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0/09/21 11:36:28
Name 그리스인 조르바
Subject 코로나 시대에 ZOOM으로 가정예배하는 법
우리 가족의 전산정보화 담당은 나의 몫이다. 가족 구성원들은 그냥 가까운 매장에 가서 대충 사면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많이 했지만 철저한 가성비를 따지던 나에겐 어림없는 말이었다. 내 첫 스마트폰 구매는 지방이라는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매장을 어렵게 찾아 단돈 5만원으로 구매했고 컴퓨터 또한 부품들을 비교해가며 직접 조립했다. 게다가 현재 이 글을 쓰고 있는 노트북은 이것저것 교체해가며 써온 세월이 벌써 8년이다. 주변에서는 그냥 새로운 제품을 사는게 어떠냐며 종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조금만 품을 들이면 계속 사용할 수 있는 걸로 보이는 제품을 가만히 두는 것은 내 적성에 맞지 않았다. 지금도 부모님의 스마트폰 구입을 알아보는 것은 물론 각종 컴퓨터 구입은 내가 도맡아 하고 있다.

처음부터 가족 전반의 전산 담당을 맡은 것은 아니었다. 어렸을 적에는 그냥 내가 살 것들만 신경쓰기 바빴고 부모님께서 물어봐도 성의없게 답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새로 산 컴퓨터를 사용하시면서 백신 프로그램을 어떻게 설치하는지 물어보셨다. 그때 나는 그렇게 오래 직장생활을 하셨으면서 컴퓨터에 V3 하나 설치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직장에도 컴퓨터가 있을진대 컴퓨터를 그렇게 오래 사용하셨으면서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인 걸 모를 수 있냐며 아버지를 질책했다.

그렇게 투덜대며 백신 프로그램 설치를 마치고 아버지를 돌아봤을 때 나는 아차 싶었다. 나의 질책을 입을 꾹 다무신 채 묵묵히 받아들이던 아버지의 그 얼굴. 난 그 얼굴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 일은 아버지께도 큰 상처였겠지만 나에게도 잊지 못할 기억이 되었다. 가족 내에 자신이 좀 뛰어난 부분이 있으면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임하면 될텐데 나는 왜 그리 귀찮아 했던가. 나 자신의 옹졸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 뒤로 가족들의 질문에 마음을 다해 응하기 시작했다.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같은 큰 일부터 사소하게는 인터넷 창의 팝업을 끄는 방법까지 가까이에 없으면 전화를 통해서 성실히 답변해드릴 수 있도록 노력했다. 처음엔 혼자 어찌어찌 해결해보려고 하시던 부모님도 이제 사소한 것까지 전화로 물어보신다. 게다가 최근 코로나 때문에 오프라인 예배가 힘들어지자 가족끼리 ZOOM으로 예배를 드리는게 어떻겠냐는 말까지 꺼내시는 게 아닌가.

사실 나이롱 신자였던 나로서는 그동안 코로나 핑계를 대고 편히 교회를 빼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가정예배를 ZOOM으로 하게 되다니. 마치 빼먹은 숙제를 검사받는 초등학생처럼 아차 싶었다. 하지만 컴퓨터에 그렇게 고전하시던 부모님이 먼저 화상예배를 제안하는 이 상황이 재밌어서 웃음이 나왔다. 내가 행하던 일들이 생각치도 못한 방법으로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신기했다. 새로운 기술이 코로나라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가족과 신앙의 유대를 공고히 해주는 것이 신기했다.

그 뒤로 매주 일요일마다 우리 가족은 정해진 시간에 ZOOM에 접속한다 비록 부모님과 나, 그리고 동생은 서로 떨어져 있지만 부모님과 함께 유튜브를 보며 찬송하고 함께 성경구절을 읽고 교회 장로이신 아버지의 설교와 함께 기도로 예배를 끝낸다. 일주일 중 얼마 안되는 시간이지만 일주일 내내 울림을 주는 시간이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파란무테
20/09/21 11:53
수정 아이콘
저희도 처갓댁이 부산, 처남은 서울, 우리는 천안이라.. 애들 재롱 보여줄 땐 가끔씩 줌을 사용하네요. 학교에서도 그렇고 교회나 여러 소모임에 잘 활용되는 것 같아요. 아무쪼록 대면은 아니더라도, 비대면으로 좋은 모음 가지시길. 그리고 곧 대면하고 마스크를 벗는 일상이 속히 오기를 기원해봅니다~
강미나
20/09/21 12:01
수정 아이콘
저도 코로나 터지면서 일주일에 두세번 정도 줌을 쓰는데 생각보다 화질도 굉장히 좋고 불편한 점도 거의 없더군요.
다만 휴대폰에서도 8-9명 모였을 때 한 화면에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4명이 넘어가면 아이패드를 써야하더라고요.
20/09/21 12:20
수정 아이콘
코로나 시국에 집에서 유튜브를 통해서만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저희 아버지가 ZOOM을 아시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ㅠ 일욜이 너무 편합니다 흐흐
빙짬뽕
20/09/21 13:13
수정 아이콘
팟플로 예배 많이 하더니 이젠 줌까지 쓰나보네요
파란무테
20/09/21 14:50
수정 아이콘
교회공식예배가 아니고, 가정예배 같습니다. 본문은.
트루할러데이
20/09/21 13:14
수정 아이콘
주일마다 예배 준비하기 너무 힘들어요 ㅠ 토요일날 와이프랑 다투기라도 하면 주일날 말씀 나누는게 왜그렇게 부담 스러운지 크크.
LucasTorreira_11
20/09/21 13:19
수정 아이콘
보통 그럴때 말씀이 가슴이 막히던데요 크크
20/09/21 13:17
수정 아이콘
코로나 때문에 Zoom으로 비대면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는데, 대면예배에서 매번 보던 사람들이 화면 안에 있으니 매우 신기했습니다.
20/09/21 13:46
수정 아이콘
현장에서 종종 10여년전이었으면 스마트폰 보급률도 지금만큼 좋지 않았을거고 줌이나 유튜브 사용도 힘들었을거고 그만큼 개교회에서 예배드리긴 더 힘들었을거란 이야기를 합니다.

저도 가족들에게 디지털 관련 잔소리를 하는 편인데 글 읽고 흠칫하게 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09/22 07:23
수정 아이콘
훈훈한 가정이네요. 줌에 슬슬 적응하고 있는데, 나쁘지 읺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직접 사람들 만날 때는 마스크에 가려 보이지 않는 표정도 보이고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1121 요즘 알트코인 현황 [38] VvVvV10046 24/03/10 10046 0
101119 '소년만화' [14] 노래하는몽상가3761 24/03/09 3761 10
101118 에스파 '드라마' 커버 댄스를 촬영했습니다. :) [10] 메존일각2481 24/03/09 2481 6
101117 책 소개 : 빨대사회 [14] 맥스훼인3099 24/03/09 3099 6
101114 드래곤볼의 시대를 살다 [10] 빵pro점쟁이2854 24/03/09 2854 22
101113 <패스트 라이브즈> - 교차하는 삶의 궤적, 우리의 '패스트 라이브즈' [16] aDayInTheLife2346 24/03/09 2346 4
101112 밤양갱, 지독하게 이기적인 이별, 그래서 그 맛은 봤을까? [36] 네?!5538 24/03/09 5538 9
101111 정부, 다음주부터 20개 병원에 군의관·공보의 파견 [152] 시린비9528 24/03/08 9528 0
101109 요 며칠간 쏟아진 국힘 의원들의 망언 퍼레이드 및 기타 등.. [121] 아롱이다롱이9174 24/03/08 9174 0
101108 역사교과서 손대나... 검정결과 발표, 총선 뒤로 돌연 연기 [23] 매번같은5439 24/03/08 5439 0
101107 개혁신당 이스포츠 토토 추진 공약 [26] 종말메이커4554 24/03/08 4554 0
101106 이코노미스트 glass ceiling index 부동의 꼴찌는? [53] 휵스5176 24/03/08 5176 2
101105 토리야마 아키라에게 후배들이 보내는 추도사 [22] 及時雨6819 24/03/08 6819 14
101103 드래곤볼, 닥터 슬럼프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 별세 [201] 及時雨9681 24/03/08 9681 9
101102 [정정] 박성재 법무장관 "이종섭, 공적 업무 감안해 출금 해제 논의" [125] 철판닭갈비7796 24/03/08 7796 0
101100 비트코인 - 집단적 공익과 개인적 이익이 충돌한다면? [13] lexial3090 24/03/08 3090 2
101099 의협차원에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라고 지시한 내부 폭로 글이 올라왔습니다 [52] 체크카드9701 24/03/08 9701 0
101098 [내일은 금요일] 사과는 사과나무에서 떨어진다.(자작글) [5] 판을흔들어라1583 24/03/07 1583 3
101097 유튜브 알고리즘은 과연 나의 성향만 대변하는 것일까? [43] 깐부3126 24/03/07 3126 2
101096 의사 이야기 [34] 공기청정기6260 24/03/07 6260 4
101095 시흥의 열두 딸들 - 아낌없이 주는 시흥의 역사 (4) [8] 계층방정4210 24/03/07 4210 9
101094 대한민국 공공분야의 만악의 근원 - 민원 [167] VictoryFood10227 24/03/07 10227 0
101093 [중앙일보 사설] 기사제목 : 기어이 의사의 굴복을 원한다면.txt [381] 궤변13245 24/03/07 13245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