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1/06/11 13:51:07
Name ohfree
Subject [일반] 퍼즐

포탈 이라는 게임이 있다. 벽에 구멍을 뚫어서 각각의 스테이지를 통과하는 일종의 퍼즐 게임이다.

남들에게 떠벌리고 다니진 않았지만 그래도 평균 이상의 머리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 했기에 후딱 끝내고 다음 게임으로 넘어가자 생각했었다.

다른 사람들 후기를 보니 포탈1은 플레이 타임이 대략 다섯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길래… 훗 난 네시간에 끝낸다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게임에 임했다. 하지만 다섯시간을 넘겨도 엔딩을 보진 못했다. 아씨. 뭐가 잘못됐나? 자문해 보았다. 답은 금새 나왔다.

런닝맨에서 모지리라고 놀리면 발끈하는 양세찬 이광수가 지금 내 모습이었다.

텅텅빈 머리를 부여잡고 겨우 엔딩을 보았다. 플레이 타임은 8시간 이었다.


내가 너무 쉽게 봤나? 2편은 제대로 해야겠다. 마음을 다잡고 도전하였다. 2편의 플레이 타임은 대략 10시간 정도였다.
심기일전하며 도전한 나는 이내 벽에 부딪쳤다.  공략을 볼까 말까 고민하는 시간에도 플레이 타임은 흐르고 있었다. 갈등하던 나는 결국 게임을 껐다. 시간을 오버하는 것보다 공략을 본다는게 더 자존심 상했기 때문이었다. 며칠 뒤 다시 켜 본 그 스테이지는 시간을 두고 다시 바라보니 의외로 쉽게 풀렸다.


‘그땐 왜 안 보였지?’


이 후 막힐 때마다 시간을 두고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대부분의 문제들은 며칠 뒤 다시 보면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문제의 스테이지가 등장했다. 이번에 당면한 문제는 쉬이 풀리지 않았다. 삼일 뒤 마주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일주일 뒤에 노려 보아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 스테이지 에서만 수백, 수천, 수억번 재도전을 하였다. 하지만 모조리 실패하였고 그런 나를 마주할 면목이 없고 또 너무 부끄러워 술 먹고 피시방에 갈 뻔 하기도 했다.

그 스테이지는 그렇게 나에게 화두를 남겨 주었다. 내 마음속 화두는 가끔씩 번뜩이는 답을 내 놓긴 했지만, 원펀치 잘 치는 권투 선수 말처럼 계획대로 되진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반년 정도 흘렀을 때에야 비로소 겨우 풀어 낼 수 있었다. 희열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상스러운 말만 나올 뿐이었다.



‘이리 간단한 걸 못 푼거야?’



이후에도 쿵떡쿵떡 어찌저찌 여차저차 해서 게임을 한지 일년 후 결국 엔딩 보는데 성공하였다. 플레이 타임은 이미 의미가 없었다. 그간 마음속으로 시뮬레이션 한 것만 수십, 수백 시간은 되었을 테니.





어느 비오는 날, 멍때리고 있는데 문득 인생이 퍼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여전히 문제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작은 개미이고.

내 인생은 소중하기에 이번엔 주저없이 공략을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런건 없어 보인다. (설마 있나?)


벽에 부딪쳤을때 수백, 수천번 도전하여 결국 클리어 했던 게임과는 달리 내 인생은 게임이나 나가수가 아니기에 재도전은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 이 순간에도 플레이 타임이 꼬박꼬박 쌓여만 가고 있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내가 왜 이런 뻘 생각을 하고 있지?
옆에 있는 조이스틱을 들고 서둘러 큐를 돌렸다.

이내 대진이 잡혔고 내 주 캐릭을 골랐다.

그제야 혼란했던 마음이 안정되고 마음이 편안해 졌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Respublica
21/06/11 13:56
수정 아이콘
젤다하면서 퍼즐의 맛을 참 잘 느꼈습니다. 포탈처럼 직선구조가 아니다 보니 다른 사당들 돌고 오면 풀릴 때도 있고... 여전히 못푼 사당도 있고 그런데...
저는 끈기가 부족한지라 공략을 보곤 합니다. 근데 공략을 보면 퍼즐을 풀기 위한 사고력이 안 늘어나는데... 시간은 또 무한정이지 않으니 골치가 아프죠.
아무튼... 인생이 제일 어려운 퍼즐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정답의 존재성부터가 의문이네요.
세인트
21/06/11 16:38
수정 아이콘
게임에서 인생의 진리를 찾는 좋은 글입니다. 이런 글이 PGR에 진짜 어울리는 명문이죠. 아참 추천을 빼먹어서 추천드리고 갑니다.
구라리오
21/06/11 20:42
수정 아이콘
포탈2 정말 퍼즐 푸는 재미와 우울한 세계관이 잘 어우러진 명작으로 기억합니다. 개빡치는 상황에서 설마 이걸 이렇게? 하면서 했는데 풀릴때의 쾌감은 정말 크크크크
이걸 래벨 다자인이라고 한다면 정말 유저 학습 곡선을 잘 만든거라고 생각합니다. 만만하네 히히히 > 어?! 뭐야 이건 >설마 이렇게?! > 만만하네 히히히 > 이하 반복...
그리고 스토리와 엔딩 곡이 진한 여운을 남겨줬었죠...
고분자
21/06/12 11:14
수정 아이콘
케이크는 거짓말이었나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2250 [일반] [14] PGR과 함께 사는 세상 [5] 제리드15141 21/06/25 15141 9
92249 [정치] 추미애 "내가 대선 출마 선언하니 윤석열 지지율 떨어져" [34] TAEYEON14097 21/06/25 14097 0
92248 [일반] [14] 오늘도 나는 하루 더 늙었다 [4] 글곰11894 21/06/25 11894 17
92247 [일반] 남성 혐오 사건에 대한 언론의 태도 [96] 맥스훼인20800 21/06/25 20800 42
92246 [정치] 민주당 경선 일정 그대로 가기로 합의, 이낙연은 반발, (+정세균은 수용) [61] 나주꿀17220 21/06/25 17220 0
92245 [정치] 아이돌-前CEO-탈북자까지… 국민의힘 ‘대변인 오디션’ 흥행 [65] 청자켓19358 21/06/25 19358 0
92244 [일반] 반값 로또 청약 원베일리 커트라인이 나왔습니다. [47] Leeka16278 21/06/25 16278 1
92243 [정치] [도서] 한겨레 기자가 출간한 한일신냉전 [59] aurelius19067 21/06/25 19067 0
92242 [일반] 사망사고후 부모님이 용서를 해주는 경우 [50] will17415 21/06/25 17415 2
92241 [정치] [외교] 일본의 인도태평양 전략 [115] aurelius17999 21/06/25 17999 0
92240 [일반] [외교] 프랑스 의회, “인도태평양 전략 청문회” [6] aurelius13501 21/06/25 13501 9
92239 [일반] [외교] 수준 높은 프랑스의 외교잡지 [22] aurelius20443 21/06/25 20443 23
92238 [일반] 출수는 두 번 할 필요가 없나니. 팔극권 이서문 이야기 [14] 라쇼19841 21/06/25 19841 12
92237 [일반] 윈도우 10+1은? [21] 나주꿀15807 21/06/25 15807 2
92236 [일반] 故손정민 유족, 친구 A씨 `폭행치사·유기치사` 혐의로 고소 [127] 마빠이25724 21/06/24 25724 7
92235 [일반] 누가 1차 접종은 괜찮다고 했던가 : 힘들었던 모더나 백신 1차 접종기 [9] L'OCCITANE14885 21/06/24 14885 0
92234 [일반] 중국의 가상화폐 때려잡기 [25] 나주꿀19357 21/06/24 19357 0
92233 [일반] (삼국지) 삼국지의 군웅들은 호족을 어떻게 관리했나? [24] 글곰18447 21/06/24 18447 37
92232 [일반] 교차 접종 통보받았습니다. (우려 스러운점) [61] 성야무인17101 21/06/24 17101 5
92231 [일반] (삼국지) 삼국지의 호족은 어떤 자들이었나? [40] 글곰16961 21/06/24 16961 46
92230 [정치] 조선일보 SNS, 청년비서관에 ‘룸살롱 은어’ 사용 논란 [219] 어서오고24542 21/06/24 24542 0
92228 [일반] 컴퓨터 보안계의 거물 맥아피, 탈세와 코인 장난질의 말로 [15] 나주꿀15887 21/06/24 15887 1
92227 [일반] mRNA 백신 접종 후 발생하는 심근염에 대한 미국 ACIP 발표 정보 요약 [27] 여왕의심복17557 21/06/24 17557 38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