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7/03/03 01:25:45
Name 연필깍이
Subject [일반] 나란 인생은 어찌해야 할까..(2)
아래 올라온 글 읽고 감정이입해서, 적당한 술기운을 빌려 씁니다.


그래, 그와 처음 입직 교육을 받던 그날이 기억난다.

멘토, 멘티 교육을 받으며 내 멘티였던 사수는 스스로를 독사라 표현했고 나는 깡다구라 표현했다. 서로의 성격유형은 독불장군. 교육자도 쉽지 않은 관계일거라 했다.

하나 차이가있다면 성격. 사수는 흔히 말하는 똑부(똑똑 부지런) 스타일이었다. 지금와서 돌아보면 나는 멍게(멍청 게으름) 스타일이려나.
에이스 집단으로 평가받는 기획실에 신입부터 발령받은건 축복이자 저주였다. 모르는 사람들이야 '기획실'이란 네이밍에 부러움부터 보냈지만 실상은 '겨우 이것도 못하냐'라는 부담감이 가득한 자리였고 사수는 알아서 배우라는 입장이었다.

그가 수수방관이었던건 아니다. 그는 사내에서 인정받는 사람이었고 무슨소리를 해도 내게는 사리에 맞는 말들이었다. 문제는 한번 알려주고 난리치는 스타일이었다는거지. 좋아. 내가 기억못하고 덜렁댄거? 백번이고 이해할수 있었다. 까짓거 신입이 틀리고 까일수있지뭐. 그리고 사수도 내내 말했다. 이 팀은 신입이 와서 배우기엔 너무 업역이 넓은 곳이다.

3년이 흘렀다. 누군가 그동안 뭘 배웠냐,라고 물어보면 딱히 할말은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고 마냥 허송세월은 아니었던게 뭘 물어보면 대답은 나오는 사람이 되었다.
문제는 어느샌가 '질문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사람이 되어버렸다는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건 알수가 없는일이다. 사수는 물어보면 갖은 질문과 지식으로 나를 바보로 만들었다. 사소한 질문조차 옳은 질문으로 다가가기위해 노력해야했고 옳은 질문 속에서 조차도 배웠던것 해왔던것의 토씨하나를 대답 못할까 온갖 준비를 다해서 물어봐야했다. 틀리는것? 세세한것을 기억 못하는것? 그래. 다 내 잘못으로 이해했다.

그러다 어느날 문득 깨달았다. 아. 이 인간, 자신의 실수마저 내 실수로 넘기고 있구나. 윽박지르고 날카로운 눈빛 날리면 내가 움츠러든다는걸 알아버렸구나.

그래, 오늘 일이었다. A, B중에 뭐가 맞느냐는 전화에 온갖 눈치를 보며 '....A아닐까요오...?'라 대답했고, 이를 듣던 그는 B라 해야지! 라며 지청구를 넣었다. 나는 상대의 하소연을 들어가며 결국 'B로 하시죠' 라며 대답했다.
딱 5분뒤 그는 한 품의서를 띄워놓고 왜 B라는 선택의 단점과 그에 대한 보완점을 추가 설명하지 않았냐라는 말을 한다. 불내나는 눈빛과 함께.

돌이켜보면 A라는 대답을 할수 있는 상황이었을까? 나보다 잘 알고 나보다 인정받는 당신이 B라는 대답을 강요하고 그게 맞다는 시그널을 보내는 상황에서?

가만히 듣고있다 처음으로 덤벼봤다. 그게 맞다고 했잖아요, 왜 저한테 그러세요, 알겠습니다, 다시 확인하고 전화해서 해명하겠습니다. 홱 돌아선 뒤통수로 자존감을 깎는 소리가 날서게 들려온다. 넌 그래서 안되는거다, 보내는건 다 읽기는 하느냐. 하아.

네네, 저 이런 놈입니다. 이런 인생이예요.
어버버하고 사리분별 빠릿빠릿하지 못해서 이런 소리 듣고있네요. 이젠 하다하다 못해 자기가 하는 소리에 확신도 없는 그런 인생이 됐네요.
근데요, 당신이 이런 소리하는거에 더 상처받지 않으려구요. 돌이켜보니 저 이런놈 아니었습니다. 이제 하고싶은말 하렵니다. 까짓거 열받으면 한대치세요. 차라리 주먹으로 맞는게 속편하겠습니다.
뭐 이렇게 주절주절 써놔도 내일이면 당신 앞에서 헤헤 웃고있겠죠, 멍청하게. 근데요, 그건 알아두세요. 당신도 알고보니 완벽하진 않더라구요. 남들은 몰라도 아둔하고 느릿느릿한 나는 오늘에서야 늦~게 알아버렸습니다. 그리고 그거땜에 상처받지 않으렵니다.

어쩝니까, 당신이라는 인생.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서지훈'카리스
17/03/03 01:52
수정 아이콘
저도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는데
기획쪽은 정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상황이나 타이밍 그리고 보고대상에 따라 답이 다르게 됩니다 더 정치적이고 능구렁이 같은 사람이 되는게 좋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신감도 갖으시구요
다만 글쓴분처럼 뭔가 계기로 말리기 시작하면 계속 겉잡을 수 없이 안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경우는 다른 팀 가거나 다른 회사로 옮기는 것도 고려해보세요 제가 첫 회사에서는 보통 두번째 회사에서는 바보 세번째 회사에서는 좋은 평가 받고 있는데 사실 저는 그다지 변한게 없거든요 윗사람과의 궁합이 중요한 것 같아요 윗사람이 바뀔거 같으시면 버텨보시고 아니면 내가 나가는 수밖에요
산울림
17/03/03 03:58
수정 아이콘
능력은 뛰어난데 사악한 인간들이 참 많아요..
17/03/03 11:18
수정 아이콘
제가 작년까지 기획업무하고 있었는데,
아래사람이 욕 안 먹으려면 A는 이러저러한 장단점이 있고, B는 이러저러한 장단점이 있으니 결정은 상사께서 해주십시오.
이렇게 전화 끊는게 최고죠.
내용은 내가 다 파악하고 있으니 알려주겠지만 결정은 니가 해라고 할까;;;
상사가 나중에 야 왜 B로 하라 그랬어라고 물어보면 아 제가 그래서 B는 이런 단점이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식으로 빠져나가기도 편하고, 야 B로 하길 잘했다 그러면 아 B는 이런 장점이 있으니까요. 역시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하고 아부하기도 편하더라구요.
도망가지마
17/03/03 12:51
수정 아이콘
위에 Obama님이 말씀 하셨듯이 A장단점 B장단점을 미리 설명하는게 그 다음 수를 위해서도 좋습니다.
설사 상사가 입장을 바꿀 때에도 대응이 편해요.

그리고 자신은 A라고 생각하는데 상사가 B라고 하면 그때마다 살짝 포인트 한번 집어주는 것도 좋습니다.
현재 status를 정리하면서 서로 생각하는 근거랑 '그럼에도 너는 B라고 주장하는거지?' 이런식으로요
책임소재가 명확해집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8981 [일반]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겪은 버튜버 걸그룹 "이세계 아이돌" 감상기 [44] 잠잘까11802 23/06/14 11802 15
97536 [일반] 우-러 전쟁의 전훈과 드론, 그리고 비호 [37] 류지나11699 22/12/27 11699 8
95542 [일반] [15] 장좌 불와 [32] 일신6666 22/05/03 6666 33
95538 [일반] 머지포인트 지급명령, 압류, 배당 후기 [19] 맥스훼인9567 22/05/03 9567 15
91821 [일반] (소설) 은원도검(恩怨刀劍) 2 [12] 글곰12471 21/05/25 12471 12
89982 [일반] 이루다 사태로 본 빅 데이터와 개인정보 [50] 맥스훼인9402 21/01/12 9402 9
88330 [일반] 한밤 아파트 창가로 날아온 드론, 10쌍 성관계 장면 찍고 사라졌다 [21] 시원한녹차11128 20/10/08 11128 1
87858 [일반] 현대세계를 관통하는 2가지 : 세계체제 그리고 초양극화 [55] 아리쑤리랑60343 20/08/29 60343 72
85711 [일반] [일상글] 와우(게임)하다 결혼한 이야기 [96] Hammuzzi15787 20/04/15 15787 25
85274 [일반] [스연][WWE] 몬트리올 스크류잡 [7] TAEYEON7136 20/03/21 7136 11
83425 [일반] 4C - 글을 쓸 때 이것만은 기억해 두자 [43] 이치죠 호타루8696 19/11/15 8696 32
83005 [일반] 신고 기능 악용을 막기 위한 방안이 있을까? [42] Quantum217159 19/10/05 7159 2
81743 [일반] 수영 400일 후기 [96] zzzzz17011 19/07/09 17011 16
77746 [일반] 산 속의 꼬마 - 안도라 [32] 이치죠 호타루11289 18/07/29 11289 31
77035 [일반] 올해 공무원 공부 끝낼 것 같네요. [46] 엄격근엄진지15268 18/05/21 15268 13
76367 [일반] 레디 플레이어 원: 스필버그의 세례를 받은 자, 천국으로 가리라 [17] 공격적 수요8038 18/03/28 8038 1
76307 [일반] 슬램덩크 최고의 플레이 10 [38] 공격적 수요14872 18/03/25 14872 9
74801 [일반] 남들 다 보고 보는 저스티스 리그 감상기(라기 보다는 문제점) [19] 아이군5551 17/12/01 5551 4
73700 [일반] (삼국지) 사마의의 등장과 퇴장 [21] 글곰12634 17/09/11 12634 10
73471 [일반] 청색 작전 (8) - 필사의 탈출 [18] 이치죠 호타루5818 17/08/27 5818 15
71374 [일반] 이번 트럼프의 시리아 공격을 보고 새삼 느끼는 무서움. [39] the3j11453 17/04/08 11453 11
70904 [일반] 나란 인생은 어찌해야 할까..(2) [4] 연필깍이4527 17/03/03 4527 0
70356 [일반] 안희정 프롤로그 [122] 프레일레8373 17/02/03 8373 2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