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0/04/22 18:36:22
Name aurelius
Subject [일반] [알쓸신잡] 교황청과 대한민국의 간략한 역사 (수정됨)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교황청은 신생국가 대한민국을 가장 먼저 승인한 나라입니다. 1947년 8월 교황청은 패트릭 번 주교를 초대 주한 교황순찰사로 임명했고, 10월에는 "대한민국을 합법적 독립국가로 인정한다"는 문서를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승인받게 된 것은 1948년 12월의 일입니다. 물론 1947년과 1948년 사이 대한민국도 국제사회의 승인을 얻기 위해 분주히 노력했습니다. 1948년 9월 프랑스 파리 제3차 유엔총회장면을 단장으로 한 사절단이 파견되었는데 당시 소련을 위시로한 공산권 국가들의 방해가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에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장면은 교황청의 도움을 요청했고, 당시 교황 비오 12세는 대한민국의 승인을 위해 유럽과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을 설득했습니다. 

장면으로 말하자면, 그는 일제시대 당시 미국에 선교단체의 도움으로 건너가 맨해튼 컬리지를 졸업한 미국통이었습니다. 졸업과 같은 해 1925년, 그는 한국인 신자 대표로 교황청을 방문하여 한국인 성인 시복식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한국인으로서 교황청을 방문한 사례로는 거의 최초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는 귀국 후에 가톨릭 선교활동을 도왔고, 그 과정에서 당시 한국에서 포교활동에 열심이던 패트릭 번 주교와 친분을 맺었다고 합니다. 이 인연은 후일 한국이 독립된 이후에도 지속되었고, 그 결과 한국은 비교적 빠르게 국제사회의 승인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패트릭 번 주교는 장면 사절단이 파리에 도착하기 전에 이들을 위한 소개장을 10통을 써주었고, 교황청에도 따로 이들을 도와달라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당시 한국이 어디에 붙어있는 나라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다수였던 시절임을 감안하면, 교황청 소속 주교의 소개장은 무척 도움이 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파리에 도착한 사절단은 당시 유엔의장을 만나기 위해 움직였으나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고, 그대로 귀국할 수는 없으니 로마 교황청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장면은 교황을 알현하면서 대한민국 승인을 위해 도와달라는 부탁을 했고, 그 부탁을 받은 비오 12세는 직접 교황청에 이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라는 명을 하달합니다. 그 결과 장면은 결국 유엔총회 의장을 만날 수 있게 되었고, 많은 가톨릭 국가들의 지지를 얻는 데 성공합니다. 

그 이후에도 교황청은 대한민국과 계속 인연을 맺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공산주의에 맞서는 구심점이 되면서도 동시에 민주화 운동에 기여하였고, 또 김대중이 사형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그를 살리기 위해 서한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84년 전두환 정권 당시 방한하였는데, 첫 공식일정으로 광주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전두환 정권이 반대했음에도 전남도청과 금남로 일대 방문을 관철하였고 심지어 한센인들이 있는 것으로 유명했던 소록도를 방문했습니다. 그의 방한을 계기로 전두환 정권은 무단통치에서 일종의 해빙기로 전환하였고, 김수환 추기경과 가톨릭 교회의 권위가 높아져 민주화 운동에 기여하였습니다. 

주교황청 대사 중에 유명한 사람은 성염 대사입니다. 

그는 2003년 교황청에 부임하여 2007년까지 대사직을 맡았는데, 그는 다른 것보다 라틴어 사전과 라틴어 강의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한양대, 한국외대,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역임하였고 서양고전학회 회장, 서양중세철학연구소 이사장 그리고 한국가톨릭철학회 이사장을 역임한 사람입니다. 또한 1988년부터 2000년까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운영위원을 맡았었죠.  

현재 주교황청 대사를 맡고 있는 자는 이백만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도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인데 매일경제, 한국일보, 한국경제 등을 거친 언론인으로, 참여정부 시절 현 민주연구원 원장인 양정철과 함께 청와대 홍보실에서 근무했습니다 (이백만 청와대 홍보수석, 양정철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그리고 후일 유시민과 함께 국민참여당을 창당하기도 했고, 정계에서 실패한 후 자연인으로 돌아가 노무현재단에서 일하였고, 나중에는 신학교에 들어가 신학을 공부하면서 제3세계 선교활동에 매진합니다. 그리고 2017년 12월 문재인 정부의 첫인사로 주교황청 대사에 임명되었습니다. 

커리어로 보면 친노/친문의 핵심인사 중의 한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부요직이나 정당에 등용되지 않고 교황청으로 파견 된 게 의미심장합니다. 그만큼 현 정부가 교황청 외교를 비중있게 보고 있는건가라는 생각이 드네요. 

하여간 흥미로운 역사입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blood eagle
20/04/22 20:14
수정 아이콘
민주화운동 당시 천주교의 지원을 받았기도 했고 또 현 대통령께서도 천주교신자시니까요.
Je ne sais quoi
20/04/22 20:36
수정 아이콘
요즘 재미있는 이야기 많이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새강이
20/04/23 07:19
수정 아이콘
천주교 측에서 정말 많이 도와줬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꼬마군자
20/04/23 14:04
수정 아이콘
전혀 몰랐던 사실인데 감사합니다.
20/04/24 13:07
수정 아이콘
교황청이 나라인가요?
토지없는 나라 그런건가
aurelius
20/04/24 13:13
수정 아이콘
네 국제법으로 인정받는 국가입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1417 [일반] 비트코인 - 이분법적 사고, 피아식별, 건전한 투자 투기 [50] lexial12450 24/05/07 12450 3
94290 [일반] 제논의 역설은 어떻게 풀렸을까? [32] 나는모른다19526 21/12/08 19526 10
91503 [일반]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들 [111] 휘군17117 21/04/24 17117 81
88451 [일반] 면접을 보고 왔습니다. [40] 김제피11223 20/10/20 11223 12
86115 [일반] 제논의 역설과 볼츠만의 비탄 [14] 나는모른다10772 20/05/08 10772 4
85876 [일반] 젠더 글 어렵게 쓰기 [30] 파우스트8351 20/04/26 8351 7
85807 [일반] [알쓸신잡] 교황청과 대한민국의 간략한 역사 [6] aurelius10105 20/04/22 10105 16
84614 [일반] [도서] 필 받아서쓴 그냥 개인적인 도서 리스트 [11] rebel126446 20/02/23 6446 7
84612 [일반] [도서] 우리집 서재 도서 목록 공유합니다 [14] aurelius17513 20/02/23 17513 17
81383 [일반] 홍카레오: 홍준표 전 대표와 유시민 이사장의 유튜브 토론이 있었습니다 [143] 홍준표17194 19/06/04 17194 5
80870 [일반] 홍준표와 유시민의 콜라보 방송이 열립니다. [67] 홍준표12692 19/04/23 12692 4
80651 [일반] 최근 준비중인 선거구제 개편 어떻게 보시는지요? [50] 닭장군8039 19/04/03 8039 2
80507 [일반] 유시춘 교육방송 이사장 아들의 마약밀수혐의 징역형이 뒤늦게 드러났습니다. [164] 아유17317 19/03/21 17317 22
80043 [일반] 홍카콜라와 알릴레오, 숨지 말고 나오세요. [45] 마담리프10122 19/02/11 10122 3
79696 [일반]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경제 / 복지 / 평화 [341] 껀후이19049 19/01/10 19049 33
79640 [일반] [JTBC 뉴스룸 신년토론] 2019년 한국 어디로 가나 - 패널별 주요 주장 [244] 껀후이23546 19/01/05 23546 31
79523 [일반] 이해찬, "정치권에 정신장애인 많아" 발언 논란.. [102] 괄하이드14977 18/12/28 14977 10
79509 [일반] 유시민의 역할 [38] chilling8264 18/12/28 8264 25
79507 [일반] 유시민씨가 대권후보로 나올것인가? [236] 고통은없나15895 18/12/28 15895 4
79493 [일반] 최근 여당의원들의 실망스러운 친페미니즘적 발언 및 활동 [113] 정상을위해11849 18/12/27 11849 13
79466 [일반] 남초커뮤니티 구성원들은 번지수를 잘못찾았습니다. [121] Waldstein16651 18/12/24 16651 17
79460 [일반] 사실 미래가 되어 교육이 크게 바뀌지 않는한 성별성적문제가 앞으로도 달라지진 않을겁니다. [13] SKKS6095 18/12/24 6095 1
79458 [일반] 인터넷 무료 포르노가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 [69] yisiot17712 18/12/24 17712 8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