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9/09/13 23:14:03
Name 루데온배틀마스터
Subject [일반] 나쁜 녀석들: 더 무비 감상 (스포 유의)
나쁜 녀석들의 원작이라고 할까요. 드라마에서는 크게 미친개 오구탁 반장이 중심을 잡고, 그 아래에서 혹은 동등하게 움직이는 나쁜녀석들의 힘의 균형이 잘 조화되어 있습니다. 이정문의 활약은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는 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드라마를 이어가는데 있어서 중심축에서 멀어지진 않고, 정태수 역시 자신이 피로 걸어온 길과 마주하고 그 너머를 걸어가는 과정의 드라마가 잘 드러나죠.

하지만 나쁜 녀석들: 더 무비는 예고편을 보자마자 들었던 불안한 생각 그대로를 영화 상영 내내 드러냅니다.

원작에서 범죄라면 이를 갈며 더 독한 방식으로 물어 뜯기 위해 범죄 행위를 불사하던, 자신도 선과 악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른 상태에서 복수와 정의 집행이 위태로운 중앙선을 걸어가던 오구탁 반장의 김상중은 존재감이 없습니다. 드라마 속 명대사를 곱씹어 볼 수 있게 날려주시긴 하지만 '오마쥬'가 아니라 '갖다 썼다'의 느낌이 강합니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라 독기가 빠진 모습을 연기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글쎄요 오구탁의 정의감은 그런 것이었나? 생각해보면 미스라는 생각이 듭니다. 뭐 이 부분은 원작 결말을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볼 수 있긴 하겠죠.

김아중의 캐릭터 곽노순 자체는 매력있지만 과한 MSG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오락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고 보더라도요. 심지어 그 매력적인 캐릭터를 살리는 씬 조차 거의 없습니다. 김아중이 액션에 뛰어들지만 역시 존재감이 없습니다. 후술할 인물 때문에요. 같이 여자의 몸으로 액션에 뛰어들면서도 나름의 존재감을 뽐냈던 극한직업의 이하늬 씨가 그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결국 이 액션 씬의 부조화를 해결하기 위해 갑작스럽게 번개발이 등장하게 됐고, 개인적으로 몰입감이 크게 깨졌습니다. 원샷도 별로 없는데 매우 중요한 후반부 액션에서 마동석 대행을 도맡아 하는 이 존재는 약간 과장 보태 창세기전의 철가면 마이너 버전 급이라는 생각이 날 정도로요.

조동혁의 고유성. 이 영화에서 가장 설득력도 떨어지고 평면적으로 그려진 인물이라 생각합니다. 정태수와 이정문이 가진 입체적이고 합류과정에서의 드라마는 고사하고, 오구탁 반장의 섭외 한 마디에 OK 싸인 내고 끝. 액션은 박웅철에게 밀리고 뇌를 굴리는 장면조차 없는 단순 무식 열혈에 마지막 활약은 럭키 펀치라는 시시함까지. 뭐 원래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이 내내 맞다 마지막에 이기는게 정석이긴 합니다만. 그나마 고유성의 캐릭터를 살릴 수 있었던 동반 다이빙 씬의 연출은 0점짜리입니다. 어떻게 2019년 개봉 영화의 연출력이 어렸을 때 봤던 성룡 형님 영화만도 못한지 개탄을 금할 수 없던 장면이었습니다.

결국 캐릭터들이 다 밋밋하다보니 - 그나마 존재감이 있던 김아중 조차 - 남은건 박웅철 뿐이고, 박웅철에게도 드라마는 없고 액션만 남았습니다.

러닝 타임이라는 제한과 이런 저런 심의 불가 내용들을 감안하고, 가족 오락 영화로서 본다면 시원시원한 맛은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습니다. 굳이 '나쁜 녀석들' 이라는 브랜딩 필요 없이도 충분히 가능했던 영화라는 얘기죠.

식극의 소마라는 만화에서 주인공 소마와 나키리 아리스가 맞붙는 대결에서 아리스는 분자 미식학의 정수를 담은 테마리 초밥을 만듭니다. 그리고 소마에게 패하죠. 심사위원이었던 나키리 아리스의 할아버지는 이런 말을 합니다.

'예를 들면 오늘 시합이 초밥 대결이었어도 넌 같은 것을 만들었을 것이다.'

나쁜 녀석들: 더 무비는 분명 드라마는 아니고 애초에 선을 그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원작의 후광은 빌리고 싶고, 연관성을 너무 짓자니 부담이 심했다는 느낌을 주면 안됐습니다. 이런저런 대사를 차용해 온 건 솔직히 유치하게까지 느껴졌습니다. 굳이 나쁜 녀석들이 아니었더라도, 충분히 오락 영화의 반열로 추석 극장가에 올릴 수 있는 길은 없었던 걸까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9/09/13 23:44
수정 아이콘
늦은밤 보러 갔다가 잠이나 더 잘껄 후회가 심했습니다.
해달사랑
19/09/14 08:27
수정 아이콘
너무 아쉽더라고요. 글에 백퍼센트 공감.
김유라
19/09/14 12:59
수정 아이콘
'갖다 썼다'는 표현이 정말 정확하네요. 괜찮은 플랫폼 하나 적당히 주워다가 갖다붙이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1319 [일반] 작년 이맘때 터진 임창정이 연루된 주가조작사건을 다시 보다가 이런 게시글을 발견했습니다 [22] 보리야밥먹자10923 24/04/22 10923 1
101318 [일반] 돈 쓰기 너무 힘듭니다. [67] 지그제프10794 24/04/22 10794 23
101317 [일반] (스포)천국대마경 애니 다 봤습니다. 애니 사이버펑크 엣지러너 이후 최고작 아닌가 싶네요. [25] 그때가언제라도5125 24/04/21 5125 0
101316 [일반] 셀프 랜케이블 포설 힘드네요 [34] 탄야6143 24/04/21 6143 16
101315 [일반] 美하원, 우크라이나·이스라엘·대만 130조원 지원안 극적 처리 [81] 베라히10077 24/04/21 10077 1
101314 [일반] EBS다큐에 나온 임대사업자 [78] 이호철6859 24/04/21 6859 2
101310 [일반] [팝송] 저스틴 팀버레이크 새 앨범 "Everything I Thought It Was" [1] 김치찌개2080 24/04/21 2080 0
101309 [일반] 탁 트인 한강뷰로 KISS OF LIFE의 'Shhh'를 촬영하였습니다. [2] 메존일각3141 24/04/20 3141 5
101308 [일반] 원랜디는 창작일까, 표절일까? 2차 창작 문제 [20] 이선화4570 24/04/20 4570 10
101306 [일반] 반항이 소멸하는 세상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소녀들 [20] Kaestro7501 24/04/20 7501 4
101305 [일반] 스포 無) 테츠로! 너는 지금도 우주를 떠돌고 있니? [11] 가위바위보4497 24/04/20 4497 7
101304 [일반] 서울 쌀국수 투어 모음집 2탄 [41] kogang20015663 24/04/19 5663 13
101303 [일반] 서울 쌀국수 투어 모음집 1탄 [12] kogang20015753 24/04/19 5753 6
101302 [일반] 이스라엘이 이란을 또다시 공격했습니다. [147] Garnett2116967 24/04/19 16967 6
101301 [일반] 웹소설 추천 - 이세계 TRPG 마스터 [21] 파고들어라5436 24/04/19 5436 2
101300 [일반] 문제의 성인 페스티벌에 관하여 [166] 烏鳳12794 24/04/18 12794 64
101299 [일반] 쿠팡 게섯거라! 네이버 당일배송이 온다 [42] 무딜링호흡머신8650 24/04/18 8650 6
101298 [일반] MSI AMD 600 시리즈 메인보드 차세대 CPU 지원 준비 완료 [2] SAS Tony Parker 3240 24/04/18 3240 0
101297 [일반] [팁] 피지알에 webp 움짤 파일을 올려보자 [10] VictoryFood3194 24/04/18 3194 10
101296 [일반] 뉴욕타임스 3.11.일자 기사 번역(보험사로 흘러가는 운전기록) [9] 오후2시5197 24/04/17 5197 6
101295 [일반] 추천게시판 운영위원 신규모집(~4/30) [3] jjohny=쿠마12625 24/04/17 12625 5
101290 [정치] 기형적인 아파트 청약제도가 대한민국에 기여한 부분 [80] VictoryFood11367 24/04/16 11367 0
101289 [일반] 전마협 주관 대회 참석 후기 [19] pecotek5837 24/04/17 5837 4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