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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12/12 18:41:05
Name 글곰
Subject [일반] (삼국지) 조위의 인사제도 (6) - 기울어진 저울 (수정됨)
1편(조조의 용인술) https://pgr21.com/?b=8&n=78872
2편(구현령) https://pgr21.com/?b=8&n=78896
3편(친족 중심의 군부 장악) https://pgr21.com/?b=8&n=78954
4편(아버지를 계승한 조비) https://pgr21.com/?b=8&n=79005
5편(구품관인법의 도입) https://pgr21.com/?b=8&n=79251


  조비는 고작 마흔 살에 죽습니다. 황위에 오른 지 6년만이었지요. 아들 조예가 황위를 이어받았습니다. 당시 스무 살을 갓 넘긴 나이였습니다. 하지만 젊다는 건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였습니다. 어쨌거나 성인이었으니까요. 그보다 조예가 황위를 이을 정통성이 부족했다는 게 훨씬 더 큰 문제였습니다.

  조예는 물론 조비의 적장자였습니다. 하지만 훗날 문소황후로 추존되는 어머니 견씨는 221년에 조비에게 주살당합니다. 조비가 다른 여자인 곽씨를 좋아하자 질투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조비는 견씨를 죽이고 곽씨를 새로 황후로 삼습니다. 그러니 조예는 ‘죄를 지어 죽임당한 어머니의 출생’이었던 겁니다.

  아마도 곽씨가 자식을 낳았더라면 십중팔구 그 아이가 새로운 적장자로서 황태자로 지명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조예는 끈 떨어진 연 꼴이 되었겠지요.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지 곽씨는 아이를 낳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조비는 끝까지 망설였습니다만, 갑작스레 병세가 위중해지자 결국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에서야 조예를 황태자로 삼습니다. 그럴 정도였으니 조예의 정통성은 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미 세상이 다 아는 걸요. 선대 황제는 지금 황제에게 황위를 물려줄 생각이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다는 사실을요.

  그런 정통성의 부족을 보완하고자 조비는 네 사람에게 탁고를 남깁니다. 탁고(託孤)란 고아를 맡긴다는 끝인데, 일반적으로는 황제가 죽을 때 믿음직한 신하를 불러 자기의 어린 아들을 잘 보좌해달라고 부탁하는 행위를 일컫습니다. 이렇게 전대 황제가 누군가에게 탁고를 했다는 건 그만큼 그 신하를 신뢰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조비의 탁고를 받은 탁고대신 네 명은 이렇습니다. 중군대장군 조진. 진군대장군 진군. 정동대장군 조휴. 무군대장군 사마의.

  네 명 다 대장군이네요. 즉 군사와 관련된 지위입니다. 그런데 진군과 사마의라니요? 예전 글에서 구구절절하게 말하였다시피 조조는 친족을 통해 군사력을 장악했습니다. 그리고 조비도 아버지의 그런 기조를 이어받았지요. 그런데 불과 6년 사이에 상황이 변했습니다. 친족이 아닌 자가 군부의 최고위 요직에 배치된 겁니다. 심지어 탁고를 받을 정도로 높은 지위로요.

  물론 아무리 친족 위주로 군부를 꾸려간다 해도 친족만으로 군부를 모두 장악하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진군이나 사마의가 군부에서 맡은 일은 중앙군을 이끌고 친정에 나서는 조비를 보좌하거나(진군), 혹은 조비가 친정을 떠났을 때 후방을 지키는(사마의) 임무였습니다. 외지에서 반독립적으로 군사를 이끌 권한을 받은 조진이나 조휴에 비한다면 아무래도 한 수 처졌지요. 더군다나 진군과 사마의는 조비가 태자인 시절부터 그와 매우 가깝게 지냈던 측근 중의 측근이라 할 만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점을 감안하더라도, 친족이 아닌 진군과 사마의가 군부의 높은 지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탁고마저 받았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조조가 기틀을 마련하고 조비가 완성한 위나라의 체제, 즉 친족과 귀족들이 서로 견제하며 조화를 이루고 있던 균형이 벌써부터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죠. 귀족화된 명문거족들이 차츰 중앙정계를 장악해 가고 있었습니다.

  조진과 조휴의 원정 실패는 그런 현상을 부채질합니다. 조휴는 228년에 오를 공격합니다. 석정 전투에서 대패했어요. 조진은 230년에 촉을 공격하죠. 장마 때문에 비를 쫄딱 맞으며 싸우다 역시 패하고 회군합니다.

  국력을 잔뜩 기울인 전쟁에서 패한 조휴와 조진의 위상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조예는 아무런 처벌도 하지 않죠. 오히려 상을 내리기까지 합니다. 두 사람은 조예의 친족으로서 나라를 떠받치는 기둥 같은 존재였거든요. 이들을 처벌한다는 건 조예 스스로 자신의 목을 조르는 행위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관대한 처우가 무색하게도 두 사람은 패배 이후 곧 사망하고 맙니다. 조휴는 228년에, 조진은 231년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둘 다 나이는 정확하지 않습니다만 대략 사십 대 정도로 그다지 많지 않은 나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세 사람과 함께 군부를 장악했던 하후상은 그보다 전인 225년, 조비 제위 시절에 이미 죽었고요.

  자. 이로서 거대한 공백이 생겨 버렸습니다. 조조 대부터 조비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친족 중심으로 돌아가던 군부에 갑작스러운 공백이 생겨 버린 겁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할 다음 세대의 친족들은 아직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죠. 자칫 잘못하면 군권이 죄다 귀족들의 손에 넘어갈 상황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조조와 아버지 조비가 안배했던 체제가 균형을 잃고 무너질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조예는 대안을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231년. 조예는 황권을 강화하기 위해 조칙을 내립니다. 역시 번역은 대충 개드립으로 때우겠습니다.

  “예전에는 황실의 친족들을 조정에 참여시킨 건 친족들이 화목하게 지내어 서로 협력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버지(조비)는 여러 친족들이 수도에 머무르지 못하도록 했지. 왜냐면 이건 나이 어린 황제가 모후의 섭정을 받는 상황에서 혹 황족들 중 찬탈하는 자가 나타나 나라를 말아먹을까 걱정해서였지. 하지만 그 때문에 나는 왕으로 봉해진 여러 황족들을 십 년도 넘게 못 봤다고. 인간적으로 이건 좀 그렇지 않냐? 자, 그러니까 이제 황실의 여러 왕이나 제후들은 각기 자식을 한 명씩 조정에 보내라. 황제가 어려 섭정 받는 상황이라면 아버지 말을 따라야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잖니. 古者諸侯朝聘, 所以敦睦親親協和萬國也. 先帝著令, 不欲使諸王在京都者, 謂幼主在位, 母后攝政, 防微以漸, 關諸盛衰也. 朕惟不見諸王十有二載, 悠悠之懷, 能不興思. 其令諸王及宗室公侯各將適子一人朝. 後有少主, 母后在宮者, 自如先帝令, 申明著于令.”

  요약하자면 ‘나 이제 황족들에게 벼슬을 뿌려줄 거다’라는 선언입니다. 물론 반대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요. 자식을 보내라는 건 인질을 잡겠다는 뜻 아니냐고요. 그럼 이듬해에 그가 재차 내린 조칙을 한 번 살펴볼까요.  

  “옛날에는 황제들이 제후에게 다스릴 영토를 내려주었지. 그래야 걔들이 황실을 지켜줄 수 있으니까. 시경에도 보면 그런 내용의 구절이 있어. 근데 진나라와 한나라는 모두 그렇게 했지만 제대로 못한 거 같아. 황족들이 너무 센 경우도 있었고 반대로 너무 약한 경우도 있었으니까 말이야. 심지어 우리 위나라는 황족들을 너무 아무렇게나 왕으로 삼아서 제대로 대우도 안 해 주는 등 제도가 개판이야 아주. 이래서야 후대의 모범이 될 수 있겠냐 말이지. 제후왕들을 죄다 군(郡) 단위로 다시 봉해라. 古之帝王, 封建諸侯, 所以藩屏王室也. 詩不云乎, 懷德維寧, 宗子維城. 秦漢繼周, 或彊或弱, 俱失厥中. 大魏創業, 諸王開國, 隨時之宜, 未有定制, 非所以永為後法也. 其改封諸侯王, 皆以郡為國.”
    
  여기에는 좀 더 복잡한 배경이 있습니다. 조비가 평생 형제들을 견제하였음은 다들 잘 알고 계시겠지요. 그래서 조비는 224년에 형제인 제후왕들을 죄다 ‘현왕(縣王)’으로 바꿉니다. 한나라는 천하를 주(州)로 나누었고, 그 아래 군(郡)을 두었으며, 다시 그 아래에 현(縣)을 두었습니다. 후한에 이르러 제후왕은 모두 황족이었으며 하나의 군(郡) 단위를 국(國)으로 삼아 봉토로 받았지요. 그런데 군을 받았던 군왕(郡王)을 현왕(縣王)으로 바꾸었으니 등급이 확 떨어진 셈입니다.

  그런데 조예는 이런 선대의 조치를 부정하고 다시 제후왕들을 군왕으로 올립니다. 그 의도는 명확했습니다. 친족과 귀족 사이의 균형추가 한쪽으로 쏠렸으니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겠다는 거지요. 그래서 핑계를 대어 가며, 선대 황제의 명령을 엎어 버리면서까지 다시 황족들의 권위를 확충시킨 겁니다. 황족들이 벼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격 또한 높여 주었지요.

  이러한 조치의 수혜를 입은 자가 바로 연왕(燕王) 조우입니다. 조조가 늦게 낳은 아들로서 조예에게는 숙부뻘이었지만 나이는 별 차이가 안 났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조예는 조우와 사이가 아주 좋았다는군요. 그는 조예의 아낌을 받아 황족의 필두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조예는 동시에 (조조나 조비가 그랬듯이) 젊은 친족들을 중용하기 시작합니다. 영군장군(領軍將軍) 하후헌, 무위장군(武衛將軍) 조상, 둔기교위(屯騎校尉) 조조, 효기장군(驍騎將軍) 진랑 등이 쾌속 승진하죠. 이중 조상은 조진의 아들이었고 조조는 조휴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진랑은 과부라면 사족을 못 쓰던 조조가 첩으로 삼은 두씨가 전남편 진의록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입니다. 비록 자기 아들이 아니었지만 조조는 진랑을 친자식처럼 대우하며 아꼈다는군요. 즉 이들은 죄다 조예의 친족이거나 혹은 그에 근접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예는 한 번 무너진 균형을 다시 맞추기 어려웠습니다. 그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촉과 오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대규모 전쟁을 수행할 만한 사람이 친족 중에 없었다는 데 있습니다. 아무리 낙하산 인재를 자행하더라도 한계가 있는 법입니다. 능력을 증명할 만한 실적이 없으면 최고가 될 수 없어요. 그러나 조진과 조휴의 사후 그럴 만한 인물은 없었습니다.

  결국 조예는 군부의 필두로 혈연과는 아무 관련 없는 자를 선택합니다. 바로 사마의였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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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12 18:50
수정 아이콘
그나마 올려놓은 황족이 조우 조상 조조 진랑 ㅗㅜㅑ저기에다가 하후무도 있네요 ㅗㅜㅑ ㅗㅜㅑ ㅗㅜㅑ ㅗㅜㅑ
18/12/12 22:00
수정 아이콘
조우는 약간 억울한 측면도 있는정도인데
조상은 크크크크 하후무는 크크크크크
하후현, 하후패만 아깝게 됐죠.

이게 다 하후상을 갈군 조비때문...
18/12/13 09:04
수정 아이콘
친족 중용이라는 게 한정된 인재풀에서 끌어다 쓸 수밖에 없다 보니..... ㅠㅠ
18/12/12 18:51
수정 아이콘
난세 + 조비가 너무 일찍 죽었음 + 하다못해 조예의 정통성을 마련해주지도 않고 심지어 탁고대신에 친족이 아닌 자들까지 끌어들여야했음 + 그런 와중에 조예마저 일찍 죽음 + 조예보다 더한 아예 누구의 아들인지도 불명확한 조방이 황위에 오름 + 심지어 그를 보좌하는 친족인 조상은 사마의 밥이 됨 + 그 와중에 사마의 아들인 사마사는 무려 조예떄부터 역심을 품은 놈

안되려면 이 모든게 다 일어나면서 안되는군요..
18/12/12 18:52
수정 아이콘
하다못해 중간에 조휴랑 조진이 좀만 더 능력이 있거나 좀만 더 오래 살았다면
아니 하다못해 사마의라도 일찍 죽었다면..크크
스트라스부르
18/12/12 19:10
수정 아이콘
사마의가 오래 산 게 가장 크죠.
조비, 조휴, 조진, 조예 넷이 죽는 동안
꿋꿋이 살아남았으니...

넷 중에 누가 됐든 단 하나만 사마의보다 오래 살아남았으면
적어도 사마씨가 정권을 잡을 일은 안 생겼으리라고 생각되네요.
18/12/13 09:05
수정 아이콘
동감입니다. 사마의가 오래 산 게 가장 큰 문제였죠.
오히려 제갈량과 비슷한 시기에 사망했더라면 역사에 조위의 충신이자 훌륭한 지휘관으로 이름을 남겼을지도요?
강미나
18/12/13 09:22
수정 아이콘
위나라 망할 때 보면 정말 극적이죠.... 저 중에 하나만 일어나지 않았으면 되는데 그게 다 일어나네 덜덜덜덜
18/12/12 18:51
수정 아이콘
목이 마르다며 바닷물을 마시는 군요. 마실때까지 그게 바닷물인줄 몰랐겠지만.
18/12/13 09:06
수정 아이콘
마시고 나니 바닷물도 아니고 아주 그냥 맹독충 뒤꽁무니를 빨아버린 격이었죠...
오호츠크해
18/12/12 18:52
수정 아이콘
통일이 되서 군사적 역량을 시험 받지 않아도 됐다면 됐을텐데....하긴 진나라처럼 내전판 될 수도 있으니 또 모를 일이긴합니다.
뽀롱뽀롱
18/12/12 18:56
수정 아이콘
조조가 조비를 죽기 직전까지 조진 것이 스노우볼이 됐겠군요

차라리 빨리 한놈 정해서 기반 닦으라고 했으면
친족 중에서 승진할놈 서열 정해서 착착 했을건데
경쟁시키니 줄 잘못 선놈 몽땅 날리고
엥길만큼 유능한놈 날리고 반복 됐겠네요

조창이나 조식이나 위험분자로 찍혔겠지만
그 근친들은 써먹어볼만한 인재가 많았을것 같은데요
18/12/12 22:01
수정 아이콘
후계구도를 잡고 힘을 실어주는게 중요한 이유죠.
애매하면 평생 일족견제하다 자기는 병으로 가고
아니면 콘스탄티우스처럼 일족을 다 죽이고
권력공백이 뜨거나... 아님 찬탈당하거나..
18/12/13 09:09
수정 아이콘
후계자를 정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려주는 일화랄까요. 태자 책봉시 이미 30살이었으니 늦어도 보통 늦은 게 아니지요.
펠릭스30세(무직)
18/12/12 18:57
수정 아이콘
조예도 능력 자체는 괜찮았어요. 아니 뛰어났어요.

능력만 뛰어났죠. 가만보면 오나라의 저주가 위로 옮겨간 듯?
18/12/13 09:12
수정 아이콘
저는 조예 자체는 그냥 흔해빠진,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 황제였다고 생각합니다. 평균보다 약간 위, 학점으로는 B 정도?
그러나 지나치게 일찍 죽은 데다 후계자를 개판으로 정했다는 점에서 마이너스가 너무 커서 C-로 하향합니다.
18/12/12 19:35
수정 아이콘
이젠 조예 사마의 빼면 아는 이름이 안나오네요 크크크크크
18/12/13 09:13
수정 아이콘
사마의는 아직도 죽으려면 한참 남았습니다. 크크크크.
18/12/12 20:02
수정 아이콘
그 많던 위나라 인재는 누가 다 꺼억했을까..
성세현
18/12/12 20:13
수정 아이콘
이럴 때마다 느끼는 건 조앙이 죽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상상입니다. 압도적인 정당성으로 체제를 닦아서 다 박살냈을 것 같기도 하고요.
누렁쓰
18/12/12 22:11
수정 아이콘
보통 조앙은 보여준게 없다, 효도가 유일한 업적이라고 하지만, 조앙이 살아 있었다면 조비와 조창, 조식이 낭비되지도 않았을 거고, 일찍 죽은 조충을 아쉬워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후계자 사가에서 소비되었던 신하들 또한 그런 식으로 휩쓸리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까 부녀자를 탐한 조조를 까면 됩니다.
ioi(아이오아이)
18/12/13 00:26
수정 아이콘
보통 이런 전란의 시기에 후계구도가 정확하게 잡혀있지 않고, 애매한 걸로 정해지면 어김없이 피바람이 나기 마련이죠

유선 정도로 멍청한 자식도 장남이면 후계 맡겨야 되는 수준이죠
18/12/13 09:07
수정 아이콘
조조 성향으로 봤을 때 조앙과 조식 사이에서 간을 봤을 것 같습니다.
지금뭐하고있니
18/12/13 00:20
수정 아이콘
재능이 없으면 경험치 잔뜩 멕여서 보충했어야 한는데 그럴 시간 자체가 없었으니...
결국 재능러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
18/12/13 09:14
수정 아이콘
심지어 재능러조차 별볼일 없었습니다. 흑흑.
카서스
18/12/13 01:49
수정 아이콘
수명도 능력인거 같습니다.
원소가 그랬고 주유, 법정과 같은 사람이 그러했죠.
18/12/13 09:08
수정 아이콘
역사에서 좋은 군주가 오래 사는 것도 능력이고, 운동 선수가 부당 당하지 않는 것도 능력이죠.
18/12/13 09:17
수정 아이콘
동감입니다.
가끔씩 수명은 타고나는 거지 어떻게 할 수 있는 아니라고 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어차피 재능도 타고나는 거라서요.
더군다나 과로로 스스로 수명을 깎아먹은 게 틀림없는 제갈량 같은 예시를 보면 수명의 중요성을 더욱더 깨닫게 되죠.
지금뭐하고있니
18/12/13 10:20
수정 아이콘
강희! 강희! 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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