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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09/28 00:06:37
Name 글곰
Subject [일반] (삼국지) 형주 공방전 (5)
  형주 공방전 (1) : https://pgr21.com/?b=8&n=78303
  형주 공방전 (2) : https://pgr21.com/?b=8&n=78311
  형주 공방전 (3) : https://pgr21.com/?b=8&n=78324
  형주 공방전 (4) : https://pgr21.com/?b=8&n=78364


  조인과 만총이 번성에서 포위당하고 우금의 7군이 수몰된 시점에서, 서황은 완에 주둔하며 급하게 끌어 모은 신병을 이끌고 남하해야 할 정도로 다급했습니다. 218년 8월의 일입니다. 서황은 처음에는 관우의 기세를 감당해내지 못하고 양릉피라는 곳으로 옮겨 주둔합니다. 앞뒤 정황을 살펴보면 관우와 한번 교전했다가 패한 후 이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번성이 함락되지 않고 시간을 끌어 주자 차츰 조조의 진정한 힘이 발휘되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10월이 되자 손권에게 보낸 밀사에 대한 회신이 돌아왔습니다. 손권이 신하가 되기를 자청하면서 관우를 공격할 것이라고 알려 왔지요. 조조에게는 반격을 꾀할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조조가 관우를 막기 위해 투입한 병력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었습니다. 낙양까지 돌아온 조조는 우선 서상과 여건 등의 장수를 서황에게 보냅니다. 이들은 다른 데 이름이 나오지 않는 걸로 미루어보아 일단 급하게 끌어 모은 부장(副將)격으로 보입니다.(여건은 조조가 초창기에 등용한 여건과 한자가 다른 동명이인입니다) 하지만 그들만으로는 역시 관우를 상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병사가 더 모이기를 기다려 한꺼번에 진격하라고 당부하지요.  

이후 은서, 주개 등이 이끄는 12영(營)을 추가로 파견합니다. 영(營)이란 군사들이 주둔하는 진영이나 혹은 그에 해당하는 병력을 말하는데 규모는 상황에 따라 달랐습니다. 이때는 대략 12,000명 정도로 추측하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그걸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조조에게는 여력이 있었습니다. 손권이 귀부해 온 이상 원래는 손권을 견제하는 용도였던 병력을 마음껏 끌어다 쓸 수 있었죠. 본래 거소라는 곳에 주둔한 군사들이 손권을 방비하기 위한 주력이었고 하후돈과 장료 등이 이들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조조는 그들을 모두 불러 모읍니다. 또 연주자사 배잠과 예주자사 여공도 호출합니다. 이들 역시 군사를 이끌고 당도하죠.

  그리고도 쓸 수 있는 수단이 하나 더 남아 있었죠. 조조는 다시 한 번 병력을 이끌고 직접 친정(親征)에 나섭니다. 그는 마피에 주둔하여 서황의 뒤를 받칩니다. 하후돈과 장료, 배잠과 여공 등도 모두 그곳으로 모여들었지요. 바야흐로 조조의 전군이 총동원되다시피 하여 관우 한 사람을 공격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219년 10월. 마침내 일대 격전이 벌어질 때였습니다.

  그런데 전투 직전에 조인의 진영에서 화살 한 대가 날아들었습니다. 편지 한 통이 매달려 있었지요. 그걸 읽어본 관우는 경악합니다. 바로 손권이 조조에게 바친 편지였거든요. 손권이 스스로 조조에게 귀부하며 관우의 후방을 공격하여 공을 세우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편지를 보고도 관우는 마음을 쉽게 정하지 못합니다. 무엇보다도 이게 조조의 속임수일지 진짜일지를 알 수 없었죠. 만일 속임수라면 그때까지 들인 공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양번을 함락시킬 수 있다는 희망도 있었겠죠. 설령 손권이 정말로 배신하더라도 자신이 직접 보수한 강릉성이 쉽게 함락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니 냉큼 돌아가겠다고 할 수 없는 게 어쩌면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장병들은 동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조가 노린 것도 바로 그 점이었지요. 그리고 마침내 서황이 싸움을 걸어왔습니다.

  서황은 본래 신중한 성품으로, 이기지 못할 것 같으면 애당초 싸움을 피하는 성향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먼저 공격을 시도한 건 병력의 양이나 질에서 이제는 관우보다 우세하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서상과 여건, 은서와 주개 등 장수와 병력을 충분히 지원받았으니까요. 반면 관우가 병력이 열세인 상황에서 그토록 바라던 상용의 지원군은 결국 아무런 소식도 없었습니다.  

  이 때 관우는 번성 북쪽의 언성이라는 곳에 병력을 두었는데 서황이 접근해 오자 성을 불태우고 물러나 위두와 사총이라는 두 곳에 각기 병력을 나누어 배치합니다. 관우는 참호를 깊이 파고 녹각을 열 겹이나 둘러서 튼튼한 방어진을 구축해 둔 상태였지요. 서황은 정면으로 들이받는 대신 계책을 씁니다. 위두를 공격하는 것처럼 꾸민 후 몰래 사총을 공격한 거죠. 관우는 사총이 경각에 달렸다는 소식을 듣고 5천 명을 이끌고 직접 출진해 맞서지만 서황과 교전 끝에 크게 패하고 맙니다. 병사들이 강물에 무수히 빠져 죽고, 관우는 번성의 포위를 풀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인과 만총은 마침내 기나긴 포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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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우의 튼튼했던 양번 포위망은 이렇게 서황의 활약으로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그 공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던지, 조조는 그의 전공이 손자(孫子)로 불리우는 손무나 춘추시대 제나라의 명장 사마양저마저 뛰어넘는다고 극찬합니다. 또한 서황이 개선하자 직접 성 밖으로 나가 그를 맞이할 정도였지요. 본래 서황은 다른 사람과 사귀는 걸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와 교우를 맺은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가 바로 관우였습니다. 그랬던 서황이 관우를 격파하는 데 결정적인 공훈을 세우게 되었으니 운명이란 참으로 얄궂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패했을망정 관우가 아주 다급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병력은 조조가 많았지만 수군이 없었기에 한수(면수)의 수로(水路)는 여전히 관우가 장악하고 있었고, 양양성 역시 포위한 상황이었습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이 시점에서라도 양양의 포위를 풀고 한수를 따라 강릉으로 퇴각했다면 이 전투는 무승부로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관우에게 현실은 그보다 훨씬 더 냉혹했습니다. 윤10월. 쥐새끼처럼 눈치만 보고 있던 손권이 마침내 움직였습니다.

  관우를 상대하기 위해 조조가 모든 장수와 병력을 끌어 모은 것처럼, 손권 또한 본인이 동원 가능한 최대한의 힘을 형주에 투입했습니다. 여몽과 육손이 선봉이 되었는데 각기 주연과 반장, 이이와 사정을 부장으로 삼았습니다. 장흠과 손환이 각자 수군과 육군을 이끌고 그들을 뒷받침했죠. 손권 자신도 직접 중군을 맡아 출격했고, 손교는 후속부대를 담당하며 보급에 전념했습니다. 감녕 또한 이 때 동원되었던 걸로 보입니다만 또 다른 기록으로는 벌써 사망했다고도 하여 명확하지 않습니다.

  여몽은 몰래 장강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병사들에게 상인의 옷차림을 하게 한 후 백성들에게 노를 젓게 하여 상선(商船)으로 위장한 상태였죠. 관우는 강변을 따라 무수한 둔영을 세워 방비해 두었지만 상인으로 꾸민 적의 기습을 막아내지 못합니다. 그렇게 여몽은 먼저 장강을 장악한 후 마침내 공안에 이르렀죠. 공안을 지키던 장군 사인은 냉큼 항복합니다. 다만 배송지 주에 인용된 오서에 따르면, 우번은 사인이 거짓으로 항복했다고 여겼던 모양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사인을 무작정 배신자로만 치부할 수 없을 일말의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겠지요.

  반면 미방은 그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습니다. 진작부터 손권과 내통하고 있었던 그는 여몽의 군사들이 이르자 성 밖으로 나와 고기와 술까지 대접해 가며 항복하고 맙니다. 관우의 거점이자 거대한 군사기지였던 강릉성은, 적벽대전의 대패 이후로도 조인이 유-손 연합군을 상대로 거의 1년이나 버텨냈었던 천혜의 요새 강릉성은 단지 미방 한 사람이 관우를 배신한 까닭으로 너무나도 무력하게 동오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여몽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공안과 강릉을 함락시키는 동안 육손은 곧장 서쪽으로 진격하여 의도군을 점거한 후 익주에서 형주로 나오는 길목을 차단합니다. 이후 다시 주변에 있는 관우의 부하 첨안과 진봉, 등보와 곽목 등을 토벌하지요. 그야말로 속전속결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관우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습니다. 근거지가 송두리째 날아간 데다 믿었던 부하들이 죄다 배신한 상황. 관우는 일단 양양의 포위를 풀고 강릉으로 돌아갑니다. 불과 한두 달 전까지 천하를 진동시키던 위세를 생각하면 실로 당혹스러우리만큼 급격한 몰락이었지요. 위나라 군사들이 그 뒤를 쫓으려 했지만 조조는 저지했습니다. 관우와 손권이 한판 붙는 걸 보며 어부지리를 얻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관우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강릉이 일단 적의 손에 넘어간 이상, 근거지도 없는 자신이 다시 성을 탈환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몽은 심리전까지 걸어옵니다. 강릉과 공안을 제압한 그는 관우와 그 부하들의 가족들을 해치지 못하게 했을 뿐 아니라 노인과 병약자들을 지원하고, 또 백성의 물건을 빼앗는 병사들을 처벌하여 빠르게 민심을 얻습니다. 그리고 관우가 사자를 보내올 때마다 관우의 부하들에게 그런 소식을 전하도록 하지요. 포로로 붙잡힌 가족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병사들은 싸울 마음을 잃고 맙니다. 게다가 손권의 본대까지 형주에 당도하자 관우로서는 더 이상 대적할 엄두를 낼 수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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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관우는 강릉으로 향하던 도중에 방향을 틀어 맥성으로 갑니다. 이미 형주를 장악한 손권은 손쉽게 그를 포위했죠. 관우는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분투합니다. 거짓으로 항복을 청한 후 밤중에 성을 빠져나와 도망치죠. 그러나 그마저도 이미 주연과 반장이 도주로를 차단한 후였습니다. 도중에 병사들이 대부분 흩어지고 관우의 주변에는 고작 십여 명에 불과한 부하들, 그리고 장남 관평과 도독 조루만이 남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우는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했습니다. 이천 년 전에 살았던 한 인물의 마음을 제가 어찌 간파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관우에게 있어 그 남다른 자부심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주군인 유비의 존재였습니다. 그는 일평생을 유비를 위해 바쳤지요. 그건 충성의 범주를 넘어선, 실로 순수하기까지 한 의(義)였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유비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관우는 그 어떤 굴욕과 비참함도 참아낼 수 있었습니다. 적에게 항복했다는 오명도 상관없었습니다. 거짓 항복 따위의 협잡질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관우라는 사내에게 유비는 삶의 의미이자 버팀목이었으니까요. 그랬기에 관우는 여전히 서쪽으로 도망쳤습니다. 오로지 유비를 향해. 오직 유비를 위해.

  하지만 그가 도망칠 곳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익주에서 형주로 이어지는 길목을 육손이 차단한 이상 그가 향할 수 있는 곳은 상용뿐이었지요. 상용으로 접어드는 길목인 임저에서 그는 반장의 군사들과 조우합니다. 유비에게 가기 위해 최후까지 싸우던 관우는 결국 반장의 사마(司馬)인 마충이라는 무명장수에게 사로잡히고 맙니다. 그걸로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219년 12월. 한때 만인지적(萬人之敵)이라 칭해졌던 장수는 너무나도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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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바
18/09/28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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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천항로의 한 구절이 생각나네요.... "우리 형제의 꿈은 이제 불멸로 남으리라"

아직까지 읽히고 있는 것 보면.. 그 말이 사실이 된거 같네요.
18/09/28 11:16
수정 아이콘
그 말대로입니다. 죽음으로써 영원불멸의 존재가 되었죠.
카루오스
18/09/28 00:19
수정 아이콘
아아... 너이 쥐새끼...
시메가네
18/09/28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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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방이 통수만 안쳤음 생각외로 괜찮았을지도...
그 뒤 제갈량이야 어렵지만 그나마 가정서
있던 1차북벌이 기회였는데 산악인...
그 뒤는 뭐 할수있는게 없었죠
루크레티아
18/09/28 00:29
수정 아이콘
만약에 형주를 빼앗겼더라도 관우가 살아있었다면 오가 정말 형주를 침략한 것을 후회할 정도로 개박살이 났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관우를 앞세워서 재침공 해오는 촉을 두고 위도 오를 먹기 위해서 입맛을 다시고 있었을 테니까요. 관우를 잡아 죽인 것은 정말 손제리 신의 한 수였어요.
ageofempires
18/09/28 06:35
수정 아이콘
관우야 우금 군 깨트린 것 이외에는 승리 기록이 거의 없다시피한데 큰 영향이야 있었겠습니까?(조조의 명을 받고 장기말이 되어 움직여 개인의 무술 실력을 발휘해 안량을 죽인 거 이외에 자신이 군을 직접 움직여 세운 공은 이것뿐이죠.)

개인적으로 관우는 무예 실력(물론 이것도 젊었을 때의 한정)을 바탕으로한 돌격 대장 역할로는 뛰어나지만 나이먹고 대군을 총지휘하는 역할로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장수로 생각합니다.
손금불산입
18/09/28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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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치면 유비군에서 제갈량 장비 정도를 제외하면 유비 죽을때까지 군단으로 승리한 장수가 없죠. 애초에 세력 자체가 작아서 군단 운용 자체가 불가능한 유비 세력의 영향이 크다고 봐야..
18/09/28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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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래서 위나라에서 유비 죽었을때 저긴 끝났다 라고 무시하다 제갈량의 북벌에 식겁했다고.... 제갈량 평가가 그때 확 오른걸로 압니다 크크
카서스
18/09/28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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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그정도 장수에 당시 평가가 저렇게 뛰어나지는 않죠.
당시 사람들은 멍청이가 아닙니다
헤나투
18/09/28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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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과정에서 실책이 있었을지언정, 관우 하나를 위해 모인 전력만봐도 관우의 이름값이 어느정도인지 알수있겠군요.
이제 한편만 남았군요. 항상 잘보고있습니다.
18/09/28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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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꼭 길로 가야하나요? 저렇게 뒤도 볼 것 없이 패배한 상황에서는 그냥 완전 해체해서 산 올라가면 모를 것 같은데. 병력 보존하며 후퇴해야하는 상황 아니면.
18/09/28 04:58
수정 아이콘
저도 같은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뽀롱뽀롱
18/09/28 06:45
수정 아이콘
우리나라 수준이면 가능해도 대륙수준이면 안되지 않을까요?

군용로나 지형 숙지의 축척이 아예 단위가 다를거라
해체후 등반해서 길 잃는 순간 영원히 전력외가 될듯 합니다
아마데
18/09/28 08:20
수정 아이콘
그 당시 산길은 말이 길이지 그냥 자연 그대로 남겨진 수준이라 그런 게 아니었을까요? 들짐승도 있고 말은 고사하고 사람도 안전을 장담하기 어려웠을 거 같네요
솔로13년차
18/09/2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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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해서 산을 올라가는 행위가 바로 뿔뿔히 흩어지는 것 같습니다. 저 당시 병사들이 딱히 국적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요. 누군가는 멀리 갔더라도 다시 유비진영으로 돌아올 수도 있고, 누군가는 항복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대로 멀리 달아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고향으로 갈 수도 있겠죠. 거기에 해체해서 올라간다는 건 단체로 움직이는 것보다 눈에는 더 띄일 테고, 흩어진 상황에선 더더욱 적의 공격에 대응하기 어렵죠.
18/09/28 11:25
수정 아이콘
길이 없는 산을 안 타보셨군요...
당장 제가 며칠 전 추석날 묘사 가는 길에, 나무가 우거지고 길이 가팔라서 고작 30미터를 전진하지 못하고 결국 도로 내려와야 했습니다. 이십 년이 넘도록 다니던 길이었는데도요. 더군다나 그런 길을 수십 수백 킬로미터나 간다는 건 인간으로써 불가능한 일입니다. 물론 돌산이어서 나무가 적다면 상대적으로 수월할 테고, 그런 정신나간 짓을 자행했던 등애란 인간도 존재하지만요.
소주의탄생
18/09/28 01:21
수정 아이콘
그의 능력이 어찌됐든 관우라는 인물은 정말 매력적인 인물이 아닐수 없습니다.
18/09/28 11:26
수정 아이콘
그렇기에 결국 불멸로 남았지요.
아마데
18/09/28 01:32
수정 아이콘
도대체 미방이라는 놈은 어떻게 돼먹은 인간이기에 저랬을까요.
18/09/28 07:28
수정 아이콘
오나라 가서도 크게 대우받은 것도 아니고 평생 눈치보며 살았죠
안습
18/09/28 08:54
수정 아이콘
후에 촉에 반환되는건 소설인가요?
18/09/28 09:06
수정 아이콘
넵 연의의 창작입니다
18/09/28 11:29
수정 아이콘
사람들의 추측으로는 관우에게 처벌받을 것이 두려워 오나라에 항복했다고들 하는데...... 참으로 글러먹은 이유죠.
설령 군수물자 태워먹은 게 죽을 죄라 해도, 아무리 관우가 절월을 받았다 해도, 미방의 목을 날릴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Bulbasaur
18/09/28 01:53
수정 아이콘
그당시 오나라는 왜 관우를 쳤을까요 당시 국력이 위나라가 가장 앞서있다고 알고있는데 오나라가 촉나라 관우를 공격하는순간 위나라 통일은 거의 확정이 아니였을까요?
18/09/28 05:21
수정 아이콘
우리야 게임 하듯이 삼국통일 한다고 보지만 오나라는 강 아래 자기들 영토 유지하는 것에 주력을 뒀겠죠.
ageofempires
18/09/28 06:30
수정 아이콘
삼국지 게임도 아니고 오나라가 천하통일을 목표로 해야할 당위는 없죠. 그저 자기 선조 때부터 갖고 싶었던 형주를 취할 가장 좋은 찬스였고 그 찬스를 놓치지 않았을 뿐입니다.
Lighthouse
18/09/28 07:19
수정 아이콘
삼국의 정세를 알고 역사를 아는 우리야 그런 답변이 나오지만 당시 오나라 입장에서 본다면 당연한 선택이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전 조금씩 드네요. 당시 오나라는 진출할 자리가 없었죠. 서주에서 장료라는 희대의 인재가 가로막고 있었고 설사 장료를 어찌어찌 뚫는다고 하더라도 (근데 그 뚫는 것도 불가능했었죠) 서주는 평야지대였기때문에 밀려오는 위를 상대로 지킬 거라고 장담을 못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남은 길은 형주인데, 글쎄... 궁금하긴 하네요 만약 노숙이나 주유가 있었으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최소한 관우 뒤통수 치진 않았겠죠) 그리고 전 윗분과 생각이 다른데 천하통일을 목표로 하는게 아니라 현상유지자체가 안되기때문에 오나라도 천하통일을 노릴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위나라와 오나라로 나누어진 천하 이분지계가 이루어져도 위나라와의 싸움을 장담못하는데 삼국으로 나눠진마당에 오나라가 그냥 현상유지만 한다? 절대 못버티죠 그건 역사가 증명한 사실입니다. 제갈공명의 북벌역시 그렇기때문에 전 현상유지라도 할려면 공세를 취해야한다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찌됬건 삼국 역사를 알고 삼국상황을 아는 우리야 야 저걸 공격하면 안되는데 라고 알지만 당시 사는 사람들이 그걸 알 수 있을 순 없었을 겁니다. 손권은 서주로의 진출이 막히니까 형주로 밖에 길이 없었을꺼고 당시 한중왕으로 등극한 유비의 기세가 두렵기도 하고 관우와의 관계 또한 시원치 않으며 다른 곳으로 진출할 곳도 없고 형주는 자신의 땅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손권이 관우 뒤통수를 때린건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고 할 수밖에없죠.

다만 손권이 몰랐던점은 관우를 죽임으로써 촉나라의 보복이 왔다는 점과 그 보복은 이릉대전을 통해 대승을 했지만 그 대승이 아이러니하게 촉과 오가 위나라를 꺽을수 있을지도 몰랐던 최후의 기회를 날려버린게 되었죠. 오나라는 이릉대전 이후 북진을 할만한 여력도 의지도 없었고 촉은 북진을 할만한 의지는 있었으나 여력이 안됬고.

어찌됬건 지금 역사를 보는 우리입장이니까 그리 생각했지, 삼국상황과 역사를 몰랐으면 대부분 다 그렇게 행동했을겁니다. 다만, 왜 관우를 죽였을까 하는 의문은 남네요. 처형한걸로 봐서는 손권 본인이 죽이겠다는 의지가 분명했을것같은데, 관우를 죽이면 촉나라가 반드시 쳐들어올거라고 모르진 않았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규모로 쳐들어올거라고 생각을 못한건지. 아니면 그만큼 관우는 위협이니 죽여야한다고 생각을 한건지..
18/09/28 07:24
수정 아이콘
그만큼 위협으로 본거죠
전자의 가정은 손권을 너무 바보로 보는거고
Lighthouse
18/09/28 07:27
수정 아이콘
그말이 저도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엔 노숙이 살아있었으면 관우 뒤통수 안때리지 않았을까 싶은데, 지금은 과연 그랬을까 싶네요. 노숙이 살아있건 주유가 살아있건 관우는 위협이였을테고 서주는 난공불락이였을테니, 오나라 입장에선 관우 뒤통수를 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만... 다만 노숙이 살아있었으면 촉나라와의 관계 유지를 위해서도 죽이진 않았을 것같기도 하지만... 의미없는 추측이겠죠
ageofempires
18/09/28 07:52
수정 아이콘
지도를 보면 서주를 빼앗는다고 하더라도 오나라가 지킬 수가 없더군요.

건업에서 너무 멀고 위의 주요 도시와는 너무 가까워서 병력 충원에서 상대가 안됩니다. 최소 10만명 이상은 상시 주둔해야 하는데 오가 그만큼 국력이 안될뿐더러 위가 서주와 건업사이를 기병으로 막고 포위하면 답이 없죠.
Lighthouse
18/09/28 08:38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대로 서주는 진출로의 옵션이 되기 힘들었을겁니다. 오나라가 싸움을 잘해서 전투마다 승승장구를 했어도 힘들었을테니까요. (근데 심지어 그것도 아니였음) 소설이지만, 제 생각엔 결국에 노숙과 주유도 형주를 진출로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걸 관우를 죽이는 식이 아니라 다른형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둘 모두 결국 최후의 적은 위나라라고 확실하게 꿰뚫어보고 있었을텐데... 정말 궁금하네요 그들이 살아있었다면 어떤식으로 해답을 냈을지.
솔로13년차
18/09/2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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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생각하면, 위가 워낙 강세니까 빨리 촉을 무너뜨리고 흡수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죠. 역사야 어쨌든 오가 촉을 배신했지만, 촉이 오를 배신할 수도 있는 것이고요.
BibGourmand
18/09/28 04:18
수정 아이콘
저는 오늘도 쥐를 잡습니다. 오늘만큼은 전혀 미안하지가 않네요...
껀후이
18/09/28 06:23
수정 아이콘
전 몰랐다가 글곰님 글 보며 알게된 부분인데 관우가 7군 수몰하고 유비 회군에 맞춰 퇴각하여 방비를 굳건히 했다면 진짜 어떻게 됐을지 몰랐겠네요
촉에게 아쉬운 점이 이릉전투랑 1차북벌이었는데 또 하나가 늘었군요...아쉽네요ㅜ
ageofempires
18/09/28 06:29
수정 아이콘
만인지적을 사로잡아 역사서에 이름을 올린 반장의 부하였던 사마 마충 덜덜덜... 보통 병력빨로 사로잡았으면 그 시대의 서술에 따르면 당연히 반장의 공으로 기록되고 마충이 역사서에 이름 올릴 기회는 없었을텐데요. 병력 빨로 잡은 게 아니라 본인의 기량을 발휘해 잡았나 봅니다.

삼국지 최강이라 불리우던 관우를 잡은 마충을 기립시다. 껄껄껄
뽀롱뽀롱
18/09/28 06:48
수정 아이콘
역시 인사가 만사입니다
18/09/28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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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릉 올인으로 나라를 절딴내는 일만 남았군요..
강릉성을 저리 내주나.. 어휴
밤공기
18/09/28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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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촉은 다시 형주를 탈환하지 못하나요?
ageofempires
18/09/28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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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가 관우 사망 복수하고 형주 되찾는다는 명목으로 동원가능한 모든 자원 다 동원해서 오를 쳤다가 압도적으로 깨지고 병력의 대다수랑 수많은 인재들을 다 잃어버려서 칠 엄두를 못내고 한참 지난 후에 다시 오랑 동맹맺고 끝납니다.
밤공기
18/09/28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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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Lighthouse
18/09/28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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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주는 사실 촉에게 있어서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사실 오의 공세는 미미한 수준이였고 촉은 갖추어진 위를 상대로 한중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만큼 공격로를 두개로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형주는 사실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죠 촉에게는. 위에는 관우는 군재가 없다라고 평가하신 분이 계신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유비는 삼국지에서 그 누구보다도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난 인물이였고 설사 자기를 따르는 개국공신있었더라도 다른 능력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과감히 기용하던 사람입니다. 그런 유비가 관우에게 형주를 맡겼던건 관우를 인정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그만큼 중요하다 라는 의미이기도 했을겁니다.

실제로 관우가 죽고 형주를 잃어버린 촉의 유일한 공격로는 북벌인데, 공격로가 두개인것과 한개인건 전략적으로 하늘과 땅차이죠. 어디로 올지 뻔히 아는것과 둘중 하나 고르는건 천지차이니까요. 하지만, 촉은 형주도 탈환하지 못하고 북벌만 주구장창하다가 멸망하게 됩니다.
Chandler
18/09/28 08:51
수정 아이콘
거기서도 최후까지 라면을 끓이시던 승상 당신은 대체....
흑마법사
18/09/28 09:30
수정 아이콘
미방이 관우가 올 때까지만이라도 버텼다면...
Maiev Shadowsong
18/09/28 09:39
수정 아이콘
미축이 이때 동생의 배신으로 인해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고 하죠..

평생을 부끄러워 하면 살았다고 하던데 ㅠㅠ
18/09/28 11:38
수정 아이콘
하지만 미방의 배신에도 미축에 대한 대우는 변함없었던 우리 황숙니뮤 ㅠㅠ
Maiev Shadowsong
18/09/28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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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 제갈량이 막아도 뒤도 안돌아보고 이릉대전을 일으킬 정도로 눈이 뒤집혔던 유비인데

관우 죽음에 결정타를 날린 미방의 형 미축을 오히려 위로했다고 하는 기록을 보면... 미축의 영향력은 대단했다고 보입니다.
18/09/28 12:47
수정 아이콘
(수정됨)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적었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아래 댓글을 참조해 주세요. ㅠㅠ
지금뭐하고있니
18/09/28 14:06
수정 아이콘
아 막은게 아닌가요? 이제까지 줄곧 막은 줄 알았는데..
18/09/28 14:30
수정 아이콘
(수정됨)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적었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아래 댓글을 참조해 주세요. ㅠㅠ (2)
로하스
18/09/28 16:57
수정 아이콘
보통 사람들이 제갈량이 이릉대전을 막으려고 했다고 생각하는 근거가
삼국지 법정전에서
'제갈량이 탄식하며 말했다, “법효직이 살아 있었다면 능히 주상을 제지해 동쪽으로 가시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설령 동쪽으로 가셨다 하더라도 필시 경위(傾危-형세가 위태로워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부분인데 글곰님께서는 이부분이 제갈량이 이릉대전을 막으려고 생각했던건 아니라고 보시는 건가요?
18/09/28 17:10
수정 아이콘
이런. 제 잘못부터 짚고 넘어가야겠네요. 법정전에 그 기록이 남아 있는데도 제가 그걸 잊고 기록이 없다고 단언하는 헛소리를 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ㅠㅠ
지금뭐하고있니
18/09/28 14:05
수정 아이콘
황권이 짐을 배신한게 아니라 짐이 황권을 저버린것ㅠㅠ
근데 황제에 올랐지만 황숙이 익숙한것은 무엇 크크
ioi(아이오아이)
18/09/28 10:19
수정 아이콘
장료 하나도 못 뚫는 쥐라는 게 증명 되고, 제갈량이 사기캐여서 그렇지

만약 정말로, 촉나라, 오나라가 힘을 합쳐서 위나라를 잡고 싶었으면(게임에서처럼 파기가 더럽게 어려운 동맹이었으면)

촉은 한중 쪽으로 진격하고, 오는 형주쪽으로 진격하는 게 맞는 판단이죠

공격로가 2개인 것과 1개인 것 천지 차이인데 그 공격로를 2개 유지할 병력 자원이 촉나라, 오나라는 없었으니까
Lighthouse
18/09/28 11:26
수정 아이콘
근데 그게 가능했을까 싶습니다.

첫번째로 신뢰의 문제인데 손권은 항상 촉나라에 대한 야욕이 있었고, 설사 그게 없었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정보교류가 활발한 시대에도 못믿는데 그때처럼 제한적인 정보와 제한적인 만남을 가지고 완벽하게 서로를 신뢰할 수 있을 까 라는 회의감이 듭니다

두번째로는 설사 첫번째의 조건이 충족되더라도 과연 얼마만큼 잘 연계가 되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오나라가 서주를 공략할 당시에도 촉나라와의 정보공유가 있는 상태에서 공략을 했지만 전부 막혔습니다. 이건 희대의 명장인 장료가 막고 있었기도 하지만, 오나라의 군사 통솔력에 대한 의문점도 있고, 또 그 이상으로 위나라가 전력을 분산시켜도 강하다 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냥 단순히 서로 한쪽을 공략한다는 개념보다는 서로 확실하게 어느정도의 진척을 만들어줘야지 됬을텐데 이것도 글쎄요... 차라리 한머리 아래에서 움직이는 게 어설프게 두머리에서 움직이는 것봅다 낫지 않았을까싶네요.

어찌되었던간에 이 형주공방전이 촉/오/위 세 나라에게 정말 중요한 기회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것같습니다. 관우라는 만인지적의 장군이 위를 밀어넣으면서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몰랐던 것. (물론 사실 오나라가 뒤통수 치지 않았더라고 하더라도 꼭 촉이 승기 잡았을거라는 말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나라의 국력은 강했으니...)
ioi(아이오아이)
18/09/28 11:47
수정 아이콘
첫번째와 두번째를 인정해버리면
형주공방전 자체의 의미가 사라지고
오가 뒤통수를 치든 안 치든 어차피 촉나라와 오나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미래는 없다라고 결론 짓기 쉬우니까요

촉나라 하나였으도 형주 한중 양쪽에서 치고 나가는 건 불가능했으니까요 한중은 제갈량이 캐리하고, 형주는 관우가 캐리해야 될까 말까인데
그정도 전공을 기대할만한 급은 중국 전체 역사에서도 올타임 급은 되야 되죠. 못해도, 백기, 한신 급은 되어야 하니까요
ageofempires
18/09/28 12:04
수정 아이콘
글쎄요. 통일은 못했어도 바로 뒷시대인 환온이 형주에서 치고 올라가서 낙양을 수복했었고 위연의 자오곡 계책을 따라서 써보다 패배해서 장안은 못먹었는데요. 동진 정부가 환온의 권력이 커질 걸 경계해서 북벌을 은근히 방해해서 요 정도에 그쳤지 북벌을 지원했으면 훨씬 더 큰 성과를 거뒀을 겁니다.

환온 말고도 환온 바로 뒷세대인 유유는 북벌해서 산둥반도, 낙양, 장안까지 모두 수복하며 정권 찬탈의 명분은 얻으며 유송을 건국했구요.

이후 양나라 때의 장수 진경지도 북벌을 통해 엄청난 전과를 거두며 낙양까지 먹었습니다. 뒷세대 남조 국가들의 북벌을 보면 그저 제갈량과 관우의 군재가 이들보다 떨어지는 것이지 꼭 올타임 쌍벽인 백기랑 한신이 아니면 안된다고 하기는 무리네요.
홍승식
18/09/28 15:18
수정 아이콘
현실적으로 위 6 , 오 2 , 촉 1 인 전력비에서 오가 촉을 믿고 위를 치는 건 어려웠겠죠.
주유는 천하 이분을 꾀했고, 노숙은 촉오 겸병을 말했지만, 육손은 그냥 현상유지만을 바라기도 했구요.
개발괴발
18/09/28 11:33
수정 아이콘
솔직히 익주에서 유비가 5년간 뭐했나 싶습니다 =_=
아무리 관우가 믿음직하기로서니 동오와의 외교를 모조리 관우에게 떠넘기다시피 했으니 원...
제갈공명도, 동오가 그렇게 못 미더웠으면 뭔가 대책을 세우긴 했었어야 되는거 아닌가 싶어요.
일이 이리되니 손부인을 인질로 꽉 잡고 있는게 좋았을텐데 싶고 =_=...

이게 다 유비가 익주공략 상중하 중에 중을 골라서 그런겁니다!
걍 성도로 바로 치고 들어가지!
방통 지못미
지니팅커벨여행
18/09/29 15:40
수정 아이콘
하.. 진짜 어차피 익주 먹을 야심이 꽉 차 있어놓고선 상책을 두고 중책을 취해 희대의 책사 한명 죽이고 병력 말아먹고 형주에서 관우 뻬고 전부 동원하고...
방통 죽으면서 천하통일 가능성은 거의 물건너갔다고 봐야죠.
Lighthouse
18/09/28 11:43
수정 아이콘
어느 만화였는지는 기억안나는데 여포의 죽음이라는 장면에서 여포가 살기위해서 구걸하면서 병사를 어머니라고 불렀던 만화 (기억이안나네요 크크)에서 조조가 그런말을 하죠.죽은뒤의 영광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살아있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지. 여포 자네야말로 영웅일세. 맞는말이긴하지만 동시에 유관장 삼형제는 영원하게되었죠. 삼국시대는 사실 역사의 수많은 무대중 하나일뿐인데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에게 회자가 되고 게임으로 음악으로 책으로 만화로 기억이 되는걸 보면, [유관장은 불멸이다]가 정답같습니다.
18/09/28 11:49
수정 아이콘
역설적이지만, 당시 손제리라는 악당이 존재하였기에 비로소 관우는 불멸로 남을 수 있었다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나는 촉빠고, 손제리 따위가 무슨 생각을 했든 알 바 아니고, 촉빠로서 손제리는 무조건 나쁜 놈이니, 걍 승상 덕질이나 하면서 손제리나 까야겠다고요. 굳이 손권의 행동의 당위성을 논하고 싶지 않아요. 그건 중립적인 시각이 필요한 역사가들에게나 맡겨 두죠 뭐,
La La Land
18/09/28 14:13
수정 아이콘
화봉요원 이죠
어제의눈물
18/09/28 11:46
수정 아이콘
(수정됨) 시대의 영웅들이 우연히 도원에서 만나 함께 꿈꾸었던 꿈이 산산히 깨지는 순간.
삼국지는 동양의 그리스로마 신화 같아요. 인간 같지 않은 재능러들이 명확한 한계에 좌절하는 그런 신화.
내일은
18/09/28 11:49
수정 아이콘
저 당시를 지금 우리 기준으로 전략적으로 사고하면 안되는게
아직 조조 생전이고 漢의 마지막 황제가 있던 시절이라, 각 세력이 실질적으로 독립해있지만 명목상으로는 모두 한 황실의 신하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손권도 합비에 꼴아박기 전이고 유비의 한중정벌도 명목상은 장로 토벌이라... 생각보다 명분이라는게 중요한 시기였죠.
쥐새끼 입장에서 형주는 어쨌든 유비와의 협상에서 자기가 받기로 했다는 명분에 유비가 한중에 가있어서 신경쓰기 어렵다는 점. 관우가 본진을 비웠다는 점에서 최고의 명분과 최적의 타이밍으로 치고 들어온 거는 맞습니다. 문제는 그리고 죽을 때까지 합비로 들어가는 명분과 타이밍이 안나왔다는거죠.
코우사카 호노카
18/09/28 12:14
수정 아이콘
쥐새끼를 잡읍시다 쥐새끼는 촉한의 원수
군신포위전이나 하러갑니다 ㅡㅡ
호우기
18/09/28 12:46
수정 아이콘
저 당시 관우가 탈출을 끝내 못 한 것이 가장 아쉽더군요
그랬다면 유비도 화가 나지만 제갈량을 비롯한 신하들의 말을 들어서 위부터 친다는 계획은 유지했을 것 같고, 이 당시 죽은 사람들이 많지만 그래도 이릉 때 없어질 자원들이 관우, 장비까지 합쳐져서 위와 일전을 벌였으면 했어요
손권은 후환을 없앤다고 관우를 죽였는데, 유비가 위를 없애도 다음 차례는 오라는 사실은 뻔해서 당연히 할 만한 행동이긴 했었죠
다만 관우 죽이면 유비가 반드시 찾아올 거라는 생각이 못 하고, 관우 목을 조조한테 보내는건 점수 깍이는 일 같긴 해요
손금불산입
18/09/28 14:01
수정 아이콘
사실 관우 성격을 생각해보면 형주 뺏기고 촉으로 돌아오는데 성공했다면 위나라를 치기 보다는 오히려 오 정벌전에서 선봉으로 서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호우기
18/09/28 14:06
수정 아이콘
그래도 형 말은 들으니까 나중에 다 해줄께 하고 꼬드기면 쉽게(?) 넘어갈 수 있을 겁니다
18/09/29 04:26
수정 아이콘
유비가 설득하는데 말안듣고 지멋대로 행동할 인물은 아니긴하죠
18/09/28 13:02
수정 아이콘
이게 다 방통의 죽음이 불러온 스노우볼입니다?
Lord Be Goja
18/09/28 14:08
수정 아이콘
도의를 저버리고 익주에 처들어간 큰형님 잘못이군요.
최초의인간
18/09/28 14:10
수정 아이콘
관우의 진정한 활약상은 지금부터죠. 유비의 조조 토벌 때 양양 전투에서 조인을 일기토로 제압하고..
18/09/28 14:51
수정 아이콘
완에서는 하후돈을!!
18/09/28 15:12
수정 아이콘
마지막에는 부활한 조조의 목을!
파이리
18/09/28 15:17
수정 아이콘
무 신 관 우
최초의인간
18/09/28 16:32
수정 아이콘
장료까지 등용하는 만 능 관 우
18/09/28 14:28
수정 아이콘
이때부터 삼국지가 읽기 싫어지고...ㅠㅠㅠ
Thursday
18/09/28 14:41
수정 아이콘
긁적. 어릴 때 윗 분 말마따나 관우가 죽었다는 거 자체가 좀 충격적이었죠.
만화에서도 그렇고. 역사가 아니라 이야기 속의 주인공 중 하나로 받아들였기에, 그 충격의 정도가 더 컸던 것 같기도 합니다.
서즈데이 넥스트
18/09/28 15:02
수정 아이콘
손권도 나름 당위가 이해는 가는데 미방은 도대체....
foreign worker
18/09/28 18:13
수정 아이콘
아무나 신이 되는게 아니죠.
출중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고생하면서도 항상 변치 않는 의리의 사나이가 정말로 뭔가 제대로 보여주고 더 보여줄 찰나에 통수로 안타깝게 사망했으니......후세 사람들의 아쉬움의 대상이 될 완벽한 롤 모델이 된 것이 당연하다고 해야겠죠. 괜히 남자의 로망이 아닙니다.
삼국지 처음 읽었을때 한중 정벌에 불타오르고, 관우의 시원한 위군 털기(화살 독 긁기로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화끈하게 복수까지)를 보고나니 이제 허도만 털면 된다...라고 생각했는데.ㅜㅜ
아무튼 쥐는 까야됩니다.
18/09/28 18:45
수정 아이콘
적토마 주면 맥성에서 탈출 가능한데 아쉽네요...
지니팅커벨여행
18/09/29 15:49
수정 아이콘
보병으로 전직했어도 이렇게까진 되지 않았겠죠.
관평 경험치도 미리 먹여서 레벨도 좀 올려 놨으면...
ㅠㅠ
오안오취온사성제
18/09/28 19:04
수정 아이콘
저는 촉을 싫어하는 편이지만 한중전 ~ 번성공방전까지의 촉은 리즈시절이었죠.
18/09/30 10:23
수정 아이콘
저기서 관우가 양양과 번성을 먹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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