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08/06/07 15:03:33
Name Jungdol
Subject [일반] 이 번 시위에 대해서...
0. 일어나서 그냥 조금 끄적여 봅니다. 열흘 가까이 시위에 참여하면서 정리하는 의미로 한 번 지금의 시위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저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고, 여러분들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수준 낮은 글이지만 많은 비판과 의견 부탁드립니다.


1. 시위의 축제화

아마 5/31~6/1의 시위 현장을 동영상과 사진으로만 보다가 요즈음에 가두 시위에 나가시는 분들은 매우 놀라셨을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애국 소녀’와 ‘군홧발 여대생’, ‘너클 아저씨’ 등으로 상징되는 폭력 진압도 없고, 과연 그런 상황이 실제 있었던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정도로 현장은 평화롭습니다. 세종로 사거리는 이미 하나의 유원지가 되었으니까요. 대학생들은 옹기종기 모여서 놀고 있고 많은 어르신들은 술을 드십니다. 사거리 한복판에는 공식 방송 차량이 있어서 노래도 틀어주고, 많은 사람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들도 들려줍니다. 많은 단체에서 무료로 음식을 나눠주고 여기저기서 많은 팀들이 공연을 합니다. 그 넓은 차선을 사람이 완전히 장악하니 공간도 널찍하고, 현재 상황을 대형 TV를 통해 방송해 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 기발한 복장을 하고 시위에 참여하니 이를 보는 재미 또한 쏠쏠합니다. 예, 축제가 따로 없습니다.

2. 출구를 찾지 못하는 에너지

그러나 한 편에서는 갈 곳을 찾지 못하는 많은 에너지들이 떠돌고 있습니다. 6/1 저녁 시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닭장차와의 줄다리기 한 판은 오늘도 계속되었습니다. 바리케이트 역할을 하고 있는 닭장차에 밧줄을 매달고, 200명은 족히 되어보이는 장정들이 매달려 영차영차 닭장차를 끌어내립니다. 물론 전경들과의 대치도 여전합니다. 어제도 새문안 교회 뒤편의 좁디 좁은 골목길에서 전경들과의 대치가 있었지요. 그 과정에서 또 몇 분이 연행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몇 분은 탈진과 부상으로 병원으로 실려 갑니다. 일부 학교는 서대문 근처까지 행진을 했다가 그냥 되돌아 오기도 합니다. 정말로 엄청난 에너지들이 분출구를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고 있는 것이지요.

3. 간극

문제는 이 두 입장의 차이가 점점 더 극명히 드러나고,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6/1 새벽, 강경 진압이 있었던 그 날도 효자로와 삼청동에서는 시위대가 전경들과의 대치선에서 물대포를 맞아가며 격렬하게 저항한 반면 광화문 앞에서는 많은 분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모닥불을 피우고 음식을 드셨지요. 앞에서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하다가 물대포에 옷이 다 젖거나 지치고 피곤하면 뒤로 가서 쉬고 다른 이들과 교대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둘의 차이가 명확히 갈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후자(2)는 전자(1)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후자에게 전자는 시위를 하러 나온 것이 아니라 놀러 나온 사람들일 뿐입니다. 최전방에서 시민들이 전경들과 팽팽한 대치상황을 벌이든 말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저 웃고 즐기고 졸리면 자고, 말 그대로 놀러 나온 이들일 뿐입니다. 말 그대로 MT를 온 것이지요. 이들을 보면서 후자의 사람들은 6월 1일, 비참했던 그 날을 외칩니다. 그리고 절망합니다. 이런 식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고, 결국 흐지부지 끝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역시 마찬가지로 전자도 후자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이 알기로 분명 시위대의 모토는 ‘비폭력’입니다. 그러나 전자의 사람들은 직접 골목길에 있는 전경까지 찾아가 대치를 하고 아무 의미도 없는 닭장차 끌어내기나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비폭력’이 과연 무엇인지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그들은 굳이 후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뚫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이렇게 거리에 나왔다는 것 그 자체로도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전자와 후자 사이의 의견 충돌은 5일과 6일을 거치면서 점점 더 증폭되었다고 생각합니다.

4. 생각해볼 문제들

(1) 폭력과 비폭력

전자의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시위대의 몇몇 행동들은 비폭력이 과연 어디까지인지를 말하는 것인지 의문을 주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히려 현재의 비폭력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닭장차를 끌어내고 전경들의 대오를 밀어붙이는 것이 과연 비폭력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듭니다. 무기를 들지 않고 욕설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비폭력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가끔은 비폭력을 외치는 시위대들에게서 ‘광기’가 느껴지기도 하고, 이 ‘광기’가 엄청난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2) 시위, 축제, 유흥

후자의 지적도 분명 타당한 면이 있습니다. 술을 드시고는 이리저리 끼어들며 싸움을 거시는 분들, 완전히 자리 깔고 앉아 게임을 하는 대학생들, 각종 공연단 앞에 모여서 자리를 떠날 줄 모르는 수 많은 사람들을 보면 이들은 과연 쇠고기 그리고 대통령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심각한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5. 21세기 시위

저는 한동안 이번 시위는 그야말로 21세기의 시위라고 생각했습니다. 앞과 뒤가 따로 없고 ‘배후’마저 따로 없는 시위대, 노트북과 캠코더를 통한 실시간 중계, 시위를 즐기는 수많은 방식들, 보이지는 않지만 인터넷에서도 벌어지는 수 많은 시위들. 그리고 이 시위의 양상 자체를 현 정부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20세기적 방법으로 막으려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바보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 ‘21세기 시위’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위 양상이니까요. 그런데 이 ‘21세기 시위’라는 것을 정부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시민들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21세기 시위’라는 것이 이해가 가능한 대상인지에 대해서도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정말 말 그대로 하루하루 변해가는 시위입니다. 과연 이 시위의 끝은 어디일까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성야무인
08/06/07 15:21
수정 아이콘
솔직히 지금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시위는 공권력의 압박이 있는 가정하에 최고의 시위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이런식의 시위가 앞으로 어떤나라에서 일어날지 궁금하구요. 선진국의 시위는 제가 직접본결과 이정도의 통일성을 가지지는 않습니다. 일예로 제가 석사때 학위했던 대학병원에서 의사들 월급올려달라는 시위가 있었습니다. 모 경찰이 출동하지는 않았지만, 피켓들고 병원앞 잔듸밭 한 100명정도의 의사들이 3-4시간동안 왔다갔다 한게 전부입니다. 시내버스 시위했을때도 파업하고 비슷하게 했습니다. 그만큼 임금협상에 대한 파업과 시위행위를 인정합니다. 똑같은 걸 한국에서 했다간 그냥 강제진압이었겠죠. 솔직히, 국민들의 수준은 높아져만 가는데 그에 반비례해서 정부의 대응책은 내려가는듯 합니다. 언제나 이야기 했지만, 한국의 민도의 수준은 갈수록 높아가는데, 정부의 정책은 그만큼 높아가는 지 한심스럽네요~~
Wanderer
08/06/07 16:08
수정 아이콘
3번 간극의 경우 - 정말 공감가네요.
08/06/07 17:16
수정 아이콘
저도 이런 부분들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시위문화를 예전의 패러다임으로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시작부터가 어린 학생들이 촛불을 지펴 주었습니다.
이익집단이 뭉쳐서 조직적으로 시작한 시위가 아니라, 시민들이 앞장서고 거기에 조직이 참여하는 형식이 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할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어떨지 아무도 모릅니다.(설마 거기까지 개입하고 있는 거대한 배후세력이 있을까요?;;)
각 정당과 조직들을 어떨지 모르겠지만 시민들은 실시간으로 촉각을 세우고 거기에 대응합니다. '재협상한다' 발표가 나오면 '어 그래?'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다가도 그것이 거짓말인 게 밝혀지면 더욱 분노하고 거리로 나가는 식입니다. 차라리 제대로 달래기라도 하면 누그러질 텐데 이 정부는 그 능력조차도 없습니다.

시민들이 이 시위를 이해하고 행동방향을 정하기 위해 소위 '머리를 굴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위에 참여하는 대다수 시민은 이 시위 전체를 바라보기 보다는 '나'와 내가 속해있는 국가를 상대로 개인으로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니까요. 내가 바라보는 시위는 1대1 입니다. 그러니까 뒤편에서 김밥을 먹는 사람도 있고, 전면에서 물대포를 맞는 사람도 있습니다. 시위가 끝나고 모여앉아서 오늘의 성과를 분석하고 내일의 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대응을 살펴보고 아직 안되겠다 싶으면 다음날 또 나옵니다.

정부는 지도부를 붙잡고 협상을 할 수도 없습니다. 국민을 상대해야 하니까요.
그러려면 해답은 '진정성' 밖에 없습니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니까요.
바라기
08/06/07 20:00
수정 아이콘
공감가는 내용입니다.
일부 시위를 과격한 양상으로 몰아가려는 파렴치한 선동꾼들의 모습이 보이기도하지만
다수가 비폭력 평화시위를 원하는 이상 우리는 잘 해낼 수 있을거라 믿습니다.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건전한 21세기형 시위문화 우리가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호기심남
08/06/07 20:15
수정 아이콘
3번 특히 공감가네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강경한 쪽이 파워가 세다보니 인터넷 공간에서는
온건한 의견을 펼치는 사람들이 몰매를 맞는 경우도 많더군요; 안타깝습니다.
꼬마고하쿠
08/06/08 00:41
수정 아이콘
6월6일 현충일에 서울시위하러 올라갔다왔는데, 제가 느꼈던 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셨네요.
제가 생각한 시위와는 분위기가 너무 다르더라구요(?) 뭔가 고삐가 풀린 무분별한 혈기만 넘치는 느낌;
그리고 폭력을 선동하는 무리를 눈 앞에서 보기도 했구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514 [일반] 영동세브란스 병원에서 축농증 수술을 받았습니다 [40] Dark6321 08/11/27 6321 0
8998 [일반] 감기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35] 어...3952 08/10/27 3952 0
8989 [일반] 희망을 갖게 만들수 있는 정치인이 있습니까? [46] 삭제됨5286 08/10/26 5286 1
8849 [일반] 자살을 막으려면 이것부터 고쳐야 할 것 같네요. [18] A certain romance5565 08/10/17 5565 0
8847 [일반] 서울시 택시승차 거부 신고시 5만원의 포상금을 준다네요 [53] Sinder4425 08/10/17 4425 0
8657 [일반] 분란의 소지가 있었던 글 삭제했습니다. [65] 얼음날개5947 08/10/05 5947 3
8572 [일반] 중환자실 찾아 삼만리…응급환자 '발 동동' [34] Timeless5266 08/09/29 5266 1
8487 [일반] Timeless님 의견에 덧붙여 [22] bins4304 08/09/23 4304 0
8482 [일반] 누가 산부인과를 죽였는가? [43] Timeless7444 08/09/23 7444 0
7916 [일반] 이거 정말 너무한것 아닙니까. [235] 게레로9591 08/08/15 9591 2
7895 [일반] 모든 허리통증을 가진 이들을 위하여...(프롤로테라피) [53] [DCRiders]히로10291 08/08/13 10291 3
7669 [일반] [세상읽기]2008_0801 [33] [NC]...TesTER4806 08/08/01 4806 0
7300 [일반] 왜 국위선양을 하면 병역면제혜택을 줘야하나요? [189] 사귀자그래요6594 08/07/12 6594 0
7156 [일반] 광우병 바로알기 [22] Fedor4503 08/07/04 4503 0
6915 [일반] 내가 사랑한 슈퍼히어로(SuperHero) [11] 네로울프5036 08/06/22 5036 17
6666 [일반] About 한우. [235] S_Kun7221 08/06/11 7221 0
6579 [일반] 이 번 시위에 대해서... [6] Jungdol3034 08/06/07 3034 3
6435 [일반] (이어지는 물타기?) 나는 한나라당보다 민주당이 더 밉다 [34] 캐리건을사랑4150 08/06/03 4150 0
6072 [일반] 예, 예, 문제는 능력인 것입니다. [10] The xian4269 08/05/23 4269 2
6015 [일반] 친구가 외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21] 물맛이좋아요4508 08/05/21 4508 0
5916 [일반] [펌] EBS 지식채널-e [인간광우병] 17년 후 [18] The xian4664 08/05/14 4664 0
5874 [일반] 정부 "의료산업 발전 위해 영리의료법인 허용해야" [30] 콜해버려3070 08/05/11 3070 0
5764 [일반]  언제까지 광우병 논란에 힘을 소모해야 될까요. [17] 펠쨩~(염통)3852 08/05/07 3852 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