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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8/08/02 02:54:49
Name Magic_'love'
Subject [일반] [잡담] 왜 육손은 위나라를 치지 않았는가?
심심했던 차에 시간의 여유가 좀 있어서 한번 적어봅니다.

순수하게 연의만 따지는 것이니..(정사를 몰라서...;;)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문득...

육손은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왜 육손은 위나라를 치지 않았는가?' 라고 할 수 있겠죠.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로 인해 대륙은 위, 촉, 오의 세 나라로 갈렸고, 삼국은 적당히 힘의 균형을 이루며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천하의 영웅이었던 조조와 유비는 어느덧 수명을 다하여 죽고 말았고, 이제 세 나라는 조비, 유선, 손권을 군주로 하여 국력 증강에 힘

을 기울입니다. 그로 인해 잠깐의 평화의 시대가 찾아오죠.

하지만 난세에 언제까지나 평안할 수는 없는 법!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하여튼 어느 구석에서라도 전쟁은 필히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이 삼각관계에서

가장 불리한 나라는 촉이었습니다.

관우가 손권에게 낚여 죽임을 당했고, 오나라에 형주를 빼았겼습니다.

유비는 복수한답시고 70만 대군을 이끌고 출동했다가 육손한테 당해 몽땅 꼬라박고 몸만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이 두 사건으로 인해 촉은 금싸라기같은 영토를 빼앗기고 어마어마한 병력의 손실을 입게 되었죠.

결국 촉나라는 엄청난 국력을 소진하여 리그 최하위 팀으로 곤두박질 치게 됩니다.

땅덩어리도 제일 작은데 대부분이 별로 쓸만한 땅도 아니고, 인구도 적으니 국력이 약하고 병력이 적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설령 병력을 잘 모았다 하더라도 한번 잃으면 다른 나라보다 회복하기가 훨씬 힘들었죠.

미네랄 10덩이 테란과 7덩이 프로토스 사이에서 5덩이 자원만을 가진 저그꼴이 되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촉에게 있어서 한번의 전쟁은 그야말로 나라를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일이었고  부담감도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오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촉보다는 조금 나았지만...오나라도 불안불안한 상황이었죠.

이처럼 두 나라의 운명은 많이 암울했고, 단독으로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 양국 수호동맹 뿐이었죠...



촉나라는 유비의 실패와 죽음으로 인해 굉장히 큰 국력의 피해를 입었고 천재 제갈량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회복하는데는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찌 어찌 수완을 발휘해 나라를 정상으로 돌려놓고 국력도 회복한 제갈량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불리한건 촉이라는 것을

충분히 잘 알고 있었습니다. 위에 나와있는 촉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제갈량이었죠.

그래서 그는 결심합니다.

자신과 여러 노련한 장수가 살아있고, 국력이 조금이라도 강한 이 때..... 위나라를 쳐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눈물없이는 못본다는 출사표를 작성하여 출정을 만류하는 황제에게 바치고 자신의 의지를 확고히 합니다.



드디어 출격...

하지만 제갈량의 판단미스(가정 전투 대장으로 마속을 삼은것)와 마속의 삽질로 촉나라는 굉장히 큰 위기를 맞게 되었고,

그는 다시 한번 지혜와 기지를 발휘하여 결국 무사하게 촉을 퇴각시킵니다. 하지만 촉으로서는 천우의 기회를 놓친 셈이었죠.

그 뒤로 제갈량은 몇번 더 출격했지만 번번히 일이 꼬여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됩니다.

고심하던 제갈량...그는 결국 오나라와의 협공을 구체적으로 계획하게 되는데...



예전에...

유비가 죽자마자 조비는 촉을 치려 하였고 가후가 이를 만류했지만 사마의가 오로를 통해 촉을 공략할 수 있다고 자신 만만 떠들어대며

위는 다섯 방향으로 촉을 압박해 들어갔었습니다. 제갈량은 상황에 맞는 적절한 대응으로 네 방향의 공격은 무난하게 막아내지만

마지막 한 방향, 동오의 공격을 딱히 막을 수 없는 상황이었죠.

때문에 해결책은 하나, 양국이 동맹을 맺는 것이었는데 이를 해결할 인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양국 동맹을 성사시킬 적임자 등지를 발견한 제갈량은 그를 동오로 보내 촉.오 동맹을 이루어냅니다.

이 때 손권 역시 동오와 서촉의 입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양국의 동맹은 어려움이 없었죠...




하여튼 이미 동오와 동맹을 맺어 놨던 제갈량은 본격적으로 동오를 전쟁에 참여시켜 위를 샌드위치 시키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와중에 손권이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 서촉에 통보합니다.

제갈량은 이 사실을 몹시 못마땅해 했지만 어쨌든 손권의 제위를 인정해 주며 이 기회에 양국이 동시에 위를 치면 위는 멸망할 것이라

며 손권을 꼬득입니다.


바로 여기서 저에게 든 의문점이 '육손은 뭐하는 놈이야??' 였습니다.




촉과 오가 협공하여 위를 물리칠 수 있는 결정적인 찬스를 실질적으로 육손이 날려먹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가 눈에 드러나게 잘못한 것은 없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을 쫓으려고 했던 것 뿐이지요.




제갈량이 손권을 꼬득이자 그는 육손과 상의하는데 ,그 때 육손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촉국과 수호동맹을 맺고 있으니 우리는 도와 주는 척이라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싸움은 저희더러 하게 하고

우리는 기회만 보고 있다가 위국이 손을 들게 되었을 때 공명보다 먼저 낙양으로 쳐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육손의 이 생각이 결국 동오를 멸망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손권의 참모를 순서대로 나열해보면 주유->노숙->여몽->육손 순입니다.

이 중에서 누가 가장 뛰어난 인물인가...?? 하고 생각했을때 저는 육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주유는 노숙보다 뛰어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여몽은 관우를 물리치고 오의 평생 숙원인 형주를 차지한 1등 공신이었습니다. 하지만 관우를 낚는 계책은 실질적으로 육손에게

나왔던 것입니다.

육손은 유비를 꼬라박게 유도하여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며 오나라를 지켜냈고 위에 나와있는대로 실질적으로 관우를 낚았습니다.

또한 위나라가 몇차례 도발할때도 별다른 동요 없이 잘 막아내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 부분은 의문의 여지가 있지만 하여튼 저는 육손은 주유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이라고 생각하므로 육손을 손권의 가장 뛰어난

참모라 가정해 보겠습니다.


손권에게 있어서 제갈공명이나 다름 없던 육손... 그는 큰 흐름을 읽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촉과 제갈량은 반드시 위를 거꾸려뜨려야 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갈량은 필사적으로 위를 치려고 합니다.

이기지 못하고 시간만 끄는 것은 결국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니 말이죠.

하지만 이것은 촉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나라 역시 반드시 위를 쳐야 하는 입장이었던 것이죠.

그들 역시 위가 살아있는한 절대 안정적일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위를 무너뜨려야 했습니다.

물론 촉보다는 그 간절함이 더 적었을거라 생각합니다.

하여튼 촉의 제갈량이 위를 때리려고 노력한 만큼 육손도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오나라가 단독으로 위를 치는 행위는 촉이 위를 치는 것 보다 더 승산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오나라가 촉나라보다 국력은 강했지만 제갈공명같이 전쟁과 계략에 능한 압도적인 인물이 없었기 때문입죠.

그래서 오나라 역시 촉나라와 동시에 위를 쳐야 했습니다. 같은팀에 제갈량이 있다면 얼마나 든든하겠습니까?

하지만 위에 나와있는 대목에서 육손은 별로 위나라를 치고 싶어하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의 의견은 일견 타당해 보입니다. 이호경식 이었나요..? 두 마리 호랑이를 서로 싸우게 만든다는 뜻이죠.

둘 중 하나가 지치면 그 놈을 공격하여 이득을 얻는 그런 계책입니다. 육손은 여기에서 그런 효과를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시 상황에서 그건 매우 잘못된 생각이었죠.

일단 촉이 위나라를 멸망시킬 확률은 매우 작습니다. 일단 규모면에서 비교가 안되고, 촉은 공격측, 위는 수비측입니다.

수비가 훨씬 쉽다는건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촉에게 제갈량이 있다고는 하지만 다른 인재는 부족합니다.

반면 위나라에는 사마의라는 호적수가 있었습니다. 비록 제갈량에 비해 좀 떨어진다 할지라도 그를 받쳐줄 수 있는

수많은 인재들이 함께 있었으므로 인재면에서도 위나라가 앞선다는 말이 됩니다.

결국 제갈량 혼자서는 위를 멸망시킬 수 없다는 결론에 나오죠.

오히려 위가 촉을 이길 확률이 더 높았습니다. 하지만 촉은 지형이 험하여 침입이 용의하지 않고, 제갈량이 버티고 있으니

이 또한 별로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그러므로 양국은 싸워봤자 현상유지밖에 하지 못할 것이라는 최종 결론이 나옵니다. 현상 유지만 하며 시간을 보낸다는 소리죠.

최종결론에 의해 '현상유지 & 시간 흘려보내기' 를 하면 촉, 오 두 나라는 멸망....이라는 테크트리를 타게 되는 것입니다.

설령 위가 촉을 멸망시켜 오나라가 촉나라를 조금 뜯어먹는다고 할지라도 세력 차이에 의해 어차피 오나라는 망하게 되므로

결국 육손이 말한 계책은 어떤 상황에서도 쓸모 없는 계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갈량이 제의한대로 오 역시 국운을 걸고 위와 전쟁을 벌여야먄 했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었습니다.

필사의 각오로 위를 깨부수고 천하를 양분한 상태에서 촉과 마지막 결전을 벌여야 했던 것이죠.

하지만 육손은 손놓고 있습니다.



왜 그는 가만히 있었나?  왜 그는 행동하지 않았나?  왜 그는 위를 치지 않았나?




일단 그는 장기간에 걸쳐 생각했을때 어떻게 하는것이 자신들에게 이득인지 알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니, 오나라가 어떤 방향으로 집중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 깨닫지 못했다고 보는게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이 사건 이전에 손권이 스스로 위를 침범한 적이 있었는데, 육손은 따라나서지 않았습니다.

손권은 만만하게 봤던 위나라에 뜻밖의 패배를 당하고 전세는 오나라에게 안좋게 흘러갑니다.

전전긍긍하던 그는 결국 퇴각을 고려하는데 이 때 육손이 나타나 멋지게 오나라를 퇴각 시킵니다.

이 장면에서도 육손은 별로 위나라를 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아니 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냥..공격해서 성공하면 좋은거고 안되면 집에 가면 된다....라는 마인드라고 할까요?




혹은 완벽한 기회를 모색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한번의 전쟁 실패는 오나라에게도 뼈아프게 다가오기 때문에 완벽하게 준비하여 반드시 이길 수 있는 한타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잘못된 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갈공명....

제갈공명은 그 자체로 촉나라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없는 촉나라는 상상할 수 없는, 그의 죽음 = 촉의 멸망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그는 그 자체로 촉나라였습니다.

때문에 오나라역시 위를 칠 수 있는 기간은 촉의 제갈공명이 살아있는 동안... 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나이 많고 밥도 별로 안먹고 일만 줄창 해대는 그가 언제 죽을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완벽한 기회를 찾는다며 시간을

보낸다는건 결코 좋은 생각이라 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육손은 스스로 위를 칠만한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제갈량도 저렇게 힘들어 하는데 자기라고 별 수 있겠는가.... 라고 생각했을수도 있을테구요..

방어 전쟁에만 익숙했지 실제 공격은 거의 해보지도 못했고 유비 쫓아가다가 제갈량한테 혼쭐이 난 후부터

어디를 침략하려는 생각도 잘 안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약간의 자신감 상실....같은게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육손의 비협조적인 태도로인해 제갈량은 혼자 위나라를 상대하게 되었고 너무나도 큰 전력차를 극복하지 못한 그는

마지막 전투를 무리하게 진행하다가 수명이 다하여 죽고 맙니다.

제갈량의 죽음은 서촉의 멸망이나 다름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미 촉에겐 희망이 없었고 언제 망할지 그것만이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제갈량은 다행히 적당한 적임자를 남겨놓고 떠났는데, 바로 강유였죠.

비록 강유는 제갈량에 훨씬 미치지 못하지만 나름대로의 판단과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 역시 위를 왜 쳐야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이후 몇차례 위를 침공했지만 제갈량에게도 무리였던 대업이 그에게는 더더욱 무리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게 됩니다.

어쨌든 촉은 강유가 있어서 근근히 버텨나갔지만 결국 한계를 드러내며 멸망합니다.


촉은 멸망했습니다. 세 나라중 한 나라의 멸망... 그것은 단순히 가장 작은 나라의 멸망만을 의미하는게 아니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작은 나라의 멸망도 의미하는 것이었죠.

촉과 오 양국이 동맹을 맺으므로 인해 위나라는 어느 한쪽을 처들어가지 못한채 방어만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양국의 동맹이 위나라를 이렇게 밖에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촉.오 동맹은 두 나라에게 매우 큰 이익이었고, 이 동맹이

깨지는 것은 곧 두 나라의 멸망을 말하는 것이었죠..

결국 두 나라는 한 운명체였던 것입니다.



위나라에 의한 촉의 멸망으로 세력은 급속도로 기울게 되고 결국 오나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멸망하게 됩니다.







육손은 반드시 해야만했던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던 일 (위나라를 공격하는 것)을 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결국



한계에 부딪힌 제갈량의 실패 & 죽음->제갈량의 죽음으로 인한 촉의 멸망->촉의 멸망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멸망하게 되는 오나라



라는 역사적 흐름을 만들어 냅니다.





육손은 왜 행동하지 않을 것일까...??

왜 육손은 위나라를 치지 않았는가???


참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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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8/02 03:21
수정 아이콘
(전 오나라의 참모중에 주유 > 여몽 > 노숙 > 육손 정도 순으로 도독의 재능을 평가합니다.)


삼국지는 그 자체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좋은 이야기 거리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90%이상의 연희와 약간의 정사 그리고 창천항로를 짬뽕시킨 생각으로 말씀드리자면



우선
워낙 오나라라는 지리적 위치가 장강으로 둘러쌓여 있어서 위나라의 침공을 쉽게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아실겁니다.
하지만 이건 역으로 생각하면 오나라 군이 위나라로 쳐들어 가는데에도 적용됩니다.

위나라의 기병들이 수중전에 약하듯이, 오나라의 수군들은 평지에 놔두면 그저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군요.
(장료, 아니 장합이 총대장으로 버텨도 오나라는 절때 위나라를 쳐들어 오질 못할겁니다. 장합이 그쪽에서 놀고만 있을 장수는 아니지만요.)

또한 육손이 그럴만한 그릇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즉 제갈량과 함께 위나라를 양동공격해서 위나라를 수세에 몰리게 할만한 재능도 없을 뿐만아니라 병사들도 안습이라는 것이죠.
그저 육손에게 있어서 최고의 방법은 그저 위나라처럼 버티고 앉아 있는 것 뿐이었을겁니다.

손권과 육손의 눈치봐서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조조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아무리 기회였겠지만 촉오동맹을 배신하고 관우를 뒤에서 공격한 짓이나 또 좋다고 관우를 참수시킨 손권이나
오나라는 좋게 볼래야 좋게 볼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위나라 입장에서 이미 하북을 평정한 그 시점에서 천하를 제패했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유비를 눈에 가시로 여겼던 조조의 남정에 눈물뿐..
Zodiacor
08/08/02 03:30
수정 아이콘
아마 정사에선 손책이 육씨 가문을 토벌한 적이 있었고 그것으로 육씨 가문과 손씨 가문이 원수가 되었는데, 이후에 육손이 손책의 딸을 아내로 들이고 손권에게 출사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태생이 그런지라 오의 중신들은 육손에 많이 반대했고. 나중엔 손권이 황제가 된 이후에 후계자 문제가 생기자 육손은 거기서 줄을 잘못 서서 권력에서 밀려나 죽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갑자기 많은 권력을 잡은 원수 집안의 신하와, 안정적이길 원했던 대다수의 손씨 가문의 신하들 사이의 다툼떄문에 정벌을 나갈 수 없던게 아닐까요.
연의가 역사의 큰 틀만은 제대로 잡아서 썼다고 한다면, 과정은 몰라도 결과론적으론 아마 이게 설명이 될 것 같습니다.
Mr.Children
08/08/02 03:33
수정 아이콘
아마 장소의 영향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장소의 경우 무엇보다 오나라 백성들의 편암을 추구했다고 하죠. (그의 주군인 손권의 출세보다도요)
천생연
08/08/02 04:54
수정 아이콘
우선 오나라만의 독특했던 정치 구조를 이해하셔야할 듯 합니다.
오나라의 경우는 제갈량의 훈련 아래 육성된 강병도 없었고, 위나라의 규율잡힌 제도도 없었습니다. 위나 촉처럼 "전쟁하자"라고 한다고
해서 바로 군대 나오고 공격 들어가고 하는게 아니었습니다. 오는 지배세력인 손가와 몇몇 유력 호족들의 집안이 손을 잡고 운영하는
국가 체제였습니다. 군대는 손가가 모두 장악한 것이 아니라서, 전쟁을 요하고자 한다면 각기 호족 세력에서 군대를 보내어 원조를 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촉과 위와는 달리 군대의 집합력도 상당히 부족했고, 그렇기에 위나 촉과는 달리 공격을 들어갔던 경우가 비교적 적은 편이지요.(그나마 쳐들어간 경우는 모두 쳐발렸습니다.)
Mr.Children// 백성의 편함을 추구했다기 보다는, 호족들의 지지기반 유지를 위해서 열렬히 반대했다고 봐야겠지요.
08/08/02 05:03
수정 아이콘
본문을 읽으면서 육손은 왜 그랬을까 보다 제갈량이 참 대단한 인물이구나
하는 생각이 더 드는군요. ^^
천생연
08/08/02 05:15
수정 아이콘
그리고 본문 중에서 손권이 대패해서 도망가다가 육손의 원호 병력 등장으로 구사일생 살아난 경우는.. 유수구 전투를 말씀하시는 듯 한데, 당시에 육손은 속된 말로 '듣보잡'에 불과했습니다-_-; 호족 결연을 위해서 맺어진 처남으로서 손권을 구하기 위해 병력을 데려온 상황이었지요.(육손이 본격적으로 대외적인 일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은 여몽이 죽기전에 추천했던 주연이 세상을 떠난 뒤 도독을 맡으면서입니다.) 게다가 그 당시 상황은 대패하면서 목숨까지 주태와 능통의 호위가 아니었으면 위태했을 정도로 위급했었다가, 육손의 지원으로 겨우 호전된 정도였습니다. 육손이 지원병을 끌고왔다고 해서 반격 들어가서 밀치기에는 이미 상황이 꽤나 악화되었던 상태였습니다. 그나마 육손의 등장으로 피해를 최소화했다고 봐야할 정도로.

그리고 윗 댓글을 쓰다가 생각해본것인데, 촉이 위를 아우를 경우가 오가 위를 아우를 경우보다 더 높았을 것이라 생각됩니다.오의 병력 징집력은 침략에 대한 방어에는 효율적일수 있을 지언정 자신이 침략을 하려는 경우에는 애로사항이 많은 상태였다고 보여집니다.
Architect
08/08/02 05:35
수정 아이콘
오나라는 태생부터가 손씨와 호족의 연합정권이였고, 그로인해 조조의 남진때 손권은 어찌되던 상관없이 항복을 줄창 외쳤던 것이지요. 주씨(朱氏), 육씨(陸氏), 고씨(顧氏), 장씨(張氏)등 오나라의 유력 호족들은 왕 못지않은 사병집단과 영지를 갖고 있었고 손권조차도 이들의 병력이 있어야 제대로 된 전투를 벌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사병이라는 한계로 인해 체계적이고 일사분란한 훈련 자체가 불가능했고, 그로인해 오나라는 촉이나 위에 비해 화끈한 전투가 드문 편입니다. (합비와 유수구 등지에서 치욕을 너무나도 많이 당했죠.)

거기에 땅덩어리는 자꾸 넓어지는데(형주점령, 산월복속, 교주획득) 힘을 한곳으로 모으는건 애시당초 불가능.. 차라히 익주 하나만을 갖고 모든 힘을 끄집어 낼 수 있었던 촉나라가 오나라보다는 효율이 좋았던 셈이죠.(유비와 제갈량의 정치력이 너무 좋았죠. 촉지방도 유력한 호족가문들이 많은 지역이였음에도 오나라와는 판이하게 다른 중앙집권의 효율을 구사했으니까요.)
08/08/02 06:46
수정 아이콘
실제로 적벽대전이 그다지 큰 전쟁도 아니었고(조조 입장에서) 연의는 거의 판타지 수준이라서 못 믿을 구석이 많습니다.
[LAL]Kaidou1412
08/08/02 06:51
수정 아이콘
아 피쟐에서 삼국지 토론을 볼줄이야^^*

위에분이 말했다시피 촉은 그래도 지상전의 베테랑(?)들이 있지만 오는 완전 반대라고 할수 있지요. 배에서만 나오면 바로 셧다운 되는 수준의 안습병들이 많다고나 할까..
그렇지만 저도 글쓴이님 의견처럼 오가 조금만 더 자국'만의' 이익이 아닌 촉오동맹의 이익을 위해서 힘썼다면... 삼국지의 스토리는 충분히 바뀌었을거라 생각합니다. 사실상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죽고나서부터 두 나라의 운명은 껨 오버라고 볼수 있으니깐요...-_-
[LAL]Kaidou1412
08/08/02 06:52
수정 아이콘
하나 더 말하자면
촉오동맹이 위를 이길수 있는 유일한 순간은
제갈량이 살아있으면서, 오는 손권이 살아있었을때라고 봅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크리가 있으니.. 바보의 대명사 아두 유선...)

뭐 그래도 누가 뭐래도 가장 최고의 순간은 관우랑 전부다 살아있었을때가 아닌가 싶네요.
그때 촉오가 전심으로 협력했따면.. 분명히 이겼을겁니다
천생연
08/08/02 07:12
수정 아이콘
flowers// 조조 입장에서 적벽대전이 큰 전쟁이 아니었다는 것은.. 위서 입장에서 조조의 치부를 가려주기 위해서 최소한의 기록만을 남겼기 때문에 그리 느껴지는 것입니다. 관도대전의 가장 큰 의의가 원소가 쥐고 있던 공세를 조조가 쥐게 됨으로서 중원 뿐만 아니라 사실상 조조의 패권 장악을 널리 알렸다면, 적벽대전의 가장 큰 의의는 통일되었을 중국을 삼국 분립으로 유지시켰다는 것이지요. 물론 적벽 대전 이후에도 형주 지역에서 촉,오와의 공방을 무난히 맞선 것을 보면 완전히 다 말아먹은 수준이었다는 정도라고 볼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조조가 구상했던 계획서를 갈갈이 찢어버린 것만은 확실합니다.
08/08/02 07:41
수정 아이콘
[잡담] 혹시 삼모전 하시나요?~ 칠랑섭과 초섭에서 플레이하고 있습니다~
불멸의 커닥
08/08/02 08:11
수정 아이콘
천생연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연의가 사실이 아니지만 위서 역시 100% 믿을 수는 없습니다. 표현되었다는 게 잘못된 것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알고 있는 것/ 쓸 수 있는 것을 남기지 않는 것도 기록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지요.
글쓴 분의 말을 정정해 드리면 멸망한 순서는 촉->위->오 입니다. 오나라 어떻다고 하지만 결국 삼국 중 가장 늦게 멸망했죠.
戰國時代
08/08/02 08:52
수정 아이콘
flowers님// 좀 오해신데요.
적벽대전의 중요성은 위가 실제로 얼마의 병력을 잃게 되었는 가 여부를 떠나서
형주를 잃고 이후 이로 인해 삼국정립이 확립됨으로써 염원의 통일을 이룰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형주를 잃은 위는 관우에게 시달리며 수년간 수세에 몰리게 되고, 조조는 죽을때까지 통일의 기회를 잡지 못합니다.
연의 100만, 정사 80만의 병력이 과장인지 어떤 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볼때
적벽대전은 조조 인생 최대의 패배였습니다.
戰國時代
08/08/0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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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커닥님// 위는 멸망했다고 하기 힘들죠.
진은 스스로 위의 정통을 이었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내부적 정권교체 정도로 봐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중국역사에서는 삼국시대를 위-진 시대로 부르는 것이기도 하구요.
08/08/02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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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이유는 윗분들도 언급하셨다시피 지지기반과 정치구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연의만 놓고 볼때 복잡한 정치구조는 이해하기 힘들지라도 육손의 권위와 지지기반은 짐작할 수 있죠. 제갈량은 촉에서 내정, 외정, 군권의 정점에 놓여 향후의 정복전쟁을 대비한 몇 년간의 꾸준한 준비가 가능했죠. 하지만 육손은 비상시 손권이 직접 통솔권을 수여하지 않는 한 그저 지방군벌정도의 세력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부마로서의 지위나 그 동안의 공적이 인정되어 높은 위치에 서게 되지만 정작 평시에는 나라전체의 군권을 아우를 수 있는 힘은 없었습니다.
때문에 굳이 탓한다면 오히려 손권과 명문호족들의 안정적인 수성의지를 탓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촉나라 정벌진로가 군데 군데 맥만 끊으면서 장안을 공략하는 정도로 가능했던 반면 오나라는 침략성공이후에도 계속적인 대비태세가 필요했죠. 즉, 촉나라의 진로는 정벌군이 패배하지 않는 이상 역공이나 기습에 대한 불안이 적었지만 오나라는 수로와 육로 모두 방비해야 하고 정작 정벌군이 패했을 때 퇴로가 위험해 질 수 있어 촉나라처럼 성 치고 고고~가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촉과 위가 함께 정벌에 나서서 각각 어느정도 성과를 얻으면서 위나라의 목을 죈다고 해도 촉나라가 얻는 것에 비해 오나라가 얻는 것은 너무 적은 것 같습니다. 함께 이겼으나 결국 위의 중추는 촉이 차지하게 되는 결과랄까...
웨인루구니
08/08/02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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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를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게 위나라의 듣보잡 관구검이
겨우 1만병력으로 고구려를 개발랐다는 것이죠
08/08/02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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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인루구니님// 당시 고구려의 군사력이나 국내상황을 따져보면 별로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또한 위나라의 고구려 침공은 영토정복전쟁이 아니라 위협을 위한 침략전쟁이었기에 그저 성과내고 돌아간 정도라고 보는게 맞을 겁니다.
오우거
08/08/0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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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말씀해 주셨지만

위, 오, 촉은 저마다 다른 정치색을 보여줍니다.

위나라는 산동지역의 실력자 조조에 의해 중원이 정복당하면서 세워진 나라이고
오나라는 장강이남의 호족들의 연합체 국가,
촉나라는 아예 출신과는 전혀 무관한 외부세력의 정복으로 세워진 나라입니다.

중국지도랑 코에이 삼국지 게임들의 지도를 유심히 보신분은 아시겠지만

촉나라의 경우 성도 주변에 농경지가 밀집되어 있어서 효율적인 지방통제가 쉬웠고
비록 작은 나라였지만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유지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연의를 통해서나 정사를 통해서나
존재감이 미비했던 유선이 41년이나 제위에 앉아 있을 수 있던것도 이러한 지리적인 영향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제갈량, 장완, 비위, 강유로 이어지는 실력자 그룹이 정권에 욕심이 없었기도 했지만....)

반면에 위나라, 오나라는 내내 정권을 둘러싼 피비린내나는 내분이 일어났습니다.

정사에 따르면 손권은 이미 말년에 완전 막장이 되어서 그나마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호족들의 연합이 지리멸렬하여
손권의 후계자를 놓고 오랜기간 동안 내분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나마 이 시기에 오나라가 자멸하지 않고 버틴건
육손 - 육항의 공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긴 합니다만....
창해일성소
08/08/02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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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통치가 가능했던 위-촉과는 다르게 오는 군주의 권력이 상당히 약했습니다.
세병제라고 해서 호족들 개개인이 각각 사병식의 군대를 거느리는 것도 문제였죠.
적벽대전이나 이릉대전처럼 오가 대규모 침략을 받을 때를 제외하고는 호족들의 군대가 뭉치질 못했죠.
08/08/02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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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권과 주요 참모들의 성향 자체가 삼국 시대에 걸맞지 않게 너무 수성에 치우쳐졌지요. 삼국 시대라고는 하지만 형주에서의 문제가 마무리된 후에는 사실상 촉과 위의 전면전이 될뿐 오나라의 존재감은 크게 사라집니다.
戰國時代
08/08/02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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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나라야 뭐, 위를 견제하기는 커녕 오히려 위의 가장 큰 위협이었던 관우를 제거하고 형주를 차지한 후 수성에만 주력함으로써
위를 견제할 수단을 결정적으로 제거하는 역할을 했죠.
오나라는 통일보다는 삼국정립을 통한 안정이 가장 큰 목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천생연
08/08/02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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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권은 좋아하고 싫어함을 노골적으로 나타낸 군주라 볼수 있는데, 정말 총애하는 장수에게는 군주로서는 파격적인 내리사랑을(여몽,능통,감녕,주연), 싫어하는 장수(장소,우번,육손)는 아주 대놓고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여주었지요 -_-;

여몽,능통,감녕,주연의 경우 병에 걸리거나 사망한 이후 손권은 눈물을 흘리는등(이미 군주제가 정립된 군주가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확실히 파격적이었습니다. 어찌보면 유비보다 더욱 강렬했달까요,)의 놀라운 모습을 보여줬지만,
호족들과의 권력 밀고 당기기에서 번번히 땍땍이던 장소의 집을 불태워버리고, 입에 단 소리라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 우번을 귀양 보내더니, 육손의 경우 제갈근과 뒷담화..를 하더니, 먼 훗날에는 후계자 문제에 걸린 육손을 내쳐버리고 말죠 -_-; 육손은 충격에 사망...
하지만 확실히 호와 불호에서 두드러지는 각각의 확실한 특징이 있었는데, 여몽,능통,감녕의 경우 손권이 두터히 신임을 갖고 수족처럼 부리던 장수들이었고(호족간의 알력을 다투기 보다는 국외적인 일을 바라보며, 비교적 손권의 노선에 어긋나지 않았음), 주연의 경우 호족 지반이었지만 도독 역할을 수행하며 손권의 뜻을 그다지 어그르지 않았습니다.
불호를 따져보자면.. 우번의 경우는 할말 없고.. 장소나 육손의 경우 각각 장 가와 육 가의 대표자로서 호족의 지지기반을 지키기 위해서 손권과 보이지 않는 알력다툼을 자주 보였지요.

그리고 손권의 노망이라.. 무작정 동의할수는 없네요. 물론 후계자 책정 같은 문제라던지 육손을 너무 가벼이 내친 것등은 확실히 경솔했던 행동들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호족들을 쥐락펴락하는 영민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뱀다리) http://cafe.naver.com/sam10/159892 링크 글을 보시면... 호족으로부터 권력을 뺏어 강력한 중앙 집권을 꾀했던 손권과 그러한 손으로 부터 호족의 지지기반을 유지하려 했던 육손의 보이지 않는 알력다툼, 그리고 오나라의 권력 구조가 얼마나 막장이었는지, 손권이 이를 바로 잡아 보기 위해 얼마나 힘썼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the hive
08/08/02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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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히려 그후 진의 실정으로 인해 남북조 시대가 열리게 되죠... 흠좀무

딴소리지만 티베트 화이팅입니다(응??)
천생연
08/08/0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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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교// 주요 참모들의 성향이 수성적이었다는 것에는 동의할수 없습니다. 사실, 참모라는 직함 자체가 삼국시대에 적용하기는 꽤 애매합니다만, 도독으로 따지자면 오나라 역대 도독 중 수성적인 성향을 가졌던 경우는 노숙과 육손 뿐입니다.
08/08/0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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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권의 참모를 뜻한 것이었습니다. 손권대에 와서는 오나라 전체를 통틀어도 공격 성향이 강한 인물은 별로 없습니다만.. 이는 적벽대전 전에 제갈량의 개입이 없었을 때 대부분의 참모들이 항복을 주장했던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천생연
08/08/02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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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사람들 말씀하신 것이셨군요; 사실 그들에게 참모라는 직함을 붙여야할지 상당히 애매합니다. '문관'으로 부르는게 속편할듯 싶네요.
김환영
08/08/0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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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을 단거같은데 없군요 -_-;; 정사에는 있는지 모르겠는데 합비공략을 못한것이 제일 큰원인이라고 생각됩니다.. 별동대를 이끌고 합비로 기세좋게갔는데 장료하나에 떡실신당하고 돌아온뒤 계속 수세적으로 몰렸죠.. 합비에서 이겼다면 중원으로 나가는 발판이되서 이야기는 많이 달려졌을꺼라고 봅니다.. 뭐 하지만 만약에 얘기고 지금생각해봐도 오의병사대부분은 해적출신이고 합비가 좋은요새였다는걸 봤을때 누가가도 뚤기힘들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육손과 노숙은 오의참모중에 가장 공격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적벽전에 주유 장소 등의 신료들은 항복을 주장했고 노숙이 제갈량을 도와 주유를 흥분시켜 일으키게된게 적벽이죠.. 육손은 이릉전투때 너무나 급하니까 쓴거지 손권이 육손을 신임해서 딱히 배정했다고하기엔 무리가있죠.. 그이후에도 자기맘대로 일을 진행시킬수가없엇다고 봅니다
순모100%
08/08/0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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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권대의 성향과 손책대의 성향은 확실히 다르죠.
손책이 안죽었으면 오나라가 좀더 화끈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어쩌면 손권이 어린 나이에 갑자기 너무 많은 걸 계승하는 바람에 자연스레 수성이나 호족과의 알력다툼에 신경쓰게 된 걸지도...
천생연
08/08/02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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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모100%// 동의합니다. 손권은 손책의 요절 때문에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권력을 계승했지요. 소패왕이라 불리며 강동을 때려잡던 자가 한순간에 사라져버렸으니 마치 중심축이 빠져버린 바퀴와도 같았을 겁니다. 그래도 저는 그러한 상태에서 호족들과 규합해서 나름 권력 구조를 만들어낸 손권의 수성도 높게 평가하고 싶네요. 계속해서 꾀했던 중앙집권화를 끝내 이루지 못한게 손권의 한이라면 한이지만.
chowizard
08/08/02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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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보잡 관구검....;; 삼국시대의 유주자사 자리는 듣보잡 자리였나 보군요. 실제로도 그랬나요?
푸른별빛
08/08/02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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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구검이 듣보잡이라뇨...정사에서는 위나라 말기에 활약했던 여러 장수들 중 무술과 병법뿐만이 아니라 외교면에서도 유능한 장수로 묘사되어있고, 연의에서도 위나라가 오나라를 공격할 때 한 갈래를 책임지던 장수이면서 사마씨가 위나라를 찬탄하려고 하자 제갈탄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던 주역 중 하나로 묘사되어있는데...관구검의 고구려 침략 당시 동원했던 1만도 위나라 군사만을 뜻한것이지 실질적으로는 오환, 선비에서 병력을 흡수하여 수만에 이르렀다고 알고 있는데요...
[LAL]Kaidou1412
08/08/02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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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이건 딴 얘기지만, 삼국지 시대 뒤에 유비파(?)의 후예들이 빛을 발하죠..
자세한 얘기는 밑에분이 해주세요~ (..... )
08/08/02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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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구검 절대 듣보잡 아니죠.
푸른별빛님 말씀대로 제갈탄 궐기때도 굉장한 활약을 하죠.

그리고 당시의 국력차는 미네랄 10덩이 7덩이 5덩이 수준이 아니라
위나라의 국력은 지금의 미국, 오나라의 국력은 일본, 촉나라의 국력은 한국수준이죠.
한마디로 장기전으로 가면 갈수록 촉이나 오는 절대로 위를 이길 수 없죠.
그래서 제갈량이 무리를 해가면서도 최단기간에 장안까지 가려고 노력했던 것이구요.

개인적으로 손책의 죽음이후 손권의 수성능력은 굉장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호족기반의 국가에서 갑작스러운 군주의 죽음이후에 동생이 승계했음에도 불구하고 반란을 안당한것 만으로도.
주유나 제갈근같은 심복의 역할도 컸겠습니다만, 손권의 능력이 아니였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삼국지는 관도대전이후에 끝이죠.
레인저
08/08/0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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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오나라라는 국가의 체제로 인한 특성탓이 크겠지요. (호족들의 영향력)

위나라를 정벌할 뜻이 있었다면 조휴와의 교전에서 아마 주환의 협석, 괘거 차단 계책을 그렇게 쉽게 물리치지는 않았을듯 합니다.
나이트해머
08/08/0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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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만 놓고 봐도 오가 대외로 치고 나가 성과를 거둔 건 주유가 사실상 유일무이 합니다. 여몽은 뒷치기라 비교가 어렵고.
이유는 하나입니다. 호족 힘이 너무 세요. 오는 중앙집권에 실패한 셈이죠.
호족들 호응이 없으면 황제가 직접 나가도 5만정도 동원이 고작입니다. 호응 있으면 20만까지도 한 전선에 몰아넣지만.(...)
일단 병력을 긁어 모아도 문제가, 각군마다 체제, 장비, 훈련도 등 모든 게 다 다릅니다. 어느호족 군대는 복무기간 5년에 말년 1년때 병장인데 다른 어떤 호족 군대는 복무기간 1년에 막판 3개월이 병장이라 하면 이거, 제대로 지휘가 되겠습니까.
여기다가 이렇게 호족연합군이다 보니 각 호족들이 자기 사병을을 아낍니다. 막말로 상황에 따라서는 어떤 군으로 피해를 감수하고 버틸 때도 있고, 희생양으로 써야 할 때도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오는 각 호족들이 제 병력을 아껴서 이런 임무를 서로 꺼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의 사서 기록을 보면 (전투에서 큰 피해를 감수하고 싸워) 큰 피해를 입었다고 포상하는 경우가 눈에 자주 보이죠.
육손은 자기 자신부터가 이런 거대 호족이다보니 함부로 안나섭니다. 피해입으면 자기 손핸데요. 그래도 석정전투로 조휴를 개바른 다음 합비를 냉큼 집어삼키긴 했습니다만, 위는 바로 합비신성을 쌓아 막아버리죠.
나이트해머
08/08/02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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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관구검은 듣보잡 아닙니다. 고구려 정벌에 성공한 뒤 합비쪽으로 보직을 옮겨 문흠과 함께 제갈각이 끌고온 20만 오군을 말아먹는 다대한 전공을 세우죠. 이후 조상이 실각하자 문흠과 함깨 반란을 일으키자 제갈탄이 앞장서 진압합니다. 이때 관구검은 사망, 문흠과 그 아들 문양은 오로 망명. 이후에 제갈탄이 이 전선을 맡다가 또 따로 반란을 일으키고, 이때 오에서 지원군으로 온게 문흠 부자입니다. 참 묘하죠. 이쪽이...
08/08/0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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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알기로는 촉이랑 오랑 합쳐봐야 위한테 상대도 안되는걸로 알고 있었는데요. 윗분 말 마따나 위는 미국에 촉이나 오는 한국+일본 수준에 가까운걸로... 뭐, 오버가 좀 심하긴 하지만 아무튼 국력차는 엄청났다고 봐야죠.

괜히 관도대전이 삼국지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전쟁이라고 하는게 아니죠. 관도대전의 결과로 결국 조조가 중원의 패자가 되었고, 적벽대전은 삼국정립을 이룰수 있게 해주긴 했지만, 그건 결국 관도대전의 결과로서 위가 중국을 통일하는걸 몇년 더 늦춘것에 불과하다는 뜻이거든요.
관도에서 조조가 승리한 순간부터 이미 '위나라가 짱먹는 엔딩'은 결정이 난 게임을 지지부진하게 이끌어갔을 뿐입니다.

그리고... 조조 인생에서 가장 쓰디쓴 패배는 적벽대전 보다는 장수한테 발린거 두번이 아닐까 싶군요. (특히나 전위크리)
wish burn
08/08/02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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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구검과 고구려의 싸움은 누가 이겼나요?
제가 봤던 글은 고구려의 2번에 걸친 요격. 짭짤한 승리 -> 방심한 고구려의 동천왕 2만군세로 전면전벌이나 참패 병력의 90% 손실.->관구검의 추격. 고구려의 유유의 자살공격으로 지휘관 암살.-> 관구검 퇴각.

이 시나리오가 맞나요?
타우τ
08/08/02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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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가 아무리 중원을 제패했다하더라도 일말의 역전의 불씨가 남아있었는데...
손권의 뒤치기와 이릉전투 때문에 역전이고 뭐고 다 끝났죠...
그 후 있는 건 제갈량의 발악뿐...ㅜㅜ
08/08/02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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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도 말씀하셨지만 오나라는 손책이 죽은 뒤에 장수들에게 의존하는 정치체제였습니다.

우선 오나라는 남쪽 멀리에 위치했습니다. 당시 한나라는 권력이 중앙으로 집중된 정치체제도 아니었거니와 헌제는 조조의 허수아비에 불과했기 때문에 중앙의 입김이 그리 세지 않았던 지역이죠. 중세 봉건시대와 비슷했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손책이 죽기 전까지도 손책은 호족들에게 환영받지 못한 존재였습니다. 실제로 허공이 조조와 내통해서 손책을 몰아내려 했지만 실패하고 죽음을 당하죠. 손권도 조조처럼 법령으로서 다스리려고 하지만 호족들이 복종하지 않아서 각 장수들을 여러 지역으로 파견하여 전권을 주고 사실상 무력으로 다스리던 체제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남쪽에는 산월족과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법령으로 그들을 다스리는건 씨도 안먹힐 소리였죠.

육손이 오나라의 메인이 되기 전까지는 주유, 노숙, 제갈근, 여몽 등 호족들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습니다. 장소와 장굉은 친조조파적인 성격이 강한 사람들이었구요. 그런데 육손이 위나라를 공격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제갈양이 북벌 당시에 (2차 북벌이었나요?) 육손도 동쪽에서 위나라를 공격했지만 조예가 직접 막아내고 나서 엄두가 안 났던거죠. 그리고 사실 육손의 존재가 오나라에서는 너무 갑작스러웠기 때문에 국내적으로도 큰 갈등이 있었을거라 봅니다. 주유, 노숙, 제갈근, 여몽 등은 손책 때부터 손권이 다스릴 때까지 쭈욱 오나라에 몸을 담가왔지만, 육손은 유비가 관우의 복수전으로 오나라를 침공할 때 갑작스럽게 대도독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오나라 장수들과 육손은 이릉대전 당시에 갈등이 심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육손의 능력이 오나라 내에서 손권에게 알게 모르게 인정받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제가 볼 때도 촉나라처럼 육손이 적극적으로 위나라를 공격하지 않았던 것은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오나라에게는 그렇게 큰 동기를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유비와 조조가 천하의 라이벌이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고, 제갈량의 경우는 그래도 유비를 꽤 오랜시간동안 보좌했고 또한 오나라와 비교해서 위나라와 싸우기에 유리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지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하지만 오나라와 위나라의 국경은 형주와 서주였는데, 당시 오나라는 강을 끼고 있었기 때문에 수전에 능했고 위나라는 넓은 들판이 국토의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육전에 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나라가 위나라를 공격하는건, 촉나라가 위나라를 공격하는 것보다 어려웠으리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실제로 손권이 10만의 군사로 합비로 쳐들어갔다가 장요, 악진, 이전한테 관광을 당했고 이후에도 서로 밀고 당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위나라가 오나라를 공격하면 수전에서 패하고, 오나라가 위나라를 공격하면 육전에서 패하고). 북벌 당시에 촉과 싸우느라 위가 정신이 없었을 타이밍에 쳐들어갈 수 있지 않았느냐라고 물으신다면 글쎄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위나라가 그 넓은 땅과 수많은 인력을 가지고 있는데, 오나라가 처들어온다는 소식에 눈만 껌뻑거렸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나라는 촉나라보다 반조(反曹)의 성향도 강하지 않았고, 오히려 위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내정의 핵심인물이었던 장소 및 그의 추종자들은 친조(親曹)의 성향이 강했습니다.

어쨌든 삼국지의 토론은 언제나 재밌습니다..
레인저
08/08/02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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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족중심이 되는 오나라의 국가체계를 보면 사실상 위를 무너트릴 타이밍 자체가 안나왔다고 봅니다.
심지어는 손책 조차도 초창기 광릉으로 출진했다가 진등에게 패퇴한 기록이 있습니다.

촉은 하후연을 물리치고 한중을 탈취, 관우의 형주 공격때 한차례 타이밍이 나왔지만 이마저도 여몽의 뒷치기로 인해 이후 촉나라는 삼국중 최약소국으로 전락해버리죠.
나이트해머
08/08/0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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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때 세력균형은 사실 위가 그닥 압도적이라 하기엔 뭐합니다. 워낙에 국력낭비가 심해서...(쓰잘데기 없는 원정이 몇번이냐 조비, 심시티 지름신이 들려버린 건 또 무엇인가 조예, 사마씨가 잡고나서는 심심찮게 반란이...)
위의 국력 - 낭비되는 위의 국력 =촉의 국력+오의 국력+위에 저항하는 북방 유목민족들. 이라 보는 편이 타당합니다. 오 역시 국력을 제대로 못 모으긴 했고, 북방 유목민족들은 통합하는 세력이 없어 제각기 찢어진 상태로 서로끼리도 싸우고 일부는 위에도 붙고 했지만 촉한이 제 국력 이상의 힘을 계속 내 줘서 맞춰지는 균형이죠. 이 균형을 무너뜨려 타이밍을 만들고자 노력한 게 제갈량의 북벌입니다. 북벌 한방에 위를 K.O시키고자 한 게 아니라 이를 통해 세력균형을 무너뜨려 보려고 한 거죠. 성공 가능성은 매번 높았지만 운이 더럽게 없어서 실패했다 봐야 합니다. 마속 삽질이야 제갈량 실수지만, 같은 고명대신인 이엄이 사기짓을 할 줄을 어떻게 알았겠고, 자기가 거기서 죽을 줄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08/08/02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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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인루구니님// 결과적으로 고구려가 관구검에게 개발리긴 했지만, 동천왕이 2번의 승전으로 자만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관구검이 1만의 군대라고 하셨지만 아마 아닐겁니다. 2번의 전투에서 승리한 동천왕이 "위나라의 대병이 오히려
우리의 작은 군대보다 못하다." 고 말한 기록이 나옵니다. 동천왕의 군대는 2만이었습니다.
따라서 관구검은 최소한 2만 이상의 군대를 몰고 왔다고 봐아죠.
레인저
08/08/02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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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의 북벌은 남안, 천수, 안정 3군이 호응한 1차를 제외하고는 모두 가능성이 없는 전투였습니다.
전력의 열세는 차치하더라도 보급조차도 원활하지 않아서 오래 원정을 할수 있는 상태가 도저히 못되었죠.
사마의가 싸우지도 않고 방어만 하다 이긴것이 그러한 촉의 약점을 대변하고 있구요.
나이트해머
08/08/02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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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의 북벌 중 대규모로 나간 건 1차, 4차, 5차입니다. 사마의의 견벽위수 전략이 나온 건 4차, 5차. 그리고, 이미 5차때 제갈량은 그에 대한 대응책을 들고 나왔습니다. 북벌 중 장안에 가장 가깝고, 또한 방어에 실로 탁월한(지명 자체가 가장 넓은 지역 간격이 5장(15m)라 해서 붙여진) 오장원 지역을 선점, 이후 이 오장원 지역을 기점으로 둔전을 시행하며 이민족도 끌어들이고, 그 서쪽 호족들을 끌어들이는 방식이죠. 사마의의 견벽위수 전략에 대해 제갈량은 '그래? 그럼 그 서쪽은 다 내꺼. 좋네, 싸움 한번 안하고 양주 전체와 옹주 절반을 얻었잖아. 뒷심 부족할 줄 알지? 이번엔 장기전 준비 좀 해 나왔거든? 여기서 농사가 수확될 때까지 버틸 수 있거든? 불만이야? 그럼 한번 덤벼봐. 여기 부딪치라고.' 식인 겁니다. 사마의가 괜히 제갈량 건강을 물어본 게 아니죠. 매달릴 건 그거밖에는 없었던 겁니다.
그럼 싸우면 되지 않느냐... 여기엔 4차 북벌때 노성싸움의 경험이 있습니다. 압도적인 물량을 활용, 장합이 이끄는 별동대로 후방 보급로를 타격하면서 동시에 사마의 본대는 제갈량 본대를 강습했는데, 전사자가 정예부대인 갑사에서만 3천, 기병갑옷 5천벌 및 각노 3천벌 노획, 이란 피해를 입고 입고 발려버렸습니다. 장합이 이끈 별동대 역시 파견된 왕평의 방어를 뚫지 못하고 후퇴했고. 유일한 정면대결에서 이정도 패배를 입어서 그런지 심리적 타격이 있던 모양입니다.
나이트해머
08/08/0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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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인루구니님//고구려 대 관구검 이라면 유주지사 관구검, 중앙군 1만을 이끌고, 여기에 현도태수 왕기의 병력 및 위에 복속하던 이민족 을 동원, 고구려 공격 - 고구려의 반격, 두차레 기습으로 위군 격파. (나중에 요동정벌로 받은 공적을 감안할 시 이 병력은 본대가 아닌 이민족군으로 추정) - 기세를 탄 고구려, 후퇴하는 위군 본대 강습, 위군은 방진을 치고 방어 - 고구려군, 방어를 뚫지 못하고 격퇴됨. 여기에 추격을 받아 막대한 손실. - 관구검 일단 재정비 위한 퇴각 - 다음해 재차 공격, 국내성 함락 동천왕 도주 - 관구검 귀환, 현도태수 왕기, 추격 - 추격군 선발대 유우의 자살공격 및 필사적인 고구려의 반격에 고구려 수뇌부 포획 실패 - 왕기, 퇴각 정도로 요약될 겁니다. 관구검의 공격이 두번 있었다는 게 새로울려나요.
저기 가로친 부분에 대해서는 이때 군법이 상당히 엄해서, 이겨도 피해가 크면 문책이 들어갑니다. 심지어는 이겨놓고도 피해크다고 사형당한 경우도 있어서... 만약 위군 본대가 두차레 공격으로 사상자가 6천씩이나 났다면 관구검은 이 공적으로 승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승진했죠. 이 말은 본대는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말이 되지 않을 까 싶습니다.
BuyLoanFeelBride
08/08/02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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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해머님// 관구검 뿐만 아니라 왕기도 거기 참여했었군요. 하나 배웠네요^^
유대현
08/08/0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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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에서 설명이 잘 되어 있네요.

오나라의 정치구조 때문입니다. 실질적으로 오나라를 건국한 손책 시절부터 오는 지방 호족들의 세력이 매우 강했습니다. 당연히 황제 아래에 집중된 강력한 정예군의 양성이 힘들었죠. 거기다 호족들에게 전쟁에서 승리해봤자 돌아오는 떡고물이 많지 않다면 당연히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 호적들은 전투에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고요. 그나마 주유-노숙의 도독라인 까지는 오나라의 건국에 일조한 공신들 이었고 손권의 신임이 매우 두터워서 어느 정도 군을 동원할 수는 있었으나 공신도 아니고 더군다나 손권과 갈등이 있었던 육손이 주유나 노숙 이상의 군권을 휘두를 여지가 없죠.

손책과 손권의 성향 문제가 아니라 오나라는 장강 건너면 저런 정치 구조상 힘을 못 씁니다. 손견은 동탁 토벌전에서는 활약을 좀 했으나 형주 침공하면서 사망-손책도 장강을 건너서 정복전쟁 나섰다 실패-손권은 뭐...
Magic_'Love'
08/08/02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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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호족이 문제였군요...
순모100%
08/08/02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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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군주의 영향력을 더 크게 봅니다.
아무리 환경적으로 어려웠다한들 군주의 능력이 그 시대에서는 최고의 평가기준이죠.
좋은 환경이었던 원소가 망한다거나 돗자리장수가 왕이 되거나 환관의 아들이 전장에서 피똥싸며 기반을 닦는 걸 볼 때면...
사람이 정말 중요하구나 생각이 들거든요. 그게 삼국지의 매력이고....

때문에 손책이 안죽었다면 오나라는 달랐을 거란 제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손책이라면 오나라의 구심점역활을 하면서 강력한 정치구조를 세우고 힘으로 호족들을 누르고 다녔을 지 모르죠.
이미 그런 식으로 성장하던 미완의 한창나이에 죽었기에 손책이 참 아쉬운 겁니다.
손책이 아니라 유비나 조조가 그자리에 있다한들 분명 호족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의지를 관철시킬 방법들을 찾았겠지요.
그것이 인간의 매력이든, 정치개혁든, 전쟁이든, 간계든 협박이든 간에요.
때문에 소극적으로 변한 오나라의 분위기엔 주위 환경보단 전장에서 성장하지 않은 영웅인 손권의 한계가 크다 봅니다.
손권 스스로가 수성쪽의 의지가 강했고.
한창 안정적으로 키운 후 본격적으로 일을 벌이려던 주유가 일찍 죽은 것도 있고...
오나라의 경우 공격적 성향의 영웅들이 단명하는 경우가 많죠. 결국 사람의 문제입니다.
(정치구조가 잘되어있다한들 제갈량이나 강유같이 공격적 성향의 인재가 없었다면 촉나라가 과연 정벌에 나섰을까요?)
달리보면 재수 없다고 할까? 손책이 한방에 갈줄은.... 수많은 전투에 패하던 조조나 유비가 끈질기게 살아나는 것도 천운이고.
영웅은 역시 타고나야 하나봅니다.

태어날때 이미 주어진 환경과 그 기반을 지키는데 급급하게 되는 이들의 경우 환경탓만하다 도태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론 그와 대비되어 애초 큰 힘을 쓸 수 없던 위치의 인물들이 커가는 드라마같은 이야기때문에 삼국지가 재밌긴 하지만서도...
오나라의 정치구조가 한계였다를 보니까... 자기의 한계를 극복한 다른 영웅들이 더 대단하게 보이긴 하네요.
물론 자기 것을 잘 지켰다는 점에서 손권도 분명 영웅이긴 합니다. 그것도 못한 이들도 많으니....
거침없이하이
08/08/02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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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피지알에는 능력자분들이 많네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언제 물어도 맛있는 삼국지 떡밥~~ 우걱우걱
질럿은깡패다
08/08/02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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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국력 비교가 불가능한게,
중국 13주 중에서
촉은 단 한개의 주 - 익주만을 가지고 있었고,
오는 두개 반 - 양주 및 교주 전체, 형주 절반 그리고
위는 나머지 9개 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촉이 원정을 시작한 이후로 전시에는 양주와 옹주 절반에 대한 영향력을 많이 상실했고,
양양성을 위시한 형북에 영향을 끼치고는 있었지만 주 특성상 수로가 많은 형주인 까닭에 제대로 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7개입니다.

간단히 계산하면 촉은 본진 하나, 오는 본진에 앞마당(가스멀티) 그리고 미네랄 멀티를 가졌는데, 위는 가스가 있는 멀티 9개에 미네랄 멀티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전시에는 가스멀티 두개와 미네랄 멀티 하나가 전장으로 바뀌어 제대로 자원수급을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촉이랑 오는 상대가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관도전투에서 조조가 이기면서 이미 게임은 끝난겁니다.
레모네이드
08/08/02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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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력비교는 영토보다는 인구로 비교하는 게 더 적절하지 않은 가 합니다. 촉 멸망당시 촉 약 100만 오 약 230만 위(진) 약440만 정도
1강 2약의 구도네요.
라울리스타
08/08/02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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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년에 위, 촉의 군주들이 각자 황제라고 칭했습니다. 오나라도 이들과 대등하게 맞서기 위해선 황제를 선언해야 하는데, 무려 8년에 걸렸지요. 오나라와 손권의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가 아닐까 하네요. 자국에서 자신의 위치조차 추스리기 힘들었던...
김평수
08/08/03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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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촉,위와달리 오의 세력기반이라든지 정치적상황이 매우 달랐죠 라울리스타님말씀대로 손권이 황제가 된 게 229년이니;
여러모로 오나라에게 북벌을 기대할만한 여건이 아니였습니다
제갈탄의 반란이라든지 제갈각의 북벌이라든지 오나라도 여러번 찔끔거렸지만 그때마다 대패, 대패했죠
제갈량의 북벌은 뭐 참 아쉽네요 가정에서 믿었던 마속이 개삽질할 줄은 누가알았겠고 이엄이 뻥칠줄은 누가 알았겠고 모처럼 장기전 준비하고 큰거한방 준비해놨는데 죽을줄은 누가알았겟나요 흑흑
sungsik-
08/08/03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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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전이 가지는 의의는 조조대에 완성할 수 있었던 삼국통일을 실패했다는 것이죠.
조조가 관도전을 승리하고 남하를 하려 했을 때 형주목인 유표와 양주목인 손권세력은 이미 항복을 결심했었고
그럼 남은 건 서주의 마초, 한중의 장노, 익주의 유장 뿐이었죠.
모두가 조조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 세력들이었습니다. 적벽전만 아니었으면
조조대에 이미 난세가 끝났다고 확신하지만, 적벽전에 의해 그리고 그 후 유비의 익주 침공에 의해
삼국의 형태를 띄기 시작하면서 조조의 업적은 거기까지가 되어 버립니다.

그렇다고해서 위의 분 말처럼 촉과 오에게도 기회가 있었다라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후한말의 모든 형세는 관도전에의해 마침표가 찍혀진 것이었습니다.
다만 촉과 오는 적벼전에서의 승리와 서로의 연합에 의해 그 시기를 연장시키며 버텼을 뿐이지요.
단지 그뿐입니다.
戰國時代
08/08/03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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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sik-님// 물론, 적벽대전이 (위에 의한) 통일의 최대 기회였죠.
하지만, 삼국 정립 이후에도 통일의 기회는 있었다고 봅니다.
(촉에 의한) 유일한 통일의 기회로 꼽는 시점이 관우가 형주를 장악하고, 위가 보낸 맹장들과 정예병을 모두 죽이고 허창에까지 위협을 느끼게 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실제로 이때 조조가 느낀 위협이 얼마나 컸으면 천도까지 계획했었다고 정사에도 나와있죠.
만약 유비와 제갈량이 서촉을 안정시킬 때까지 관우가 형주를 장악하고 살아있었다면 역사는 바뀔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재수니
08/08/03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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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은 언제나 많고 다양합니다
손견,손책부자가 제수명을 다 살았다면.
조조가 여포,고순을 사형시키지 않았다면.
위연의 자오곡계책이 받아졌다면. 등등등
제일 안타까웠던 점은 방통의 요절, 서서의 낚임,,, 이둘중 하나만 형주의 관우와 함께하였다면
[LAL]Kaidou1412님// 저도 얼핏 읽었는데. 조금 옛날 책이든데
사마염의 진은 오래가지 않고 북방민족에게 점령당하는데 여기에 대빵이 유연입니다 일단은 흉노계라고 하지만
유비랑 같은 성을 쓰는 유씨죠. 이것을 연관지어서 촉이 계속 이어나간다, 결국 복수를 하였다.이런 식의 스토리였는데 후삼국지였든가
sungsik-
08/08/03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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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時代님/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 관우가 형주를 장악하고 위가 보낸 맹장들을 죽이고 정예병을 모두 죽이고
허창을 위협할 때가 혹시 관우가 번성과 양양을 포위했을 시점을 말하시는 건가요?

그럼 좀 이상한게 당시는 관우가 형주를 장악한 시기가 아닙니다.
관우와 손권과 조조가 1/3씩 형주를 분할 통치할 시기였죠.
게다가 서촉을 안정시킬 때까지라고 하셨는데 당시는 이미 촉이 상당히 안정을 이룬 시기였습니다.
한중에서 하후연과의 대립, 그리고 조조의 남하에도 유비가 완벽히 대응했고
한중왕에 오르기까지 한 시기이죠.

분명 당시가 촉의 전성기 같은 시점이었고, 손권의 형주침탈만 아니었으면
훨씬 더 나은 판세가 그려졌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걸로 통일까지 가기엔
멀고도 멀었죠.

특히 천도설은... 혹시 관우전에서 조조가 허도를 떠나자고 권유한걸 천도라고 하신 거 같은데
그건 천도로 해석하는 것보다는 전쟁은 전쟁 거점에 진형을 배치하고
그 뒤에서 군수물자를 수송하는 방식으로 해석하셔야 한다 생각되네요.
원소와의 관도전이 그의 대표적인 예죠. 관도와 백마부근에서 전투를 하고
후방의 허창에서 군수물자를 대는 식으로..

그런데 전쟁 거점는 관도에서 형주로 바뀌었고
양양을 지배하던 때까지는 양양이 거점이 되어 후방에서 지원을 해주는 형태가 되었지만
양양과 번이 점령되면 그 뒤에 바로 신야와 허창이기에
이런 식의 거점 - 보급원의 형태가 깨져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번성이 점거되어 전쟁 거점이 허창부근이 될 만약을 대비해
보급 거점을 위로 올리자라고 해석을 해야지..
천도로 해석을 하는 건 아니라고 보이네요.

여나저나 아무리 양양과 번까지 장악해서 삼국형태가 이루어졌다고해도
판세가 바뀌었을거라는 생각은 들지가 않습니다.
삼국의 대립 형태가 더 오래 지속되었을 뿐이겠죠.
그 만큼 조조의 세력은 절대적이었구요.

결정적으로 조조의 힘은 양양이나 수도였던 허창도 아니라
양주, 기주, 병주, 유주, 청주였습니다.
원소가 양주,기주, 병주, 유주만으로 천하의 최강자였던 것을 떠올리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戰國時代
08/08/03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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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sik-님// 천도의 대한 해석이 다르신거 같은데, 당시에는 황제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곧 천도입니다.
즉, 조조가 황제를 데리고 업으로 가면 곧 업 천도가 되는 것인데, 천도해석이 무리라고 하시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그리고, 당시가 최고의 기회였다고 하는 것은 관우의 북벌과 맞춰 유비가 장안을 공략해서 촉의 세력권을 넓혀 놓았다면, 이후의 (실제의) 삼국정립 세력구도 자체가 크게 달라졌을 거라는 것이고, 그랬다면 촉이 통일을 할 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최선의 경우 즉, 형주 서쪽은 전부 촉이 먹는 구도가 만들어졌다면, 조조 사후 위의 혼란을 틈타 통일의 염원이 이루어졌을 지도 모른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나이트해머
08/08/03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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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 북벌이야 조조 입장에선 위험천만한 순간이죠. 관우가 형북지역을 완전 장악한다손 치면 연주, 예주 등 조조의 초기 기반지역이 사정권에 들어갑니다. 이 지역을 전쟁터로 내준다는 건 조조가 거병 초기부터 쌓아올린 근거지가 초토화된다는 걸 의미하죠. 조조의 나이까지 생각해 보면 형북지역을 상실할 시 조조는 중국 통일을 주도할 수 있는 위치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하북지역이 있다손 해도 조조 치세의 하북과 원소 치세의 하북은 생산력 자체가 다릅니다. 관도대전으로 성인 남성이 8만명씩 뭍혀 죽었고, 이후 원상, 원담, 고간, 조조의 4파전이 치뤄지면서 생산력 자체가 크게 무너져 버린 게 조조 치세의 하북입니다. 원소 시절의 하북의 생산력을 10으로 치면 조조 시절의 하북 생산력은 4~5 정도면 다행이죠.
나이트해머
08/08/0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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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갈량 북벌 성공시 마찬가지로 위는 일대 위기에 봉착하는데, 제갈량 북벌의 1차 목표는 양주, 2차 목표는 옹주입니다. 양주가 촉한 땅에 넘어간다면 위는 북방 유목민족-촉한-동오라는 일대 포위망에 걸려버립니다. 여기에 각종 무역로를 촉한이 손아귀에 넣고, 다량의 마필 확보로 촉한 및 동오의 군대의 질 또한 급상승이죠. 여기에 옹주가 넘어가면 한나라 시조의 땅이 넘어가는 셈이고, 이 경우 물적, 심리적 타격은 측정 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이러면 위는 국력낭비 안하고 효율적으로 온힘을 끌어내도 버틸까 말까한 시점이 되죠.
위 : 촉+오의 인구수 비례는 3 : 2. 우리나라와 북한의 인구수 비보다 높죠. 지금이야 우리가 북한을 이긴다지만, 60년대, 70년대도 그렇던가요. 80년대도 좀 불안하긴 했죠, 아마.
나이트해머
08/08/03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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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때 익주의 유장 역시 병력을 보내 조조를 도왔습니다. 상징적인 의미라고는 하지만 이건 사실상 백기투항이죠.
그때 유비-손권 연합군이 졌다면 삼국지는 거기서 끝입니다. 관서지역 군벌집단의 군사력이 강하다 해도 중국 전역의 생산력을 바탕으로 밀어붙일 조조에겐 상대가 안되거든요.
레인저
08/08/03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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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가 만약 형주북부를 탈취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단순히 형주 획득으로 인한 국력 상승의 효과만이 아니라 중원으로 가는 또하나의 공격루트를 확보하게 되는 셈이니까요.

따지고 보면 위나라에서 뻔히 알만한 공격루트에다 보급난까지 끼고도 제갈량이 관중 일대로 진격할수밖에 없었던건
마땅한 공격루트가 그곳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장완이 상용을 거치는 수로를 통한 공격을 제안하기는 하지만 당시 정황으로 봤을때 그러한 공격은 더욱 무리라고 판단되구요.

더군다나 이미 한중에서 서쪽전선의 수비대장인 하후연이 죽은데다 칠군의 수장이던 우금이 번성으로 헬프갔다가 관우에게 대패한 상태라 위나라의 사기는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조조의 반응도 그렇지만 티격태격하던 오나라를 회유하여 급한불을 끄려했던것만 해도 위나라 조정 내부의 긴장감을 충분히 알수있는 사례라고 봅니다.

이릉싸움의 대패로 인해 촉은 가지고 있던 군사적 여력을 모두 잃었다고 보면 될것입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원정을 지속하고 국력을 보존할수 있었던건 제갈량의 정치능력 때문이었죠.
강유가 계속 출병했을 시절을 보면장완, 비위가 모두 죽고나서의 촉나라 국력이 어땠는지 본다면 말이죠.
08/08/03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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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sik-// 갑자기 끼어들기 뭐하지만, 제 생각으로도 조조가 천자를 업으로 옮기려한 것은 천도를 고려했다고 보는게 타당합니다.

조조가 이각, 곽사, 양봉, 한섬 등에게서 천자를 빼앗았을 때부터 쭈욱 허창에 있었습니다. 관도대전 이후에 기주를 완전히 차지한 후로는 조조는 대부분 업성에 머물렀고, 순욱과 하후돈에게 허창에서의 일을 맡겼구요. 그리고 조조와 유비가 한중에서 공방전을 벌이고 있을때, 후흠이라는 완성의 관리가 반란을 일으킵니다. 완 지역은 형주와 가까운 지역이었는데 당시 형주는 관우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습니다. 조조에게는 다행히 가까운 번성에 있던 조인에 의해 진압되지만 조조가 두려워한 것은 후흠이 아니라 관우였습니다. 설사 손권과 내통해서 관우의 뒤통수를 쳐도 관우가 완성으로 들어오는 날에는 수도인 허창이 그의 영향권 내에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조는 '천도' 라는 직접적인 말을 사용하진 않지만, '천자의 수레를 업성으로 옮긴다' 라는 말을 합니다. 사마의와 유엽이 이를 만류하여 조조가 결국 '천자의 수레' 를 옮기진 않지만 삼국지에서 보통 '천도' 라는 말보다 '천자의 수레' 라는 표현이 더 자주 나옵니다. 동탁이 집권했을 때 낙양에서 장안으로 수도를 옮기는데 이때도 '천도' 라는 표현보다 '천자의 수레를 옮긴다' 라는 표현을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조조에게 있어 최후의 보루는 허창이라고 하기보다는 당시 조인이 지키던 번성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관우의 일생에서 가장 아쉬운 사건을 하나 꼽자면, 번성을 함락시키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당시 우금의 칠군을 궤멸시키고, 번성으로 진군한 관우가 결국 여몽에게 뒤통수를 맞지만 관우가 번성을 함락시킨 후에 여몽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게 제 견해입니다.

戰國時代님께서 말씀드렸다시피, 당시 조조가 한중에서 유비와 공방전을 벌인 타이밍에 관우가 번성을 함락시키고 북진을 계속할 수 있다면 촉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인 타이밍이었습니다. 손권이 이에 어떻게 행동을 했을지가 관건입니디만, 한중 공방전에서는 유비와 조조가 대등한 싸움을 하고있는 가운데 관우가 성공적으로 북진했을 경우, 조조는 양쪽에서 압박이 들어오는 상황이고 특히나 수도가 위협받는 것이기 때문에 부득불 한중에서 허창으로 말머리를 돌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생각나는게 개인적인 견해로, 손권의 어리석었던 판단입니다. 사실 손권이라는 캐릭터를 애초에 좋아하진 않습니다만, 촉빠(?)인 저에게 있어서는 더욱 안타까운 사건이죠.

또한 sungsik- 님께서 조조의 실질적인 세력이 유효한 지역은 허창이 아닌 기주, 청주, 유주, 병주 지역이라 하셨는데, 당시 중국의 어떤 종교적인 사상에 있어서 천자는 굉장히 큰 존재였습니다. 원소와 조조가 대치했을 때 객관적으로 원소가 조조보다 훨씬 우세한 병력과 자원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약점이 원소가 패한 큰 이유였다고 말할 수도는 하지만, 조조가 원소를 극복할 수 있던 것은 조조는 천자의 이름을 빌린 조정의 군대였고, 원소는 그런 조조에게 대항한 세력이었기 때문에 한 황실에 있어서 원소는 반역의 세력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추상적인 부분이지만, 당시 군주와 신하간에 존재한 유교적인 사상의 영향도 어느 정도 미친 부분이라고 봅니다.

또한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패배할 당시에도 걱정했지만, 원소가 관도대전에서 패한 이후에 갑작스럽고 급격히 몰락한 것을 생각하며 조조도 똑같은 걱정을 했습니다. 당시 조조는 친천민적인 정책을 시행한 것과, 탁류였다는 점 때문에 호족들에게 환영받지 못했고, 무식한 천민들은 아무리 조조가 잘해줘도 조조를 반대하는 호족들의 생각에 부화뇌동하는게 다반사였습니다. 관우도 마찬가지로 친천민적인 정책을 시행하면서 반호족적인 성향이 강했지만, 천민들의 관우에 대한 지지는 조조에 비해서 비교적 견고하고 단단한 편이었습니다. 또한 조조를 반대하는 호족 세력들은 조조만 몰아주면 그저 OK였기 때문에 또한 관우를 지지할만한 세력으로 충분했죠. 따라서 관우가 성공적으로 북진할 경우 조조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천자의 수레가 위치한 수도가 위협받는 것은 불보듯 뻔했습니다.
레인저
08/08/03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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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군을 수비하던 시절 주유의 맹공에 1년을 넘게 버텨낸 조인입니다. 게다가 헬프온 대장들도 우금과 서황이었구요.
제아무리 관우라도 이들이 지키는 거점을 단숨에 무너트릴수는 없었겠지요.
저도 이 부분에서 상당히 아쉬운게 오나라의 대국을 보는 안목입니다. 여기서도 손권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죠.

오나라 입장에서는 형주 전토를 차지하여 세력권을 넓히려는 의도였겠지만 만약 천하를 거머쥘 생각이 있었다면 가장 거대한 위의 세력을 그때 토막냈어야 한다고 봅니다. 오나라가 설령 형주 전토를 가져간다고 해봤자 하북과 중원을 평정한 위나라 국력의 절반도 미치지 못하는 셈입니다. 결국 장기적으로 봤을때 위나라의 덩어리가 유지되는건 촉군이 위나라와 땅따먹기 할만큼 성장하는것보다 더 큰 위협이었던 셈이죠. 그리고 결국 그것은 이릉싸움 이후 조비의 뒷치기로 검증된 사실이구요.

전 그래서 손권을 유표보다 좀 나은 수준으로 볼뿐. 그렇게 대단한 인물로 여기지 않습니다. 손권이나 유표나 자기 근거지 지키기에 급급했던건 마찬가지죠.
나이트해머
08/08/03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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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저님//오장원전에서 사마의의 문제는 제갈량이 죽치고 있는 오장원을 돌파하기 어렵고, 따라서 그 서쪽은 그냥 바라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오장원 서쪽도 위나라 땅이에요. 그런데 그 땅을 제갈량이 날로 먹으려 드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합니다. 거기다가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추수철. 옹주 서쪽지역에서 둔전을 행한 성과가 조금만 있으면 제갈량 손에 들어옵니다. 여기까지 지속되면 사마의는 버티기 어렵죠. 오장원 대치때도 관중지역 방위를 담당하던 장수들이 반발해서 황제의 칙서를 빌려 간신히 진정시켰고, 한번 더 그런 반발이 일어나면 사마의가 얼마나 버틸련지...

여기다 사마의의 저 말은 사마의가 제갈량의 목적을 몰랐다는 말 외에는 되지 않습니다. 무공으로 나와 산을 따라 동진하면 나오는 건 사마의 본대. 즉 사마의는 제갈량의 목적이 장안 일대까지 밀고 나가는 거라 생각했다는 말입니다. 그럴려면 꼭 필요로 하는 건 위군 본대의 격파죠. 그러니까 본대쪽으로 나와 공세적으로 일전을 시도할 것이다, 라고 사마의는 예상한 겁니다. 하지만 제갈량의 이후 행보는 그때의 목적 또한 이전과 마찬가지인 양주 겸병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걸 위한 오장원 확보죠. 제갈량은 5차 북벌에 나서자마자 오장원을 선점하고 그지역에 진지를 구축합니다. 그리고 이후 몇번의 단기 결전을 유도한 뒤 응하지 않자 오장원을 기점으로 그 서쪽 지역을 확보하려 하죠. 이러면 사마의는 대단히 난감해집니다. 그냥 옹주 절반과 양주를 넘겨준다 하면 제아무리 고명대신에 군부에 막대한 기반이 있고, 명문가문인 사마의라 해도 실각은 불보듯 뻔하고, 자기 영토를 아무런 싸움없이 넘겨준다는 건 말이 안됩니다. 그렇다 해도 오장원이라는, 쉽게 돌파하기 힘든 지형에 진을 치고 있는 정예 촉군을 공격한다는 것 또한 쉽지 않게 되는 거죠. 야전에 나갔다가 노성에서 제갈량에게 철저히 깨진 사마의인 걸요.

그리고 관우의 북벌시 그지역 조조측 세력은 그닥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후음의 반란이 상당히 중요하죠. 이 반란에 조조는 발목이 잡혀 한중대전에서 선수를 뺏기기도 했지만, 동시에 진압에 나섰던 조인군이 상당한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수천 남았다는 말이 있죠. 여기에 충원병력으로 우금, 방덕이 지휘하던 칠군이 도착했지만 기후를 계산한 관우의 공격에 괴멸됩니다. 위험했던 순간이죠. 조조는 이를 단순히 관우 한명이 올라오는 게 아닌 한중대전-상용확보에 이어지는 유비의 지속적 공세로 판단하고 서황을 앞세워 거의 전력을 투입해 밀어붙이는 동시에 손권까지 끌어들입니다. 삼국지 최후의 올스타 싸움이 관우 북벌전이죠. 이정도 올스타가 뛰어든 전장은 거의 없습니다.
08/08/0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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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해머님의 마지막 문장을 보면서 관우 북벌전에 등장한 장수들을 생각해보니...

위군: 조인, 서황, 우금, 방덕, 그리고 장요는 합비에서 지원해주러 왔다가 회군하니까 포함하면 안되려나요;
촉군: 관우 (대장은 한명인데 포스가...)
오군: 여몽, 육손, 우번, 반장, 손교, 장훔.

우워...더 있을거 같은데 생각이 안나서 여기까지...

한중 공방전도 나름 촉과 위의 올스타 대결인 것 같네요.

위군: 조조, 장합, 하후연, 허저, 유엽, 하후돈 등
촉군: 유비, 법정, 위연, 황충, 장비, 조운 등

마초 지못미...▶◀
나이트해머
08/08/03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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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님. 서황을 앞세워 조조가 직접 본대를 이끌고 남하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즉, 각 전선에 흩어져 있는 장수들 빼고 조조군 본대에 같이 움직이는 장수들은 다 왔다는 거~

아, 그리고 한중공방전때도 마초 뛰었습니다. 장비와 콤비로 하변에서 시선끌기를 담당했죠.
그게 끝이지만.(...)
레인저
08/08/03 19:30
수정 아이콘
나이트해머님 // 사마의는 제갈량과의 교전에서 패하기만 한게 아닙니다. 게다가 대패라고 하셨는데, 국지전과 추격과정에 있어서 패하여 손실을 본적은 있어도 전쟁에서 패하여 거점을 잃은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국지전에서의 승리는 사마의 또한 거둔바 있는데 선제기에 보면 제갈량의 후방을 기각하여 오백여급을 참수하고 천여명을 붙잡았으며 항복해온 자가 6백명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제갈량이 오장원 서쪽을 점거하고 있다고 해서 사마의가 쫄아서 못나올것이라는 님의 이야기는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오장원에 주둔하여 둔전한 것은 보급문제의 해결이죠. 물론 이것만으로도 그전까지 배고파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물러났던 제갈량에게는 큰 의미를 지니는 사실이지만, 이제야 싸움이 가능해진 수준이지, 그것만으로 위나라가 관중일대의 지닌 전력을 상회했다고 볼수는 없습니다. 나이트해머님이 말씀하시는 부분은 제갈량이 교전에서 모두 싸워서 승리했을때 전제를 놓고 이야기 하시는겁니다. 하지만 그전에 제갈량은 장합에게도 패했고 조진에게도 패했습니다. 또 다시 사마의와 교전해서 승리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히려 전력이나 쪽수, 물자...모든 부분에서 위나라의 너무나도 크게 앞서고 있기 때문에 설령 한두번 위나라가 전투에서 대패를 한다한들 그것이 곧 옹주전체의 함락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반면 촉이 대패를 하게 된다면? 제갈량이 끌고 나온 병력은 거의 나라의 전력입니다. 더이상 못싸우죠. 관중 일대 근처의 병력들만 끌어모아 싸우는 위나라와는 비교할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마의 실각에 대한 부분은 굉장히 난감하군요. 위나라 정권 내부에서 전투에서 패하여 거점을 잃었다는 이유로 실각된 지휘관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사마의는 선제가 뒷일을 부탁한 신하중 한명이었습니다. (조진, 진군, 사마의 등...) 게다가 당시엔 위나라 내부에서 사마의와 대립하는 정적 개념의 조정 신료도 없었으므로 사마의의 실각은 굉장히 뜬금없는 이야기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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