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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2/25 02:10:19
Name 행복을 찾아서
Subject [일반] 아버지의 치매 이야기를 듣던 중 내 손에 들린 위스키 한 병
나이가 들면 으레 찾아오는게 병이라지만 아직도 실감은 안나는 아버지의 풀 죽은 목소리

오늘 병원에 가셔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셔야 된다는 얘기를 듣고 한없이 풀 죽은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있을 때

저는 남대문 상가에서 취미로 즐길 위스키 한 병을 구입했더랬죠.


어렸을 때는 부모님은 제가 기댈 수 있는 존재셨죠.

그러나 지금은 부모님이 약해지시고 본인들은 이제 사회가 돌아가는 것도 잘 모르고 낯선 기계를 앞에 두고 어쩔 줄 몰라 하시고...

저에게 조언을 구하실 때면 늘 자신들의 늙음을 안타깝게 여기시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괜찮을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던 저였지만

오늘은 마음이 그렇네요.


부모님께서는 저희 형제들에게 최선을 다하셨고 그래서 저희들은 이만큼 잘 자라올 수 있었지만

정작 부모님이 약해지셨을 땐 저희들은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네요.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가끔 상상을 합니다. 만약 부모님이 거동이 불편해지시고 본인의 모습을 잃으실 때 나는 그 분들을 잘 모실 수 있나하고...

못할 거 같아요. 무서워요. 그 힘듦이 무섭습니다.


가끔씩 서로에게 짜증을 내고 화도 내고 거친 말도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자식들을 위해 자기 한 몸 희생해가며 저희들을 돌 봐 오셨단 것을 잘 압니다.

그런데 저희가 받은 그 만큼의 사랑을 다시 돌려드릴 수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매우 어렵네요...


부모님의 그 사랑에 보답을 해야 한단 걸 알지만 그냥 제 삶을 즐기기에 바쁜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그 소식에 슬프기도 하지만 또 이렇게 나만 즐거운 일에 아버지의 그 감정을 잠시 잊어버릴만큼...


자식은 부모의 양분을 먹고 자란다는 생각이나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늙고 쇠약해진다는 생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그게 마치 핑계인양 부모님의 그런 모습을 외면한 채 저는 또 저 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겠지만 그게 최선일지는 모르겠네요.

최선이 아니고 차선도 아니고 그저 그냥 잘해보려는 시늉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이런 글을 쓰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술기운을 빌어 쓸 데 없는 넋두리를 주저리주저리 써봤습니다.

쓸 데 없는 글이라서 죄송합니다. 모두 편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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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25 02:36
수정 아이콘
긴 밤에 글 잘 읽었습니다.
12년째도피중
21/02/25 02:48
수정 아이콘
(수정됨) 극단적인 부담감은 되려 극단적인 방관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혹 부양이 자신의 책무라 느끼신다면 일단 할 일은 해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하나씩 정리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네요.

처음이 가장 힘듭니다. 그 얘기는 그 뒤부터는 조금씩 덜해간다는 뜻입니다. 무뎌지는 건지도 모르겠지만요... ^^
21/02/25 10:20
수정 아이콘
아...잘 읽었습니다..
CoMbI COLa
21/02/25 04:28
수정 아이콘
부디 닉값하셔서 변화할 일상에서의 행복도 찾으시길 기원합니다.
하늘하늘
21/02/25 07:41
수정 아이콘
치매는 좀 심각하지 않나요? 정밀진단 받은거 잘 확인하시고 지금이 초기라면 더이상 진행이 안되게 하거나 최대한
진행을 늦추게끔 최대한으로 노력을 하셔야할것 같아요.
치매 상태에 따라서 가족이 받는 고통의 크기가 하늘과 땅차이로 커지는 거잖아요.
지금 꼼꼼히 살피고 알아보셔서 대처를 잘하는게 제일 중요할것 같습니다.
스컬로매니아
21/02/25 08:00
수정 아이콘
글 제목이 너무나 시적으로 다가와서 월급루팡질 하는 도중이지만(...) 정독했습니다
저 또한 요즘 어머님께서 종종 전화로
"~~이거 어떻게 하는 거였지?"
"전에는 요래요래 했었는데 요즘은 잘~~"
이런 식의 말씀을 하실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집에선 과묵한 갱상도 스타일 아재라 반쯤 시크하게
"그거 며칠전에 알려 드렸었잖아~ 이래저래 해보세요~"
"그건 요래조래 하는 거였잖아"
툭툭 던지듯 알려드리고 통화하 끝나면 또 내심 후회합니다
좀 더 살갑게 알려드릴껄 하고 말이죠
첫 아이를 30대 끝자락에 맞이하고 키운지 1년 정도 되어가다보니 이제는(이제서야) 부모님께서 내게 주셨던 사랑이 제대로 느껴지고 있습니다
살아계실때 잘해야 한다는 말이 요즘처럼 힘껏 와닿았던 때가 없는것 같네요
좋은 글 덕분에 저도 한번 길게 써내려가 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충분히 잘 하고 계시고, 더 잘 하실겁니다!
녹용젤리
21/02/25 09:47
수정 아이콘
저도 19년 겨울 아버지께서 뇌경색으로 쓰러지신후 치매가 정말 급하게 왔습니다.
날이 갈수록 안좋아 지시는데 장기요양 등급산정은 발병후 6개월이 지나야 가능하고[도저히 김당이 안돼서 중간에 한번 신청하니 기각이 뜨더군요]
결국 작년 9월에야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실수 있었습니다.
그전에 요양병원이라도 모시려 했지만 코로나로 제 가계 사정이 상당히 안좋아 져서 그것마저도 힘들더군요.
집에서 8달을 어머니와 제가 간병했는데 정말 전쟁이었습니다. 제일 힘들었던건 기저귀가 답답하다고 일만 보시면 벗어서 아무데나 집어 던지시는 통에......
요양원 모신후도 코로나 때문에 얼굴한번 못뵈다가 설날 건강악화로 병원에 모신후 지난주에 상을 치뤘습니다.

문제는 제가 아직 실감이 안나요. 이러면 안되는데.....
21/02/25 12:12
수정 아이콘
아... 인터넷을 통해서나마 위로의 말씀 드립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기운이 나시면 좋겠네요.
녹용젤리
21/02/26 10:19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21/02/25 12:41
수정 아이콘
뭔가 쓰고 싶어도 쓸 수 있는 말이 없네요.
일개 회원이 읽기만 해도 벅찬데 본인 심정은...

고생하셨습니다.
아직 남아있는 것들도 많겠지만 잘 이겨내시길 기원합니다.
녹용젤리
21/02/26 10:19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마법사21
21/02/26 00:06
수정 아이콘
댓글을 읽으면서도 가슴이 아린게 느껴집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녹용젤리
21/02/26 10:19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힘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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