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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12/01 13:31:32
Name Yureka
Link #1 https://youtu.be/JPXtswbYO7A
Subject [일반] 어떻게 동독 축구는 몰락했는가
1989년 11월 9일, 그날은 독일국민들이라면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그날은 바로 오랜기간 독일을 갈라놓았던 베를린장벽이 붕괴되는 날이었기때문이다.


독일의 전국민들은 스스로 장벽을 무너뜨리고 서로를 껴안으며 환호하고 기뻐했고, 장벽이 붕괴된 이후 동서독 가리지않고 전 독일사람들은 하나의 독일을 만들기를 원했고, 동서독 양국은 빠르게 정치적, 경제적 통일을 하자고 결정했다.


그로부터 1년 뒤 1990년 10월 3일, 동독과 서독은 기나긴 냉전을 끝내고 전세계가 지켜보는 한가운데서 공식적으로 통일을 선언하고 새로운 독일을 알렸다. 모두가 이 통일을 축하해주고, 독일 국민들 역시 샴페인과  맥주를 터트리며 이를 즐거워했다.

1.jpg

허나 달콤했던 통일의 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통일 이후, 독일은 경제적, 정치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여러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그러나 독일 통일 30주년이 된 2020년인 지금까지, 가장 실패한 분야를 꼽으라면 아마 축구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2.png

위 그림은 분데스리가에 속한 클럽들의 위치를 보여주는 지도다. 구 동독지역에 위치한 클럽은 단 두개 팀 밖에 없다. 바로 우니온 베를린과 RB 라이프치히다.



거기다가  독일 국가 대표 선수들 중에서도, 구 동독 지역 출신 축구선수는 토니크로스 단 한명 밖에 없다. 그 외에는 전부 과거 서독지역에 속했던 지역의 선수들이다.



여담이지만 토니 크로스는 90년 1월 4일 생이어서 단순히 동독 지역출신이 아닌 진짜 동독에서 태어난 선수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아직도 동서독 축구의 불균형은 심각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렇게 동서독 축구의 균형이 한쪽으로 심각하게 기울게 된 것일까.


사실은 통일 이전부터 동서독간 축구 격차는 꽤 큰 상황이었다.

3.png

동독의 축구리그는 공식 명칭은


Deutsche Demokratische Republik Oberliga다


줄여서 DDR Oberliga다.


문제는 이 오베르리가에 동독 정부는  초기에 그다지 크게 투자안했다는 점이다.


사회주의 국가는 항상 자본주의 상대로 체제 우위를 선보이고 싶어했고 체제의 승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스포츠분야에서의 승리다. 그들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기 쉬운 종목에 투자하는 것이 더 큰 이득이라고 생각한 것이다.그래서 그들은 육상종복, 체조, 수영에 많은 투자를 했다.



허나 축구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꾸준히 있어왔고 동독 정부 역시 인기를 무시하기 어려웠다. 그렇기에 투자를 시작하게 되었다.



특히 독일 군대와 비밀 정보국이 투자를 많이 했다.  동독축구의 거인이라고 할 수 있는 디나모 드레스덴과 디나모 베를린이 그 예시다. 앞에 이렇게 디나모라고 이름이 붙어있는 클럽들은 독일 비밀 정보국 슈타지가 투자하는 클럽들이었다.


그래서 동독은 기존 노동자들이 운영하는 클럽, 전쟁 전부터 존재하는 전통의 명문클럽, 그리고 독일지역군대가 운영하느 클럽, 비밀정보국이 운영하는 클럽 이렇게 4가지가 나뉘었다.


동독은 사회주의 국가인 만큼, 개인이 투자해서 키운 클럽이 없고 오로지 국가 계획경제에 의해 운영되기에 중앙정부의 투자여부가 동독 각 클럽의경쟁력을 결정했고 이 덕분이 동독 축구의 수준은 높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나라 투자여부와 상관없이 황금세대는 출현하게 마련, 80년도 후반이 되면서 동독축구는 황금세대가 등장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1990년 통일 직전 당시 동독리그는 uefa랭킹에서 14위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3.jpg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러나 몇몇개 클럽들은 유의미한 성적을 내고 있었다.



앞서 언급했던 동독축구 최대 거인이었던 디나모 드레스덴은 88/89시즌 uefa cup 4강에 올라서 슈튜트트가르트와의 대결끝에 탈락했다.



통일과 함께 나라가 사라진 이후 치뤄진 90/91시즌에서는 유로피언컵(*현 챔피언스리그)8강까지 올랐다. 동독의 fc karl marx stadt (칼 막스 슈타트) 역시  uefa컵에서 16강까지 올랐지만 유벤투스를 만나서 떨어졌다.이렇게 통일 직전 나름 유의미한 성적을 내던 클럽들이 존재했고 리그 역시 인기를 유지하고 있었고



1987년 20세 이하 월드컵에서는 훗날 발롱도르를 수상했던 마티아스 잠머와 그의 세대들이 등장해서 3위를 기록했다. 동독축구의 미래는 밝아만 보였다.

동독 대표팀 역시 90 월드컵 예선에 통과해서 본선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통일하면서 이 미래는 통일과 함께 끝나버리고 말았다. 아니 훗날 벌어진 일을 생각하면 동독축구팬들은 미래가 갈취되었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90년 10월 3일 기점으로 동서독은 정치적으로는 통일되었다. 그러나 축구는 아직 완전히 통일되지 않은 상태였다. 7월에 동독 리그가 개막했기때문이다.




1991년 6월 1일 벌어진 한자 로스톡이랑 fc 스탈의 컵대회 결승이 있기도 했다. 이미 없어진 나라의 축구 결승전을 지켜보기 위해 5천명의 관중들이 모였고 멋진 경기를 선수들이 펼쳤지만 아쉽게도 이때 뛰었던 선수들은 이미 다음 시즌에 서독 클럽에서 뛰는게 결정되어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마지막 결승전을 보도했던 뉴스영상


동독 선수들은 서독 입장에서는 굉장히 저렴한 몸값에 뛰고 있었기에 서독클럽들이 가로채기에 너무 쉬운 상태였다. 동독 국민들처럼 동독 축구클럽과 선수들 역시 자본주의에 익숙치 않았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노렸던 서독팀은 바로 레버쿠젠이었다.


4.jpg

레버쿠젠에서 보드진으로 일하고 있던 라이너 칼문드는 동독리그 개최기간 동안 많은 경기를 챙겨보며 동독 선수들중 유망한 선수들을 살펴보았다.




심지어 동독 국가대표 경기에도 기자로 위장해서 목에 프레스카드를 매고 동독벤치랑 라커룸까지 쳐들어가서 선수들이 얼마에 계약하고 있고 얼마면 서독 클럽으로 이적할 것인지를 물어보고 다녔다.



그렇게 레버쿠젠은 당대 동독 최고의 공격수 였던 울프 키르스텐, 안데레아스 톰을 영입했고 이는 동서독간 최초의 이적이었다. 톰의 이적료는 250만 도이치 마르크, 약 90만유로로 이적했고 그당시 레버쿠젠의 최고 이적료였다.


이 이적은 대박이었다. 울프키르스텐은 바이어 레버쿠젠소속으로 350경기 182골을 득점했다.


훗날 발롱도르 수장자가 되는 마티아스 잠머 역시 통일 이후 슈트트가르트로 이적하게 되었다. 이처럼 많은 선수들이 동독에서 서독으로 이적하고 있었지만 동독 클럽들은 이를 막을 수가 없었다.



이처럼 많은 선수들이 동독에서 서독으로 떠나고 있었지만 동독에게는 이를 막을 수 없었다.


통일 이후에도 한시즌정도 리그가 유지되면서 이들에게 1년이라는 유예기간이 존재했지만 이를 막아낼 방도가 동독축구에게는 없었따.





동독이 동구권에서는 잘사는 국가였다고 하더라도 당시 서독의 경제력은 세계 2위였다. 세계 2위의 자본을 감당할 체력이 동독에게는 전혀 없던 것이다. 거기다가 동독 축구 자체 사정역시도 매우 안좋았다.





과거 동독 시절 대부분의 클럽들은 정부나 혹은 몇몇 고위층들의 지원금을 받아서 운영되었다. 디나모 드레스덴의 경우 슈타지의 비밀자금으로 운영되었다는 얘기마저 있었다. 그러나 통일이 된 이후 이들은 자기들 스스로가 스폰서를 구해야하는 상황이었다. 그들에게는 스스로 스폰서를 구하는 노하우, 아니 그런 개념이 없었다.



더 심각한 것은 그들이 노하우를 알았다하더라도 투자해줄 기업들 찾는 것 역시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클럽이 속한 연고지 주변의 기업으로부터 스폰서를 받아야했지만 통일 이후 많은 수의 동독 국영기업들이 서독내지는 외국에 팔려나가거나 폐쇄된 이후였다.



동독 최고의 자동차 기업이었던 트라반트는 통일후 1년을 못버티고 91년에 문닫았으며  동독 주민들의 국민 음료였던 비타콜라 역시 통일과 함께 외국계 기업에 그대로 팔렸던 것이다.



이처럼 많은 동독기업들은 클럽에 투자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서독 기업들 역시 굳이 동독 축구 클럽에 투자할 이유가 없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통일 직후 혼란스러운 동독 축구 상황을 이용해먹고자 했던 서독 출신 기업가들 마저 등장했다. 몇몇 벤쳐기업 사장들이 동독클럽을 재미삼아 인수했다가 운영에 실패해서 손해보는 케이스가 있었는데,



디나모 드레스덴은 그중 가장 최악의 상황을 겪었다.


통일 힘들게 1부리그를 유지하던 디나모 드레스덴은 1993년 서독 출신 기업가 롤프 위르겐 오토에게 구단이 팔렸다.

6.jpg

위르겐 오토가 인수한 이후 많은 영입을 시도하면서 디나모 드레스덴은 13위라는 순위를 기록하지만 그 다음시즌  방만한 운영을 하면서 오토는감독을 멋대로 선임하고 팀을 망치면서, 강등으로 이끌게 되었다.



단순한 강등이었다면 디나모 드레스덴에게 희망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오토가 있었던 2년간 디나모는 잘못된 운영으로 엄청난 빚을 지게 되었고  이 빚으로 인해서 라이센스를 박탈 당해 2부가 아닌 3부로 강등되었다.



거기다 한발 더 나아가 오토는 클럽 재직기간동안 3백만 도이치마르크의 구단 재정을 횡령했다. 그야말로 팀을 망친 원흉이고 원수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동독클럽들은 선수들 유출을 겪고, 투자할 스폰서 구하는데 허덕이고, 동앗줄이라고 생각한 서독 출신 기업가들에게 사기에 가까운 통수를 맞으면서 몰락할 수 밖에 없는 길을 걷게 되었다.



디나도 드레스덴이 95년에 무너지고, 한자로스톡만이 그 자존심을 지키면서 10년간 분데스에 남아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2005년에 강등되었다.



지금이야 우니온 베를린, 레드불 라이프치히같은 동독지역 클럽들이 1부에 버티면서 동독축구가 활기를 되찾고 있고

동독지역 출신 선수들, 잠머나 키르스텐 등은 계속해서 구 동독지역 축구 활성화를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에는 그저 요원해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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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유튜브한다고 만들었던 칼럼입니다.   우연히 dw에서 동독 지역축구의 현실태를 보고, 궁금해져서 찾게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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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카 곶
20/12/01 13:34
수정 아이콘
다른 동독 대표팀처럼 약빨이 떨어져서...
패트와매트
20/12/01 13:44
수정 아이콘
우니온이 답이다
20/12/01 14:46
수정 아이콘
흥미롭게 읽었네요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블랙번 록
20/12/01 15:05
수정 아이콘
세개 아니야? 했는데 헤르타 베를린은 서베를린이구나...
강가딘
20/12/01 15:11
수정 아이콘
우리나라도 동독처럼 박통시절에 중양정보부에서 `양지`팀을 운영했죠
오늘하루맑음
20/12/01 17:15
수정 아이콘
FM... 신작... 다니모 드레스덴... 챔스 우승 도전 합니다
cruithne
20/12/01 23:56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새강이
20/12/02 10:55
수정 아이콘
민족주의, 지역주의 표출을 전쟁이 아닌 축구로 하게 된 현대시대에서 축구실력은 자본력과 비례할 수 밖에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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