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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9/13 13:18:02
Name 아난
Subject [일반] 에딘버러 대학교에서 며칠 전 있었던 일.. (수정됨)

https://www.ed.ac.uk/news/students/2020/equality-diversity-and-inclusion-an-update

에딘버러는 칸트와 더불어 서양 근대철학의 양대산맥이라 할 데이비드 흄의 고향이고 에딘버러 대학교는 철학이 센 영국 대학교들 중 하나인데, 전형적인 영미철학에 치중되어 있지도 않아요. 조금만 검색해보면 이 대학교 출판부에서 유럽대륙 철학쪽의 훌륭한 가이드나 연구서들이 많이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에요.

이 대학교 캠퍼스의 중앙부에 '데이비드 흄 타워'라는 건물이 있는데, 며칠 전 평등 및 다양성 위원회와 그것의 인종 평등 및 반-인종주의 소위원회 Equality & Diversity Committee and its Race Equality and Anti-Racist Sub-committee 가 인종 문제에 관해 오늘날의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밖에 없는 언급('백인들 외엔 문명화된 인종이 없다' 등등)을 한 철학자의 이름이 붙여진 건물을 사용하라고 학생들한테 요구하는 것은 둔감한 처사라는 이유로 이 건물의 이름을 개명한다는 결정을 내렸어요(아울러 사회적 거리두기 요구로 인한 스터디 공간 부족을 고려해 2021년까지 이 건물을 학생들에게 스터디 공간으로 제공한다는 결정도 내려졌다고 해요).

사상가라고 부르든 철학자라고 부르든, 과거의, 그들의 저작들이 오늘날까지도 많이 읽히는 유명한 식자들 중 오늘날의 정의와 평등의 규범에 어긋나는 발언을 하지 않은 이들을 찾는 것은 불가능할거에요. 나치에 동조한 이들처럼 그 발언의 취지를 노골적인 수준의 행동으로까지 구현한 이들도 있어요. 그치만 다른 한편에서 그들은 규범의 영역에 대한 것을 포함해서 인간다운 삶을 사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근본적인 지적 고민의 모범을 보여준 사람들이에요. 명백히 틀린 것으로, 잘못된 것으로 확인된 그들의 일부 주장들 때문이 아니라 아직도 곱씹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그 고민의 어떤 부분들 때문에 아직도 그들의 이름들이 긍정적으로 거론되고 때로는 그들의 이름을 따서 건물이나 거리의 이름이 지어지기도 하고 그들의 동상이 세워지기도 하는 거에요.

자기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는 이유로 - 그 누구도 자신이 사는 시대/사회에 지배적인 선입견이나 규범이나 감수성을 완전히 뛰어넘을 수는 없어요 - 그나마 한 두 영역에서는 적어도 사유는 그 한계까지 진척시키거나 어떤 의미에서는 그 한계를 넘어섰던 이들에게 그들의 이름을 따서 건물 이름을 짓는 정도의 명예를 주는것조차 거부하는 것은 '인간적'이지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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셧더도어
20/09/13 13:23
수정 아이콘
이런 것도 다 인류사가 겪고 지나가는 일이겠죠. 이 시대가 시대의 한계 '따위'는 용납하지 않는 시대니까요. 어련히 그런 업적 정도는 양산할 위대하신 분들인지라.....
박찬빈
20/09/13 13:24
수정 아이콘
문혁인가..
맛있는새우
20/09/13 13:28
수정 아이콘
어떻게 보면 가장 반지성적인 집단이 아닐지 생각이 드네요.
아마추어샌님
20/09/13 13:41
수정 아이콘
데이비드흄 이름이 내려가는 일이 생길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현실은 상상보다 더하군요.
20/09/13 13:43
수정 아이콘
대학 교양 수업시간에 발표했던 철학자가 흄이었는데 에든버러 대학보고 흄? 이러고 들어왔다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드는 글이 되었네요...
갸르릉
20/09/13 13:45
수정 아이콘
본문에 쓰신대로 문제 없는 철학자가 없을텐데요. 철학사를 없애는게 먼저 아닌지..
-안군-
20/09/13 13:46
수정 아이콘
역사적 사건들을 현대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안되죠.
그렇게 따지면 세종대왕도 노비제를 인정했던 비인권적인 왕이고, 이순신도 저항의사가 없는 적병을 사살한 전쟁범죄자일 뿐...
셧더도어
20/09/13 13:49
수정 아이콘
인류사의 절멸을 원하는 세력 덜덜덜
데브레첸
20/09/13 13:50
수정 아이콘
인종주의는 흄 철학의 중심도 아닌데 많이 억지스럽네요.

하이데거나 키플링처럼 사상의 중심에 문제적 주장이 있는 수준이라면 이해를 합니다.
그르지마요
20/09/13 14:00
수정 아이콘
아리스토텔레스: 여성은 불구가 된 남성이다
헤겔: 중국 역사는 길기만하지 아무런 변화와 발전이 없다
마르크스: 제국주의는 스스로 발전이 불가능한 비유럽 지역에서 진보를 가능케 해준다

뭐 사상가 망언록이라도 만들어서 검열 시작하면 볼만하겠네요.
아예 나치랑 어울렸던 칼 슈미트나 하이데거 같은 사람들의 이름은 뭐 금지어로 필터링 해야할듯.
펠릭스30세(무직)
20/09/13 14:02
수정 아이콘
이상하다 나 저러는거 50년 전에 중국에서 본 거 같아!
모지후
20/09/13 14:03
수정 아이콘
이 정도까지 해야하나? 하는 느낌이 드네요;;;
아슨벵거날
20/09/13 14:21
수정 아이콘
Pc들이 가장 인용 많이하는 니체도 여혐으로 욕 먹겠네요.
及時雨
20/09/13 14:22
수정 아이콘
고려대 창립자 김성수의 친일 행위로 인해 인촌로가 고려대로로 바뀌었던 사례가 생각나네요.
20/09/13 14:25
수정 아이콘
스탠포드는 초대 총장인 데이비드 조던 이름을 딴 메인 건물인 조던 홀 이름 바꾸기로 하고
몇년동안 지지부진하다가 최근에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서 일사천리로 진행중인데
이 친구는 찾아보니 어떻게 아직까지 이름이 붙어있을 수 있었는지 신기하더군요
20/09/13 14:28
수정 아이콘
저런 인종차별을 상징하는 건물을 고작 이름만 바꾼다구요? 아예 건물 자체를 박살내고 그 과정을 생중계 해야죠.
센터내꼬야
20/09/13 14:35
수정 아이콘
여성이 경제권이 없던 시절에 이혼을 금지한 예수님은 여성인권운동가일까요, 아니면 여성의 자유를 억압한 흔하디 흔한 이스라엘 남자일까요.

맥락을 거세하고 일차원적 접근만 유도하는건 모든 분야에서 지양해야할 태도가 아닐런지..
후마니무스
20/09/13 14:35
수정 아이콘
흄 그는 좋은 브랜드 였습니다.
고양이왕
20/09/13 14:39
수정 아이콘
교조적인 pc가 제가 살아있는 동안 격변을 겪든 몰락을 하든 둘 중 아무일이라도 벌어지는 걸 보고 죽는 게 제 소원입니다
GRANDFATHER__
20/09/13 14:44
수정 아이콘
그래도 Pc에 많이 유화적인 스탠스인데 이런건 진짜 볼때마다 질려죽겠어요. 해당 시대의 기준으로 판단해줘야죠. 아무리 거장이라도 시대에 종속될수 밖에 없는게 인간인데. 지금 기준으로 볼때는 그냥 구린것들은 거르고 나머지만 보면 될걸 아예 기록말살형에 처하는건 대체 뭐하는 짓입니까.
양념반후라이
20/09/13 14:50
수정 아이콘
요즘 미국에서는 링컨이 흑인 노예들을 구원하는 장면을 묘사한 동상도
흑인들이 수동적으로 백인들에 의해 해방된걸로 보이게 한다는 이유로 (그런데 그건 사실아닌가)
철거하라고 시위하던데요.
종이나무
20/09/13 15:11
수정 아이콘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도 멀쩡하기 힘들겠네요.
잠만보
20/09/13 15:29
수정 아이콘
시대 배경 생각도 안하고 순수하게 PC 관점에서만 입 터는 사람들 보면 그 자체로 짜증납니다

저런 닝겐들 때문에 정말 검열이 부활할 꺼 같네요
다람쥐룰루
20/09/13 16:00
수정 아이콘
저분들은 소크라테스도 공자도 배척하시겠는데요? 크크크크 근본없이 허공에 본인의 사상을 쌓아올리실 분들이시네
버트런드 러셀
20/09/13 16:18
수정 아이콘
그분은 레알 여혐이라...크크
유료도로당
20/09/13 16:19
수정 아이콘
(수정됨) 위대한 철학자로 띄워놓고 이제와서 이름을 내리는게 제 생각에도 좀 이상하긴한데... 이게 뭐 '세종대왕도 민주주의를 몰랐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차별발언 오졌다' 이런거랑은 느낌이 좀 다르긴 한게, 이 분은 고대 철학자가 아니라 18세기 중반에 활동하신 분이라. [백인들 외엔 문명화된 인종이 없다] [나는 흑인들과 대개 모든 타 인종들을 태생적으로 백인보다 열등하다고 의심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발언은 당시 기준으로도 좀 빻은 발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한데.. 잘 모르겠네요.

뭐 에딘버러 대학에서 흄은 인종차별주의자이니 배우지도 않아야하고 모든 기록을 말살해야한다고 한건 아니니까. 그냥 지들 대학 출신들중에 워낙 위대한 사람이 많으니, 그저 지들 대학 건물에 그 위대한 동문들 중 흠결이 없는 다른 위인 이름을 골라서 붙이겠다는 정도라면야, 남들이 뭐라 할 일인가 싶기도 하네요.
20/09/13 17:04
수정 아이콘
지금까지 그 이름을 용납해온 대학도 폐교하는게 어떨까요?
번개맞은씨앗
20/09/13 17:06
수정 아이콘
경험주의 철학

데이비드 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유감이네요. 흄으로부터 칸트도 나오고 니체도 나온 거라 생각하는데요.
VictoryFood
20/09/13 17:10
수정 아이콘
이거 어디선가 본 거 같은데요?
??? : 옛 것은 모조리 숙청하라. 문화, 교육, 정치, 니들 부모까지도.
20/09/13 17:43
수정 아이콘
우리 나라로 따지면 친일 행위 같은 느낌일 거라보면 이해는 가네요.
모리건 앤슬랜드
20/09/13 19:07
수정 아이콘
언젠가 세종대왕상도 철거나 테러당하는 날이 오겠습니다그려
metaljet
20/09/13 20:46
수정 아이콘
유럽에서 논리적이고 체계화된 사상적 형태의 인종주의가 최초로 탄생하고 곧이어 백인우월주의에 더 심하게 미쳐돌아가기 시작한게 바로 저 때입니다. 계몽주의 뽕맛을 보고서는 오직 유럽인들만이 인간이성 원탑을 찍고 광명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고 아직 그러지 못한 다른 문화권에 대한 존중이고 나발이고 뭐고 다 집어치워 버렸거든요. 따라서 당시 기준으로는 아마 지극히 정상적인 발언이었을거에요.
셧더도어
20/09/14 01:08
수정 아이콘
흄음 당대에도 좀 막나가는 레이시스트긴 했습니다....
20/09/14 10:20
수정 아이콘
저럴거면 나치에 부역하고 일제에 부역한 모든 기업의 모터도 다 보이콧해야죠. 말 그대로 레이시즘과 제노사이드에 협력한애들인데.
20/09/14 11:33
수정 아이콘
저도 과도한 PC를 정말 안 좋아하긴 하지만...

저 단체가 주장하는 바는 "감정적으로는" 이해가 돼요...황인 입장에서 미개하다는 소리 들으니 기준이 좋지는 않습니다.. 그런 사람 이름이 붙은 건물에서 생활하는 것도 좀 그렇구요.
그래서인지 위에 분들 스탠스가 제 눈에는 다 비슷해보여서 좀 놀라운 점도 있네요.

글쓴 분 원론에는 충분히 동의합니다. 옛 위인들 탈탈 털면 뭐 지금 도덕관에 위배되는 것 하나 이상은 거의 100프로 확률로 나오지 않을까 해요

그런데 저는 "정도"라는 개념도 판단기준으로 추가돼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데이비드 흄이 "얼마나 인종차별주의적"이었는지, 저 요구를 한 단체가 "얼마나 정당한" 활동을 해왔는지 그런 것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저는 흄도 모르고 저 단체도 모릅니다...
그냥 지나가다가 한전 적어봤어요. 같잖다 싶으면 그냥 무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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