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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7/05 21:08:45
Name PKKA
Subject [일반] "8월의 폭풍"으로: 소련과 일본의 40년 충돌사-14
* 본인은 『8월의 폭풍』의 역자이자 연재소설 『경성활극록』의 저자임을 독자분들에게 먼저 알리는 바입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5357299
https://novel.munpia.com/163398

14. "기묘한 중립"의 유지

나치 독일 정부는 분명 일본이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조만간 소련을 침공할 것이니 소련 극동지방을 공격해 달라는 요청을 하였습니다.

불과 2년 전에 일본에 알리지도 않고 소련과 덥석 불가침조약을 맺은 나치가 갑자기 소련을 치겠다고 하니, 고노에 내각은 대체 히틀러가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건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고노에 내각은 확답을 주지 않고 일단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가, 1941년 6월 22일에 드디어 나치 독일이 소련침공 작전인 바르바로사 작전을 개시하였습니다.

소련은 나치의 침공으로 엄청난 위기에 빠졌습니다. 몇 개월 만에 서부 영토의 대부분을 상실하고 막대한 인명피해가 발생한 소련은 국가와 국민 전체의 운명이 경각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이때 노몬한의 패배 이후로 쥐죽은 듯 있었던 관동군이 오랜만에 목소리를 냈습니다. 관동군은 이것이 노몬한의 굴욕을 설욕할 기회라고 여기며 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소련으로 쳐들어가 독일을 도와주자고 주장했습니다. 기가 막히게도 소일 불가침조약을 주도한 마쓰오카 요스케 또한 지금이 소련을 공격할 적기라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육군참모총장 스기야마 하지메 대장도 관동군의 주장에 호응하였습니다. 스기야마 대장은 관동군의 병력을 100만까지 확충하고 대대적인 기동훈련인 관동군 특종연습을 개시하여 소만국경에 일대 긴장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고노에 내각은 육군 일각의 주장을 누르고 소련과의 불가침조약을 준수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미국과의 충돌이 가시화되는 시점에다가 노몬한 패배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터라 소련과의 정면충돌을 망설이는 분위기가 여전히 강했으며, 육군에서도 소련이 1941년을 넘기며 전쟁을 장기전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전망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나치를 도와서 대소전에 참전했다가 저번 불가침조약 때처럼 나치가 일본에 알리지도 않고 소련과 종전협정을 맺으면 일본은 결국 제대로 얻은 것도 없이 소외될 거라는 전망 때문에, 고노에 내각은 대소전 참전을 주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일본은 소련과의 불가침조약 준수를 택하면서, 소련의 후방은 안전해졌습니다.

일본에 파견된 소련군 총참모부 정보총국의 유명한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의 정보를 통해 일본이 불가침조약을 준수할 것이라는 보고를 받은 스탈린은, 극동에서 40개 사단을 차출해 유럽러시아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 사단들은 12월의 모스크바 방어전에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대신 일본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은 스탈린은 37개 사단을 극동에서 신설하여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했습니다.

일본이 그해 12월 7일에 진주만 공습을 일으키며 미국, 영국과의 전쟁에 들어가자, 소련과 일본은 서로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주의했습니다.

관동군은 특종연습 종료 이후로 기동훈련을 자제하며 소련군을 자극하지 않으려 애썼고, 소련군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1942년 4월, 일본 본토 공습이라는 상징적 행위를 마친 둘리틀 폭격대의 B-25 폭격기 중 8호기가 폭격 후 소련 블라디보스토크 비행장에 착륙했습니다. 소련 당국은 일본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승무원들을 일시적으로 억류하였으며, 당시 소련이 영국과 분할점령한 이란으로 이송되어 영국측에 넘겨졌습니다.

1941년 10월, 독일의 대소전 준비와 일본의 불가침조약 준수 정보를 가져온 조르게가 일본 특별고등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소련은 조르게와의 모든 관련성을 부인하며 그의 처형을 방관하였습니다.

1942년 6월,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혹시 일본이 불가침조약을 깨고 소련을 침공할 시 도움을 줄 수 있는 폭격기 부대를 파견하겠다며 시베리아의 비행장을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스탈린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이건 실은 일본 본토를 시베리아에서 출격해 공습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습니다. 스탈린은 그런 폭격기 부대가 있다면 유럽전선에 우선 배치하고, 승무원은 소련에도 많으니 기체만 보내달라고 하며 거절 의사를 밝혔습니다.

1943년경, 일본 잠수함들이 소련 블라디보스토크로 무기대여법 물자들을 운송하는 미국 수송선들을 격침하였습니다. 이에 소련에서 격렬히 항의하자, 일본 정부는 소련에 유감표명을 하고 이후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선박은 국적을 막론하고 격침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소련과 일본은 1941년부터 1945년 중반까지 불가침조약을 준수하고 서로의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이 때문에 나치 독일과 일본제국은 서로를 매우 답답해하였습니다.

나치는 제발 자국을 도와서 대소전에 나서달라고 일본에 요구했으나, 일본은 대소전은 평화협정으로 끝내고 영미와의 전쟁에 더 집중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심지어 1943년 7월 쿠르스크 전투 전, 독소전선의 소강상태가 몇 개월간 지속되자 일본이 독일과 소련 사이를 중재하려고 들어서 독일을 짜증나게 한 적도 있었습니다.

미국 또한 소련의 대일전 참전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진주만 공습 다음날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며 소련의 대일전 참전을 공개적으로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모스크바 목적까지 독일군이 몰려온 상황이라, 소련의 리트비노프 대사는 코델 헐 국무장관과의 면담 자리에서 대일전 참전이 불가능하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래도 미국은 나치 독일과는 달리 소련의 상황을 이해하며 소련이 대일전에 참전할 여유가 생길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이렇게 소련과 일본은 상대가 아군의 적인데 자신의 적은 아닌 상황을 계속 유지하였습니다. 훗날 미국의 한 학자는 이걸 "기묘한 중립"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치 독일이 패망하며, "기묘한 중립"도 더 이상은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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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맨틀
20/07/05 22:22
수정 아이콘
마쓰오카 요스케는 외교관인지 선동가인지 헷갈리게 하는 행보를 보이네요.
전후에 사형된 것이 오히려 일본에게 다행일지도 모르겠네요.
강가딘
20/07/05 22:33
수정 아이콘
보면 추축국들은 말로만 동맹이었지 서로에게 도움은 안된걸로,,,,
만약에 일본이 진주만 공습을 안했다면 미국의 참전도 늦어젔고 독일이 영국이나 소련을 더 팰 수도 있었을거라 보는데요
실제로 처칠이 "이제 우리 연합군이 이겼다. 히틀러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무솔리니의 운명도 결정되었다. 일본인의 경우는 가루가 돼버리겠지."
이렇게 말했다죠
20/07/05 22:34
수정 아이콘
마쓰오카 요스케는 사형이 아니라 감옥에서 병사했습니다.
abc초콜릿
20/07/05 22:37
수정 아이콘
사실 41년 후반에 일본이 소련 극동을 공격했다 해도 1921년 러시아 내전 때 간섭군으로 들어와서 생고생만 하다 돌아갔던 때랑 크게 차이는 없었겠지만 이 때 모스크바 방어로 전용된 시베리아 사단의 활약이나 41년 11월 말~12월 초까지 소련의 상황을 생각하면 소련의 운명이 바뀔 수 있었던 순간이었죠.
하늘이 준 최후의 기회를 상호간의 통수 끝에 허망하게 날려먹는 꼬라지라니. 당시엔 알 수 없었겠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돌아보면 참 우스운 순간입니다
20/07/05 22:38
수정 아이콘
아이러니컬하게도 독이일 삼국동맹을 반대한 해군 쪽 인사들은 이 동맹으로 유럽의 전쟁에 일본이 끌려들어간다고 주장했는데, 정 반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잉여로운생활
20/07/05 22:38
수정 아이콘
일본제국도 갸우뚱하게 만드는 그 퓨러 크크
광기는 언제나 무섭네요
20/07/05 22:39
수정 아이콘
하지만 최근의 연구(데이비드 글랜츠의 2017년 논문)에 의하면 스탈린이라면 연해주를 포기하고서라도 극동 배치 병력을 모스크바에 투입하였을 거라고 합니다.
20/07/05 22:39
수정 아이콘
차라리 불가침조약 맺을 거라고 사전언질이라도 줬었다면;;
-안군-
20/07/05 22:41
수정 아이콘
주축국들은 참... 사실상 독일혼자 고군분투(?)한걸로...
abc초콜릿
20/07/05 22:44
수정 아이콘
사실 개인적으로는 일본이 극동을 공격했든 안 했든 모스크바 공격 자체는 실패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프리 매카기에 따르면 소련군은 373개 사단을 뽑아내서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고 있을 때 독일군은 200개 정도일 거라 생각했고 실제 전투력은 절반 이하인 찌끄레기일 거라고 믿었죠. 독일군이 현실을 깨달았대도 그냥 42년을 기약했을 것이고. 독일군도 실상은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한 상황이었으니까요
미키맨틀
20/07/05 22:45
수정 아이콘
(수정됨) 아 감옥에서 병사했군요.
그런데도 야스쿠니 신사에 전범7적과 나란히 봉헌한 일본의 행태를 보면 기막힙니다.
뱀발: 저기 번역하신 300P가 안 되는 '8월 폭풍'의 증보판을 국립 중앙 도서관에서 봤습니다.
그것은 번역하실 생각이 없으신가요
20/07/05 22:50
수정 아이콘
출판사와 기획이 되어야 ㅠㅠ
20/07/05 22:51
수정 아이콘
유럽 추축국드은 독일의 셔틀(;;) 노릇이라도 하는데 일본은 저만치 떨어져서 엉뚱한 짓이나;;
abc초콜릿
20/07/05 22:55
수정 아이콘
사실 이걸 가지고 독일만 고군분투 했다 하기에는, 프랑스가 엘랑해버린 40년 6월부터 41년 6월까지는 영국 원맨쇼. 41년 6월부터 (서부전선이 개막한) 44년 6월까지는 소련 원맨쇼였죠. 의외로 이탈리아를 비롯한 추축군들도 허깨비는 아니었고.
아 물론 1차대전 독일의 경우에는 진짜 17대 1의 진수를 보여주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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