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PGR에 대동합방론이라는 책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다루이 도키치라는 일본은 우익 논설가가 저술한 책으로, 한일합방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책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중국의 지식인 량치차오와 캉유웨이를 감명시켰고 심지어 많은 조선인 지식인들도 이에 찬동했습니다. 심지어 을사조약 이후 분개한 조선인들이 왜 대동합방론에서 논의한대로 하지 않느냐며 비판했었죠. 대동합방론에서 주장한 한일합방은 대등한 합방이었거든요. 아무튼 해당 책은 유럽 제국주의에 맞서 황인종 대표 3국, 즉 일본과 조선 그리고 청나라가 연합해야만 한다고 주장했고, 3국의 연합 이전에 조선과 일본이 먼저 합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책입니다.
일본어 현대어역 판을 구해서 어설프게 번역을 시도했는데, 마침 지난 달에 제대로된 전문가들에 의해 번역된 한글판이 출간되었더군요. 130년만에 최초의 한글 번역판입니다. 매우 재미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께서는 한 번 구매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가격이 조금 비싼게 흠이지만요.
아무튼 해당 책에서 조선의 정세라는 파트가 있는데, 해당 파트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아 한 번 발췌하여 공유합니다.
특히 지정학적인 사고방식이 흡사 오늘날 유명세를 끌고 있는 피터 자이한(Peter Zeihan)과도 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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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개명에는 지리적 환경이 이끄는 경우가 있다. 태고 인류는 산간 구릉지를 중심으로 생활하고 동굴을 거처의 방편으로 삼았다. 그 유적지가 현재 남아 있는 곳이 많다. 벌목하여 보금자리를 꾸미는 데 이르러서 점차 생활공간을 평원으로 옮겼다. 이로써 교통의 방편이 처음으로 열렸다. 대체로 교통은 개명의 어머니이다. 서양 학자는 개명시기에 대하여 "옛날에는 교통 및 운송 수단은 하류에 의지하는 방편을 이용했다"고 논했다. 인도, 바빌로니아, 이집트 등이 점진적으로 개명 사회로 진보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를 하류의 시기라고 한다.
(중략)
조선은 산악이 많고 큰 하천은 없다.
(중략)
조선의 개명은 스스로 장족의 발전을 이뤘지만 하천이 길지 않아서 하천의 시기를 만나지 못했다. 비록 압록강이 있었지만 그 땅의 한랭한 기후는 고대인민의 생활공간으로 적합하지 않았다. 이러한 까닭에 선박 운송기술에 숙련되지 못했고 내해 시기로의 진보가 더디고 느린 것이다. 이것이 조선의 국운이 개명에 도달하기 어려운 두번 째 원인이다.
조선이 옛날부터 부진한 원인은 위에서 논술한 바와 같다. 지금 조선은 처음으로 자주 기상을 갖추고 대양과 철도 시기를 맞이하려 하고 있다. 삼면이 바다이고 일면이 대륙과 접하고 있는데 이 시기에 직면하여 어떻게 부국개명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이미 평원, 하천, 내해의 세 시기를 잘못 보내버렸다. 그래서 그 나라는 약소하고 인민은 피폐해 있으며, 정책도 문란하고 교화는 무너졌으며 자주라는 이름은 있으나 자립하는 내실이 없다. (중략) 더욱이 청나라와 러시아 대국이 그 땅을 섭정하려고 한다. 듣자 하니 조선 국정에 청나라를 사대하자는 사람과 러시아를 사대하자는 사람으로 양분되어 있다. (중략) 지금 조선에 비분강개한 선비가 없는 것은 아니나, 장차 어떠한 계책을 가지고 그 나라를 일으킬 수 있는가? 맹자는 또한 "못을 파고 성을 쌓아 인민과 더불어 이를 지키는데, 죽기를 각오하고 인민이 떠나지 않는다면 행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지금 조선은 과연 이 같이 할 수 있는가? (중략)
조선의 외부 사정을 보면 믿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지금 청나라의 국력이 조선을 원조할 만큼 넉넉한가? 청나라는 흑룡강 지역을 이미 러시아에게 뺴앗겼고, 베트남도 프랑스에게 침략당하고 있다. 그 인민은 미국과 호주 등 여러 나라로 이주한 사람이 수백만 명인데, 한 척의 군함도 이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또한 그 국내에 굶어 죽을 지경에 놓은 인민이 서로 바라만 보고 있는데도 구할 수 없는데, 무엇으로 국외의 조선을 원조하겠는가? 최근 중국에서는 영국이 조선의 이익을 독점하게 하려고 하는 의론이 있는데, 이를 믿으면 안 된다. 러시아는 지금 그 뜻을 동양으로 펼치려고 표트르대제의 유훈에서 말한 뇌물, 감언, 기만, 협박의 상투적인 수법을 드러낼 것이다. 조선이 끝내 러시아를 의존한다면 러시아는 대환영할 것이다. 그러나 한 번 의존하면 다시는 일어설 수 없고, 결국에는 동양의 폴란드가 될 것이다. 러시아의 정치는 압제정치인데 군주의 권력이 무한한 전제군주제이다. 만약 러시아에 의존하면 조선의 국민은 어떤 힘으로 그 권리를 펼쳐 자주적 국가를 갖출 수 있겠는가? 아아. 조선의 처지가 참으로 어렵구나.
이상 조선의 국내외 상황을 논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 장래를 전망해보면 어떨까? 어떤 논자는 "조선의 자주 기상은 점점 발전하여 대조선(필자주: 당시 조선은 국호를 대조선, 국왕은 대조선 대군주라고 칭하여 자존심을 세움)이라고 칭하는 것을 만국으로부터 듣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조선의 독립이 어렵다고 걱정하는가?"라고 말한다. 또한 "조선은 예부터 명목은 다른 나라의 속방이지만, 실상은 아직 그 독립을 잃어본 적이 없다. 이 습관은 오래되어 국정은 본래 견고하고 장래에도 독립을 보전할 것이다"고 말한다. 또한 "유럽과 미주 열강 가운데 영토는 협소하고 인구는 적으나 자주독립을 유지하는 나라가 있다. 조선은 세계에서 작은 나라라고 할 수 없는데 어찌 독립할 수 없다고 하는가?"라고 말한다. 또한 "조선은 금광이 많고 이를 채굴해서 국력을 기를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시베리아철도가 준공되면 물자를 집적하는 중추가 되어 반드시 이익을 얻을 것이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논설은 과연 조선의 진흥에 충분한 것인가? 나는 이들을 신뢰할 수 없다.
조선은 비록 자주국이지만 국가의 흥망은 그 명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상에 있다. 그 명목은 있으나 실상이 없으면 진흥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설령 실상이 있더라도 앞선 자는 사람을 사람을 다스리고 뒤처진 자는 사람에게 다스림을 당한다. 지금 조선이 교섭하는 나라는 모두 선진국이다. 그러므로 내부의 허와 실과 외부의 앞섬과 뒤처짐을 살피지 않고 성급하게 논단하면 오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습관을 견고히 하여 청나라와 결속하는 것은 조선을 지킬 수 있으나 조선을 진흥시킬 수 없다. 부강이라고 하고 개명이라 하는 것은 빈약에 안주하고 누습을 지키니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새롭게 하는 바를 멈추지 않고서야 도달할 수 있는 결과이다. 그러므로 나라를 진흥시키고자 한다면 습관을 꺠뜨릴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습관은 나라를 진흥시키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나라가 작고 독립한 국가는 반드시 내외 사정에 그 나라를 유도하는 것이 있다. 곧 국내 경쟁력이 다른 나라보다 뛰어난 시기, 이웃 나라의 무지몽매 혹은 기강이 무너진 시기, 그리고 인민의 적개심이 왕성한 시기가 이러한 사정이다. 비록 군주가 탕왕과 무왕이고 그 신하가 이부주소라 할지라도 이웃 나라에 현명한 사람이 있다면 독립은 불가능하다. 지금 조선에서 군사의 기세, 재력, 무기, 그리고 제반 학술에 다른 나라보다 뛰어난 것이 있는가? 이웃나라의 정치가 조선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있는가? 국민의 기상이 특별히 왕성한가? 나는 그러한 것을 알지 못한다. 다시 예를 들어 말하면 그리스는 유럽의 작은 국가이나, 64년전 터키에 반기를 들고 독립했다. 그리스가 독립할 수 있었던 것은 터키 정부의 부패와 폭정으로 비롯되었는데, 터키와 그리스 양국 간 인종상의 차이, 종교적 반목, 그리스인의 역사적 정서, 그리스인의 동족 및 같은 종교와의 연대와 같은 다섯 가지 국내외 사정과 관련된다. 이 다섯가지 사정이 그리스인을 충동해서 그 고유한 기상을 격동시켰다. 지금 조선은 이와 같은 사정을 갖추고 있는가?
(중략)
조선은 금광이 있으나 그 양은 유한하고 한 번 채굴하면 재생 불가능하다. 그러나 인공적인 제품의 생산은 무한하다. 조선의 통상 상황은 사금으로 서양의 잡화를 구매하는 데 지나지 않는데, 유한한 재원으로 무한한 상품을 교역하는 것이다. 금광업이 열리면 열릴수록 서양의 창고를 채워줄 뿐이다. 나는 금광업이 부국의 근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베리아철도는 다소 이득을 줄 수 있으나 이른바 나에게 없는 것에 의존하는 것이다. 또한 그 공사가 준공되면 청나라 국방이 위급하다. 러시아는 만주에 철도를 부설하여 흑룡강 상류에 도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청나라가 철도의 이익을 지각하면 장쑤와 산둥의 주요 항구로부터 산시와 간쑤를 경유하여 사막을 지나 몽고를 관통하여 티엔샨을 넘어 러시아 국경으로 나가는 철도를 연결할 것이다. 그러면 동서양 간 선로는 단축되고 기후가 온난한 지역을 지나므로 그 편리함은 시베리아철도와 비교할 수도 없다. (필자주: 오 무려 130년 전에 일대일로를 예견했군요...) 그 여객 및 화물철도가 어찌 오랫동안 조선으로부터 길을 빌려 사용하겠는가? 조선은 스스로 국가 이익을 도모하고 부의 원천을 개척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세계의 변두리가 될 것이다.
(중략)
지금 삼면이 바다이고 일면이 육지인 조선은 개명의 시기를 맞이할 것이다. 만약 기약할 사람이 있다면 동양의 그리스-로마도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 장래의 이익은 바다에 있지 육지에 있지 않다. 조선 사람이 항해술에 숙련되면 해조가 도달하는 곳에 이를 수 있다. 모든 철도에 드는 개설의 비용과 수선의 노동이 필요하지 않고 직접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 도달할 것이다. 그리고 훗날 러시아령과 만주가 더욱 개발이 진행되면 조선은 반드시 동양 상업의 요충지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이 진흥할 방법은 우선 해외에서 개명한 여러 나라와 통상하여 그 산업을 익혀서 이를 서북의 대륙에 펼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