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끈따끈한 리뷰입니다. 방금 유튜브를 통해 온 가족과 함께보고 올리는 후기입니다.
할머니를 모시고 살다보니, 극장같이 사람이 몰린 곳에 온가족이 다같이 가는 것을 피하다보니,
미나리가 극장에서 개봉을 했을 때는, 미처 극장에 가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부모님께서 영화를 찾으셨고, 제가 유튜브에 있는걸 발견하고 시청했습니다.
48시간 대여에 5,500원입니다.
리뷰를 시작하기 전에, 며칠전에 제 집안에서 있던 일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왠지 영화하고도 관련이 있는 일이었거든요.
산타할아버지가 그려진 도자기 그릇이 하나 집에 있었습니다.
반찬을 내놓을 때 가끔씩 쓰던 그릇입니다. 보통은 그냥 밀폐용기에 반찬을 담고 뚜껑만 열어서 먹지만요.
또 이 그릇이 가끔 쓰이는 이유는, 꽤나 집안에서 아끼는 그릇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잘 모르는 이야기이지만, 부모님께서 결혼식 때 받은 선물 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것이라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릇 선물 세트에서 이것저것 없어지고 깨졌는데, 이 녀석만은 그래도 이사 가는 사이에도 같이 있어줬다고요.
한편 할머니께서는 요리를 하시다가 그만 손가락 끝을 다치셨습니다.
꽤나 깊게 자르셔서, 저도 살면서 처음 119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모시고 갔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영화를 보시면서도 할머니의 약지 손가락은 두껍게 붕대로 감아놓은 상태입니다.
그러다가... 음 이제 한 일주일 지난 것 같군요.
다친 몸이 회복하는 것에는 고기가 좋다고 합니다.
물론 그냥 고기를 좋아하는 집안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핑계는 필요했습니다.
밀폐용기를 쓸 수 없으니, 고기를 내드리면서 그 산타할아버지 그릇도 나왔습니다.
할머니께서는 고기를 맛있게 드셨고,
"잘 먹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시면서
당신 앞에 계시던 그릇들을 반찬그릇까지 모아서 쌓아서 왼손으로 드셨고
몇걸음 가지 못하셔서 젓가락을 흘리셨고, 두 걸음 뒤에는 산타 그릇을 깨셨습니다.
아버지는 위생장갑과 비닐을 꺼내셔서 큰 조각을 줍기 시작하셨고,
저는 아버지께 실내 슬리퍼를 드린 다음, 저도 한 짝 신고 청소기를 꺼내와서 작은 조각들을 돌렸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그거 끝나고도 고기는 많이 남았기에 식사는 계속 되었고, 술도 마싰더라고요.
이야, 부기영화 기준으로는 이거 영화 스포일러인데요!?
[스포일러 가득한 리뷰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영화 "미나리"에 대해서 '한인을 다룬 작품'이라는 정보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 작품에서 발견한 키워드는 3가지: 폭력, 이동, 기독교입니다.
1) 폭력.
작품을 보신 분이라면 제가 꽤나 이상한 키워드를 꺼내왔다고 생각이 드실 것입니다.
되게 평화롭고, 또 담담한 작품이 아니었는지요?
작품에서 누군가의 멱살을 잡는 장면이 나오지도 않고, 평범한 사람은 폭발할 것 같은 순간에도 오히려 평화와 납득이 찾아오며,
궁극적인 주제는 '회복'에 가깝습니다. 이렇게만 작품을 본다면 폭력은 설 자리가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피 한방울 없지만,
상징으로 가득한 고어물에 가깝습니다.
주인공 내외가 일하는 병아리 부화장이 열심히 사람들이 일해서 선별한 숫병아리를 태워서 굴뚝으로 매캐한 연기를 뿜고 있는걸
이 영화는 몇번이나 롱테이크로 잡습니다.
남자 주인공 '제이콥'이 아칸소의 시골로 처음 이사와서 바닥의 흙을 한 줌 쥐고,
한국말로 '여기 흙좀 봐! 미국에서 가장 기름진 땅이야.'라고 말했기 때문인지
한국적인 풍수지리와 신토불이에 대한 아칸소의 심술궂은 대답은
토네이도가 찾아와서 집을 흔들고, 우물은 마르고 수도세는 떨어져서 물이 끊어지며, 고생지어 농사지은 창고엔 불을 지릅니다.
비가 온 다음에야 땅이 굳듯이, 영화는 계속해서 상처의 비를 내립니다.
시작 장면에서부터 아내는 남편의 귀농에 상처를 받고,
"내가 보내준 돈으로 당신네 가족은 잘 살잖아"라며 부부싸움을 거니까, 머나먼 한국땅에서 할머니를 모시고 옵니다.
할머니는 오자마자 손주에서 "이거 비싸니까 꼭 다 먹어"라면서 맛없는 보약을 먹여, 음료수를 먹을 기회를 뺏어가고
음료수는 맨날 뺏어 먹으면서, 보약으로 독살(?)시도를 하는 할머니에게 손자는 오줌을 음료수라고 대신 담아줍니다.
목가적이고 평화로울 수도 있는 한 가정의 이야기는, 비록 작은 스케일이지만,
작은 생채기나마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위한 기회를 놓치지 않는 가족을 보여줍니다.
"별걸로 싸울 수도 있다 정말!"이라고 할머니가 익살스럽게 꼬집듯이,
각 가족 멤버는 서로에게 "아니 근데, 왜..."라고 몰아붙이는 것에 주저가 없습니다.
물론 한국영화가 다 그렇듯이, 여기 '나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잘 해주고 싶죠. 그런데 돈이 없습니다. 씻겨주려는데 물이 없고, 병원에 가야하는데 당장 일이 바쁘고 병원은 대도시에 있습니다.
이 작품이 다루는 폭력은 매우 한국적인 폭력입니다. 무슨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이 칼로 찌르는게 아닙니다.
사람이 착하면 뭐해요? 서로 착하고 배려해주는 덕분에 여태까지 폭발하지 않고 버텼습니다.
그 덕분에, 더 이상 못하겠다는 이 순간까지, 내가 이 사람 때문에 지금 우는 구나하는 그 순간까지
서로에게 못해주고 실망시키는 것의 연속인 스너프 필름이 상영됩니다.
2) 이동.
움직이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이사라는 것이 끔찍한 추억이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물론 어떤 종류의 이동은 즐겁죠. 신분상승이고 돈벌 기회의 증가입니다.
당연히 이 영화에서 다루는 이동은 정반대의 것입니다.
잘 풀려서 이동이 아니라, A에서 안 풀려서 B, B에서 안 풀려서 C, 하... 이제 C에서 생각해보니 D로 가야하나?
등장인물은 한국인이라는 설정이건만, "미나리"는 윌리엄 포크너를 포함한 미국 남부 소설의 문법에 충실합니다.
대도시의 온갖 불쾌한 기억, 걱정거리, 경제적 기회로부터 빠져나온 '남부 농민'이 치뤄야하는 죄값은
바로 '이동'입니다.
농사도 고생해서 지어야하지만, 농산물을 '죄악에 가득찬 대도시'로 옮기는 것 또한 그들의 몫입니다.
평소의 궂은 삶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던 가족관계와 경제능력은,
'한 몫 잡으러' 도시로 여행을 떠나는 순간, 더 끔찍한 형태로 악화됩니다.
아니, 그냥 가족이 함께 지내려고
힘들게 한국에서 미국으로 옮겨온 할머니는 그 과로 때문인지 며칠 안되어서 뇌졸증으로 쓰러지시고
가족들은 서로 누구의 탓인지 범인찾기를 해야하나, 자신의 탓이라고 자책을 시작할까 이지선다에 들어가죠.
모 일본 작품에서 '도망쳐 온 곳엔 낙원은 없다'라고 했다지요.
이 작품 역시 그 정신에 충실합니다. 아니죠, 불행한 사람은 도시에서 잘 풀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밑천이 없이 빚을 끼고 농사부터 지어보는 사람이죠.
그런데, 도망도 일종의 '노력' 아닌가요?
무슨 도망만 무책임하게 친 것도 아니고, 그런 인간상은 영화에서 한 명도 나오지 않습니다.
다들 열심히 살고 있는데, '낙원이 없으면' 도대체 왜 열심히 살아야하죠?
노력은 그냥 무너지지않기 위해, 체면 챙기기 위해 하는 이기적인 행위인가요?
3) 기독교.
"미나리"는 내내 기독교적인 상징과 소재를 사용합니다.
'여긴 한인교회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던 사람 밖에 없어'라는 말을 듣고, 미국인 교회에 녹아들려고 하며,
주인공이 고용한 농사 일꾼 "폴"은 일은 매우 잘하지만, 미신과 광신에 빠져있는 사람이죠.
적어도 해를 끼치진 않고 말도 잘 들어주고 그래서, 주인공 가족과는 그럭저럭 지내지만요.
등장인물들이 '열심히 살고, 착하다'라는 두가지 요소를 한번에 보여주기 위해,
주중에 일을 열심히 할 뿐만이 아니라, 멋진 차림으로 매번 일요일에 교회에 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이들을 짖밟고 또 짖밟죠. 차라리 교회와 신앙이 이들을 고난으로부터 보호해준다면,
차라리 '악마'가 하는 일이라도 될텐데, 폴의 말마따나 '엑소시즘'을 하면 해결이 될텐데
오히려 공포스러울 정도로 삶이 안 풀리는 것은 악마의 소행이기에는 너무 사소하고 구체적이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욥기'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착하게 사는 '욥'이라는 사람에게 고난이 닥치는 이야기입니다.
이 '욥기'라는 작품을 쉽게 한줄요약하자면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이야기를 줄이고는 합니다.
'욥이 이유없는 고통 속에서 고생했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더니 배로 복을 받고 잘먹고 잘 살았더라, 아멘!'
그리고 이건 애석하게도 매우 잘못된 요약입니다.
사실 욥의 이야기는 매우 복잡하고 또 끔찍한 이야기에요.
욥은 매우 무서운 사실을 깨닫게됩니다.
'고난이 그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요.
욥이 피부병에 걸리고, 집이 불타고, 가족을 잃었을 때,
친구라는 웬수들이 찾아와서 그에게 말합니다. '회개해라 죄인아! 선하신 신께서 함부로 너를 벌하실리가 있냐'!
하지만 하나님은 말하죠. '지금까지 네가 죄를 지었기에 일어난 일은 아무것도 없다'.
긍정적으로 해석을 하자면요. 착하게 살고 계신 기독교인은, 고통 받으실 때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책망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끔찍하게 해석을 하자면요. '착하게 살아도 나쁜 일은 일어나요.'
영화 "미나리"의 제목은 우리가 먹는 그 미나리에서 따왔습니다.
이야기 안에서는 할머니께서 멀리 떨어진 물가에 심어둔 작물입니다.
그리고 영화내내 열심히 고생하면서 지은 농작물은, 그걸 팔려고 도시에 간 대가인지 불타버리고
단 한 번도 제대로 신경 써준적이 없는 미나리는 잘 자라서 마지막 장면에 가족들을 반겨줍니다.
정말 멋진 결말이고 '힐링하는' 결말이지요. 가족에게는 아직 다음 기회가 남았습니다.
한 해 농사는 망쳤지만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누구를 탓하기 보다는 서로 열심히 도우면서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도와줬고요.
하지만 열심히 지은 작물은 불타고,
심어두고 잊은 미나리는 번성한다면
인생은
인생이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