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2/07/18 14:50:48
Name 여기에텍스트입력
Subject [일반] 친구 넷이서 노는 법
0. 제목은 그냥 별 이유 없고 '이걸 대체 뭘 어떻게 쓰지...'하고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지른 표현입니다.

1. 이전 글에서도 몇 번 밝혔듯 저는 ADHD 증상이 있는 성인ADHD 입니다. 물론 이걸 올해 알았으니, 제목에 있는 친구들은 제가 ADHD고 뭐고 그런 거 모를 때부터 친구들이었죠.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는데 벌써 시간 참 이렇게 빨리 흘렀네요.
...이런 표현 쓰면 안되는데, 쩝.

2. 여하튼간, 친구 하나가 코시국도 슬슬 3년차고 거리두기 완화도 되었으니 언제 봐야 하지 않겠냐며 운을 던졌고(놀랍게도 저희는 코시국 이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원래는 7월 말에 잠실야구장과 코엑스, 마지막 코스로 저희 집에 오는 루트를 짰는데 슬금슬금 수도권에서 또 확진자가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코엑스나 잠실이나 유동인구 많던 상황이라 결국 2주를 앞으로 땡길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넷 중 제가 야구잘알이긴 했는데 저도 올스타전 그저께 한 줄 몰랐을 정도로 근 몇년간 야구를 아예 안보던 상황이었습니다. 시기를 땡길 줄 알았으면 잠실에서 여는 마지막 올스타전 가는 것도 괜찮았을텐데요.
그런데 거기서 은원이가 쓰리런을 쳤더라고요? 랜선은원맘 웁니다...

3. 아니, 우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여하튼 그런 와중에 2주를 땡겼는데 예보는 또 주말에 비소식이라 어디 갈 루트도 짜지 못한 채 저희 집에서 놀다 가는 상황으로 바뀌었고, 나름 집에 사람이 오는데 집주인으로써 준비는 해야겠다 싶어서 게임도 하나 사고, 조이콘도 하나더 질렀죠. 네, 접대용 게임으로 유명한 슈퍼마리오 파티입니다.

4. 이제 서른도 넘었고, 사실 그 친구가 보자고 한 이유도 '어쩌면 마지막으로 볼 수 있지 않겠냐'하는 좀 슬픈... 이유였기 때문이었는데, 그렇다고 그냥 저희 집에서 내리 6시간만 있을 이유가 없잖습니까. 게임도 그래서 산 건데 말 그대로 우정파괴 게임이라는 닉값을 충실히 이행했습니다크크, 진짜 파괴한 건 아니긴 한데... 일단 소프트 산 사람(본인)도, 겜잘알(친구1, 친구2)도, 겜알못(이자 드라마덕후, 친구3)도 짤없는 운빨망겜에 당해버리고...

5. 아마 제가 이 집에 이사온 이후 제일 시끄럽게 웃어댔던 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이 맞벌이고 엄마도 ADHD 성향이 있는(추정) 분이다보니 정리정돈을 잘 못하셨는데, 그래서인지 집에 누굴 초대하는 걸 정말 꺼리셨거든요. 저도 청소는 하긴 했는데 먼저 온 친구들이 더 도와주는 참사(?)가 더해져서 그나마 '평범한 사람'이 사는 집안꼴로 바뀌어서 넷이 재미있게 놀기라도 했지...

6. 심지어 한 친구는 자고 갈 예정이었다가 당일치기로 내려갔는데, ADHD 증상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본 계기가 되었습니다. 증상이라는 말로 도피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이게 증상도 증상인데 몸에 밴 버릇같이 아예 붙어버린 수준이 되어서 고치는 일이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저도 나름 청소란 걸 당연히 하고 불렀을 거 아닙니까. 근데 그게 '평범한' 사람 입장에선 그것조차 만족못하는 수준이었던 거죠. 평범이라는 기준에 맞춰나가는 게 사소한 것도 많이 어렵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덩달아 올해 상반기에, 정말 인간 미만으로 살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7. 그나저나, 기껏 비온대서 집에서 마리오파티 3시간 하면서 시끌벅적하게 논 게 다인데 정작 당일엔 비도 안오고 화창해서 좀 킹받네요. 장마 지나고 곧바로 언제 모여서 보는 것도 좋겠구나 싶었습니다. 사실 저희 넷은 메신저로는 맨날 얘기하는 사이기도 해서 오래간만이라고 막 방방뛰고 이러는 사이는 아니긴 한데, 글로 왔다갔다 하는 것하고 보는 것하곤 확실히 차이가 크잖습니까.

8. 4에서 친구가 말한 '마지막'도 나이가 한자리 바뀌었고, 누군가 결혼 등으로 '넷이서' 보는 일이 어렵지 않겠냐 하는 의미였는데, 사실 어제만 해도 친구가 개인사정으로 중간에 먼저 가는 일이 있긴 했습니다. 사실 넷 다 결혼과는 거리가 멀긴 해도 결혼은 둘째치고 번듯한 직장 하나만 잡아도 어려운 건 사실이긴 하죠.

9. 이래서 별로 어른같은 거 되고 싶지도 않고 처음 친해졌던 학창시절처럼 지내고 싶은데, 시간이 전혀 도와주지 않는게 조금은 속상합니다. 그래도 아직 여유가 있긴 하니, 좀 더 만날 기회를 만들어야겠단 생각이 들기도 하고, 벌써 그런 나이가 되었나 싶기도 하네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2/07/18 15:12
수정 아이콘
저도 친구들이랑 친구집에서 모여서 게임하던 때가 그립네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PC방에서 스타/디아 열심히 하고 끝난 후에 친구집에 가서
한놈이 화이트데이 하는걸 남자 여럿이서 지켜보고 있는데 그게 왜그리 재밌고 무섭던지 크크
엄마 사랑해요
22/07/18 15:18
수정 아이콘
학창시절 매일 붙어다니던 친구들도 나이먹으니 한자리 모이기가 참 힘드네요.
이제는 상가집이 아니면 모두 함께 보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수준이라 친구들 함께 모이는 것보다 일식이나 월식 생기는게 더 빠를 듯.
리버차일드
22/07/18 15:34
수정 아이콘
(수정됨) 아버지랑 친구 분들 보니 연락만 꾸준히 된다면 은퇴할 나이 쯤 되어서 또 만나게 되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연세가 연세시니 만큼 안 보이게 된 분들도 좀 계셨지만... 집에 오실 때마다 곧 마흔 되는 친구 딸에게 이거 좋아하지? 하면서 제 돈 주고 사 먹은 지 이십년 쯤 되는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내미시는 아버지 친구 분들을 보면 속으로는 밖에서 만나시면 안 되나요 하다가도 걍 웃고 맙니다.
Foxwhite
22/07/18 15:37
수정 아이콘
투게더면 취향저격인데...
메타몽
22/07/18 18:03
수정 아이콘
저도 아버지 사례를 보니 대략 만 55살, 퇴직 즈음부터는 사회 관계 보다는 다시 초-중-고 관계로 롤백하시더라구요

그 전에는 가정 및 사회생활에 치이다가 저 즈음 부터는 과거의 좋은 추억을 이어가고 싶으신가 봅니다 :)
이경규
22/07/18 16:12
수정 아이콘
주말에 족구한번 하자고 약속잡는데 한바탕 걸렸습니다. 이제 날짜 픽스했는데 강수확률 60%....과연....
방구차야
22/07/18 23:48
수정 아이콘
그 애틋함,서운함도 꿈에서 다시 보길 기대하며 잠듭니다. 영원히 재상영하지 않을 영화같이 기억속에 되새이며 혼자 잠깐 떠올리고 웃고 마는거죠
22/07/19 13:32
수정 아이콘
표현이 참 좋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6109 [정치] '박민영 대변인' 대변인단 동료인 '문성호 대변인'을 공개저격 [24] 빅타리온11280 22/07/26 11280 0
96107 [일반] [테크히스토리] 로지텍 첫 마우스는 진짜 이상한게 생긴 것을 아시나요? / 마우스의 역사 [40] Fig.148850 22/07/26 48850 12
96106 [일반] [단독]우리은행 횡령 또 발견...총액 700억원 육박 [67] Leeka14067 22/07/26 14067 3
96104 [일반] 거리두기의 뒤늦은 청구서? - 소아 집단 면역력 저하 [18] 숨고르기11522 22/07/26 11522 16
96103 [일반] 코믹콘의 반가운 IP 소식 [7] 타카이8588 22/07/26 8588 0
96102 [일반] 보행자가 무시당하는 사회 [91] 활자중독자13724 22/07/26 13724 38
96100 [일반] 이상한 카메라를 샀습니다. [23] 及時雨12276 22/07/25 12276 5
96099 [일반] 반말하는 사람들 [25] 활자중독자11175 22/07/25 11175 14
96097 [일반] 중학교 수학과정을 마쳤습니다... [49] 우주전쟁11823 22/07/25 11823 47
96096 [정치] 대우조선 파업에, 이상민 "경찰 특공대 투입 검토" 지시 [233] brothers23752 22/07/25 23752 0
96095 [일반] 컴퓨터)상상 속의 특이하지만 도전해볼만한 조합(?) [3] manymaster7050 22/07/25 7050 0
96094 [일반] 나혼자만 레벨업 그림작가 장성락 작가님이 돌아가셨네요 [53] insane14709 22/07/25 14709 4
96093 [일반] 2022년 7월 조립 컴퓨터 부품 가이드(중사양 위주) [63] 귀여운 고양이14220 22/07/25 14220 44
96092 [일반] 쇼팽 연습곡 흑건에 묻어 가기.... [3] 포졸작곡가6427 22/07/25 6427 3
96091 [일반] [토론] 한국의 핵무장이 가능할까? [94] 눈물고기10578 22/07/25 10578 2
96090 [일반] [역사] 일제 치하 도쿄제대 조선인 유학생 일람 [59] comet2127062 22/07/24 27062 76
96089 [일반] MCU의 '인피니티 사가' 후속, '멀티버스 사가' 윤곽이 공개되었습니다. [164] 은하관제16087 22/07/24 16087 32
96088 [정치] 경찰국 신설의 목적은? [112] brothers19455 22/07/24 19455 0
96087 [일반] [루머] 인텔 13세대 랩터 레이크 9월 말 발표, 10월 17일 출시 [29] SAS Tony Parker 10266 22/07/24 10266 1
96086 [정치]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경찰 vs 임명직은 선출직에 복종해야 한다는 청와대 [196] kien.27865 22/07/24 27865 0
96085 [정치] NYT "文 수사는 尹에게 도박" 도박밑천은 대한민국? [95] 잉명23577 22/07/24 23577 0
96084 [일반] 요즘 본 만화 잡담 [17] 그때가언제라도10989 22/07/23 10989 1
96083 [일반] [그알]모영광 군 실종 미스터리 [98] 핑크솔져18129 22/07/23 18129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