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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1/05 01:41:08
Name OrBef
Subject [일반] [사진] 부모님과 간만에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미국에서 13년째 생활 중입니다. 그러다 보니 나이 드신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하죠.

당연히 마음에 걸릴 수밖에 없고, 그러던 와중에 어찌어찌 기회가 돼서 부모님을 초대했습니다. (제 가족이 한국에 가는 것보다 부모님께서 미국으로 오시는 것이 더 쌉니다)

현재 저는 텍사스 북부에 살고 있는데, 텍사스 북부는 사실 재미있는 동네는 아닙니다. 산도 없고 바다도 없고, 미국 하면 연상되는 문화 시설이 밀집된 거리 (이를테면 브로드웨이) 같은 것도 없죠. 해서, 어차피 그런 쪽으로는 뉴욕이나 LA 와 경쟁이 안 되니까 '자연' 으로 여행 컨셉을 잡았습니다. 그래서 Fossil Rim 에 갔지요. 이곳은 텍사스식 동물원(?) 인데, 사납지 않은 동물들을 방목하면서 자동차로 구경하는 곳입니다. 자동차로 한 번 돌아보는데 3 시간 정도 걸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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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렇게 타조가 밥 달라고 막 들이댑니다. (아버지 얼굴은 초상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삭제) 타조는 뇌보다 눈이 크다고들 하는데, 이렇게 보면 과연 그러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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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밥을 주려고 하시다가 손을 물리신 아버지! 다행히 다치진 않으셨습니다. 저도 해봤는데, 타조가 턱 힘이 좋고 부리가 단단해서 꽤 위협적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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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조 말고도 이렇게 막 들이대는 동물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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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은 천연 나뭇잎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먹이를 보여줘도 잘 오지 않는데, 이날은 운이 좋았습니다.

는 글 클릭했을 때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넣은 거고, 이제부터가 본론입니다.

부모님께서 나이가 많으시니 종종 하던 생각인데, 언젠가는 부모님이 안 계신 날이 올 수밖에 없죠. 그리고 나면 부모님은 자식들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시는 건데, 기억 속에서 좀 더 잘 계시려면 자식들이 부모님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제 친구 중 한 명은 이런 생각을 더 밀고 나가서, 아예 나이 드신 분들과 인터뷰해서 자서전 써드리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있어요.

해서 녹음기 틀어놓고 부모님 어렸을 때부터 젊은 시절까지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처음에는 한 시간 정도 생각하고 시작한 대화였는데, 결국은 세 시간 넘게 이어졌네요. 더 놀라운 것은, 제가 부모님에 대해서 몰랐던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왔다는 거죠.

친가 조부모께서는 중매 결혼 외가는 연애 결혼하셨다는 이야기도 처음 들었고,
어머니와 친했던 동네 언니 분이 (당시 고등학생) 북한군에 부역했다는 (고등학생이 부역을 하면 얼마나 했겠냐만) 이유로 사형당하셨다는 이야기,
아버지 집에 북한군이 몰려와서 돼지를 뺏어갔는데, 그중 한 명이 아버지 (당시는 꼬마) 에게 돼지 뺏어서 미안하다며 나침반을 주고 갔다는 이야기,
어머니께서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 Jack Kerouac 의 On the road 라는 소설을 좋아한다는 말을 했다가 비트족이라고 (히피의 원형) 왕따 당하셨다는 이야기,

OnTheRoad.jpg

[내 이럴 줄 알았지. 쓸데없는 책 읽다가 인생 낭비하는 것은 집안 내력이었어......]

박통 초반에 단식 데모하는데 시민들이 격려한다고 음식을 너무 많이 갖다 줘서 '이게 도와주는 게 아닌데?' 했다는 이야기,
근데 왜 지금 돌이켜보면 박통 정권이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생각하시는지에 대한 이야기,
등등등을 거쳐서
형이 태어나고 집에 돌아오시는데 포대기가 너무 가벼워서 아이가 떨어진 줄 알고 깜짝 놀라서 포대기를 열어보니 잘 자고 있었다는 이야기,
제가 어려서 유치원 다녔을 때 이야기까지,

처음에는 기록한다고 시작한 거지만, 듣는 내내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도 기록한다는 상황 때문인지 최대한 상세하게 기억하려고 노력하시고 서로 기억도 비교해보시고 하는데, 그 자체도 재미있었고요. 무엇보다 육성 기록이 디지털로 남았으니 이제 잘 편집해서 두고두고 들을 수 있어서 좋네요.

해서, '기록을 전제로 하고 부모님께 옛날 이야기 듣기' 강력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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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신경쓰여요
17/01/05 01:52
수정 아이콘
뭔가 타조는 훼이크로군요 크크;;; 멋있게 몇 컷 등장하기는 했지만 사실은 글에서는 조연 신세...

정말 멋진 일인 것 같네요. 부모님도 자식이 자신에 대해 자세히 알기를 원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내심 매우 기쁘실 것 같아요. "아버지 집에 북한군이 몰려와서 돼지를 뺏어갔는데, 그중 한 명이 아버지 (당시는 꼬마) 에게 돼지 뺏어서 미안하다며 나침반을 주고 갔다"는 이야기 같은 경우는 마치 박완서 소설의 한 장면 같습니다. 하긴 박완서도 자전적 소설을 쓴 것이고 같은 시대를 살아온 분이시니 당연히 그럴 법도 하네요. 필력이 있었던 박완서는 스스로 펜을 들었지만 다른 분들은 그럴 수 없으니 자서전 작가를 업으로 삼는 분이 대신 펜을 쥔 손이 돼 주시는 거군요. 멋지네요.
17/01/05 02:50
수정 아이콘
그 북한군이 아버지를 귀엽다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준 기억이 아직도 난다고 하시더군요. 사실 정치때문에 편이 갈렸을 뿐, 북한군 하나하나가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왕밤빵왕밤빵
17/01/05 02:03
수정 아이콘
타조가 물면 아픕니다. 그런데 이빨이 없어서 손을 물어도 그냥 스르르 미끄러져 버리죠. 쪼이면 꽤 아픕니다. 기린은 혀가 깜짝 놀랄 정도로 깁니다. 먹이를 주면 입으로 먹는 게 아니라 혀를 쭉 내밀어서 코끼리(?) 처럼 먹죠. 침이 정말 미끄덩하고 좋지 않습니다.

부모님과의 추억을 위해 틈틈이 동영상을 찍어 두라는 글이 돌아다니던데 실천은 참 어렵네요. 언젠가 시간이 또 있겠지 하는 생각에
17/01/05 02:50
수정 아이콘
그러게 말입니다. 타조가 이빨이 있었으면 크게 다칠 수도 있었지 싶습니다. '기린 말고는 절대로 손으로 먹이를 주지 마시오' 라는 경고문이 있었지만 제가 노루랑 염소를 손으로 먹이 줘본 경험이 있어서 무시했는데, 역시 잘 모를 때에는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답이지 싶습니다.

동영상은 사실 쉽지 않지요. 그래서 저도 이번에는 음성 녹음만으로 만족했습니다. 이 정도는 저녁 먹으면서 할 수 있더라구요.
공상만화
17/01/05 03:10
수정 아이콘
부모님 이야기 들으면 재미 있더군요. 엄마가 터미널 근처에서 식당하던이야기, 제가 4살때 아빠 보고 싶다면서 가출한 이야기, 촌지나 선생들한테 들은 뒷담화등 자식들 부담될까봐 옛날 이야기는 잘 안하시는데 그래도 들으면 정말 재미있습니다. 설날에 엄마한테 살아온 이야기 해달라고 졸라겠네요.
17/01/05 03:44
수정 아이콘
사실 저도 민감한 내용들은 본문에 적지 않았는데,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더군요.. 사실 뭐 수십년 인생에서 제일 재미있었던 이야기들만 엑기스로 뽑아서 3시간 버전으로 듣는 거니까, 재미가 없으면 더 이상하지요.
트라팔가 로우
17/01/05 06:50
수정 아이콘
부모님 인생이야기 듣기는 저도 꼭 해보고 싶네요.
곧미남
17/01/05 07:58
수정 아이콘
미국에 거주하고 계시군요.. 저도 용기내서 늘 나가고 싶은데 부모님 특히 어머님이 늘 눈에 밟혀서 그냥 여기에 계속 있네요
사악군
17/01/05 08:11
수정 아이콘
참 당연하다면 당연한거긴한데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도 사람이란걸 쉽게 잊어요. 조부모세대와 교류가 거의 없는 핵가족시대라 더욱 그럴겁니다. 뒤늦게 부산행보고나서 인터넷의 소위 '이럇샤이마세 할머니' 개연성 비난은 노인캐릭터에 대한 공감부족이라고밖에 느껴지지 않더군요. 적어도 극중에서의 당위는 넘치게 그려져있었는데 말이죠..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가능하면 조부모님의 이야기 들어보기 저도 강추합니다. 언제 불가능해질지 모르는 일들이죠..
언어물리
17/01/05 08:51
수정 아이콘
동물들의 초상권도 보호해주시죠!

..농담이고, 하여튼 우리 가족의 지난 일들을, 그리고 살아가는/살아갈 일들을 기록으로 남기면 뭔가 의미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진과 기록은 (손실되지 않는 한) 영구히 가거든요.
17/01/05 09:17
수정 아이콘
부모님의 이야기를 녹음해놓는건 정말 좋은 아이디어네요. 저도 나중애 한번 해봐야겠습니다. 근데 막상 그걸 틀게 될때는... 너무 슥퍼서 잘 못듣게 될지도요.
감사합니다
17/01/05 09:44
수정 아이콘
부모님 이야기 자서전으로 남기는 일은 좋은거 같아요
노년에 부모님 좋으신분이 였다는거만 기억하고 관련 이야기는 잘기억 안나면
조금 슬플것 같네요
17/01/05 10:13
수정 아이콘
낙타 사진 잘 봤습니다~
17/01/05 10:16
수정 아이콘
"타조 말고도 이렇게 막 들이대는 동물들이 많습니다." 사진 속의 동물 눈동자에서 평온함이 느껴지네요. 크크

사진들 좋네요. 부모님과 많은, 예쁜 추억 만들어나가시길 빕니다. ^^
김승구
17/01/05 10:27
수정 아이콘
저도 얼마 전 비슷한 프로젝트를 할머니와 했었는데 너무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이 글을 읽는데 그때 생각도 나고 참 반갑네요 ^^ 그리고 친구분께서 하시는 작업에 대해 더 자세히 알려주 실 수 있을까요? 뜻 깊었던 시간과는 별개로 녹취 정리하는데 시간이 너무 걸려 고생했거든요ㅠ
17/01/05 10:35
수정 아이콘
바로 그 녹취를 정리하는 걸 업으로 하는 거죠. 거기에 추가해서, 어르신께서 하시고 싶으신 말씀만으로는 나중에 들어볼 때 빈 구멍들이 생길 수 있으니까, 인생의 큰 윤곽이 잘 잡히도록 미리 정해놓은 질문을 좀 미리 준비해 가는 것 같더군요.
김승구
17/01/05 11:07
수정 아이콘
그렇군요~ 혹시 업체 이름도 알려주실수 있을까요?
17/01/05 11:11
수정 아이콘
앗, 그럼 왠지 홍보하는 느낌이... 제 친구가 도서관 하면서 부업으로 하는 거라, 이 일로 어느정도 평을 받고 있는 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번 물어보고 쪽지드리겠습니다.
김승구
17/01/05 11:44
수정 아이콘
넵! 감사합니다~
ThreeAndOut
17/01/05 14:03
수정 아이콘
저도 미국에 살고 있고 부모님이 한달후에 방문차 오십니다. 좋은 아이디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기회에 저도 부모님과의 시간중 일부를 떼어서 부모님 사셨던 얘기를 녹취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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