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6/07/15 16:07:57
Name 스타슈터
Subject [일반] 오답을 마무리짓는 용기
["진정 행복한 사람이란, 인생을 살다가 뜻하지 않은 일로 빙 돌아가야 할 일이 생겼을 때, 그 우회로에 있는 풍경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어딘가에서 우연히 보게 된 글귀인데, 그 의미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적어두게 되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 글귀를 마주한 나 또한 인생의 우회로 속에 있었다. 그리고 내가 우회로를 돌아가보지 않았다면, 이 글을 마주했다고 한들 그 뜻을 온전히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좋은 것들과의 만남은 우연이지만, 그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것은 그 우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나의 오답으로 뜻하지 않은 길을 걷는 중일지라도, 그로 인해 마주치는 우연으로 더 기뻐하고 그 자체를 즐길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우연은 자주 있지 않지만, 그것의 근사함을 깨닫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에게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애초에 그 것은 오답이 아닐지도 모르는 일이다.

오래 전, 여행중의 하루였다. 평소라면 당연히 숙면중이였을 나는 일출을 보러 새벽부터 해변가에 나섰다. 구름이 가득 낀 바다하늘을 보고서, 그날의 일출은 구름 너머 희미하게 비치는 태양이 실루엣만을 그리는 것에 그치겠구나 싶었다.

["에이, 날을 잘못 잡았네..."]



구름아 떠나가라 라고 투정부릴 겨를도 없이 그날의 일출은 시작되었고, 난 아직도 그날 보았던 풍경을 잊지 못한다. 분명 그날의 구름은 최악이였다. 하지만 그 최악 너머에 예비된 풍경은 아마 평생 다시 찍기 힘든 단 한장의 사진이 되어 남았고, 그날의 풍경은 나에게 사진 이상의 것들을 알려주었다. 내 앞길을 가로막는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오히려 더 나은 것들을 나에게 선물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자신감은, 분명 이 사진 한장만으로 내게 주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가끔 어려운 일과 마주할때, 사소하고 보잘것없던 이 추억은 나에게 또 하나의 멋진 그림을 기대하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 삶에서 단 하나도 고치고 싶지 않다면, 그건 분명 자존심이 내게 시키는 거짓말일 것이다. 삶은 실수의 연속이고, 그 실수들은 좋든 싫든 나의 삶을 채워나간다. 때로는 정답이 지나보니 오답이 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오답의 나비효과가 미래의 나를 구하는 한줄기 빛이 되기도 한다.

나름 긍정적으로 말해 보았지만, 분명 살다 보면 좋은 일만 생기는것은 아니다. 우연하게 좋은 풍경을 보게 되는 것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도, 내 의지만으로 장담할수 있는 부분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생이라는 발버둥 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며 최선의 길을 찾아 앞으로 나아간다. 그 에피소드의 결말이 비극으로 예견되어 있든, 아니면 앞으로 나아가기에는 너무나도 무거운 걸음이든, 반드시 마무리 짓고 싶은 이유는, 분명 나의 미래에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소중한 요소들이 담겨있을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얼마전, 장기간 불안요소로만 남아있던 문제 하나가 일단락 되었다. 해피엔딩이였으면 좋겠지만, 딱히 해피엔딩은 아니였다, 오히려 배드엔딩에 가까웠다. 더 힘들었던 점은, 일단락 되기 전부터 난 그 결말이 비극일 것이라는 것을 예견할수 있었다. 그리고 그 엔딩까지 걸어가야 하는 과정이 내게 남겨졌다. 그 뒤로 수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내 생각을 긍정적으로 만들어 보았지만, 꼬여버린 내 마음속 실타래는 풀리기를 거부하며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자리에 멈출수는 없었다.  왜냐면 한가지 일에서 좌절했다고 내가 더이상 걷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Life goes on - 삶은 그래도 계속된다. 성공의 높이보다는, 실패한 일을 책임지고 마무리짓는 일이야말로 한 사람의 강함을 결정짓는 척도라는 것을 그동안 수많은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난 강하지 않지만, 그래도 강해지고 싶었다. 그리고 그 과정속에서 바닥을 보지 않고 더 많은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고 싶었다.

결말이 뻔한 이야기도,
넘기기 무거웠던 페이지도,
차마 닫지 못했던 책의 커버도,
수고하고 용기내어 끝내 넘겨주었던,
조금은 무리도 했었던 내 자신에게,
정말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다음 책을 언제 펼칠지는 모르겠지만,
그 전까지는 책장의 한 구석을 채우며,
좋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도 어려운 발걸음 속에서 포기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응원하고 싶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천마도사
16/07/15 16:14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16/07/15 16:23
수정 아이콘
수고하셨습니다. 더불어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같이걸을까
16/07/15 16:45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16/07/15 16:58
수정 아이콘
좋네요..
존 맥러플린
16/07/15 18:13
수정 아이콘
누가 태양을 걷어차서 구름을 뚫고 나가는 것만 같네요 유로를 너무 봤나봅니다...
스타슈터
16/07/15 18:22
수정 아이콘
생각치도 못했던 표현이네요. 크크
16/07/15 18:39
수정 아이콘
좋은글 감사합니다.
[fOr]-FuRy
16/07/15 20:23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스타슈터님의 글은 언제나 읽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네요..
스타슈터
16/07/15 20:39
수정 아이콘
그리고 이런 댓글 하나가 제 마음을 울린답니다!
별것 아닌것 같은데 이 울린 마음이 제가 다음 글을 쓰는데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흐흐;
프메지션
16/07/15 23:27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현재 계속된 시험 실패로 다음 시험에 대해서
집중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더 어렵고 기초가 더 부족해서 실패하는 미래가 뻔해 보였거든요.
다른 진로로 가기에는 30대초반이라 나이가 많이 늦어 보여서 마음이 많이 심란한 상태였는데
다시 마음잡고 남은 40여일 최선을 다해 준비하려고 합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스타슈터
16/07/15 23:48
수정 아이콘
제대로 매듭지은 실패는 그 자체로도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실패를 할 것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설령 실패한다고 한들 흐지부지 한 실패보다는 훨씬 더 의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힘내세요! 시험에서도 최선의 결과가 있길 바랍니다. :)
16/07/16 07:16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6593 [일반] 양성평등은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것일까? [85] 다빈치6542 16/07/26 6542 3
66592 [일반] 지난 4년간 KOSPI 200에 투자했을 경우 기대 수익은 얼마나 될까 [27] 예루리7501 16/07/26 7501 1
66591 [일반] 엄지와 검지로 원을 만들고 나머지 세 손가락을 펴면?... [23] Neanderthal12441 16/07/26 12441 0
66590 [일반] 싸우지마!! 싸우지 말고 XX해!! [34] 세인트9242 16/07/26 9242 2
66589 [일반] [야구] KBO 승부조작 은폐시도 [45] 이홍기10112 16/07/26 10112 0
66588 [일반] 글쟁이로서 평생 한번 있기 힘들 아주 사소한 일과 감사 [14] 좋아요5871 16/07/26 5871 4
66587 [일반] 악동뮤지션 스페이스공감 공연 영상 모음. [11] 홍승식5398 16/07/26 5398 4
66586 [일반] 우리는 DNA로부터 공부를 얼마나 잘할지 예측할 수 있을까? [21] TimeLord9047 16/07/26 9047 2
66585 [일반] 주식은 도박 그 자체입니다. 아예 손도대지 마시길 권고합니다. [238] 긍정_감사_겸손33636 16/07/26 33636 4
66584 [일반] 판타걸스(최유정,김도연) 꽃길만 걷게 해주세요 [56] 작은기린15778 16/07/26 15778 10
66583 [일반] 나는 페미니스트다. 하지만 메갈은 아니다. [302] 슈퍼잡초맨15997 16/07/26 15997 26
66580 [일반] 두번째 스무살, 설레였던 그 날 [8] 기다5103 16/07/26 5103 4
66579 [일반] 오아시스 - D'You Know What I Mean? (노엘 갤러거 2016년 리믹스 버전) [6] MystericWonder3479 16/07/26 3479 1
66578 [일반] 공무원 되기 참 힘드네요.. [40] 밴더12290 16/07/26 12290 9
66577 [일반] 당신이 아무렇지 않은 이유 [234] Jace Beleren23391 16/07/25 23391 137
66576 [일반] 진영전 [89] 절름발이이리10577 16/07/25 10577 18
66575 [일반] 넥슨 시위문구 추가본과 13세 정면샷입니다. [88] 드아아15534 16/07/25 15534 6
66574 [일반] 아... 나도 좋은 시절 다 갔구나 [26] 구들장군6389 16/07/25 6389 6
66573 [일반] 이 사회에는 과연 여성혐오가 만연해있는가? [64] SkyClouD9793 16/07/25 9793 10
66572 [일반] [메갈리아 시위 관련] 도토리유치원 아빠 나도 13살 되면 벗길거야? [106] 공원소년13104 16/07/25 13104 9
66571 [일반] 아무 기준 없고 공통점 없는 연예기사 몇개 [15] pioren6515 16/07/25 6515 0
66570 [일반] 정의당, 비판기사 쓴 기자에 "출입명단 제외하겠다" [177] 몽유도원11370 16/07/25 11370 2
66569 [일반] 영화 몰락 패러디에 맨날 언급되는 그분(간략한 내용) [8] blackroc7094 16/07/25 7094 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