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 모리스의 책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 를 읽었습니다. 책의 제목처럼 동양과 서양간에 왜 이렇게 발전의 차이가 났는가 라는 의문은 비교역사학자들뿐만 아니라 일반대중들에게도 끊이지 않는 관심의 소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그 점에서 2010년에 나온 이 책은 이 테마에 관한 이전까지의 논의들을 분석하고 종합하여 완벽하진 않지만 명쾌한 답을 제시했다는 점, 그리고 2022년 현재까지도 아직까지 더 나은 담론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뛰어난 명저라고 생각합니다. 책의 앞쪽 추천사에서 언급된 ‘역사의 통일장 이론이다’라는 표현에 공감이 갔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이 패러다임은 깨지지 않은 것으로 보여요.
[1. 장기고착 VS 단기우연]
모리스는 이전까지의 논의들을 크게 장기고착과 단기우연으로 나누어서 정리합니다. 장기고착이론은 쉽게말해 태초부터 어떤 결정적 요인이 서양의 지배를 만들었다는 것이고 단기우연이론은 아예 관점을 바꿔서 ‘진짜 서양이 계속 지배하기는 해?’ 라고 장기고착이론의 전제 자체를 무의미하게 보는 관점입니다.
물론 이 이론들 각각의 내부에서도 또다른 이론들의 간극이 존재합니다. 예를들어 단기우연론의 발생지인 캘리포니아 학파에서는 지난 서양의 지배를 동양의 일시적 쇠퇴로 보는 관점(프랑크)과 운빨(골드스톤)로 보는 관점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또한 장기고착이론의 간극은 훨씬 심해서 그냥 인종차별적인 인종론부터 고대 그리스인의 찬란한 문화가 지금의 서양을 만들었다는 문화결정론, 정치체제가 문제라는 관점(마르크스), 지리결정론(제레드 다이아몬드)에 이르기까지 그 간극이 매우 넓죠. 그리고 모리스는 장기고착이론과 단기우연론 둘다 역사의 모습을 잘못 이해했으며, 따라서 항상 부분적이고 모순적인 결론에만 도달했다고 비판합니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사회발전지수]라는 기준을 제시하지요.
[2. 모리스의 사회발전지수]
모리스는 이 논의에 명쾌한 답을 위해서는 인류의 역사 전체의 사회발전 수준을 측정해서 그래프로 그려내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장기론자와 단기론자들은 모두 상대방의 논증에 직접적으로 맞서는 대신 서로 다른 부분, 서로 다른 증거, 서로 다른 용어정의 등을 통해 서로를 비판한다고 봤기 때문이죠. 즉, 서로가 아예 다른 기반과 디딤대 위에서 싸운다고 본 것입니다. 따라서 방대한 역사의 사실들을 사회발전지수라는 단순한 점수로 환원하는 것은 단점이 있지만, 모두가 동일한 증거를 직시하게 만드는 큰 장점이 있기 때문에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합니다.
또한 환원주의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전기톱 예술’이라는 비유를 통해 변호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거대한 역사를 모두 조망하는 사회발전지수를 만드는 것은 벌목용 전기톱으로 나무둥치에서 덩치 큰 회색곰을 깎아내는 예술이라는 말이지요. 이말인즉슨, 포괄적 비교역사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완벽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생기다만 곰을 그래도 곰이라고 인식하게 만드는 보편적인 역사의 패턴이나 전반적인 모습을 보여주는게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물론 그렇다면 곰을 곰이라고 만드는 요소들을 어떻게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겠지요. 호랑이를 그려놓고 곰이라고 우기면 안되니까요.
결국 이 책은 모리스가 곰을 정의하는 사회발전지수라는 기준의 적합성을 독자들에게 논증하는 과정인 3장까지의 내용(생물학, 사회학, 지리학이라는 세가지 판단의 도구와 에너지 획득, 도시성, 정보처리기능, 전쟁수행능력이라는 4가지 사회발전지수의 지표들을 왜 선택했고 어떠한 방식으로 측정했는지를 설명하고 이에 대한 비판들을 반론하는)과 그 후 사회발전지수와 그래프를 사용해서 인류의 발전과정의 전 역사를 설명하는 뒷부분으로 나누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방대한 참고문헌을 인용하면서 역사와 고고학, 사회과학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모리스의 깊은 사유, 그리고 그걸 통해 이끌어내는 명쾌한 결론은 정말이지 감탄이 나오더군요
자세한 논증의 내용들은 책을 읽으실 분들의 즐거움을 위해 생략하고 결론만 말씀드리면 결국 모리스의 주장에 따르면 사회발전은 모든 곳에서 전 지구적 유사성을 띄고 같은 방식으로 발전합니다. 즉, 생물학과 사회학 이라는 도구를 통해 인간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인류의 사회발전 수준은 일반적으로 상승하고, 어떤 시기에는 더 빠르게 상승하며 어떤 시기에는 느려지거나 감소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법칙들은 언제 어디서나 적용되는 불변의 상수이지요. 대신 지리가 인류의 발전의 차이를 결정합니다. 다만 기존의 지리결정론과 다른것은 지리는 어느 지역이 가장 빠르게 사회발전을 할 지를 결정하지만 상승하는 사회발전의 수준이 또한 지리의 의미를 바꾼다는 것입니다. 즉, 사회발전지수를 1000점만점이라고 한다면 10점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는 지역과 100점, 500점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는 지역은 전혀 다르다는 얘기이지요. 일종의 변형된 지리결정론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모리스 본인은 이걸 [장기 가능성론]이라고 말합니다. 즉, 모리스에게 ‘시간을 다시 되돌려도 서기 2000년에 또다시 서양이 지배하는가’라고 물어본다면 그 대답은 [서기 2000년에 서양이 세계를 지배할 가능성은 지리의 이점으로 매우 높지만 어디까지나 높은 가능성의 문제이지 고착이나 절대적이지는 않다] 라는 입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소결]
이 책을 읽고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가 많이 떠올랐습니다(모리스도 본문에서 언급을 많이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지리 결정론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총균쇠에서 주장한 지리결정론은 몇가지 모순이나 애매한 지점, 논리적인 약점들이 분명히 있었고 비판의 요소들이 확실히 있습니다. 반면 모리스의 장기 가능성론은 그러한 비판들을 보완한 업그레이드된 지리결정론이자 끝판왕의 느낌이랄까요? 쉽게 까기 어려운 단단한 느낌이 좋았습니다.
또한 이 책이 나온지도 벌써 12년이 지났지만 생각보다 포괄적 비교역사학에서의 한국 인터넷 대중들의 담론이 매우 느리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책은 2010년에 나왔고 총균쇠는 97년도에 나왔으며 단기우연이론을 주장한 캘리포니아 학파는 90년대에 나왔는데 아직도 한국 인터넷에는 인종론 어그로를 제외하더라도 그리스/로마 얘기를 꺼내거나 마르크스 역사발전 이론을 꺼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20대 30대도 그런데 아마 고령층에는 더 많겠죠. 이미 철지난 자본주의 맹아론이나 재야사학 같은것도 못놓는 국회의원들도 아직까지 몇몇 있는걸 보면요. 사실 식민사학이던 그것에 대한 반박으로써의 내재적발전론이던 이제는 이미 다 의미없어보이는데 말이죠.
그리고 책에서 또 하나 인상적이였던 건 모리스가 SF소설 ‘파운데이션’을 언급하는 부분이였어요.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에는 셀던이라는 수학자가 나오고 이 셀던은 수학자 총회에서 심리역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이론적 태도를 설명하는 학술논문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이 심리역사학이라는 학문은 역사와 대중 심리학, 고급 통계학을 결합해서 인류를 추진하는 힘을 파악할 수 있고, 이걸 적용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학문이죠. 그리고 모리스는 이 역사심리학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아시모프의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우스갯소리라고 말하는 대부분의 역사학자들과 나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웬지 폴 크루그먼도 생각이 났습니다. 크루그먼이 파운데이션을 읽고 역사심리학자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현실에서는 경제학이 역사심리학과 가장 비슷한 것 같아서 경제학을 전공했다는 일화가 생각이 나서요.
모리스는 책에서 선언합니다. 우리는 역사라는 커다란 시간의 덩어리로부터 보편적인 커다란 패턴들을 찾아낼 수 있다고요. 그리고 역사학을 통해 그 패턴을 이용하여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요. 이 부분이 자기 자신의 이론에 대한 모리스의 대가로서의 자부심과 확신이 느껴지는 멋진 대목인 것 같습니다. 모리스의 또 다른 책 ‘가치관의 탄생’에서의 모리스의 말로 이 리뷰를 마무리 해볼까합니다.
[“나의 견해는 언제나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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