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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1/11 23:48:42
Name 펑리수
Subject 병아리 이야기 2

    여기서 잠깐, 읽는 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당시 닭의 유통 방식에 대해 쓰는 것이 좋겠다. 지금처럼 반드시 도축된 닭만 유통될 수 있는 법이 시행되기 이전에는 시장에서 살아있는 닭을 팔았다. 닭집 뒷편에는 판매하려는 닭들이 비좁은 닭장에 있었다. 닭을 사려는 사람들은 주인에게 어느정도 크기의 닭이 필요한지 이야기하고, 주인은 닭을 골라 저울에 무게를 달았다. 닭값은 무게에 따라 달라졌다. 닭은 현장에서 바로 도축되었다.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 써보면 이렇다. 닭을 뜨거운 물에 담궜다가 털을 대충 뽑고, 털뽑는 기계에 돌린다. 이 기계는 원심력이 작용하는 통돌이 같은 것이었는데, 여기에 닭을 넣으면 닭털이 제거되었다. 그 뒤의 몇몇 과정들이 이어지고, 손질이 끝난 닭은 용도에 맞게 자른다. 이 모든 과정들은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들으면 좀 잔인하게 보일 법도 하지만 그건 그렇지가 않다. 그저 일상적인 시장 닭집의 풍경이었다.

    물론 아이에게는 그런 광경을 보는 것이 나름 충격적일 수 있다. 막내 동생은 어머니 따라 갔다가 시장 닭집에서 그걸 보고는 한동안 닭고기를 먹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먹는 음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오게되는지 알려주는 것은 나름의 교육적인 가치를 갖는다는 생각도 든다. 소와 돼지의 도축과정을 본다고 해서 모두 다 채식주의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육류를 소비하게 될때, 한번쯤 생각해보는 성찰의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오늘날, 마트의 위생적으로 포장된 육류는 그러한 성찰의 기회를 박탈해 버리는 것도 사실이다.

-진짜 저 닭 잡을 거야?
-아니, 닭집에 있는 비슷한 닭하고 바꿔서 잡아달라고 해야지. 어떻게 얘를 먹을 수가 있겠냐. 엄마도 못먹어.

    어머니는 쌀포대에 닭을 넣어가지고 시장에 가셨다. 닭은 포대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계속 푸드덕거려서 집어넣는 데에 한참이나 걸렸다. 그날 저녁 식탁에 올라온 요리는 백숙이었다. 식사 시간 내내 뭔가 착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우리 닭 아니지? 아닌 거 맞지?

    나는 두어번 더 물었고 어머니의 대답을 들었지만, 몇 숟가락 뜨다가 그만 두었다. 막내는 아예 먹지도 않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날 저녁 식사는 그렇게 끝났다.

-사료가 절반이나 넘게 남았어. 너무 아깝구나.

    다음날, 할머니는 남은 사료 포대를 닭집에 갖다 주었다. 나름대로 상심이 크셨을 것이다. 할머니가 얼마나 정성을 들여 키웠는지 우리 가족은 다 알고 있었다. 녀석의 성질 머리는 아주 고약했다. 조금이라도 쓰다듬어 주려고 하면 가차없이 쪼아대었다. 그런 녀석이 유순하고 고분고분하게 따르는 사람이 할머니였다. 개는 먹이를 주는 주인의 손을 물지 않는다, 라는 서양 속담대로 그 닭은 할머니만을 유일하게 따랐다.

    그렇게 병아리 두마리는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신해철의 "날아라 병아리"는 내 세대의 이야기를 적확하게 담아낸 노래다. 그 시절의 아이들은 학교앞에서 파는 병아리를 한번쯤은 샀고, 그 죽음을 어쩔 수 없이 목도했다. 그것이 그 세대에 어떤 정서적 경험으로 남았을까 늘 궁금했다. 아이들의 정서적인 회복탄력성(resilience)에 따라 개인차가 있겠지만, 성장과정에서 그러한 경험이 세계관과 가치관에 영향을 끼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 추론은 가능하다. 내가 사회학자라면 동년배 연구(동일구성원 집단을 선정해서 연구 변인을 추적 관찰하는 것. cohort study)를 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날아라 병아리"에 담긴 정서를 나는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라디오에서 그 노래가 흘러나올 때, 가끔은 궁금해지기도 한다. 병아리에 대한 그러한 기억이 없는 세대에게는 어떻게 느껴질까?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일, 그 시대에 대해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것은 한국전쟁 직후의 시대상이 담긴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월남 파병기의 사회상을 알 수 있는 김추자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를 들을 때의 내 느낌과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해보게 된다.    

    쓸모없이 버려지는 산란계 수평아리를 길거리에서 파는 광경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오늘날의 수평아리들은 병아리 감별사에 의해 판정되는 순간, 바로 폐기되어 분쇄된다. 한해 그렇게 사라지는 수평아리는 40억에서 60억마리로 추산된다. 업계의 그런 관행은 유럽에서 동물 보호론자들의 반대와 끊임없는 소송제기로 이어졌다. 2018년, 독일은 달걀 상태에서 병아리의 성별을 판별할 수 있는 신기술을 개발했다. 그럼에도 비용과 제반 설비 문제 때문에 아직은 널리 보급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본의 논리는 냉혹하지만, 그래도 동물 복지의 차원에서나 지구 환경을 위해서는 불필요한 도축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에 언젠가는 나의 병아리들에 대해 써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그때는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는 미처 알지 못했다. 이제, 짧은 인사로 이글을 끝마치고 싶다.

-안녕, 병아리들! 안녕, 나의 유년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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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mens2
20/01/12 00:03
수정 아이콘
어릴적 생각 나네요. 동네 친구들 여럿이 병아리 샀지만 닭으로 변신 시킨 애는 하나 였는데, 그 닭도 비슷한 운명을 맞이 했는데 친구 울었죠.
꼬마군자
20/01/12 00:07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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