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1/02/13 01:37:54
Name Foxwhite
Subject [일반] 지금도 가끔은 너에 대한 꿈을 꾼다.
5년간 사귀었던 우리의 관계가 끝난지도 꽤 되었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종종 너에 대한 꿈을 꾼다.

너는 언제나 나에게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중요한 얘기는 아닐 것이다. 아마 오늘의 날씨에 대한 얘기나 니가 점심때 먹은 샌드위치에 대한 얘기를 했겠지.
그러다가 어떤 이변이 일어나 우리 둘의 연락이 끊긴다.
나는 너를 찾을 방법이 없다.
그러다 깨어버리곤 한다.

웃기다.
분명 먼저 떠나버린 건 나일텐데.
후련하게 훌훌 털어버리고 지금쯤은 다른 사람과 행복해져 있어야 할 터인데 그렇지가 않다.

너보다 나랑 더 잘 맞는 짝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떠나온 지금도 나는 혼자다. 너를 떠나보낸 나는 그 때 과연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우리는 내가 사는 도시를 좋아했다.
너는 다른 곳에 살지만, 그래도 내가 사는 광역시를 더 좋아했다.
그래서 너도 이 곳에 오려고 부단히도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여러번의 실패.
2년의 기다림 뒤에 나는 나의 기다림이 더 길어지는 것이 두려웠다.
아니, 솔직히 너가 합격했을 때, 과연 나를 반려자로 선택해 줄 지에 대한 걱정이 더 앞섰다.

도대체 아무 것도 없는, 늦은 나이에 취직한 나를, 젊은 니가, 다른 수많은 날고 기는 좋은 사람들을 다 제치고 나를 선택해 줄 지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너의 마지막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전화로 이별을 고해버렸다.

너는 그렇게나 빛나는, 젊고 매력있는 여자친구였는데,
나는 비겁하고 겁쟁이인데다가, 의리도 없었다.

지금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니가 너 사는 동네를 제치고 굳이 내가 사는 동네로 취직하려 했던 것이, 그로인해 스스로의 사회생활이 2년이나 더 늦춰져야 했던 이유가 나때문이었던 것을 생각한다.

너는 나를 그만큼이나 사랑했었단다.
나도 너를 그만큼이나 사랑했었을까.

어떤 사람도 자기가 점심때 뭘 먹었는지에 대해서 너처럼 상세게 브리핑 해주질 않는다.

어떤 사람도 나를 바라볼 때, 니가 그랬던 것처럼 세상에 오직 나 하나밖에 없다는 눈빛을 주지 못한다.

너라는 물 속에서 5년을 살았던 나는 마치 물고기와도 같아서 그 물맛이 얼마나 좋았는지, 얼마나 행복했던건지 그 때는 몰랐다.

어떤 여자와의 어떤 기회가 오게 되어도 모든 기준점은 너이고, 모두가 최소한 너하고의 사랑은 넘어서길 바라는 게 기준점이 되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러질 못한다.

당연한 것이, 그 사람은 나를 위해 살아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사람을 위해 살아온 게 아니듯이.
서른이 넘은 사람들은 연애부터가 힘들다.

너는 나의 20대였지.

너는 하루종일 도서관에 있으면서 뭐가 그리 할 얘기가 많아서 나랑 한 번 전화하면 한두시간은 너끈히 했던걸까.
그 땐 듣다 듣다 지쳤을만큼의 너의 조잘거림이 지금와서, 내가 너를 쳐내버리고나서야 이제 그리워지는 거는 대체 무슨 까닭일까.

내가 등져버리고 떠나버려놓고 염치도 없이 너의 번호조차 지우지 못하고 가끔씩 남아있는 너의 프로필 사진이나 살피는 나는 얼마나 찌질한가.

나는, 다시 사랑이라는 걸 할 수가 있을까.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걷자집앞이야
21/02/13 09:36
수정 아이콘
잔잔한 바다보는 듯한 글이네요
그게 왜 찌질한 일인지.. 왜 연락을 한번 못하시나요
먼저 헤어지자한 죄책감때문인지 뭣때문인지...
아직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한다면 꼭 연락해보세요
Foxwhite
21/02/13 19:19
수정 아이콘
어제 너무 취했었나 글을 쓴지도 모르고있다가 댓글달리는게 있길래 지금 봤네요... 뭐지 ㅠㅠㅠ

헤어지자고 해놓고 나중엔 지가 아쉬우니까 다시 연락하는 그런 사람이 될까봐 쉽지 않네요. 다시 연락하기라는게
걷자집앞이야
21/02/14 00:58
수정 아이콘
저도 그런 이야기 종종 주변에서 듣곤 했었는데...
만날 인연이라면 상대방도 그런 생각 안하고
반갑게 맞아줄 것입니다.
그런 생각때문에 망설여진다면
앞으로 남은 날들 얼마나 후회막심하며 사시겠습니까
대차게 까이더라도 도전하시는게 어떤지 감히 말씀드려봅니다.
그러면 또 맘의 정리가 쉽게 될지도 몰라요!
피렌체
21/02/13 10:41
수정 아이콘
절절하네요 좋은 분 만나셨으면 좋겠습니다. 30대 40대가 된다 해도 20대의 사랑을 하게 되시길..
lightstone
21/02/13 11:34
수정 아이콘
아무것도 아닌시절에 연애를 하면 미래가 불안정하지만 상대방과의 미래를 함께 꿈꾸며 발맞추며 성장하는 시기가 있지요. 그래서인지 그 시절이 지난 다음의 연애는 이전과 다른 것 같습니다. 다음구절이 참 마음에 와닿네요.

당연한 것이, 그 사람은 나를 위해 살아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사람을 위해 살아온 게 아니듯이.
서른이 넘은 사람들은 연애부터가 힘들다.
21/02/13 16:03
수정 아이콘
뭐라 댓글달기도 참 뭐하네요

앞으로도 계속 그리워하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게 또 인생이죠...
브라이언
21/02/13 18:50
수정 아이콘
헤어진지 시간이 좀 지났다면, 연락 한번 해보세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5007 [정치] 모두가 말렸던 예견 된 실패 '한강 리버버스' [238] 오컬트15493 25/09/17 15493 0
105006 [정치] 권력엔 서열이 있다? - 내란특별재판부 관련 논란 [441] 철판닭갈비18614 25/09/17 18614 0
105004 [정치] 권성동의원이 구속되었습니다. [234] 만우21222 25/09/17 21222 0
105003 [정치] 지금 나라 망하라고 고사를 지내는 거냐? (2) [137] 이그나티우스16021 25/09/16 16021 0
105002 [일반] 40대 중반에 첫 애기가 태어났습니다. [147] 짜부리8943 25/09/16 8943 143
105001 [정치] 찰리 커크 사후 미국 백악관과 한국 일부의 움직임 [151] 전기쥐12602 25/09/16 12602 0
105000 [일반] 수학적 법칙으로 풀어본 삶의공식 [9] 평온한 냐옹이6680 25/09/16 6680 0
104999 [정치] 검찰,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이끈 나경원에 징역 2년 구형 [89] Davi4ever9941 25/09/16 9941 0
104998 [일반] 인류의 기원과 자폐 [25] 식별7833 25/09/16 7833 30
104997 [일반] 광무제를 낳은 용릉후 가문 (14) - 찢어지는 한나라 [3] 계층방정4474 25/09/15 4474 7
104996 [일반] [독서에세이] 이주배경 여성에게 통일교회란? [14] 두괴즐6437 25/09/15 6437 16
104995 [일반] 유부남의 일탈 '아이콘 매치 관람 후기' [10] 소이밀크러버7203 25/09/15 7203 11
104994 [일반] [NYT] 네팔 새 정부, 국회 해산 및 조기총선 예정 [59] 철판닭갈비10133 25/09/15 10133 26
104993 [일반] 뇌과학책들을 읽으며 생각하게 된 것들 [54] p2110249 25/09/14 10249 13
104992 [정치] 주간조선에서 조국혁신당 기사를 내놨는데 좀 흥미로운(?) 기사를 내놨군요. [78] petrus14247 25/09/14 14247 0
104991 [정치] "할테면 하라"는 한동훈…법원, 증인 소환장 발송 [105] 베라히13128 25/09/14 13128 0
104990 [일반] [스포] 귀멸의 칼날 무한성1편 - 아카자에게는 체벌이 필요했나 [37] 사부작7356 25/09/14 7356 23
104989 [일반] 한밤중에 심심해서 해본 챗지피티와 해본 짓 [7] 닉언급금지8226 25/09/14 8226 0
104988 [일반] [역사] 어떻게 정액에서 사람이 되는 걸까? / 생물학의 역사(유전학 / 분자 생물학) [11] Fig.16655 25/09/13 6655 18
104987 [일반] <얼굴> - '소품'의 의의와 한계. (약스포) [13] aDayInTheLife5435 25/09/13 5435 0
104986 [일반] 맥거핀만으로 끝장을 보는 영화 - 얼굴 [6] 닉언급금지6852 25/09/13 6852 2
104985 [일반] 과도한 비방성 표현에 대한 반성의 글 [42] 막시밀리앙11573 25/09/13 11573 30
104983 [정치] 찰리 커크 저격범 체포 [49] DpnI14583 25/09/13 14583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