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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4/12 15:50:46
Name 글곰
Subject [일반] 삼국지 드래프트? 숨은 진주를 찾아보자 (3)
  삼국지의 가성비가 좋은 숨은 진주를 알아보는 시간. 왠지 촉나라 인물만 언급되는 것 같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그저 우연의 일치. 오늘은 그 세 번째 시간입니다. 그리고 일단 이걸로 마무리하려 합니다. 슬슬 마감이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어서요.

  1편에서 아는 사람만 아는 양홍(https://pgr21.com/?b=8&n=80690), 2편에서는 나름 유명하지만 사실은 훨씬 더 대단했던 이회(https://pgr21.com/?b=8&n=80715)를 다루었는데요. 3편은 어지간한 덕후들도 ‘그런 인간이 있었던가?’ 하는 인물입니다. 물론 이 글의 취지에 맞게 능력만은 실로 대단했던 사람이지요.

  그 이름은 왕련입니다.



  자가 문의(文儀)인 왕련은 원래 형주 출신이었는데 유장 시절에 익주로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현령 노릇을 하고 있었는데 유비가 유장을 공격하자 성문을 굳게 닫고는 항복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장의 충신이라는 점이 오히려 유비의 마음에 들었던지, 유비는 무리하게 그를 핍박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이후 유장이 항복하자 왕련은 유비의 휘하에서 벼슬살이를 하게 됩니다.

  여기서 하나 생각해 볼 점은 왕련이 오래도록 유비를 섬겨 왔기에 논공행상을 해 주어야만 하는 인물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익주에 기반이 있는 호족이어서 회유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인물도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는 단지 외지에서 온 뜨내기이자 한때 유비와 적대했던 자의 부하였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유비는 그를 높이 보아 중책을 맡겼는데 그게 단순히 전 주인에 대한 충성심 때문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왕련은 유비의 휘하에서 십방과 광도의 현령이 되었다가 다시 사염교위가 됩니다. 그런데 사염교위(司塩校尉)는 한자의 뜻 그대로 소금(塩)을 담당하는 벼슬(司)이거든요. 이게 엄청 중요합니다. 왜냐면 사염교위는 촉한의 통치 기반이 되는 국가재정의 확보를 담당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익주는 산출이 풍부한 곳이었습니다만 결국에는 1개 주(州)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갈량이 군사를 양성하면서 공세적으로 몇 번이나 북벌에 나설 수 있었던 건 결국 국가의 재정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비결 중 하나가 바로 소금과 철의 전매(專賣)입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철과 소금을 국가가 독점적으로 생산하고 판매함으로써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었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천일염이라 하여 바다의 염전에서 소금을 만드는 데 익숙합니다. 하지만 촉한은 내륙 국가였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소금은 대체로 바다가 아닌 암염(巖鹽)에서 얻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소금이 포함된 돌이나 흙에다 물을 타고 다시 솥에 들이부어 펄펄 끓임으로써 소금을 분리해 내는 거죠.

  촉 지역은 놀랍게도 지표면으로 새어나오는 천연가스(혹은 석유)를 활용하여 강력한 화력으로 소금을 만들어내는 기법을 후한 시대부터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촉한은 이 기법을 개량하여 본격적인 소금 생산 체제를 만들고 고오급 소금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거의 금을 허공에서 찍어내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죠.

  게다가 이렇게 얻어진 강력한 화력은 자연스레 철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담금질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철의 품질을 높이는 역할도 했습니다. 또 남중 지역에서는 예부터 제철 사업이 발달해 있었죠. 하여 제갈량의 시대에 촉한에서는 다양한 무기가 개발되었으며 병사들은 품질이 뛰어난 무기와 갑주로 무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촉한의 경제적인 부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사람이 바로 사염교위 왕련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예, 두기, 유간 여러 인재들을 발탁하여 기용함으로써 자신이 없더라도 국가의 재정이 잘 돌아가도록 하기도 합니다.

  왕련은 그런 공을 인정받아 촉군태수에 흥업장군으로 승진합니다. 촉군태수의 중요성은 이미 양홍 편에서 입이 닳도록 설명한 바 있지요. 그리고 흥업장군은 무려 이엄이 역임했던 장군호입니다. 엄청난 요직으로 승진한 거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금 관련 업무는 그의 소관으로 있었다 하니 얼마나 능력을 인정받았는지(혹은 제갈량이 사람을 얼마나 험하게 부려먹었는지)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유비 사후, 승상 제갈량은 부를 열어(開府) 실질적인 나라의 통치자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때 왕련은 승상부의 장사(長史)로 발탁됩니다. 장사는 고위관료에게 소속된 속관(屬官)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대통령의 장사=청와대 비서실장, 국무총리의 장사=국무조정실장이라고 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중요한 지위에 올랐다는 건 왕련의 능력을 다시 한 번 증명해 주는 일입니다.

  안타깝게도 왕련은 225년, 제갈량이 남중을 정벌하러 가기 전에 사망합니다. 그는 생전에 제갈량의 남중 정벌을 끝까지 뜯어말렸다고 하지요. 혹시라도 승상의 몸에 이상이라도 생긴다면 나라 전체가 위험해진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렇듯 충성스러우면서도 능력이 뛰어나 촉한을 부유하고 강하게 만들었던 왕련이 제가 꼽은 세 번째 숨은 진주가 되겠습니다.

  [내맘대로 능력치]
  왕련 : 통솔43 무력12 지력81 정치93 매력80 특기 생산력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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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충달
19/04/12 15:55
수정 아이콘
문득 드는 생각이
"왜 다 촉이지? 아... 촉의 인물을 보겠다고 하셨구나. 그럼 위에는 숨은 진주가 없나? 아... 필요 없겠구나."
FRONTIER SETTER
19/04/12 16:09
수정 아이콘
김태희가 밭을 갈고 한가인이 김을 매는 곳에서는 숨은 미녀를 찾을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은...
19/04/12 16:17
수정 아이콘
숨어 있지 않은 그냥 진주......ㅠㅠ
19/04/12 16:33
수정 아이콘
촉은 정말 찾아야 찾아야 괜찮다 싶은 인재가 나오는데 위는 뭐 어디 발길에 채이는게 인재, 명사...
손금불산입
19/04/12 16:55
수정 아이콘
서서도 촉나라에 있었더라면 어사중승 정도에서 끝나진 않았겠죠...
지니팅커벨여행
19/04/13 08:47
수정 아이콘
게다가 그놈들은 죄다 명이 길고 오래 살았...
19/04/12 16:00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초짜장
19/04/12 16:27
수정 아이콘
또 일찍 죽어....
노스윈드
19/04/12 16:49
수정 아이콘
출사에서 인상깊게본 인재들이 다 나오는군요..
출사를 읽다보니 반준이나 유파도 주목도에 비해 능력이 괜찮았던 인물들 같습니다.
19/04/12 16:58
수정 아이콘
반준이나 유파는 정말로 활약이 대단했던 사람들입니다. 반준은 이회의 업그레이드 버전이고 유파는 법정의 후임 상서령이었지요.
노스윈드
19/04/12 17:03
수정 아이콘
네 그래서 남군태수가 미가놈이 아니라 차라리 반준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관우와 역시 사이가 안좋기는 했지만 그렇게 허무하게 배신을 때리지는 않았을 거 같아서..
19/04/12 17:09
수정 아이콘
반준은 심지어 형주가 점령된 이후에도 항복 안 하고 뻗댄 충신이었죠. 이후 손권의 사탕발림에 넘어가서 나중에는 습진까지 때려잡지만... 아까운 인재인 건 확실합니다.
홍승식
19/04/12 16:54
수정 아이콘
1점, 2점 다음에는 3점짜리가 나와야지 왜 0점짜리인가요.
우리나라로 보면 전매청장 정도의 일을 한 거군요.
19/04/12 19:45
수정 아이콘
우리 승상님은 괜찮은 녀석들은 모두 요절을 시키는 군요..ㅠㅠ
주5일제가 있었다면, 촉이 더 오래 갔을..?
조말론
19/04/12 21:36
수정 아이콘
잘봤습니다

다만 국무총리의 장사=국무조정실장 은 잘못된 비유같네요 국무총리비서실장도 따로있고 국무조정실장이 국무총리의 오른팔같은 역할도 아니구요
19/04/12 23:16
수정 아이콘
우리나라의 조직상 대통령의 대통령비서실장=국무총리의 국무조정실장+국무총리비서실장으로 간주해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통령비서실은 비서 역할과 행정업무총괄 역할을 겸하는 반면 국무총리는 둘이 나누어져 있으니까요. 그래서 대통령비서실장에 비해 국무총리비서실장은 그 역할이 무척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갈승상의 재임 당시 장사 왕련은 두 가지 역할(국무조정실장+국무총리비서실장)을 겸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225년에 그가 죽자 상랑이 장사가 됩니다. 제갈량의 남중 평정 당시 상랑은 수도에 남아 제갈량을 대리하여 승상부의 일을 맡아보았습니다. 왕련과 마찬가지로 두 가지 역할을 겸했습니다.

227년에 변화가 생깁니다. 제갈량은 북벌을 나가면서 '유부장사'라는 식으로 성도의 승상부에 장사 장예를 남겨두었습니다. 그리고 장예는 제갈량을 대리하여 승상부를 통괄했죠. 국무조정실장의 역할입니다. 한편 상랑은 제갈량을 수행했습니다. 국무총리비서실장의 역할입니다.

230년. 장예가 죽고 그 이전에 상랑은 면직되었습니다. 제갈량은 장완과 양의를 각기 장사로 임명합니다. 장완은 장예의 역할을 이어받았고 양의는 상랑의 역할을 받았습니다.

이런 점을 모두 감안하자면 촉한 승상장사의 역할은 국무총리비서실장이기도 하고 동시에 국무조정실장이기도 했습니다. 잘못된 비유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느라 댓글이 길어졌습니다.
조말론
19/04/13 12:34
수정 아이콘
그러니까 국무총리의 속관이 국무조정실장이 아니라는 의미로 국무총리의 장사에 국무조정실장을 넣으신게 잘못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냥 승상장사가 국무조정실장급이다라고 하면 현 한국 정부조직상으로도 특이하게 승상의 비서실장이 대단히 권한이 강했네 하며 그런가보다 하는데 대통령의 장사가 청와대 비서실장이라고 쓰시고 국무총리의 장사가 국무조정실장이라 쓰시니 비유로 이상하게 된거라고 쓴겁니다
19/04/12 22:43
수정 아이콘
위에는 발에 채이는게 인재 촉은 야 재 저기있었는대 죽었대? 뭐 과로사 했대? 크크크크 ㅜㅜ
누렁쓰
19/04/13 12:41
수정 아이콘
촉에 내정으로 이름을 떨친 인재들이 많은데 대체로 오래 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인재가 적어서 죽어라 구르다보니 소수의 이름이 도드라지는데, 그 소수는 과로로 일찍 가는 느낌이랄까요.
아마데
19/04/13 12:47
수정 아이콘
삼국지에 대해 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사람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찾는거죠
쿠즈마노프
19/04/14 13:20
수정 아이콘
국가재무를 튼실하는데 앞장섰네요. 역대급 전매청장(KT&G 사장)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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