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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02/07 09:32:02
Name 담배상품권
Subject [일반] 동아일보의 한 기사를 읽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20&aid=0003126908
[글로벌 포커스]日신입사원 “출세 관심 없어”… “임원 돼라” 하면 야만인 취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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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일문학을 접하게 되어 일어일문과에 진학해 대학 생활동안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비꼬는 의미가 아니라 정말입니다.) 재주라고 할만한 것이 일본어밖에 없어 일본으로 취직하게 됐습니다. 딱히 취업 활동도 대단히 열심히 한 것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좋은 직장에 가게 된 것은 아니고 그냥 대졸 평균 임금에 맞추어 주는 곳으로 가게 됐죠.

일본으로 취직하고싶다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면접장에서야 염치불구하고 사실 대학 진학하기 전부터 글로벌하게 일해보고 싶었다는 이거 면접관이 믿어주긴 하려나 싶은 구라를 양념까지 팍팍 쳐서 해댔습니다마는 영어 공부도 열심히 안해서 토익점수도 변변찮은데 설마 구라를 믿진 않았겠죠. 짧은 유학 생활에서 남의 나라 사는게 얼마나 힘든지 알고나니 더욱 가기 싫었습니다. 한국 기업의 노동강도도 전 세계에서 꼽힐만 하지만 일본의 노동강도도 만만찮지요. 그럼에도 일본 기업에 취직해 다음달 즈음에 취업비자가 나온다고 하니 출국까지만을 남겨두기까지에 이르른 이유는 그저 백수가 되어 놀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지방대 인문대 출신인 제 스펙에 한국 기업은 이력서도 통과 못할게 뻔했고 취준생이 될 자신이 없었습니다. 돈도 필요하고요. 그리고 그 빌어먹을 자기소개서 쓰기에 지친것도 컸습니다. 자기소개서를 만든 양반은 아마 오래 사실겁니다. 그래서 일본 기업에 취직하게 됐습니다.

만약 제가 입사할 기업의 임원들이 기사에 언급되는 일본 임원들처럼 '한국인들은 헝그리 정신이 있어서' '일본 젊은이들이 잃어버린 진취적인(?) 기상을 가진 인재를 싼 임금에 뽑아먹을 수 있으니까'라는 이유로 저를 뽑은것이라면 저는 아마 두달도 버티지 못할겁니다. 제 입장에서 출세에 몸바쳐 회사에 몸바쳐 내 일신을 불사르겠다는 정신론은 비합리적이니까요. 일본의 젊은 세대들이 회사에 열성을 바쳐 출세해서 임원이 되어야지 하는 사람들을 야만인이라고 보는 것은 젊은 세대 입장에서는 지극히 합리적입니다.

그렇기에 기사를 쓴 서영아 특파원이 기사를 통해 대변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합리와 저의 개인의 합리는 충돌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윗사람의 입장에서 아랫 사람들이 '헝그리 정신' '진취적(?)인 기상'을 가져주어야 써먹기 편하니까요.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이직률이 30퍼센트나 되고 해외 지사에 발령내면 사표를 던질 수 있다니!

아버지들의 삶을 보니 회사는 가족이 될 수 없었고, 출세는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은 바늘구멍이었죠. 거기에 인생을 걸었다가 실패한 많은 사례들을 보았고, 그럼에도 매달려야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이제는 압니다.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데 두려움을 가지게 된 것은 아버지들이 실패했어도 썩은 동앗줄을 잡고 버텼던 이유가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그들의 합리와 저 개인의 합리에서 어떤 타협점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더군요. 과연 가능하긴 한걸까요?

이제 저도 아버지들처럼 사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과연 타협점을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삶과 저의 삶이 같지 않은것은 알지만 저는 이제 그들의 삶과 엮여야 합니다. 기사가 대변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하나하나씩 반박해줄 순 있습니다. 사토리/유토리 세대는 그냥 돈이 없어 소비를 못하는 것이고, 출세는 실패 가능성 높고 회사에 인생 쏟아봤자 남는건 골병이라고 반박해보았자 헛짓인것을 아는데, 그들의 논리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걱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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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eign worker
18/02/07 09:48
수정 아이콘
승진 못하면 집으로 보내버리는 생존경쟁을 시켜야 윗사람들 말 잘 듣고 몸이 망가지든 말든 일만 파고들겠죠. 언론, 특히 조중동이 강자와 기득권의 논리를 내세우는건 흔한 일이니까요.
일본에 가본 적이 없으니 거기서 일하는 것이 어떤 건지 얘기할수는 없지만, 해외 생활도 하다보면 매력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귀국 안하고 버티는 사람들이 많죠. 그냥 일하고 적응하다보면 경력 인정받고 승진하고, 다들 그렇게 사는 거죠.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고, 가족이 생기면 경제력이 필요하니까 죽어라 버티는거지, 승진에 목매는 권력 지향적(?)인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취직 축하드리고, 너무 걱정할 필요 없으니 즐거운 일본 생활 되시기 바랍니다.
에스터
18/02/07 09:53
수정 아이콘
한국도 비슷하겠죠.
대기업 잠깐 다녀본입장에서, 신입직원으로 느끼는 불합리함은 윗사람들이 살아남겠다고 아랫사람 갈아넣는 그런 것이 제일 컸습니다. 그네들 나름대로의 생존경쟁이겠지만, 아랫사람 보기엔 탱자탱자 노는놈들이 일은 죄다 밑으로 던지는걸로밖에 안보여서.
무가당
18/02/07 12:28
수정 아이콘
일본이 사무직을 많이 뽑지 않는 것으로 아는데, 전공을보니 사무직으로 들어가신 것 같네요. 일단은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일본이 한국 청년을 좋아하는 건, 그나마 문화 격차가 적고, 근면하고, 수준 높고, 외국어 잘하고, 해외 발령을 즐기는 성향 때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일본처럼 보수적인 문화에서 한국 청년 정도로 적합한 외국인 노동자는 없죠. 미국/유럽의 엘리트들이 일본 신입으로 올 가능성의 거의 없고, 그거 제외하면 중국, 동남아 쪽인데 다들 일본 전통의? 노동자 상에는 어울리지가 않죠. 그나마 한국이 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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