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두 살 터울 누나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부모님 없이 초등학교 때부터 압력밥솥에 밥을 해먹곤 했다.
부모님은 자영업을 운영하느라 항상 바빴고 그들의 사랑을 느끼기에는 나는 점점 삐 뚫어져 있었다. 일밖에 모르는 무뚝뚝한 아버지는 옆에 있으면 항상 어색했다.
열심히 일해도 삶이 나아지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 시점이었다. 뻔히 보이는 가정형편은 좋아질리 만무했다.
그나마 내 삶의 유일한 탈출구는 동네에 사는 세 살 많은 사촌형과 주말에 같이 목욕탕에 가는 시간이었다. 집에 자주 들어오지 않는 외삼촌 몰래 사촌형 방에서 페미콤 게임으로 새벽녘 닭이 우는 시간까지 컴까기를 하던 시절이 좋았다.
사촌형은 나와 다르게 혼자 쓰는 방도 있고 다양한 미니카와 블랙모터까지 가지고 있었으니 그 당시 형은 나의 우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게임실력이 리즈시절이었다.
서울에 사는 이모,이모부들이 여름에 내려와서 주는 오천 원 한 장이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사촌이 내려오는 그 시기에는 해남에 야시장이 열리곤 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형들은 어디서 정보를 들었는지 사촌 형들을 따라 야시장이 열리는 그 날이 항상 기대되곤 했다. 지폐 한 장으로 세상 부러울 것 없었던 그 시절.
이번 2주 태국 배낭여행의 목적은 오로지 태국 북쪽 치앙마이 러이끄라통 풍등축제였다. 애니메이션 영화 '라푼젤'의 풍등장면의 모티브가 된 치앙마이 풍등축제를 보기 위해서 11월 비행기에 발을 올렸다.
여름 성수기에 태국을 와본 적은 있지만 11월 태국의 날씨는 가히 환상적이었다. 치앙마이 축제가 열리기 전, 먼저 태국 남부 끄라비로 향했다.
끄라비가 방송을 타면서 유명세를 타기 전, 2016년 끄라비 아오낭 비치는 내가 생각하던 동남아 해변가 마을의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현지에서 한국인은 보기 힘들고 호스텔에서 걸어서 해변과 5분 거리, 길거리에는 열대나무와 수많은 음식점과 저렴한 현지 여행사들.
그리고 맛집으로 손색없는 아오낭 비치의 일몰은 모든 것을 압도했다.
그리고 우연히 갔던 라일레이 비치의 경치는 숨은 보석과 같았다.
7,8월 성수기에 온 태국과 회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풍등축제를 보기 위해 떠난 11월 태국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날씨는 우기처럼 습하지 않고 여행하기엔 최적의 시기였다. 가히 압권은 끄라비, 방콕 여행을 마치고 온 치앙마이의 날씨였다.
11월 치앙마이의 날씨는 비 한번 없이 우리들을 맞아주고 있었다. 그리고 치앙마이 조그마한 길 주변에는 맛집이 어찌나 많던지. 왜 여기서 한 달 살기 붐이 일어났는지 이해가 갔다. 러이끄라통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서 동네 사원에서는 길가를 환하게 비춰주기 위해서 촛농을 녹여서 초를 만들고 있었다.
이것은 무슨 부처님 오신 날도 아니고 그 모습이 신기해서 현지 봉사자 주변에 가서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으면 '너도 와서 해봐'라며 촛농이 담긴 주전자를 주는 일 넘겨주기 스킬을 시전했다.
그 순간이 너무 좋았다. 하늘은 뽕따 소다맛 아이스크림처럼 파랗고 마을 전체가 축제로 들떠있었다.
2016년 11월에는 태국 국왕의 서거로 장례 기간 동안 카오산로드의 흥겨운 음악은 꺼져 있었고 무반주로 여행객들은 궁딩이를 흔들고 있었다. 사전에 모든 축제가 취소된다고 했지만 러이끄라통 축제는 조용한 가운데에서 진행하기로 한 것이 이번 여행을 취소하지 않았던 이유다.
그리고 그날 밤에는 어렸을 때 신기한 문화였던 야시장이 아주 길게 치앙마이 도로 곳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외국인들은 이 조그마한 동네의 축제를 어떻게 알고 온 건지 호스텔부터 호텔까지 방이 없을 정도였다.
호스텔에서 만난 외국인에게 '왜 유럽에 살면서 볼 것도 많은데 문화도 다른 동남아에 온거야?'라고 물어보니 외국들의 여행 버킷리스트는 동남아 배낭여행이라며 대답해주었다. 보통 한국 학생들은 휴학 후 모은 돈으로 유럽 배낭여행을 꿈꾸는 것처럼 그들도 여행의 한 순간을 담기 위해서 여기에 왔다.
러이끄라통 축제는 해마다 시기가 다르게 열리는데 2016년엔 11월에 열렸다. 10월에 열릴 때도 있고 11월에 열리기도 하는데 보통 가을 보름달이 뜨는 시기에 맞춰서 축제 일정이 나온다.
친구와 길을 가다가 우연히 들린 사원에는 동자스님들의 의식으로 축제의 문이 열렸다. 작은 사원에는 인종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그 장면 하나하나를 놓치기 않기 위해서 모여 있었다.
초저녁이지만 잠이 와서 졸고 있는 스님, 딴청을 피우는 스님도 있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치앙마이 강가에는 수많은 인파들이 모여서 각자 준비해온 풍등을 날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장 소중한 사람들, 혹은 우연히 숙소에서 만난 사람들이 모여서 풍등에 불을 붙이는 그들의 모습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치앙마이 도시 여러 곳에서 그들의 모습은 한결같았다. 모두들 웃고 있었다.
'과연 이보다 더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풍등을 켜지 못한 체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면서 축제에 빠져들었다.
'다음에 사랑하는 사람과 이 축제에 함께 와야지. 그때 같이 풍등을 같이 날려야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나에게 여행 언제가 가장 좋았냐고 물어본다면 난 유럽도 인도도 아니고 항상 태국 치앙마이 러이끄라통 축제라고 말을 한다.
"태국? 푸켓, 파타야, 방콕 카오산로드 말고 뭐 볼게 있나?"라고 말하는 그들의 공감대를 형성해줄 수 없지만 나는 그 순간만은 잊혀지지 않는다.
5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그때의 사진을 보면 아직도 먹먹하다. 그때 어떤 감정이었는지 모든 게 생생히 느껴진다. 언젠가 다시 가야할 곳이라는 사실이 확실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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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김영하 작가의 '오래 준비해온 대답' 시칠리아 여행 에세이 읽고 있어요. 시칠리아가 나오니깐 반갑네요!
이태리는 피사만 가봤는데 이태리는 꼭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에요. 트레킹 좋아해서 이태리 돌로미티산맥도 가고 싶어요.
코로나만 아니였으면 작년에 가려고 계획을 잡아뒀었는데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