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PGR21에서만 서식하면서 보건의료에 관련된 글을 이것 저것 쓰는 놈입니다.
오늘은 평소하던 의료체계와 제도에 대한 이야기에서 벗어나 다른 이야기를 드리고자 합니다.
1. 들어가면서 우리나라는 아직도 말라리아가 발생하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연간 천명 단위의 말라리아 환자가 발생하고 있고, 최전방 군부대에서는 말라리아 예방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말라리아는 1980년대 완전히 퇴치된 것으로 알려졌다가, 1990년대 후반 북한의 경제위기와 함께 재출현하여 연간 만명단위의 환자가 발생하였다가 현재는 다시 재퇴치 단계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저는 군복무 중 장병의 말라리아를 관리하는 일을 맡아 3년 동안 일을 했었고, 아직도 가끔씩 말라리아에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군 복무 기간 중 말라리아와 관련된 많은 사람을 만났고, 소중한 인연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직접 만나뵙지 못한 분 중에도 그 존재감을 뚜렸하게 느낄 수 있는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이 박재원 교수님이었습니다.
2. 말라리아에 대한 헌신 박재원 교수님은 80년대 학번으로 서울대학교 의대를 나오셔서 미생물학을 전공하셨습니다. 모든 남자가 그렇듯 박재원 교수님도 군복무를 하게 되었고, 전공에 따라 국군의학연구소에 배치를 받으셨습니다. 그때는 1998년이었고, 막 우리나라에 말라리아가 재출현해서 급격히 유행하던 시점이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 시절만 해도 군의관 복무는 의사들의 휴식기간과도 같던 시절이라 열심히 일하는 군의관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던 시기입니다. 특히 연구소에 배치 받은 군의관은 상대적으로 더 자유로운 환경이 주어지기 때문에 의욕을 가지기가 더 어렵지요.
사모님께서는 그 시절의 교수님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남편은 골프도 안 좋아하고, 군의관 때도 늘 뭔가 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수영도 하고, 영어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자운대에서는 괴짜로 통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말라리아 방역업무를 맡게 되자 '놀면 뭐해, 한번 해보자'고 하더군요.'
'어느 날인가 외박 나왔다가 저와 데이트를 마치고 돌아가는 지하철역에서 서울대 의대 오명돈 선생님을 우연히 만났는데, 저를 1시간이나 세워두고 오 선생님과 말라리아 연구의 앞날을 의논하기도 했습니다.'
박재원 교수님은 그 시절에 말라리아 퇴치에 헌신하시기로 결심하신 것 같습니다.
말라리아는 그때도 지금도 정말 돈이 안되는 연구 주제입니다. 처음에 말라리아 연구를 하겠다고 나셨을 때에는 친구들이 왜 그런 것을 하냐며 많이 말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박재원 교수님이 주변사람에게 주는 신뢰감이 대단하였는지, 사모님은 이렇게 기억하십니다.
'네 성격을 보면 말라리아에서도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을거야'라고 격려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저도 좋았습니다. 한번 한다고 하면 제대로 뭔가 해내는 사람이니까.
3. 박재원 교수님의 업적
박재원 교수님은 우리나라 말라리아 연구에 기반을 닦으셨습니다. 기초 역학자료부터, 예방화학요법을 위한 지침까지 200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 말라리아 방역을 위한 정책의 상당 부분은 박재원 교수님의 업적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군에서 연구를 수행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박재원 교수님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해 연구에 매진하셨습니다. 지금도 군연구소의 연구장비와 시설은 상당히 부족한 편인데, 1990년대 후반에는 그정도가 훨씬 심했겠지요. 서울대에서 남는 연구장비와 시설을 가지고, 직접 전방부대에 운전해가시면서 환자들의 정보를 모으고, 자료를 정리하셨습니다.
그러한 열정으로 말라리아의 연구와 방역에서 박재원 교수님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연구자가 되셨습니다. WHO에서도 말라리아 방역을 위한 일자리를 제안하기도 하였고, 한국국제협력단(KOICA)와 아프리카 오지에서 말라리아를 퇴치하기 위한 지원사업에도 많은 자취를 남기셨습니다.
4. 북한 말라리아 퇴치 사업
우리나라 말라리아는 북한과 때놓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생기는 말라리아는 대부분 북한에서 넘어온 모기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나라의 말라리아를 퇴치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말라리아도 퇴치해야하는 것입니다.
박재원 교수님은 북한의 말라리아를 퇴치하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하셨습니다. 2011년까지 박재원 교수님은 남북을 오가며, 북한의 말라리아를 퇴치하기위한 장비, 약품의 지원과 어린이 말라리아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장비를 지원해주는 사업을 이끌어 나가셨습니다.
북한의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서는 약품, 장비의 지원보다, 생활환경 개선, 교육, 조기 진단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셨고, 북한 주민의 생활환경과 조기 진단을 위한 체계가 갖추어질 수 있게 힘쓰셨습니다.
말라리아 공동방역사업을 추진하셨던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에서도 박재원 교수님의 업적을 잘 정리해두고 있습니다.
5. 불의의 사고
사실 저는 한번도 박재원 교수님을 뵙지 못했습니다. 제가 말라리아 연구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신 후였기 때문입니다. 교수님께서는 2011년 WHO 말라리아 국제 자문관회의를 마치시고, 라오스의 한 폭포에서 수영하시다 소용돌이에 휩쓸려 사고를 당하셨습니다.
아직도 할 일이 많고, 두 아이를 남겨둔 채였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정말 안타까워했다고 합니다.
6. 앞으로 우리가 할 일
남북관계가 개선됨에 따라 우리는 박재원 교수님이 그토록 원하셨던 우리나라의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한번도 뵙지 못했던 분이지만, 박재원 교수님의 열정을 아직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유능하고 선한 사람이셨을지도 알 것 같습니다. 만약 말라리아가 없어지는 날이 온다면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노력하셨던 교수님의 삶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의 두 자녀분에게도 교수님께서 얼마나 좋은 일을 하셨는지 알려드렸으면 좋겠습니다.
* 교수님에 관련된 일화는 동아일보 2011년 7월 25일 [김창혁 전문기자의 세상이야기]‘말라리아 퇴치’ 헌신 故 박재원 교수 부인 이민지 씨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