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터의 세상읽기]2008_0807
이 세상엔 수많은 일들이 발생합니다. 또한 수많은 정보도 생겨나고 소멸되죠. 우리 앞에는 너무나 많은 일과 정보들이 있어, 그것을 모두 수용하기가 힘듭니다. 그래도 가끔 한번 정도는 생각하고 싶은 일들, 같이 이야기 해보고 싶습니다. 아주 편하게... 이 세상읽기는 정답이 없습니다. 또한 누구의 말도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습니다. 다만 바쁘시더라도 한번 쯤은 생각해 볼 만하다는 것. 이것으로 족합니다.
1. 공영방송 독립 vs 방만한 경영
감사원이 KBS 감사결과 발표에서 KBS의 방만 경영을 이유로 정연주 사장에게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경영을 합리화하라고 요구했고, KBS 이사회에 정연주 사장 해임요구를 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에 대해 정연주 사장은 “해임 요구 처분 무효 소송과 그 효력을 정지하는 집행정지 신청을 오늘 법원에 내겠다” 고 밝혔습니다. 정 사장은,
“KBS 사장의 거취 문제는 공영방송의 독립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며 감사원 감사는 정치적 표적 감사이며 감사 결과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고 감사원의 지적 사항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했습니다. 정 사장은 대통령에게 KBS 사장의 해임권이 없으므로 법적 대응을 시사했습니다. 한편, KBS 이사회는 8일 감사원이 요구한 정 사장 해임을 대통령에게 제청하고 대통령이 해임 결정을 내리게 되면 정 사장은 일단 사장직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KBS 노조는 일단은 감사원의 표적 감사에 대해 ‘공영방송 독립권 보장’이라는 명분과 정 사장의 방만한 경영의 책임을 동시에 묻는 입장을 밝혔고, 노조 지부장 및 PD협회장은 ‘이사회 개최 저지’ 투쟁을 벌이겠다고 성명을 내 걸었습니다.
또한 민주당과 방송장악 저지 범국민행동도 이날 KBS 본관 앞에서 촛불집회를 벌이는 등 정부의 독단적인 행보에 브레이크를 걸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KBS 정 사장과 관련한 일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교차합니다.
공영방송의 독립권 보장을 위해 법도 개정(사장 임면과 임명에 대한 수정)한 마당에 정권교체로 임기를 보장한 사장의 교체가 과연 경영 악화와 저울질 했을 때 그 무게가 어느 쪽에 실려야 하는지는 잘 판단 돼야 할 것입니다.(경영 악화에 대한 내용은 정 사장 측과 감사원의 내용이 상당 부분 틀립니다)
사실 정 사장 이외에 대부분의 여타 기관장들은 감사원의 감사 중에 물러났었습니다. 유독 정 사장은 버티기 모드를 하고 있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우리는 심도 있는 고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민주당 몇 명의 의원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방문하여 ‘방송의 독립성과 정치적중립에 대한 훼손’에 대한 항의 방문 때 최 위원장이 한 말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정권이 바뀌었으면 당연히 사람도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닌가?
2. 양대 노총(한국노총, 민주노총) 역대 위원장 뭐하고 있나?
국내 양대 노총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역대 위원장은 퇴임 후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사한 내용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한 대로 대부분 ‘정치 세계’에 몸을 담았는데요, 역대 위원장의 퇴임 이후 행보를 간략히 살펴보면,
▶ 한국노총
초대 이규철 확인 불가
2대 이춘희 확인 불가
3대 이찬혁 11, 12대 국회의원, 한국전력 산업인력관리공단 이사장
4대 최용수 8. 9대 국회의원
5-6대 배상호 노동운동
7대 정동호 14대 국회의원 출마, 민주당 오산화성지구당 위원장
8대 김영태 노동운동
9대 정한주 2대 노동부 장관
10대 김규벽 노동운동
11-12대 김동인 13대 국회의원
13-15대 박종근 16대 국회의원 출마
16-17대 박인상 16대 국회의원, 한국국제노동재단 이사장
19-19대 이남순 민주사회당 대표, 노사정위원회 근로자 대표위원
20대 이용득 18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신청, 탈락
▶ 민주노총
초대 권영길 17, 18대 국회의원, 민주노동당 대표
2대 이갑용 울산시 동구청장, 민주노동당 공동대표
3-4대 단병호 17대 국회의원
5대 이수호 민주노동당 최고의원
6대 조준호 18대 국회의원 출마
보통 노동계 대표들은 정치권의 러브콜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노동계를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고 생각하기에 그런 것 같은데요, 역대 위원장들의 퇴임 후 행보를 보면 정계 진출과 노동 운동을 하는 사람이 가장 많았습니다.
그들이 정계에 진출하면서 노동계를 대변하는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 아직 판단을 하긴 어렵습니다.(그 시간이 아직 짧다고 생각하기에….) 그러나 그들이 노동운동 시절 순수했던 그 마음 그대로 정계에 진출하여 행동을 하는지는 솔직히 알기가 힘듭니다.(혹자는 아직 그 세력이 미약해 어떠한 영향을 끼치기에는 힘들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정계에 진출하면서 ‘변절 아닌 변절’을 하는 사람을 자주 봐왔습니다. 그 세계에 발을 들여 놓으면 어쩔 수 없다는 사람도 있고, ‘이상향을 쫓다 현실과 타협’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자기 정당화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역사가 그들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노동계 뿐만 아니라 각계를 대표하는 조직 또는 사람에게도 이러한 걱정의 눈은 늘 갖게 되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들에겐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겠죠?
3. 단신
① 숭례문 복구를 위한 발굴조사 시작 전 숭례문 주변을 둘러싼 석출 울타리 해체 과정 중 지하 벙커(높이 2.3m, 폭 2.1m, 길이 3.3m) 발견…벙커 내부에는 총구가 나 있고, 군용 손전등 1개와 벙커 점검 표지판 3개 발견, 문화재청은 6.25전쟁 이후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철거할 예정이라고 밝혀
② 국제유가, 원자재, 곡물 가격 일제히 하락세…미국의 금리동결 등에 힘입어 국내 주가 급등
③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국회 원구성 합의…앞서 자유선진당, 창조한국당은 공동원내교섭단체 구성에 합의
④ 대통령 부인 사촌언니 김옥희 씨 공천 로비 의혹 수사…3억여 원은 오피스텔 구입, 아직 남은 돈의 사용처를 밝히지 못하고 있음
⑤ LG텔레콤 휴대전화 80분 간 불통 사태…6일 오후 4시 50분경 서울 금천구 가산동 교환국에 있는 신호교환기에서 장애, 서울 일부와 대전, 인천, 광주 지역에 통화가 지연되거나 성공률 떨어져
⑥ 검찰, 서울신문 노진환 사장과 박종선 부사장을 스포츠 서울21 주식매각 의혹 관련해 지난달 소환 조사…주식 이전 경위 확인을 위한 참고인으로 조사한 것이라고 검찰 관계자 밝혀
⑦ 서울대 개교시점 변경 작업 시작…현재 1946년 미 군정의 국립종합대학안(국대안) 발표보다 50년 앞선 1885년 고종이 세운 근대 교육기관인 ‘법관양성소’(1895년)나 ‘광혜원’(1885년)을 서울대의 효시로 정하는 작업, 개교 62주년에서 개교 123주년으로 바뀔 가능성
⑧ 서울시의원 102명 중 23명은 2년간 조례 안 한 건도 안내…그 중 어떤 의원은 “고참이 되어 조례 안을 내기 좀 그렇고, 그럴 기회는 초선 시의원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라고 말해 욕먹고 있음
4. Wise Dragon의 역사 빽테클
매주 목요일에는 우리나라 역사와 관련된 글을 쓰시는 Wise Dragon님의 글을 주 1회 연재합니다. 연재를 허락해주신 Wise Dragon님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일본인은 고대 한국인이다
서기 7세기 전체 주민중 9할이 「한국계」
1984년에 나온 통계는 이보다 더 구체적이다(小山修三). 한국인의 대거 이주는 서기전 3세기에서 7세기에 걸치는 1천년 동안에 일어났으며 그 결과 죠몬시대 말기에 7만5천으로 줄어들었던 인구가 야요이시대에는 60만으로 불어나고 고분시대에는 5백40만명에 이르 렀다고 한다.
뒤를 이어, 하니하라 가즈로오는 당시 원주민과 이주민의 비율이 1:8.6이라는 수치까지 제시했다.
그는 이에 대해 『계산한 나 자신도 놀랐을 정도의 엄청난 숫자고 이 글을 읽는 독자는 더 더욱 놀랄 것』이라는 소감을 적었다. 이것은 그의 말대로 엄청난 숫자고 일본 학계나 국민에게는 「폭탄선언」과 다름없는 충격을 안겨주었다. 말하자면 7세기에는 일본 전인구 10명 가운데 한국인이 약 9명이고 일본인은 1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내용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우리와 견주어서, 남한 인구 가운데 부산사람(3백76만)만큼만 한국인이고 나머지는 모두 중국에서 들어왔다고 한다면 우린들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의 발표는 유전자의 비율을 계산한 결과와도 일치하여 틀림없는 진실임이 입증됐 다. 현대 일본인에는 동남아시아계(고몽고로이드)의 유전자 2에 북아시아계(신몽고 로이드•한국계)가 8이라는 내용이 그것이다(尾本秀市). 또 85년에는 『일본 중부 와 한국 남부지역 사람들의 체질은 매우 비슷해서 그 차이는 한국 남부와 북부지방 주민 사이에 나타나는 정도』라는 보고도 나왔다(松本秀雄•大阪 醫大). 이것을 뒤집어 말하면 한국인과 일본 중부지방 사람들은 같은 민족이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일본에 건너간 한국인들은 중부지역에서 자리를 잡고 점차 그 세력을 확대해 8세기에는 북부지방까지 이르렀으나, 북해도나 오키나와 일대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따라서 남북으로 떨어진 이 두 지역의 주민에게서는 지금도 고몽고로이드의 특징이 나타난 다. 현대의 일본인은 한국계인 신몽고로이드와 남아시아계인 고몽고로이드의 이중 구조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백제 멸망
10년 뒤에야 日本국호 등장
한국인의 일본이주 사실은 지명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우리는 추운 북쪽에서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온 까닭에 남쪽은 「앞」이고 뒤는 「북」이었다. 따라서 마을 남쪽의 산을 앞산이라 불렀으며 경주시와 대구시의 앞산이 「남산」인 것도 이 때문이다. 뒷간 이라는 이름도 이 공간을 집 뒤에 둔 데에서 왔다.
그러나 호칭체계가 일본에서는 반대로 나타난다. 북(한국쪽)이 「앞」이고 남은 「뒤」인 것이다. 에도시대(江戶時代•17∼19세기)의 지도를 보면 규슈의 경우 우리와 가까운 지금의 후쿠오카는 스쿠젠(筑前)임에도 이보다 남쪽에 위치한 사가현(佐賀縣) 일대는 치쿠고(筑後)로 적혀 있다. 히젠(肥前)과 히고(肥後), 훙젠(豊前)과 훙고(豊後)도 마찬가지다. 본도(本島)의 경우도 다르지 않아서 동해쪽의 에스젠(越煎)•에츄(越中) •에스고(越後)와 하젠(羽前)•하고(羽後)도 우리와 가까운 쪽은 앞(前) 먼 쪽은 「뒤(後)」다. 이러한 지명은 고국을 그리던 정이 사무친 나머지 언제나 한국 쪽을 바라고 지냈기에 나온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밖에 대마도를 비롯하여 우리와 비교적 가까운 지역에 위치한 신사(神社)의 도리이 (鳥居)가 바다에서 육지 쪽으로 세워진 점도 기억해둘 만하다. 도리이는 신사의 출입 문과도 같은 것으로 성역임을 알리는 표지다.
따라서 도리이가 바다에서 육지의 신사 쪽으로 세워진 것은 이곳의 신(海神)이 바다를 건너 왔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증거다. 실제로 대마도 니이(仁位)의 와다스미(和多都美) 신사에서 도리이의 방향을 측정해 보았더니 놀랍게도 서북쪽인 신라 고도 경주를 향하 고 있었다.
한국인의 일본 이주는 기온이 점차 낮아짐에 따라 자연히 「따뜻한 남쪽나라」에 대한 동경이 커진 점과 서기전 3세기 무렵 한(漢)족이 고조선을 침략하고 서기전 207년에 진 (秦) 또한 한에 망하므로써 많은 피난민과 망명객들이 우리에게로 들어오는 등의 정치 적 격변이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일본의 가나문자가 신라의 이두에서 비롯됐다(金澤壓三郞)거나 일본 귀족학교에서 백제 선생이 백제 말로 강의를 했다(司馬遼太郞)는 내용 따위는 우리가 다 잘 아는 터이므로 덧붙이지 않기로 한다. 그러나 백제가 나•당 연합군의 침공을 받자 재명(齊明)여왕이 2만7천여명의 원군을 보냈다는 사실(『일본서기』)만은 그냥 넘길 수 없다.
학자들이 추정하는 당시의 인구 5백6십만명에 비교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인 것이 다. 그 반(2백80만명)을 남자로 잡고 노인과 어린이를 다시 반으로 치면 전인구의 2 0분의 1이나 되는 병력이 백제를 돕기 위해 나선 셈이다. 이들의 패망소식이 전해지 자 당시의 귀족들은 「백제의 이름이 오늘에 끊겼으니 조상의 무덤에 두 번 다시 못 가게 됐다」고 통탄했다는 기록이 『일본서기』 663년 9월7일조에 전한다.
7세기 후반까지의 일본은 백제의 분국이나 다름없었다. 「일본」이라는 나라 이름이 백 제가 망하고 10년 뒤(670)에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이 무렵에 나온 역사서를 『일 본서기』라 하여 나라 이름을 앞세운 것도 그 내용이 백제사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적어도 7세기 후반 이전까지의 일본은 한국에 있는 나라들의 해외 영토였던 것이다. 백제멸망 후 1천3백여년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와 일본은 완전히 남남 이 되었다고, 역사는 말하고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그 기질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내려 온다. 앞에 든 예화처럼 규슈나 대마도 사람들에게 우리를 닮은 기질이나 행동양식이 남아 있지 않은가. 기질도 유전자만큼이나 바뀌지 않는 셈이다.
5. 오결디(오늘의 결정적 한마디)
피지알 식구 분 중 한 분이 익명으로 제안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포인트 5점 드립니다.
”XXX급 XXX입니다”
오늘 알바에서 있던 일이다. 내가 알바하는 곳은 관공소이다.
전화가 왔다. 난 대답했다.
“오늘 상황근무자가 누구신가요?”
“XX X급 XXX입니다”
갑자기 조용해 진다. XXX주사님은 나에게 뭐라고 한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막나가는 구나”
“이 자식 너 뭐야” 라고 한다.
난 왜 그런지 모르겠다.
내가 뭔 잘못 했나?
6. 오늘의 솨진
”시원스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