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란티노나 스타워즈 말고 이렇게 손꼽아 기다렸던 영화가 얼마만인지 모르겠네요. 극장 가는 동안 마치 신병휴가 신고 끝내고 위병소 나가는 길 마냥 두근두근했습니다. 그리고 2시간 30여분 동안 스필버그는 저를 천국으로 가는 계단으로 인도해줬고, 천국문을 두드리게 해줬습니다.
일단 스포일러 없이 가이드를 해보자면...
추천: 80년대 팝컬쳐를 향유해온 3040/ 눈이 즐거우면 돼/ 스필버그 빠와 스필버그 까 모두
비추천: 게임 영화 락 그런거 잘 몰라/ 비쥬얼보다는 스토리/ 고뇌하게끔 만드는 영화가 좋아요
무조건 특별관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일반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가 아니에요.
아이맥스든 4D든 MX든, 무조건 크고 빵빵한 곳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일단 스필버그 최고의 마스터피스는 절대 아닙니다. ET, 쥬라기 공원, 에이아이 등등에 비하면 그 정도는 결코 아니에요.
-스토리는 평범합니다. 모험을 하는 주인공 일행과 자본주의로 무장한 악당들의 대결. 이것이 가상현실과 현실을 오가며 벌어지는데, 내용이 복잡해지거나 어려워지는건 전혀 아니고,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직선적인 스토리입니다. "컴퓨터 좀 그만해라"라는 엔딩에서 주는 교훈(?)까지, 단순합니다.
-그렇지만 레디 플레이어 원은 그딴게 문제가 아니에요. 이건 [스필버그 영화와 함께 80년대 팝컬쳐를 향유해 온 세대]에게 스필버그가 주는 오르가즘입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밴 헤일런이 터져나오면서, 영화비는 이미 터졌습니다. 블루 먼데이가 나오고, 클라이맥스에서 디 스나이더의 목소리가 극장을 가득채울 때는 눈물이 다 나더군요.
Z가 레이싱에서 드로리안을 꺼낼때는 행복한 웃음이 터집니다. 티렉스가 나오고, 킹콩이 나오고, 파다완을 부르고, 지나가던 배트맨, 류, 아이언 자이언트, RX-78-2가 나오고, 아도겐을 날리면서 제 정신도 천국으로 날아갑니다.
H가 샤이닝에 벌벌 떨고, 퍽킹 처키가 튀어나오고, 25센트짜리 엑스트라 라이프가 나오면 오금이 다 저립니다.
-이 점에서 영화의 향유층이 딱 나뉠 것 같아요. 레디 플레이어 원은 [전형적인 스필버그식 모험영화에, 80년대 비디오게임 세대의 세대상을 양념으로 버무린 영화]입니다. 팝컬쳐-비디오 게임, 록, 메탈, 영화 등 기본적으로 80년대의-를 많이 접한 분일수록 레디 플레이어 원은 환상적인 경험을 제공할 겁니다. 반면 저런 팝컬쳐를 향유하지 못한 사람이나 시큰둥하신 분은 그냥 눈이 즐거운 SF 액션으로만 접할 것 같아요.
-아이언 자이언트의 활약이 상당합니다. 좋았어요. 저주받은 걸작 아이언 자이언트를 스크린으로 본 것도 가슴벅찬데, 이렇게까지 활약하다니. 기대이상입니다. 자기희생이라는 플롯 자체는 비슷했다만, "수퍼맨...." 이것까지 나왔으면 더 좋았겠지만요.
-요새 화두인 PC적인 관점에서도 한번 짚어볼만한 지점이 있더군요. 백인 남녀 주인공, 베스트 프렌드는 흑인 여성, 쏠쏠하게 활약하는 동료 둘은 아시아계인데다가 그 중 한명은 심지어 11살짜리 꼬마. 구색 맞추려고 기계적으로 만든 것 같다는 느낌도 있지만, 저는 눈에 거슬리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민감하지 않아서 그럴수도 있겠네요). 일단 저런 인종적인 문제는 아예 눈에 들어오질 않아요. 어차피 오아시스로 들어가면 아무 의미가 없어지거든요. 그리고 애당초 영화가 너무 재밌어서. 일단 영화를 잘 만드는게 우선이다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아이오아이를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은... 이제 4년남았다 얘들아
-게임의 마지막에서 할리데이가 이야기하죠. "지금까지 내 게임을 플레이해줘서 고마워."
묘하게 스필버그를 닮은 것 같은 할리데이의 모습에서, 스필버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리더라구요.
"내 영화들도 새로운 세계를 많이 만들었지? 내 영화들을 즐겨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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