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9/10/04 15:40:08
Name 모챠렐라
Subject [일반] 망상 - #1
"내가 점심 약을 먹었던가?"

문득 떠오른 생각을 중얼거리자 머리가 아파지며 하던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그저 생각 없이 반복하는 업무일 뿐인데도 단순한 생각에 사로잡혀 움직일 수가 없다.
평소처럼 12시에 정해진 대로 점심을 먹고 1시부터 일을 시작했을 텐데 그사이 일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고개를 돌려 오늘 나에게 할당된 약 봉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24시간 날 바라보는 저 CCTV를 돌려보면 알 수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알고 싶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나의 안전을 위해 설치했을 뿐인 저것은 언젠가부터 나만을 바라보고 있다.
아니 내가 일하는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는 것이리라
내 안전은 그저 핑계였을 텐데 나는 그저 순순히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나의 안전을 걱정하는 그들은 나의 안전을 위해 언제나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약 봉투를 뜯어 약을 만져보았다. 이름 모를 갈색과 흰색의 알약 몇 알
몇 개월째 복용하고 있는 약의 감촉은 매번 만져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흰색 가운을 입은 의사가 내 건강이 걱정된다며 멋대로 처방한 새로운 알약도 눈에 들어왔다
젊었을 적부터 신경 쓰지 못한 내 몸이 이제는 내 건강을 위협한다니…
이런저런 씁쓸한 생각을 하며 오늘 할당된 약을 입안에 가볍게 털어 넣었다.
알약의 씁쓸한 맛에 미간이 찌푸려져 황급히 물을 마셨다

점심 약을 먹었으니 다시 일을 시작하자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이내 손을 놓았다.
머리를 식히고자 인터넷에 자주 가는 커뮤니티 몇 군데를 열어보았다.
대부분의 커뮤니티에서는 어제 개봉했다는 영화에 대한 분석으로 떠들썩했다.
사람들은 주인공의 정신병에 대한 온갖 의료지식을 늘어놓았고,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전문가적 견해를 쏟아냈다.
대단히 있어 보이는 어휘로 가득 찬 평론을 내놓는 이들도 있었다.
나도 영화를 봤지만 이러한 광기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정신병에 걸리면 이해할 수 있을까

문득 고개를 돌려 비어있는 약봉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가 점심을 먹었던가?"

그저 파스텔 톤의 벽만이 눈에 들어오며 이내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초짜장
19/10/04 15:48
수정 아이콘
내가 오늘 영양제를 챙겨먹었던가? 아, 배가 부르다고 배꺼지면 먹는다고 미뤘구나.
약먹으러 갑니다.
모챠렐라
19/10/04 15:51
수정 아이콘
건강은 스스로 챙기셔야 됩니다. 저도 유산균 먹으러 춍춍춍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83271 [정치] 트럼프 - 한국에 미군주둔비용 분당금 6조는 너무 적소. [122] 오리공작19410 19/10/29 19410 0
83269 [일반] 어떤 부촌 출신 노인과의 대화 [29] 시원한녹차15962 19/10/29 15962 16
83268 [일반] [단상] 중국이란 나라란 무엇인가에 대해 [62] aurelius16989 19/10/29 16989 38
83267 [일반] 탈동화화된 모세 이야기 [71] 삭제됨10712 19/10/29 10712 34
83266 [일반] (삼국지) 위연과 양의, 극단적인 대립 끝의 공멸 (2) [60] 글곰10730 19/10/29 10730 56
83265 [정치] 아류 제국주의 국가 한국!? [18] 삭제됨11423 19/10/28 11423 0
83263 [일반] [역사사료] 1888년, 박영효의 건백서 [12] aurelius12460 19/10/28 12460 9
83262 [일반] [국제]ISIL의 수장,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가 사망했습니다. [63] 후추통17653 19/10/28 17653 6
83261 [일반] [역사] 남만주철도주식회사 이야기 [21] aurelius14635 19/10/28 14635 21
81977 [일반] [공지] 정치카테고리의 상호 비하/비아냥 표현 제재 관련 공지 [62] 오호24177 19/07/18 24177 16
81490 [일반] [공지] 자게에 정치 카테고리가 15일 오전 9시 부터 적용됩니다. [51] Camomile24404 19/06/14 24404 14
83260 [일반] (삼국지) 위연과 양의, 극단적인 대립 끝의 공멸 (1) [33] 글곰10807 19/10/28 10807 28
83259 [일반] 사람은 계속해서 가치있을 것인가? 노동력의 가치에 대한 생각들 [43] 잠이온다9978 19/10/28 9978 3
83258 [일반] 공정함에 대한 생각 [60] 삭제됨11588 19/10/27 11588 26
83257 [일반] 두번째 삼국시대 3편. 협천자의 길. [21] Love&Hate14352 19/10/27 14352 16
83256 [일반] (스포)yesterday 영화 감상 [17] 삭제됨7602 19/10/27 7602 0
83255 [일반] 두아이를 가진 어느 아이엄마의 암치료이야기 [127] 그래프20207 19/10/27 20207 6
83254 [일반] 2025년부터 실내흡연실이 폐쇄됩니다 [147] CoMbI COLa18060 19/10/27 18060 3
83252 [일반] 논쟁중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지적하는것은 타당한가? [26] Ethereum11070 19/10/26 11070 1
83250 [일반] [팝송] 킨 새 앨범 "Cause And Effect" [11] 김치찌개7192 19/10/26 7192 4
83249 [정치] 광주시민단체 '홍콩사태' 적극 연대 나선다 [13] 나디아 연대기11674 19/10/26 11674 0
83248 [일반] 저희집은 차별이 없는 평등한 집이었습니다. [112] 김아무개18479 19/10/25 18479 62
83247 [일반] 마녀는 왜 빗자루를 타는가? [27] Knightmare11801 19/10/25 11801 6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