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8/03/21 04:20:51
Name 기억의파편
Subject [일반] 축가 그리고 방구 (수정됨)
`이 정도면 뭐 나쁘지 않게 불렀지..`  라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우리들은 고등학교 축가`계` 멤버였다. 친구 한명,한명의 결혼식마다 다 같이 축가를 했다.
멤버들 중 `노래방 1절의 제왕`이라 불리었던 나는, 언제나 노래의 하이라이트 파트를 떠맡곤 했다.
나는 분명 1절`만`의 제왕이었다는걸 연습때마다 깨닫고 파트에 대해 항의해보았지만,
그나마 축가가 노래같으려면 그 파트를 내가 불러야 한다는, 친구들의 평소와 다른 논리적인 말에 수긍할수 밖에.
그리고, 이번에도 나름 만족스러웠다. 친구들이 불러준다는 의미가 중요하지 뭐.

하지만 결혼식이 끝난 후 식당에서, 신랑인 내친구와 어느 손님이 하는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축가가 별로더라. 나한테 축가 부탁하지 그랬어. 내가 잘 부르는 사람 알고 있는데."


내 동생은 나와는 달리 키도 크고 잘생겼다. 운동도 잘한다.
몸도 호날두 스타일이다. 어깨는 좀 좁지만, 탄탄한 근육질 몸이 균형을 잘 이루었다.
성격도 좋아 친구도 많고, 선후배도 많았다. 어른들도 다들 이뻐했다.
부모님은 나에게 게임과 관련된 유전자만 주신 것 같다. 아, 탈모 유전자도.
하여간.. 동생은 나보다 위닝을 못한다는 큰 단점이 있긴 했지만, 그것 빼고는 내가 봐도 참 괜찮은 놈이다.
얘도 이제 나이가 나이인지라 참한 처자 한 명을 집에 데리고 왔다. 결혼을 하겠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축가를 부탁했다.
나의 계속된 완곡한 거절에도, 꼭 형에게 축복을 받고 싶단다. 다 큰놈이 애교까지.
저번 축가의 트라우마가 떠오르는 내가 참 못나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위닝을 켰다. 앉아라 동생아.


중학교 친구들과의 술자리 중에 축가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돌아온 대답들은,
노래가 문제가 아니라, 니 얼굴이 가장 문제라는 둥,
원빈 얼굴이었으면 입으로 방구를 껴도 환호받을 거라는 둥,
엉덩이로 노래해 유튜브의 화제 동영상에 올라가 보는 것도 좋을 거라는 둥...
이것들은 평소처럼 개소리 만담만 지껄이다가 자연스레 다른 화제로 넘어갈 뿐이었다.


우리 집 화장실 변기 옆에는 스뎅으로 된 세숫대야가 있다.
요즘 세상에 무슨 세숫대야가 필요한가 싶었지만, 엄마가 속옷 삶을 때 쓰기는 쓰는 것 같았다.
왜인지 꼭 화장실에 있을 필요는 없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세숫대야라고. 위치는 꼭 변기 옆이 고정이었다.


어제 퍼 마신 술덕분인지, 오랜 변비 끝에 크고 거대한 그`분`들을 영접할 수 있다는 신호가 왔다.
변비는 지방 다이어트를 시작하며 오게 되었다. 뭐.. 내 변비의 원인은 별로 안궁금들 하시겠지만, 난 말하고 싶은걸.
보통 `그분`들이 전설이면, 지방 다이어트는 `그분`들을 원시고대전설로 바꿔놨다. 내 원시 복바도 이것보단 빨리 나왔었는데.
하여간 오랜만에 온 신호에, 기대감에 벅차 얼른 바지를 내리고 힘을 줬다.
허나 크고 거대한 방구만 나왔다.


문득, 변기 옆 스뎅 세숫대야는 방귀 소리를 받아 크게 웅웅 거렸다.
금속제 울림소리가 길게 울려, 참 듣기 좋은 소리를 내었다.
비록 시작은 비천하였지만, 끝은 청아하고 아름다웠다고 해야되나.
오래도록 울렸다.
왜인지 친구들의 개소리가 생각났다.


내일 동생 결혼식장에 문의를 해보아야겠다.
혹시 긴 에코 가능하냐고.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Zoya Yaschenko
18/03/21 07:48
수정 아이콘
기저귀 필착 바랍니다.
안에 탈취제 하나 넣어서요.
흘레바람
18/03/21 07:50
수정 아이콘
피지알에 어울리는 글이네요
세인트
18/03/21 10:09
수정 아이콘
명문이다...
Maiev Shadowsong
18/03/21 10:13
수정 아이콘
모니터에 방향제 달아놓고 왔습니다.
ChojjAReacH
18/03/21 10:14
수정 아이콘
이것은....!
쭌쭌아빠
18/03/21 10:53
수정 아이콘
읽은 장소까지 화장실...
완벽 그 자체
마루하
18/03/21 11:45
수정 아이콘
피지알이기에 완성된 명문이네요! 추천 꾸욱!
기억의파편
18/03/21 12:52
수정 아이콘
내용에 비해 제목이 너무 점잖은지 조회수가 안나오는군요.
그래서 피지알러의 본능을 자극하기 위해 제목에 `방구`를 넣어 보았습니다.
과연 조회수는 오를것인가.
감전주의
18/03/21 14:16
수정 아이콘
AI가 옆에서 귀뜸해 주던가요? 성공하신 듯 합니다.
RookieKid
18/03/21 13:35
수정 아이콘
흡흡하....
켈로그김
18/03/21 13:49
수정 아이콘
원한다면 들려주지... 크크크;;
철철대왕
18/03/21 17:34
수정 아이콘
코를 막게하는 세숫대야의 진동이 느껴지는 명문입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76304 [일반] 신안 앞바다서 190여명 탄 여객선 좌초 [30] 진인환14674 18/03/25 14674 3
76303 [일반] 새 시대의 첫 물결 꿈꿨던 구시대의 막내, 노무현 [74] YHW12634 18/03/25 12634 10
76302 [일반] 부정적인 감정 다루기 [14] Right7631 18/03/25 7631 24
76301 [일반] [그알]염순덕 상사 피살사건 [14] 자전거도둑20456 18/03/25 20456 3
76300 [일반] 전쟁사로 보는 서희의 담판외교(feat.허열사님)(스압) [15] 치열하게11607 18/03/25 11607 1
76299 [일반] 한국당 "경찰은 미친개", 경찰"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 [35] 무가당11674 18/03/25 11674 3
76298 [일반] [펌]배우 곽도원씨가 이윤택 피해자 일부에게 실제로 협박받았다고 합니다. [118] 삭제됨18738 18/03/25 18738 41
76297 [일반] 중소기업 노동 현실을 보여주는 9년 전 기획기사. 노동OTL [7] 드라고나8019 18/03/25 8019 0
76296 [일반] 위헌 판정을 받았던 군소정당 등록취소 법안이 부활하게 될까요? [15] Misaki Mei5788 18/03/25 5788 2
76295 [일반] 오직 진실만이 가득했던 공방전.. [44] SkyClouD11944 18/03/25 11944 5
76294 [일반] Imf이후 최대 청년실업의 민낯 [159] 난될거다15690 18/03/25 15690 10
76293 [일반] JTBC는 JTBC로 반박 가능하다??? [19] 내일은해가뜬다13295 18/03/25 13295 5
76292 [일반] 2017년은 길 이었을까요. 흉 이었을까요.. [4] 가치파괴자7062 18/03/25 7062 3
76291 [일반] 해밀턴 더 뮤지컬(Hamilton the musical)-힙합으로 색칠된, 미국 건국사-01-(데이터주의)) [7] Roger10020 18/03/25 10020 4
76290 [일반] 일반회원으로 돌아갑니다. 감사했습니다. [45] 10378 18/03/25 10378 46
76289 [일반] 휴식 제대로 취하고 계신가요?? [9] 장바구니7083 18/03/25 7083 3
76288 [일반] 티브로드를 통한 반성과 깨달음 [8] style7778 18/03/24 7778 4
76287 [일반] [단상] 푸틴에게 가장 큰 위협은 다름 아닌 청년들 [12] aurelius10168 18/03/24 10168 0
76286 [일반] 흔하디 흔한 제주도 솔플 여행기.jpg [1] [25] 현직백수9750 18/03/24 9750 26
76284 [일반] 역시 존버가 답이었습니다. [15] 삭제됨12714 18/03/24 12714 20
76283 [일반] 침묵하는 비겁한 친구 이야기 [31] VrynsProgidy13235 18/03/24 13235 7
76282 [일반] 문통의 사과메시지 제안에 난색을 표한 베트남 정부 [43] 히나즈키 카요17465 18/03/24 17465 5
76281 [일반] [뉴스 모음] 사냥개, 들개, 이제는 미친 개 외 [38] The xian14748 18/03/24 14748 3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