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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6/03 22:51:28
Name 王天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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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스포] 초인 보고 왔습니다.


도현은 싸움을 한 탓에 사회 봉사 40시간을 채워야 한다. 그나마 코치 선생님이 힘써준 덕에 그 정도에서 그쳤다. 그러나 도현은 그 동안 해오던 기계체조를 그만두기로 마음먹는다. 일주일의 고민 기간을 받았지만 생각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 더 이상 공중제비를 돌고 균형을 잡는 일이 크게 의미가 없다. 도현에게는 공중제비보다도 더 위태로운 일들이 있다. 도현은 엄마의 곁을 떠나있기가 힘들다. 도현의 엄마는 기억이 자꾸 깜빡깜빡하기 때문이다. 의학계에서는 알츠하이머라고 부르는 병이다. 당장 의사선생님 앞에서도 도현의 엄마는 도현을 알아보지 못한다. 자꾸 자기를 매니저라고 부르는 엄마에게 도현 말고는 매니저 노릇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런 엄마를 부축하며 병원을 나오는 길 도현은 한 여자아이를 본다. 그가 약을 타는 것을 보고 집에 가는 길을 걱정해줬지만 미친 놈이라는 욕만 먹는다.

도현은 40시간 동안 도서관 사서의 책임을 맡아야 한다. 책을 대출해주던 중 도현의 앞에 그 아이가 다시 나타난다. 도현은 미친 놈이라는 대꾸를 다시 듣는다. 도서관 구내 식당을 가니 책을 읽으며 밥을 먹는 그 아이가 있다. 도현은 맞은 편에 뻔뻔히 착석한다. 삼세번 마주침 이퀄 인연의 공식을 떠들면서 도현은 그 아이와 마침내 통성명을 한다. 최수현이라는 이름의 아이는 눈이 크고 동그랗다. 밥이 맛있다며 쩝쩝거리던 도현에게 그는 마음의 양식도 먹어보라며 책을 건넨다. 도현은 시큰둥하게 받지만 나중에는 책을 읽으면서 그렁그렁 눈물을 채운다.

둘은 가까워진다. 책 도둑질도 해보고 비행기가 착륙하는 곳 아래서 활공의 힘을 마음껏 경탄한다. 그러나 도현은 왜 수현이 빌렸던 책을 다시 읽는지, 같은 나이인데도 학교를 다니지 않는지 모른다. 수현은 얼머부린다. 도현은 그런 그가 어딘가 아프겠거니 지레짐작할 뿐이다. 아픈 엄마 때문에 아픈 도현이 어딘가 아픈 수현을 만났다. 아픈 이들은 절룩거리면서도 열심히 뛴다. 거짓된 희망이 절망을 부르고, 그래서 사람들이 죽어떨어져내리는 다리 위에서도 이들은 생기를 내지른다. 우는 대신 소리친다. 우아아아아아. 그리고 웃는다. 그러나 생의 흉터는 다시 욱신거린다. 그날 오후 도현의 엄마는 알츠하이머 때문에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고 경찰서에 와있다. 도현은 그런 엄마를 부축한다. 수현은 도현의 엄마에게서 닮은 누군가를 본다. 집에 가는 새파란 터널 속에서 수현의 발걸음이 비틀거린다. 창고에 문고리가 없는 이유가 수현을 괴롭힌다. 수현은 흐느끼며 도와달라고 전화한다. 도현은 집에 돌아가지만 더 이상 엄마를 이대로 모시고 살기 힘들다는 이모의 충고를 듣는다. 상처와 상처가 만나 아물려고 할 때마다 내려앉은 딱지 위로 또 통증이 도진다.

도현은 아빠를 만나러 간다. 이혼한 지 오래인 도연의 아빠는 새로 가족을 꾸리고 살고 있다. 엄마를 병원으로 옮겨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에 아빠는 쉽게 수긍한다. 그래, 이젠 병원에 들어가야지. 이야기는 금새 도현의 현재와 미래로 넘어간다. 가물가물한 도현의 과거와, 이제는 점점 어색해지는 둘 사이의 현재 속에 도현의 엄마는 아주 멀리 떨어져있다. 더 이상 걱정도 안타까움도 없이 다 자란 아들에게 마음껏 새로워하며 다른 행복에 전념하는 아빠. 도현은 어쩌면 할 이야기가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 더 할 말도 들을 말도 나오지 않을 것 같다. 돌아가는 도현을 보고 아빠의 새로운 동반자가 고운 미소를 건넨다. 밥이라도 먹고 가지 그랬냐고, 삼겹살 사왔다고. 도현에게 파스와 이것저것 챙겨주면서 그는 한마디를 건넨다. 미안해요. 무엇이 미안하다는 걸까. 환하던 미소에 살짝 그늘을 담고 건넨 그 한마디가 도현의 가슴에 안개를 뿌린다. 도현의 엄마가 저리 된 것은, 그리고 도현이 그런 엄마를 결국 병원에 떨궈야하는 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다. 아빠의 그 분은 더더욱 아니다. 아빠의 탓도 아니다. 도현은 누구를 미워할 수 없다. 그런데 행복한 것만으로도 누군가는 미안해한다. 도현의 아빠의 그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힘겹게 걷는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도현은 왜, 무엇 때문에 그가 사과를 받는지 궁금해진다.

도현이 업고 가려는 엄마는 점점 등 위에서 미끄러져내려간다. 수현이 털어버리려는 과거는 아직도 자욱하다. 니체의 책을 읽던 그 날, 니체의 책을 읽는 지금. 수현은 머뭇거리는 도현을 끌고 둘이 만났던 도서관으로 몰래 들어간다. 한밤중에 이게 무슨 짓이냐는 도현의 투덜거림을 뒤로 하고 수현은 시를 읽는다.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 ....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의 시를 읽으며 둘은 각자의 나타샤를 곱씹는다. 수현은 비로서 이야기한다. 자신의 이름은 수현이 아니라고. 수현은 그 아이의 집 창고에서 늘 같이 붙어지냈던 친구의 이름이라고. 그 아이가 읽던 시를 다시 읽으며 수현 아닌 수현은 도현에게 과거를 연다. 너무나 사랑하던 친구가 잠깐 미웠고 그래서 멀어진 그 아이가 어느 순간 떠나버렸다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자신을 그는 늘 자책하고 있었다. 기억이 희미해져가는 이를 업고 가는 도현과, 또렷한 기억 속의 누군가를 안고 가는 수현이 비로서 상처를 맞댄다. 수현이 아닌 수현이 운다. 나타샤는 그 아이가 읽어주던 시였다. 수현은 수현의 대출증으로 책을 빌려 자신의 현재를 그 아이의 과거에 계속 포개어왔었다. 창고는 수현과 함께 했던 기억의 공간이다. 창고는 수현이 마지막으로 숨을 뱉었던 공간이다. 문고리에 줄을 달고, 자신의 숨을 죄면서도 그는 책을 읽었다. 도현의 옆에 있는 아이는 그래서 수현의 이름을 빌려서 산다.

둘은 아파한다. 그리고 아픈 마음을 고백할 수 있는 서로가 된다. 돌아오는 길, 민식이 와서 도현을 설득한다. 운동 그만 두지 마라고. 도현은 민식이 때문에 싸웠다는 걸 밝힌다. 무엇이 답답했고 왜 그렇게 진력이 났는지 민식과 도현은 몰랐던 서로를 알게 된다. 그러나 눈물을 배운다고, 나눌 수 있다 해서 통증이 사라지진 않는다. 병원에 가기로 한 도현의 엄마는 그게 그렇게도 싫었는지 혼자 욕조속에 들어가있다. 욕조의 물은 빨갛고 도현은 벌벌 떨면서 창백해진 엄마를 부둥켜안는다. 민식과 도현은 새하얗고 가벼워진 이를 들쳐업고 병원으로 뛴다. 버려질까봐 떠나려던 이는 붕대를 메고서야 간신히 생을 붙든다. 다음날, 도현의 엄마에게 수현이 문병을 온다. 수현은 도현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이름을 밝힌다. 이제서야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수현이 아닌 세영은 먼 곳으로 갈거라고 이야기한다. 가까워지는 이가 있으면 멀어지는 이가 있고, 들여보낸 이가 있으면 내보내야 하는 이가 있다. 그래도 둘은 안다. 이것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도현과 세영은 서로에게 아픔을 배웠고 자신의 상처를 고백할 수 있었다. 세영은 돌아올 것이고 도현은 기다릴 것이다.

갈팡질팡할 수만은 없다. 나와 다른 아픔을 가진 이가, 씩씩하게 바람을 맞는다. 도현의 엄마가 죽기전, 도현은 매니저 아닌 아들로 안긴다. 세영은 몽골을 찾아가 수현이 읽던 시집의 작가를 만난다. 도현은 기계체조를 다시 시작한다. 세영은 깜빡이는 전구빛을 벗어나 샛누런 햇빛 속을 달린다. 나아가야할 길이 있다. 걸려넘어져도 넘어야 할 둔덕이 있다. 눈물이 어떻게 방울지고 어디로 가는지, 아이들은 슬픔을 슬픔 그대로 배운다. 화내지 않는다. 부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묻고 소리 죽여서 눈물을 재우던 이들이 서로를 만나 울 수 있게 되었다. 책을 통해 과거의 장을 넘기고 그 다음으로 인생을 넘긴다. 흔들리던 이들은 무성하게 펼쳐진 생의 다음 장을 넘긴다. 곱고 선하게 맺힌 눈물이 힘차게 굴러간다. 그리고 영롱하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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