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배너 1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8/10/12 16:12:20
Name 토끼
File #1 스크린샷_2018_10_12_16.14.17.png (254.2 KB), Download : 73
Subject [일반] 겨울이 온다


겨울이 온다. 두터워지는 사람들의 옷깃에서, 차가워진 공기에서뿐만 아니라 그냥 지나칠 뻔 했던 내 발길을 잡아세운 광고판에서도 겨울은 온다.

[2019 디자인 다이어리. 나의 하루, 나의 일년, 나의 기록]

겨울하면 연말과 신년이 있고, 다이어리가 빠질 수 없다. 다이어리 광고가 나오기 시작하는 걸 보면서 아, 정말 겨울이 오는구나, 하고 다시금 느꼈다.

지난 한 주간은 나에게 아주 힘든 주간이었는데, 사실 오늘까지 딱 3주동안 정말 '죽어라' 힘든 기간이었다. 물론 앞으로도 할 일이야 항상 쌓이고 쌓였지만, 그래도 이제 좀 낫겠지, 하고 한숨 돌리는 찰나, 겨울이 와 버렸네. 어쩜 이렇게 시간이 빠른지, 가슴이 저며온다. 난 뭘 한 거지, 하면서.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되는 건 겨울이 달갑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이럴 땐 피아프의 Milord 같은 걸 들으면서 감정 진자의 템포를 조절해야 한다.

어제는 느지막히 일어나서 느지막히 카페를 갔다가 느지막히 호프집에서 웰치스를 마시고는 느지막히 잠들었다. 엄청난 악몽에 시달리면서. 겨울이 오는 걸 느꼈나보다. 원래 나는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호사스럽게 카페에서 공부하다가 저녁을 먹고 다른 카페로 가서 또 공부를 했는데, 카페들이 다 예쁘고 분위기가 좋아서 만족스러웠다. 또 나와 함께 해준 나의 소중한 벗이 있기에 비교적 편안하게 집중해서 일을 할 수 있었다.

위 사진은 두 번째로 방문했던 카페인 Cafe Grasse 카페 그라쎄 라는 곳인데, 식사도 파는 것 같았지만 8시경에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식사하는 손님은 없었다. 카페의 따뜻하면서도 왠지 고풍스러운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지만, 40년대 풍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그 공기가 날 완전히 녹여버렸다. 아코디언 소리와 피아노 소리, 이국적인 낱말들이 날 붙잡고 녹여서 바닥까지 닿게 만들었다. 약간 노이즈가 들리는 마이크에 대고 부르는 날 것의 목소리들.

그래서 나는 바닥에 녹아 엉겨붙어있는 나를 일으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D와 호프집에 손도대지 않을 오징어를 시켜놓고 웰치스를 마시기 위한 약속을 잡아야 했던 것이다. 나는 자주 D의 말을 따라가지 못해서 의미없는 미소를 짓거나 아무말이나 대거리를 해대지만 어찌저찌 우리의 대화는 죽이 맞는 편이다. 길게 우회하는 시골길 같은 우리의 대화는 자정이 다가오면서 끝을 맺어야 했고, 어정쩡하게 매듭짓다 말아버린 리본같은 모습으로 남았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택시를 앞에두고 D와 나는 작별인사로 깊은 포옹을 나눴다. 따뜻했다. 날씨가 춥구나, 하고 생각했다. 겨울이 온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마스터충달
18/10/12 16:13
수정 아이콘
Winter is comming...
덴드로븀
18/10/12 16:34
수정 아이콘
you know...
18/10/12 17:08
수정 아이콘
윤호 넌 너무 멋져 남자가 봐도 반하겠어...
B급채팅방
18/10/12 17:25
수정 아이콘
와... 언어유희 지리네요 짱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78555 [일반] 성균관대, 학생 총투표 결과 ‘총여학생회 폐지’ 가결 [74] 마재12187 18/10/17 12187 10
78554 [일반] 혜경궁 김씨 처음부터 끝까지 v.1 [243] Bulbasaur17256 18/10/17 17256 20
78553 [일반] 남편에게는 프로세서가 필요하다. [52] 나른한오후9714 18/10/17 9714 12
78552 [일반] 캐나다에서 대마초가 전면 합법화 [186] HJose11658 18/10/17 11658 3
78549 [일반] 더럽네요 폐업합니다. 다신 이쪽 일 쳐다도 안볼겁니다 [185] 삭제됨63675 18/10/17 63675 110
78548 [일반] 한국의 산업화: 발전국가론을 중심으로 [46] 히화화10770 18/10/17 10770 18
78547 [일반] 찢? 똥파리? 정치 팟캐스트 스피커들의 개싸움 [91] 청자켓10914 18/10/17 10914 1
78546 [일반] 일제시대 조선인들이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일으킨 대폭동 [88] asdqwea16615 18/10/17 16615 22
78545 [일반] 미국의 전략이 냉전때 처럼 먹힐까요? [135] 능숙한문제해결사12737 18/10/17 12737 0
78544 [일반] [뉴스 모음] No.202. 일파만파 퍼지는 사립유치원 비리 뉴스 외 [28] The xian10760 18/10/17 10760 17
78543 [일반] QR코드를 기반으로 하는 모바일결제가 신용카드를 대체하는 건 올바른가? [53] 모모스20139690 18/10/16 9690 3
78542 [일반] [번역] 재해에 지지마라, 로컬선! [5] 군디츠마라5371 18/10/16 5371 3
78540 [일반] 비리어린이집(유치원아니라고 합니다..) 경험담 [150] 삭제됨13752 18/10/16 13752 5
78539 [일반] 군대에서 탈영했던 썰 1탄.txt [26] 위버멘쉬13122 18/10/16 13122 14
78538 [일반] 오랫만에 해보는 자유게시판에 뻘글 투척! [11] 로즈마리4967 18/10/16 4967 10
78537 [일반] 기술 혁신에서 낙오되고 있는 유럽에 대한 메르켈의 걱정 [96] asdqwea15111 18/10/16 15111 13
78536 [일반] 불륜이 향하는 끝, 메리가 셸리를 만났을 때 [21] 글곰9134 18/10/16 9134 29
78535 [일반] 가짜뉴스 막는다고 새로운 법안이나 규제를 만드는걸 반대합니다. [72] 마빠이12476 18/10/16 12476 14
78534 [일반] 이브라힘 파샤 - 메흐메드 알리의 꿈을 이루게 해주다 [10] 신불해9260 18/10/16 9260 25
78532 [일반] 우연히 군대 후임을 모임 어플에서 보게 됐네요. [18] 삭제됨11617 18/10/15 11617 1
78530 [일반] 영화 베놈을 보고 문득 떠오른 한 영화의 ost [3] KID A7190 18/10/15 7190 0
78529 [일반] 혼자 머릿속으로 느끼는 2018년 한국 [15] 삭제됨8906 18/10/15 8906 11
78528 [일반] (스포)타인은 지옥이다 감상 [35] 삭제됨10039 18/10/15 10039 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