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2/01/23 05:11:08
Name 식별
Subject [일반] 푸른 피에 대해 알아봅시다
판타지 소설같은 걸 보면 ‘귀족의 푸른 피’ 운운하는 내용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푸른 피를 타고났다는 말은, 은수저 물고 태어났다는 말과 세트로 서양에서 지금도 많이 쓰이는데요, 오늘은 이거의 기원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레콩키스타와 푸른 피의 발명





예언자가 죽은 뒤, 전 세계를 집어삼킬듯 무시무시한 기세로 확장을 거듭하던 이슬람 세력은 마침내 711년, 이베리아 반도의 남부 해안가에 상륙했습니다.

7000여명의 베르베르 족 대군을 이끄는 자의 이름은 타릭tarik. 상륙 지점의 높은 산은 타릭의 이름을 따 제벨 알 타릭 jebel al tariq 으로 불리게 되었고, 지금도 이 곳 해협은 그 이름, 지브롤터로 불리고 있습니다.

바다 건너온 침입자들을 격파하기 위해 서고트 왕국의 마지막 임금 로드리고는 군대를 이끌고 돌격하였으나,


‘8일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투’ 끝에 살해당해버리고,


반도의 대부분은 바다 건너온 정복자들의 손아귀에 떨어져버리고 맙니다.


미처 떠나지 못한 기독교도들은 무장을 통제당한 채 개종을 강요당했으며, 개종을 하여도 종교세를 납부하여야만 했고, 이에 반발하는 기독교인은 본보기로 처형당했죠.

피배한 서고트 군대의 잔당은 울분을 삼키며 북서부 지역의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십자깃발 아래 모였고,


언젠간 안개 짙은 산기슭에서 틀어박혀 있는 신세에서 벗어나 정복자들을 몰아내고 빼앗긴 국토를 되찾을 것을 다짐하고는,

두에로의 죽음 계곡으로 발길을 향했습니다.


이후 1492년, 이베리아의 마지막 이슬람 왕국인 그라나다 왕국의 붉은 요새(알함브라)가 카스티야 연합왕국에 의해 함락될때까지 700여년이 넘는 기간동안 기독교 세력의 국토회복운동, 일명 레콩키스타 운동이 벌어집니다.


무슬림들이 무함마드의 이름을 외치며 지하드를 시작하고, 기독교도들은 산티아고의 이름을 외치며 십자군을 선포하는 등 계속해서 서로에 대한 성전에 성전을 거듭했지만,


수백년의 동거 생활동안 그들의 피도, 문화도 점차 섞이기 시작했습니다.


점차 정복자들과 피정복자들, 기독교도들과 이슬람교도들이 서로 뒤섞여 구별이 가지 않게 되자,


십자군을 이끌던 무장 귀족들, 일명 이달고들은 이교도들과 그네들을 구별해주는 핵심적 요소가 조상 대대로 그 순수성을 지켜온 고귀한 피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들은 옛 서고트 왕국 귀족들의 ‘푸른 피 sangre azul 을 계승했기에, 햇빛을 받으면 창백한 피부에 푸른 정맥이 도드라져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푸른 피에 대한 집착은 육체노동을 경멸하고 무용을 숭상하는 기질과 함께 사회 전반에 퍼졌고,

귀족들이 실내생활과 모자를 통해 창백한 피부와 푸른 정맥을 과시하는 한편, 자연스레 인종적으로 짙은 피부를 가진 이슬람교도 무어인들은 물론이고,


뙤약볕에서 일하는 하층민들 또한 햇볕에 탄 짙은 피부색을 가질수 밖에 없었기에 비천한 혈통으로 여겨졌습니다.

이 푸른 피에 대한 개념은 점차 스페인 밖으로 퍼져,

유럽 여러 나라에도 수출되어서, blue blood란 영어 표현은 19세기 때부터 나타납니다.

여담인데 백마탄 왕자님도 스페인에선 푸른 왕자Príncipe azul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이렇듯, 피에 대한 광기에 가까운 집착은 먼 훗날 유대인 박해와 종교재판, 그리고 스페인 제국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연결고리가 됩니다.

*유튜브 영상으로 만든 글입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도날드트럼프
22/01/23 09:09
수정 아이콘
이게 한국까지 넘어와서 양신이 되었네요 흑흑
잉어킹
22/01/23 09:57
수정 아이콘
의학관련 헤모시아닌이나 메트헤모글로빈 이야기 일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역사 이야기도 재밌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죽전역신세계
22/01/23 10:09
수정 아이콘
저도 투구게 얘긴줄 알았습니다.
전자수도승
22/01/23 10:29
수정 아이콘
투구게가...... 아니었어?
22/01/23 10:36
수정 아이콘
라이온즈가....아니었어?
착한글만쓰기
22/01/23 10:52
수정 아이콘
정작 알라리크 시대 이전까지는 고트족이야말로 야만인이었는데 역사라는게 참 크크크
valewalker
22/01/23 11:08
수정 아이콘
단연히 양준혁 배영수인줄..
VictoryFood
22/01/23 11:33
수정 아이콘
유튜브 영상이 있으면 영상도 보여달라구요.
올해는다르다
22/01/23 11:57
수정 아이콘
양준혁이... 아니야?
덱스터모건
22/01/23 12:09
수정 아이콘
다저스가... 아니야?
블랙핑크
22/01/23 12:43
수정 아이콘
램파드가... 아니야?
착한글만쓰기
22/01/23 13:00
수정 아이콘
푸른피가...말대꾸?
22/01/23 13:23
수정 아이콘
푸피에가...아니야?
22/01/23 16:04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정작 13세기 카스티야 법령집이나 17세기 소설인 돈키호테에서는 푸른피라는 표현을 전혀 찾을 수 없습니다.
실내생활로 도드라진 푸른 정맥과 고귀한 혈통을 연결짓는 건 스코틀랜드의 타탄 킬트처럼 근대에 만들어진 전통이죠.
그런 점에서 중세 배경의 판타지 소설들에서 푸른 피의 귀족 운운하는 건 굉장히 시대착오적인 표현
고등어자반
22/01/23 16:18
수정 아이콘
그런 면에서 우리 모두 홉스봄을 읽읍시다.
복합우루사
22/01/23 18:25
수정 아이콘
파탄 아오!!!
시도 데스!!!!
Dukefleed
22/01/24 13:01
수정 아이콘
엑스재팬이...아니야?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4948 [일반] 한강에 사는 핑크 펭귄 [9] 及時雨8892 22/02/02 8892 11
94947 [일반]  대체 왜 우회 안하고 구태여 공성전하는 건데? (feat.건들건들) [65] 아스라이13732 22/02/02 13732 16
94946 [일반] [스포]누가 좀 시원하게 까줬으면 좋겠는데... 지금 우리 학교는 [53] ipa12104 22/02/02 12104 30
94945 [일반] 한국말 그리고 한국어 [21] singularian9070 22/02/02 9070 8
94944 [일반] 설연휴 마지막날을 위한 웹툰추천-안식의 밤 [13] lasd2417508 22/02/02 7508 0
94943 [일반] 샤아의 역습 이후 24년 - (넷플릭스 지구 밖 소년소녀 감상) [1] 닉언급금지6082 22/02/02 6082 1
94942 [일반] 노인네가 되면 보는 것도 달라진다 [10] 나쁜부동산11305 22/02/02 11305 15
94941 [일반] [성경이야기]아이성 함락과 기브온의 거짓말 [6] BK_Zju9388 22/02/02 9388 21
94940 [일반] 국적별 건강 보험료 납부액 & 수혜액 [55] OCT2513753 22/02/01 13753 10
94939 [일반] 면접 완전 망쳤네요... [27] 검정머리외국인13223 22/02/01 13223 17
94938 [일반] 남산에서 바라본 사계절 [37] 及時雨9007 22/02/01 9007 70
94937 [일반] 해저2만리... 굉장한 소설이군요 [30] 흰둥12077 22/02/01 12077 13
94936 [일반] 무술이야기 05 한국무술, 전통무술 정말 있긴 하냐? [42] 제3지대10030 22/01/31 10030 48
94935 [일반] 자가격리 대상자의 한숨(수정 사진추가) [80] 그림속동화19512 22/01/31 19512 10
94934 [일반] [한드 추천] 더블유(W) 리뷰 (스포 최소화) [51] 마음속의빛8667 22/01/31 8667 4
94933 [일반] 21세기 바이킹 드라마중 원탑 - 라스트 킹덤 - 중세적 망탈리테를 중심으로. [14] 펠릭스9915 22/01/31 9915 11
94932 [일반] [기사] “식염수 맞고도 백신 부작용 호소”…美 하버드 의대의 놀라운 임상시험 결과 [80] 지구돌기21864 22/01/30 21864 47
94931 [일반] [일드 추천] '혼인 신고서에 도장을 찍었을 뿐인데' 리뷰 [42] 마음속의빛13235 22/01/30 13235 8
94930 [일반] [팝송] 이어스 앤 이어스 새 앨범 "Night Call" [2] 김치찌개5533 22/01/30 5533 5
94929 [일반] [노스포] 지금 우리 학교는 후기 -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해봤어 [48] 김유라13919 22/01/29 13919 0
94928 [일반] (약스포) 지금 우리 학교는 간단 리뷰 [26] 카트만두에서만두11742 22/01/29 11742 2
94927 [일반] 지금 우리 학교는 (스포주의) [48] 쉽지않다18076 22/01/29 18076 3
94926 [일반] [성경이야기]아이성 전투와 그 패배의 원인 [5] BK_Zju12654 22/01/29 12654 2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