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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11/04 21:03:51
Name 블랙번 록
Subject [일반] 로마와 미국과 파벌 이야기 (수정됨)
10년전 들었던 정치학 수업을 술로 찌든 머리로 재생해 볼까 합니다.

미국이 건국할 때 미국 건국 아버지들은 고대 로마 빠돌이었습니다.
로마 제정 빠돌이가 아니라 공화정 빠돌이었죠.
카이사르 장군에 의해 전사, 자살로 사라지는 공화주의자들.
그리고 카이사르의 양자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죽은 공화정의 아이콘 키케로의 죽음에
[나의 키케로님은 이렇게 죽을 수 없을 셈] 하시는 분들었죠.

이 덕후 집단은 자신의 현실에 자신의 덕질은 대입합니다.
영국왕=[공화정을 파괴한] 로마 황제, 자신들=공화주의자들

물론 현실에서 로마 공화주의자들은 원로원파(통칭 옵티마테스)로써 지들이 모든 부와 권력을 다 해먹는 인간들이었지만
뭐 이상화된 그들 공상의 옵티마테스는 투철한 공화주의자였습니다.

그 덕질의 끝에 정말 나라를 건국한 그들은 어떻게 하면 미쿡의 [카이사르]를 막느냐로 고민하게 됩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라를 운영하면 엘리트 가운데 밀리는 사람들이 나오고
그들은 자신과 같은 집단과 손을 잡아 [파벌]을 만든 후 언제나 소외되고 가난한 [민중]을 선동하여
다수의 엘리트들을 몰아내고 절대 권력을 잡게 된다.

결국 그래서 세가지 방법이 고안됩니다.
밀리는 엘리트가 나오는 걸 막는다=> 골고로 권력을 나누어 많은 엘리트에게 권력을 분배한다.
그들이 파벌이 나오는 걸 막는다=> 파벌을 막는 여러가지 제도를 고안한다.
민중과 그들이 결합하는 걸 막는다.=> 민중의 선택이 직접 정치에 들어가는 건 최대한 막는 제도 고안

그중 핵심적으로 막아야 하는게 [파벌]이었습니다. 우리같은 공화주의자들은 파벌따위는 만들지 말고
우리끼리 고상하게 올바르게 국가를 이끄는 국정을 논하는 국가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인간은 혼자 뭘 할 수 없고 파벌을 막으면 한명의 엘리트가 유능하다고 해도 민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적었습니다. 하지만 파벌을 만들면 그 영향력은 기하급수적으 커지며 민중을 조직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걸 막아야 한다고 헌법을 만든 메디슨, 해밀턴은 몇번이나 기고에 [파벌]의 유해에 대해 언급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게 헌법, 상원, 대법원 같은 제도였는데 뭐 이딴게 이 걸 막을 방법은 없었습니다.
밀리는 엘리트가 나올 수 밖에 없고 그들이 파벌을 막을 방법이 없었고, 민중과 그들이 결합하는 걸 막을 방법으로는
너무 약했죠. 제도는 인간의 욕망을 막기에는 너무 약했습니다. 더군다나 인간은 무리짓는 동물이었고 이게 이권과 결합하면
절대 파벌은 못막습니다.

당장 이걸 만든 제퍼슨이나 해밀튼 부터 파벌을 지어 싸우는 판국이었고
민중과 결합은 앤드류 잭슨 같은 사람부터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판국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성장기 미국은 이 시기 전통을 어느 정도 지켰습니다. 미국하면 엘리트주의가 가장 강한 국가였습니다.
다수의 바보같은 민중이 존재해도 소수의 엘리트가 이끌어가는 최강국이었습니다.
미국의 민중이 얼마나 힘이 없냐면 국민들이 다수표를 주어도 대통령도 떨어지는 국가라는 걸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젠 그것도 점차 깨져가는 거 같습니다. 아예 대놓고 반엘리트주의에 대중영합적인 트럼프가 선거에서 선전하는 거 보면요.
그런데 웃기는게 그런거 막으라는 측면에서 이딴 대선제도 만들었는데 포퓰리스트 소수파가 이걸로 집권했다는 게 유머라면
유머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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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독용 에탄올
20/11/04 21:15
수정 아이콘
종종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이 절반이상 나오지 않게 하는 방법을 찾는쪽이 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20/11/04 21:22
수정 아이콘
댄브라운 소설에서 미국의 수도는 로마를 따와서 만들었단 말이 떠오르네요
패트와매트
20/11/04 22:01
수정 아이콘
트럼프를 미국의 카이사르라고 까는 글이 마침 최근에 폴리티코에 올라왔던데 재밌네요.
20/11/04 22:20
수정 아이콘
카이사르는 전쟁도, 조댕이질도 잘했는데
트럼프큰 조댕이질만 잘 하죠.
근데 머대리란 부분이 일치하면 2/3카이사르인가....?!
antidote
20/11/04 23:09
수정 아이콘
여러 나라의 과거 공화주의자(?) 내지 공화정 옹호자들이 로마의 공화제가 되찾아야할 선진적인 제도라고 주장했지만 현실은 로마 귀족 원로원 중심의 귀족 족벌정치체제에 가까운 것이었을텐데 말이죠.
가라한
20/11/05 00:30
수정 아이콘
제가 로마에 대해 아는게 pgr에서 욕 많이 먹는 로마인 이야기에 의한 것 뿐이라 좀 그렇긴 하지만 그라쿠스 형제와 후에 제정으로 이어지는 민중파가 등장하게 된 배경을 보면 로마 공화정을 그리 이상적으로 볼 수가 없죠. 해외 식민지에서 노예 농장 운영으로 본국의 자작농을 궤멸시킨 기득권 집단....
나중에 로마 황제들이 무료 식량 배급으로 우민 정책을 폈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그렇게 빌어 먹지 않고는 살기 힘든 사람들을 양산한 상당 수가 또 원로원 의원들이고....
뭐 제정이 좋다는게 아니라 공화정 자체의 문제나 모순도 그만큼 심각했던 것 같은데, 공화정이 서양 역사에는 무조건적 선으로 남은 것 같아 의아하긴 하더라구요. 나나미 아주머니가 이런쪽으로 뭐 빼먹고 쓴 부분이 있는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카스가 미라이
20/11/05 01:58
수정 아이콘
대중 매체에서 흔히 다뤄지는 로마 공화정은 주로 포에니 전쟁이나 말기의 내전이지만, 공화정의 역사가 대략 500년입니다. 그동안 축적된 정치사상과 실제 운용 사례들은 중요한 참고 대상이죠. '군주가 없는 정치체제'로서의 공화정을 과거의 역사에서 찾아낸다면 당연히 로마를 주목할 수밖에요. 마키아벨리나 미국의 건국자들 같은 정치사상가들이 로마 공화정의 부정적인 면이나 몰락의 이유를 몰랐던 것도 아니고요.
시니스터
20/11/05 00:19
수정 아이콘
답은 알파고 트루 철인 정치입다
조말론
20/11/05 07:32
수정 아이콘
이상론이었던게 파벌 특히 정당같은걸 막자 했지만 바로 생김
20/11/05 08:23
수정 아이콘
조승연 작가는 반대 뉘앙스로 말하던 것 같은데 서로 말하는게 달라서 신기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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