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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8/07/14 22:12:58
Name 완전연소
Subject [일반] 어느 변호사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나오는 등장인물은 실제 인물과는 하등의 연관이 없습니다.
다만 로스쿨에 관련된 일부 내용은 현행법령 및 각 대학의 자료 등을 참고해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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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르르륵..

머리맡에 놓은 핸드폰이 울린다.
새벽 4시 30분. 겨울이라 아직 바깥은 어둡다.
몸이 젖은 솜뭉치처럼 무겁지만 일어나야 한다. 신문을 돌리러 나갈 시간이기 때문이다.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인 무현이는 2년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작은 공장을 운영하셨는데 그만 사기꾼에게 속아 전 재산을 날리고 자살을 하셨다.
공장과 집을 팔아 빛을 갚고 나니 서울에는 작은 전세조차 얻을 돈도 남지 않았다.
그래서 무현이는 어머니와 지방의 작은 도시에 내려와 살게 되었다.
어머니가 평일에는 식당에 다니시고, 일요일에는 가사도우미로 일하시지만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사는 정도라 무현이도 돈을 벌어야 한다.

다행히 무현이네 고등학교는 상업고등학교로 전교생의 50%가량이 장학혜택을 받는 곳이다.
무현이는 잘하는 편이어서 늘 장학금을 받아서 학비 걱정은 없었지만,
그래도 자기 용돈 정도는 스스로 벌어야 했기에 아침마다 신문을 돌리는 것이다.


신문을 돌리다 보니 며칠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무현이네 학교에서는 매주 토요일 모교출신 선배들을 초정해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있다.
그런데 지난주에 초청된 사람은 검사였다.

그 선배의 이름은 선화.
상고를 졸업하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다 법조인에 뜻을 두고
학원에서 칠판 닦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결국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검사가 되었다고 한다.

평소에 법조인을 꿈꿔 본적이 없는 무현이였는데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검사란 직업에 대해 흥미가 생겼다.

‘나도 할 수 있을까?’

사기꾼들을 몽땅 잡아 아버지와 같이 불행한 일을 겪는 사람이 더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무현이는 검사가 되기로 꿈을 정했다.


원래 머리가 똑똑하고 집중력이 좋은 무현이였기에 공부에 전념하자 성적은 계속 올랐다.
반에서 상위권이던 성적이 전교에서 상위권이 되었고 어느새 전교 1등을 하게 되었다.
실업계전형제도를 이용하면 국립s대학교도 노려볼 만큼 성적이 오른것이다.



드디어 수능날.
무현이는 최선을 다해서 시험을 봤지만 재수없이 한번에 붙어야 한다는 조바심에 평소만큼
실력이 발휘되지를 못했다.

결국 국립s대학교에 떨어진 무현이는 등록금이 비싼 사립대 대신 4년간 전액 장학금을
조건으로 그 지역에서 가장 좋은 국립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생이 된 무현이는 매우 바쁜 삶을 살아야만 했다.
일단 1학년을 마치자마자 군대에 자원입대해 군문제를 해결했다.
그리고 과외를 3개씩이나 하면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해결이 가능했지만 기타 학비 특히 로스쿨을 준비하기 위해 들어가는
돈이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방학에 서울 강남에 있는 학원에 가서 강의를 들으려면 1달에 100만원이 훌쩍 넘는 돈이
들었고, 동영상 강의도 1달분이 60만원이나 했기 때문이다.
3개나 되는 과외를 하고, leet준비와 어학공부도 하면서, 학점을 잘 유지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무현이는 초인적인 자기절제로 모든 난관을 극복해 나갔다.
그리고 대학을 마치고 leet 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한다.
비록 논술에서는 좋은 점수를 얻지 못했지만 언어이해와 추리논증에서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 전체 15000여명의 응시자 중 300등 안에 드는 우수한 성적을 받은 것이다.

s대 로스쿨에 지원하기는 아슬아슬 했지만 그 외 로스쿨에는 충분히 합격가능한 점수였다.
무현이는 가군에서 s대 로스쿨을 나군에서 k대 로스쿨을 지원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s대 로스쿨은 워낙 쟁쟁한 고수들이 많이 몰린터라 안타깝게 떨어지고 만다.
미처 제2외국어에 신경을 쓰지 못한 점과 사회봉사활동이 전무했던 점이 큰 패인이었다.

그리고 k대 로스쿨은 1차 전형은 무난히 통과하나 2단계 면접에서 떨어진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분명히 무현이보다 leet 점수와 학점이 모두 안좋은 그의 대학동기는 붙었는데 말이다.
그 동기의 아버지가 두나라당 출신의 전직 국회의원이라서 그런걸까?
면접의 비중이 높고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서 어떻게 따져볼 도리가 없다.


어쩔 수 없다. 대학도 재수를 하지 않았건만 로스쿨은 재수를 해야한다.
결국 무현이는 과외를 4개로 늘려서 재수를 하고 작년보다 못한 1000등대의 leet 점수를 받고만다.
작년의 실패가 뼈아팠던 무현이는 평소에 소신을 굽히고 점수에 맞춰서 로스쿨에 지원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빨리 어머니를 편히 모시고 싶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가 고등학교를 나온 지역의 국립로스쿨.
학비도 저렴한 편이고 집에서 가까워서 따로 하숙비가 안든다는 큰 장점이 있다.

그리고 드디어 합격자 발표날. 예상대로 무현이는 p대 로스쿨에 무난히 합격하게 된다.
합격의 기쁨도 잠시고 로스쿨 학비가 걱정이다.
p대 로스쿨은 국립이라 학비가 저렴한 편이긴 하다.
그렇지만 2009년 평균 3000만원가량으로 시작된 로스쿨 등록금은 벌써 몇 년째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금은 가장 싼 국립대 로스쿨의 경우에도 3000만원을
넘는게 현실이다. 3년이면 최소 1억원이 필요하다.

비록 무현이가 성적우수로 1년 장학금을 받았지만 나머지 2년치 학비 7000만원은
꼼짝없이 내야한다.
그렇다고 바쁜 로스쿨 공부를 하면서 대학때 처럼 알바를 하기란 요원한 일이다.
결국 무현이는 학자금 대출을 선택한다.
로스쿨 합격생을 상대로 하는 비교적 저리의 학자금 대출이다.

‘나중에 법조인이 되면 어떻게든 해결이 가능하겠지.’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 어느새 로스쿨을 졸업할 때가 왔다.
변호사 시험이 남아있긴 하지만 80%의 합격률이라 크게 걱정은 안된다.

문제는 변호사 시험 이후에 취직이다.
법조일원화로 인해 검사가 되려면 5년이상 변호사를 해야 한다.
그런데 로스쿨 졸업생이 로펌수에 비해 많다보니깐 취직이 매우 어려워졌다.

물론 집에 돈이 아주 많아서 처음부터 서초구에 변호사 사무실을 차릴 수 있는 복받은
친구라면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겠지만, 무현이는 그런 복이 없는걸 어쩌겠나?

게다가 서울의 주요 로펌들은 이미 몇몇 로스쿨과 끈이 닿아 있다는 소문이다.
무현이가 가려다 실패한 s대 로스쿨은 아시아 최고라는 킹왕짱 로펌과
k대 로스쿨은 2위인 아고라 로펌과 연결되서 선배들이 후배들을 끌어주는 것이다.

자기가 나온 로스쿨의 위상이 높아져야 변호사로써의 가치가 올라가니깐 이러한
끌어주기는 어쩔 수 없다.
무현이네 로스쿨도 끈이 닿아 있는 로펌이 있긴 하지만 아직 소규모라서
모든 졸업생을 수용하기 힘들다고 한다.
졸업생 중에도 빽있는 얘들이 제일 먼저 들어가고 남은 자리는 성적순으로 치열하다.

우여곡절 끝에 로펌에 입사했지만 봉급이 생각보다 훨씬 박봉이다.
3년의 교육기간이 부족해서 2년간 실무수습을 받도록 법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2년의 실무수습 기간동안은 봉급이 50%도 나오지 않는다.

이제 벌써 나이가 서른이다. 어머니는 아프셔서 더 이상 일을 못하신다.
그리고 등록금으로 빚졌던 7000만원은 이자도 내기 버거운 현실이다.
돈을 못갚으면 파산이고, 파산을 하면 변호사 자격이 취소된다.
어떻게 딴 변호사 자격증인데.. 파산만은 절대 안된다. 절대.


그러던 어느날, 무현이네 집에 누군가가 찾아왔다.
선한 인상의 50대 사내는 무현에게 돈을 벌 생각이 없냐고 물어본다.

"서류 하나만 만들어 주시면 1억원을 드리겠습니다."

이건 사기다. 무현이는 알고 있다.
변호사가 되기 전부터 이건 알고 있는 수법이었다. 바로 아버지가 당한 수법.
서류를 위조해서 공증을 받은 후 그걸로 사기를 치려는 것이다.

‘야 이 X자식아.'

욕을 하고 싶은데... 말이 안나온다.
아버지, 어머니 생각이 나면서 눈물만 나온다.

“요새 어렵다던데... 이거 한방이면 빚 다 갚고 깨끗하게 시작할 수 있어요.”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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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5762번 글에서 로스쿨에 관한 의견을 나누다 평소에 제가 생각하는 로스쿨에 관한 문제점을 뻘소설로 각색해 봤습니다.

사법개혁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목표이나 과연 로스쿨이 그에 적합한 수단일지는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판중심주의의 형사소송법 개정, 국민참여재판의 신설, 국선변호인을 모든 피고인으로 확대,
모든 피의자에 필요적영장실질심사 등 바람직한 수많은 사법개혁이 노무현 대통령 시절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정도의 개혁만 꾸준히 진행되도 머지않아 바람직한 사법개혁이 어느정도 완성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학법통과의 대가로 날치기 통과된 로스쿨법은 수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단지 사법개혁을 위한 수단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로스쿨이 불러올 수 있는 더 큰 부작용들에 대해서는 논의가 활발하지 않습니다.

본래 로스쿨제도는 판례법 중심의 미국에서 발달된 제도이고, 우리나라와 같으 대륙법계 국가 중에 이를 채택했던 국가로는
독일과 일본이 있습니다.
그런데 독일은 최근 로스쿨을 포기하고 다시 원래의 제도로 돌아섰고, 일본은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 아직도
사법시험과 로스쿨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미 로스쿨 시행이 예정되어 있지만, 어떠한 문제점이 있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관해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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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_'Love'
08/07/14 22:24
수정 아이콘
확실한건...

정말...개천에서 용나기는 불가능해 진다는 거군요... 등록비가...참..
Who am I?
08/07/14 22:25
수정 아이콘
진입장벽이 되어버리겠지요....먼산-

엄여사님이랑 농담처럼 그러지요. 앞으로는 애들이 어설프게 공부 잘하는게 부모를 못살게 만들거라고..으하하하;
굳이 로스쿨뿐만 아니라..의대도 공대도, 하다못해 모든 대학들이 말이지요.
율리우스 카이
08/07/14 22:32
수정 아이콘
전 로스쿨 정말 이해가 안되요.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시작하려는 건지..., 현 법조계 중진들이 자기 자녀들 쉽게 법조인력 되게 만드려고 만드는 거라고밖에는 생각이 안되네요. 노전 대통령도 자기가 볼 때 손대야 할 부분이 많은데 자기관할이 아니라서 터치를 못했다고 했죠. 기존 사법고시 제도가 전 그래도 더 좋은 제도라고 확신합니다. 다른 분들은 어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풀업프로브
08/07/14 22:34
수정 아이콘
제가 노 전대통령의 가장 잘못한 정책으로 꼽는게 바로 의학,치의학,한의학,법학 전문대학원제입니다.(곧 약학까지 끼겠네요)
예전에 여기 PGR에서 의학전문대학원제를 두고 신랄하게 비판한 글을 올렸던 적도 있습니다.
도대체 왜 도입했는지 이해할 수도 없고, 도입한 과정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으며, 결과도 처참하리라 생각합니다.
다른 정책들은 모르겠습니다만.....이 정책만은 정말 아닌 것 같습니다.
펠릭스~
08/07/14 23:08
수정 아이콘
이 부분은 노무현이 실책이라고 하기도 하고
당시 드셌던 기득권층에 굴복한거라고도 합니다만

노무현은 국회 과반수 차지하고 그 힘을
이딴거 해결 안한건 좀 문제가 있었다고 봅니다.

원칙보단 전 결과를 따지는 주의라서 그런지
결론적으로 노무현은 송양지인 꼴을 많이 냈는데
이 케이스도 그런 케이스 였다고 봅니다.
꿈꾸는사나이
08/07/14 23:16
수정 아이콘
저희 학교는 거의 1000만원하더군요...

이거참......
율리우스 카이
08/07/14 23:23
수정 아이콘
펠릭스~님//

송양지인이... 그.. 강 건너는 상대 나라(무슨 나라죠?) 군대 건널때까지 기다려 준.. 그 사람 얘기 맞죠?
wish burn
08/07/15 00:14
수정 아이콘
그나마 신분상승의 기회가 있는게 전문직인데..
이들 직종을 대학원으로 바꾼건 참...
율리우스 카이
08/07/15 00:20
수정 아이콘
wish burn님//

동감, 계급고착화를 위한 노골적인 시도죠. 이런 정책이 일반 대중들의 큰 저항없이 넘어가는 이유는, 전체적으로는 계급고착화에 기여할지 몰라도 , 적어도 '나'에게는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 믿는 순진한, 혹은 나이브한, 혹은 낙관적인 믿음 때문이라고 하면 큰 착각일까요? 마치 부동산 가격이 떨어져야 한다는 것에는 모두들 동의하면서도, 내가 살집, 내가 살고 있는 집, 내가 사는 지역의 부동산 가격은 오를 것이며 올라야 된다고 믿는 것처럼요. 쩝.
08/07/15 00:32
수정 아이콘
율리우스 카이사르님// 송양공의 고사가 맞습니다.
뻘짓하다가 다 날려먹고 , 전혀 맞지 않는일에까지 예를 차리는건 웃긴일이다를 제대로 보여준 고사지요.

뭐 이번경우는 예를 차리기 이전에 권력이 센 대신들이 바락바락거려서 밀려버린꼴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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