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를 받게 됐다.
사촌동생이 내게 사진을 보냈고,
나는 참하고 착하게 보인다고 했다.
사촌동생은 나에게 '예뻐서 착해보이는게 아니냐'며 놀렸고,
나는 딱히 부정하지 못했다.
본인이 키가 조금 있기 때문에,
이상형은 키가 컸으면 좋겠고 비흡연자였으면 한단다.
담배는 피우지 않지만 평균신장에 못미치는 나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고,
그래도 미련이 남아 일단 물어보기라도 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사람이 동의를 했고, 우리는 일주일 뒤에 만날수 있었다.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아주 간단한 조작 만으로 셀기꾼이 되는 시대가 아니던가.
그러나 실물로 본 그사람은 흔히 말하는 '셀고'였다.
당연히 빈말처럼 들릴거라는걸 알면서도,
나는 실물이 훨씬 예쁘시다는 말을 꺼냈다.
턱없이 진부하지만 사실이 그랬다.
그사람은 굉장히 밝고 잘 웃었다.
처음 만났을때도 웃었고, 내가 말할때도 웃었고, 혼자 말하다가도 웃고, 헤어질때도 웃었다.
처음에는 실물보다 나은 외모에 놀랐고,
말도 안되게 밝은 성격에 놀랐으며,
나중에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주말에 알바를 하는 생활력에 놀랐다.
서른살이 되고나서 변변한 연애를 못했던 나는 그때 확신했다.
드디어 오년간의 존버가 빛을 보는 날이 왔다고 말이다.
서로 눈을 마주치며 오랜시간을 이야기하면서,
그사람 또한 나에게 호감이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었다.
감기기운이 있음에도 어렵사리 자리에 나온 그사람은,
혹시라도 감기에 걸리면 이걸 먹으라며 본인의 감기약을 나누어주었다.
나는 그걸 호주머니 안쪽에 간직하고, 버스를 바래다 주었다.
이제까지 만났던 소개팅중에서,
아니 지금까지 사귀었던 과거의 인연들을 떠올려봐도,
그사람처럼 마음에 쏙 들었던 적이 없었다.
그날은 수요일이었고, 나는 그자리에서 토요일날 만나고 싶다고 했다.
다음날, 또 다음날 톡을 하면서 전전긍긍하느니 만난 자리에서 에프터를 하고 싶었다.
이미 주도권은 상대방에게 넘어갔다는걸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찌보면 반 강요적인 제안이었고, 진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사람은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집에 가는길.
나는 으레 하는 인사치례처럼 오늘 너무 재미있었다고 했고,
그사람은,
'감기가 옮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약을 챙겨준것도 모자라 감기를 신경써주는 그녀의 성품에 다시한번 감탄했다.
그 사람에게 올인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나는,
멍청하게도 그 말의 진위를 깨닫지 못했던 거다.
집에 돌아와 설렌 마음을 다스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얼굴 보면서 거절하기가 미안했다며, 좋은사람을 만나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시 생각해볼수 없겠냐'며 붙잡아봤지만,
될 턱이 있나.
그제서야,
다른 생각을 하게 됐다.
아,
그래서 감기가 옮지 않았으면 했던건가.
내가 금사빠 기질이 있긴 하지만,
두세시간 남짓한 만남으로 좋아하면 얼마나 좋아했겠냐만,
정말 좋은 사람을 놓쳤다는 생각에 한동안 멍 하니 있을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날밤, 나는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그사람이 순수한 선의로 이야기한 것이든,
아니면 마음을 받지 못한 미안함으로 이야기한 것이든,
어쨌거나 그사람의 바램대로 나는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입에 담기 오글거리고 창피한 표현이지만,
그사람을 향한 열꽃은 오롯이 남아 지금도 내 몸속을 헤집고 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