 힘으로 정당화됩니다. 그러나 엘시는 빚을 지지 않는 사람인 동시에, 또 한없이 그 빚에 묶여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굳이 빚을 지지 않기에 빚을 지지 않지만 또한 그렇기에 남들과 진정으로 어울릴 수 없습니다. 유일한 친구가 인간의 기준을 벗어난 도깨비라는 점, 우물에 갇혔을 때 그렸던 그림들이 그런 상태를, 또한 그러한 상태를 엘시가 자각하고 있었고 엘시 자신에게 그다지 긍정적으로 여겨지지 않았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엘시는 남들이 묶여있는 채무관계를 욕망합니다. 그렇기에 그 채무관계의 전형, 극치인 '올바름'을 따르지만 관계의 상호성을 보장받지 못하기에 고통스러워하고, '죄'를 욕망합니다. 사실 이런 모순된 욕망은 엘시의 아압도적인 힘에서 비롯됩니다. 니체에게 있어 도덕이란 대부분의 경우 피안의 허상이고 기만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 규범의 위반, '죄'에 대해서는 그 채무관계가 기독교의 '금욕주의적 이상'에 의해 왜곡된 바라고 다시금 이해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기만들은 진정한 우리 자신을 감추고, 그를 돌보지 못하게끔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독교적인 원죄는, 그 도덕이 신적인 피안이라는 점, 그렇기에 몸을 가진 차안의 우리가 결코 닿을 수 없다는 점에서 비롯되고요. 그러나 엘시의 아압도적인 힘은 그 기만을 실현해내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쵸지에 대해서 쓰려다가 갑자기 엘시 내용이 너무 길어져버려서 글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모르겠네요... 저는 6번 지지합니다... 모디사 헨로는... 행복할 순 있어도 그 행복으로 다시금 불안하고 불행해지리라 생각하구요..
22/08/13 06:09
나늬는 후속편이 나온다면 이렇게 회상할수도...
그 시대는 특별했지 누가 나늬였냐는 논쟁은 둘째치고 각 종족이 사랑했던 여성은 분명했으니까 아실은 레콘에게 사랑받았지 정우는 도깨비에게 사랑받았고 (정우는 인간에게 사랑받지 못했지 친동생에게 죽을뻔하고 독살도 당할뻔했지 나중에 그저 규라하공 로써 인정을 받은것뿐이지) 그럼 인간이 사랑했던 나늬는 누구냐고? 나는 씁쓸하지만 부냐 핸로를 뽑고 싶군 그녀는 엘시에게도 스카라에게도 증오의 화신이던 모디사 헨로에게도 집에사는 노예남성에게도 왕이 된 니어엘에게도 모두 사랑빋았지 그녀는 불행하지 않았냐고? 아이러니 하게도 그녀의 불행이 그녀를 동정하게 만들고 그녀를 사랑하게 만드는 이유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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