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보는 경제정책의 실패나 기초경제학적인 가정(예를 들면 합리적인 경제인 같은)을 통해
경제학에 대해 회의를 가지시는 분들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물론 이분의 생각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닙니다.
애초에 학문이라는 것 자체가 불완전한 것인데에다가 인간이라는 이상한 생물을 다루는 사회
과학이라는 학문이라는 것은 과학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기 민망한 것이니까요. 또한 상당히
많은 수의 경제 정책 실패의 원인은 경제학이라는 학문의 이런 태생적인 불완전에서 비롯된 것
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경제정책의 실패의 요인 중에서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 역시도 비경제학적이라
는 것 역시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럼 왜 이런 비 경제학적인 요인이 발생하는 것일까요? 여기에 대해 여러가지 설명이 가능합니다만,
저는 정책 결정자라는 족속들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정책 결정자라는 족속들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주로 정치인이나 관료, 그리고 학자로 구성되어 있습
니다. 즉 최고의 경제 정책을 만드는 것을 지상 목표로 하는 기계가 아닌 겁니다. 이들은 다양한 정체성
과 특성, 성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러한 최고의 경제 정책을 만든다는 목표 역시 이들이 가지고 있
는 여러 목표중 하나에 불가합니다.
정치인을 예를 들어 보도록 합시다. 정치학자들이 지적하기를 많은 경우 정치인이 가지는 최대 목표는
선거 승리입니다. 좋은 경제정책을 만든다는 것은 지지자를 끌어모으는 수단 중 하나인 평판을 좋게
만듭니다. 또한 상황에 따라서 많은 정치 헌금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선의 경제 정책 수립이
언제는 선거 승리를 유리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보도록 합시다. 정치인 출신의 정책 결정자는 물가 상승기에 금리를 올리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분명 금리를 올리는 나은 상황에서 정책 결정자들은 이를 회피해 버립니다. 안정기조
에서는 유권자들은 체감상 돈이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느껴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는 불황처럼 느껴지고 이에 분노한 유권자들은 다음 선거에서 이 정책 결정자들을
선거에서 심판해 버립니다. 아니면 지지율이 하락해서 국정 운용에 부담을 느끼게 만들어 버리던가요.
그렇기 때문에 경제 자체는 선효과가 나지만 티 안나고 오히려 인기 없는 정책은 정책 결정자들은
절대 선호하지 않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런 정책을 펼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상황이 많이 나쁘
다는 것을 의미합니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럼 관료의 경우에는 어떨까요? 관료의 경우에도 정치인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좋은 경제 정책
이란 다른 목표를 위한 수단입니다. 좋은 경제정책이 평판은 좋게 하거나 공적을 늘린다거나 하는 데 도움
이 되거나 자신의 부서의 자원과 인력을 늘리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언제나 좋은 경제 정책이 관료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게 아닙니다. 이 때 관료도 정치인과 똑같은 행위를 합니다.
한마디로 관료든, 정치인이든 학자든 간에서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경제 정책이라는 수단을 자신에게
유용한 방향으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들이 추구하는 방향이 언제나 같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충돌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이 때 등장하는 게 정치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가진 힘(권력, 여론, 법률)같은 것을 통해 서로 충돌
하거나 협력하고 서로 협상을 하거나 강제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 시킵니다. 이러한 게임을 통해 경제 정책
이라는 것이 만들어 집니다. 결코 공공에 최고로 효율적인 이상적인 경제 정책을 만들겠다는 사명 같은 것
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경제학은 이 게임에서 자신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
한 하나의 수단으로 존재합니다.
결국 이런 관점에서 경제 정책을 보면 결국 경제 정책의 실패는 전적으로 경제학의 책임이 아니게 되는 것
입니다.
덧붙이지면 이런 경제 정책 결정 과정에서 문제는 민주주의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독제나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지도자의 취향이라는 미학적인 문제까지도 경제 정책 결정 과정에서 포함됩니다.
예를 들면 70년대 박정희의 중화학 공업 정책 역시 그러하죠. 박정희의 취향이 없었으면 중화학 공업 발전
을 그렇게 심하게 추진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나하면 경제 상황은 그런 짓하기에는 너무 최악이었거든요.
오일 머니나 국내 경제 호황 때문에 너무 돈이 많이 풀려 버린 상황에서 오일 쇼크 같은 악재가 겹쳐 버렸습니
다. 한마디로 최악의 물가 상승률이 발생한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중공업 한다고 추가적으로 돈을 더
부어 버렸으니 그 쇼크는 상당히 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이 후유증은 전두환 시대에 겨우 해결 할 수 있었으며(아이러니 하게도 전두환이 경제에 무지했기 때문에
학자 중심으로 경제가 운용될 수 있었습니다.) 최종적으로 김대중 정부 와서야(imf 때문에 구조조정) 중공업
화에 완전히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다른 예로 김일성의 북쪽이나 스탈린의 경제 발전 역시 경제적 현실 보다는 역시 지도자의 취향이 비롯된
경향이 컸고, 무리한 정책 추진은 많은 후유증을 남긴 건 다들 아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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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지적입니다. 덧붙이면, 사회가 경제학의 모델처럼 완전히 표준화되어 있지 않고, 매우 변덕스럽기 때문에, 경제학과 같은 과학이 목표로 하는 '예측'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어쩌면 사람들이 경제'학'을 공격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과학의 목표가 오로지 예측인 것도 아닐뿐더러, 글쓴님의 말씀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들이 많이 개입되기 때문에 그러한 비판은 방향성을 잃습니다. 경제학의 합리적 모델은 우리가 '결코 합리적이지 않은' 실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일종의 지침이 된다고 할 수 있겠죠.
현실은 결코 경제학이 그리는 것처럼 이상적이지 않다는 비판은 이념형적 방법론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서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러나 경제학의 모델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주장한다면 그러한 비판이 의미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