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학자들은 제스쳐는 언어의 의미 전달을 위해 사용되는 부수적이고 종속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즉, 음성이라는 형태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 주이고 제스쳐는 그러한 음성을 통한 의사소통이 좀 더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보조해 주는 역할이라고 본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는 음성은 철저하게 배제된 상태에서도 제스쳐만으로 완벽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는 관계로 바로 부정되게 되는데 그러한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수화입니다. 수화는 오롯이 제스쳐만으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학자들은 이제 제스쳐는 음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언어와는 별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의사소통의 수단이고 결국 의사소통이라고 하는 것은 “음성 언어 + 제스쳐”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종합적인 행위라고 보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도 우리의 먼 조상들이 아직 음성을 통한 언어를 가지고 있지 못했을 때에는 손짓 발짓으로도 의사소통을 충분히 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러한 제스쳐는 역시 문화권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같은 제스쳐가 어떤 문화권에서 사용되느냐에 따라서 다른 의미를 나타내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하게 사용하는 제스쳐를 하나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엄지와 검지로 원을 만들고 나머지 세 손가락을 펴는 제스쳐를 보겠습니다. 대부분의 유럽 지역에서는 이런 제스쳐는 "오케이/좋다"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략 이런 의미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와 터키로 가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그리스와 터키에서는 이러한 제스쳐는 "항문"을 의미하게 되며 상대방을 모욕하는 행위가 됩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 굿
그리스 터키 = 낫 굿
머리와 관련된 제스쳐도 문화권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아니다"라는 부정의 의미를 나타낼 때 이탈리아 북부 지역이나 로마에서는 머리를 수평으로 좌우로 흔드는데 반해서 나폴리나 시칠리아 같은 이탈리아 남부지역에서는 같은 의미를 머리를 위 아래로 움직여 나타냅니다. 유럽에서 이렇게 머리를 위 아래로 움직여서 부정의 뜻을 나타내는 곳은 이탈리아 남부 말고도 그리스와 터키 인근 그리고 불가리아 지역이 있습니다. 이 지역이 다른 지역과는 달리 이러한 제스쳐에 “아니다”라는 의미를 부여하게 된 데에는 고대 그리스가 이 지역을 식민지화 한 역사와 관련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즉, 고대 그리스의 제스쳐가 이런 지역으로 전파가 된 것이라는 견해이지요.
영화 "살인의 추억"을 보게 되면 영화 도입부에 송강호가 살인 사건 현장으로 경운기를 타고 갈 때 아이들이 자꾸 따라오니까 아이들에게 마치 잠바 안주머니에서 뭐라도 줄 것처럼 하다가 예의 그 유명한 제스쳐를 보여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는 영알못이지만 그 장면이 송강호가 분한 형사의 캐릭터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보통 웬만해서는 애들한테 욕은 잘 안하는 게 어른들인데 영화 속에서의 송강호는 서슴지 않고 애들에게도 욕을 날리고 기본적으로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래서 미혼이고 아이도 없는) 인물인 것을 감독이 그 장면을 통해서 보여주었다고 봅니다. (아니면 말고요...--;;)
그런데 남녀 간의 성교를 의미하는 그 제스쳐, 즉 엄지를 검지와 중지사이에 끼워넣는 그 제스쳐는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제스쳐인지 위의 머리를 위 아래로 움직여서 부정의 뜻을 나타내는 제스쳐가 이탈리아 남부, 터키 인근, 그리고 그리스에서 같은 뜻으로 통용되는 것처럼 문화적으로 같은 영향권아래 있었던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같은 의미로 쓰이는 제스쳐인지 궁금해집니다. 혹시 중국이나 일본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신 피지알러분들은 좀 알려주세요.
아무튼 날이 덥다 보니 별 헛소리를 주절주절 쓴 것 같은데 제 글의 요지는 나중에라도 터키와 그리스에 여행을 가게 되면 손으로 하는 "오케이"사인은 하지 맙시다 정도가 되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오해라는 것은 어찌 보면 인간이 짊어 져야할 숙명 같은 것일까요?...우리 모두는 오해 속에서 살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날씨가 너무 덥습니다...더울 땐 복숭아 말고 수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