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6/05/29 17:51:20
Name 루꾸
Subject [일반] 미국 작은 마을로 교환학생 갔다온 이야기
네, 안녕하세요! 가입 글 다음으로 한 시간 동안 쓴 첫 글을 다시 날리고 쓰고 있습니다. 가입인사를 할 때에 다음 주 즘 쓸 수 있을 거라고 했지만....... 대학생 주제에 과제가 더 없을 거라 생각한 저의 불찰이네요. 허허........  1년 동안 다른 나라에 있다가 보니 다른 점이든 같은 점이든, 그리고 무슨 사건이든 간에 느낀 점이 엄청나게 많아서 뭘 써야 할 지도 정리가 잘 안 되네요. 그래서 그냥 한 번 써보겠습니다.

네, 뭐, 우선 저는 15년 1월부터 12월까지, 약 1년간 교환학생으로 미국에서 생활했습니다. 처음 사람들이 미국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도시 이미지가 강할 거라 생각합니다. 뉴욕의 브로드웨이 라던지, LA 같은 캘리포니아 쪽 대도시나요. 실제로 제가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간다고 하니 전부 그런 곳으로 가는 거냐며 부러움을 표했는데요, 제목에서도 적어놨듯이 저는 작은 마을(시골이라 하고 싶지만, 그곳에서 사는 아이 중 한 명이 여기보다 더 작은 마을이 있다며 시골이 아니라고 주장을 하길래....)에서 지냈습니다. 얼마나 작냐면, 우선 제일 가까운 도시에 가려면 고속도로 타고 1시간 조금 넘게 가야 합니다. 그리고 교통수단이라는 것이 차밖에는 없는 곳이지요. 미국 자체가 원래 대중교통이 약하긴 하지만 그곳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버스도, 택시도, 지하철도.........!! 부산에서 20년 넘게 살다가 자가용 없으면 고립되다시피 하는 곳에서 사려니까 처음에는 좀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미국 전역에 있는 은행들이 없습니다. Chase, Wells Fargo, Bank of America도 없었습니다. 그 주에만 있는 은행들밖에 없더군요. 여름방학 때 여행하면서 만난 미국인들에게도 이 이야기를 하면 불쌍하다며 공감을 해주는 걸 보니 작기는 작은 모양입니다.

교환학생을 갔다 왔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어땠냐고 물어봅니다. 그러면 저는 '새로운(new)' 경험을 했다고 하죠. 좋은 경험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좋은 것만을 경험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 사는 것이 어디에나 비슷하기는 해도 다르니까요. 종교적 부분도 그렇고 가치관이나 사소한 장신구들 같은 것도 다른 것을 보면서 나름 충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뭔가 저 자신이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는 것이 느껴지고 세상이 너무 넓은 것도 느껴지면서 갑자기 부산에서만 살기에는 너무 답답하다고 느낀 거죠. 그러면서 외국인이라는 입장에서 느끼는 소외감도 느껴 보았습니다. 거의 다 백인들인데다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 보니 기가 죽는 것은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다른 나라에서 온 교환학생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길을 걸을 때에 고개를 돌리면서까지 쳐다보던 백인 할아버지의 그 표정은 잊을 수가 없네요.

100% 만족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교환학생을 끝난 지금도 만약 가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합니다. 제가 교환학생으로 있었을 때가 3학년이었습니다. 3학년이면 꽤 중요한 시기죠. 왜냐하면 복수전공을 할지 정해야 하거든요. 저는 영문과기 때문에 복수전공을 하는 친구들이 꽤 많았습니다. 2학년 2학기에 신청을 하면 3학년부터 복수전공자로 수업을 듣게 되는데 영어로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복수전공까지 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마감 1분 전까지 고민하다가 결국 포기했습니다. 가지 않았다면 아마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얻은 만큼 포기한 것도 있기 때문인지, 아직도 친구들이나 아는 동생들이 교환학생을 가는 게 좋을 것 같으냐고 물으면 당연하다는 말을 해줄 수가 없네요.

얻은 거라고 하면 보는 눈이 있겠죠. 외국에서 살아본다는 것이 어떻게 보는 눈을 넓혀주는지 갔다 오지 않으면 확실히 알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하는 생활이야 별 차이가 없지만 그래도 생각이라는 게 많이 바뀌니까요. 그리고 당연히 영어실력이 있겠죠. 드라마틱하게 늘었느냐고 한다면 그건 아닙니다만 영어가 조금 더 가까이 느껴지기는 합니다. 주위에서 보이고 들리는 게 다 영어다 보니 조금 덜 어색하고 조금 더 편하고요. 확실히 독해랑 듣기는 많이 늘었습니다. 특히나 독해가 엄청 늘어서 돌아와서 친 토익이 대박이 난 건 비밀입니다. 그 덕분에 다시 칠 엄두가 안 나기도 합니다만, 좋은 게 좋은 거겠죠.

포기한 것이라고 한다면 건강입니다. 아시다시피 미국 음식은 엄청 짜니까요. 모든 것을 튀기면 맛있다고도 말하는 만큼 튀긴 음식이 거의 모든 것에 들어가기도 하고요. 대도시라면 음식이 다양하기라도 하지만 작은 곳이라 그런가 모든 음식이 다 짜고, 뭐.... 비슷한 느낌입니다. 샐러드에 들어가는 닭가슴살이 짜다고 하면 믿어지시나요. 저의 원래 입맛이 유별난 탓도 없지는 않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매운 거, 짠 거, 튀긴 거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외식하면 거의 모든 음식이 짜게 느껴지고 튀김을 싫어해서 감자튀김도 거의 안 먹고 추석이나 설날 때에 하는 음식들도 딱히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런 입맛을 가지고 미국 시골에 가니 몸이 유지될 리가 있나요. 피부도 확실히 안 좋아지고 살이 찌는 건 당연한 거고요. 원래 몸무게를 재지 않는 터라 몇 kg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5kg은 넘게 찐 것 같습니다. 들고 간 옷들이 다 작아지거나 딱 맞았었거든요. 눈 건강도 나빠졌었죠. 중남부 지방인지라 엄청나게 건조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눈이 너무 건조해서 제대로 뜰 수조차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눈 감은 채로 세수를 하면서 눈에 물이 들어가면은 눈을 뜰 수가 있었죠. 그런 식으로 지내다가 한국 와서 안과를 가니까 안약을 3,4개를 주시더군요. 지금은 거의 다 나았으니 다행입니다.

안과를 갔다 와서 많이 든 생각인데 교환학생을 왜 가서는 몸이 안 좋아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른 것들은 그래도 다 괜찮은데 몸이 나빠지니까 괜히 갔다 온 것이 후회되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런 생각 때문에 우울하기도 했고요. 지금이냐 몸이 다 괜찮아져서 그런 생각도 안 들고 괜찮습니다. 오히려 다시 나가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리니까요. 하지만 1년 있으면서 들어간 돈이 어마어마한 터라 한동안은 못 나가지 싶습니다. 제가 모은 돈은 당연히 다 쓰고 여행 다니면서 부모님께도 많이 빌렸으니까요. 다시 나갈 생각은 있지만 그 전에 돈이나 많이 모아야겠더군요.

외국을 여행한 것과 외국에서 일 하는 것과 외국에서 학생 신분으로 공부하면서 느낀 점 중에는 다른 것도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1년 동안 학생 신분과 여행자 신분을 겪어봤으니 일을 하는 신분으로도 지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얻은 것 중에 이것도 있네요! 여행으로든 일 때문이든 외국으로 더 많이 나가 보고 싶어졌다는 것! 빨리 돈을 많이 모으고 싶네요. 우후후후

끝이 너무 허무한 건 아닌가 싶지만, 저녁 먹을 시간이라서 이만 끝내겠습니다. 오늘 저녁은 김치전과 닭죽이거든요!!!!!!!!! 많이 먹어야 마감 아르바이트를 할 때 힘이 나겠죠. 몇 시간 안 남은 일요일 잘 보내세요 피쟐러님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카멜리아 시넨시스
16/05/29 18:05
수정 아이콘
1년동안 지내면서 생활비는 얼마나 들었는지 궁금하네요
16/06/02 10:27
수정 아이콘
1년 동안 있던거라 환율이 들쑥날쑥이라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교환학생이라서 등록금은 한국 대학으로 내는 것이니 따로 말하지 않겠습니다.
한국이랑 미국을 왔다갔다 할 비행기를 편도로 끊었기 때문에 약 1500불 들었습니다. 그 학교는 첫 학기에 기숙사에 사는 것이 의무였는데 저는 두 학기 내내 기숙사에 지냈습니다. meal plan이야 다양한데 저는 가장 낮은 가격걸로 했구요, meal plan이랑 기숙사비 포함해서 1학기당 2400불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 용돈을 30만원(환전하면 약 260불 정도?)로 잡았지요.

1500 + 2400x2 + 260x11 + 여름방학 세달 반 동안 쓴 여행경비 = 총액

이지만 여행경비 계산하는게 너무 겁나서..... 쿨럭!!
CLAMP 가능빈가
16/05/29 18:07
수정 아이콘
5kg쯤이야 수분 포함해서 하루 거하게 먹어주거나
화장실 들락날락하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정도 아닙니까?
1년에 5KG 가지고......

뻘댓글 죄송;;;
16/06/02 10:29
수정 아이콘
5kg라고 적어놨지만 실제로는 더 쪘을 겁니다. 그냥 얼만큼 쪘었는지도 생각하고 싶지 않거든요. 2학기 때 처음 몸무게를 쟀는데 앞자리가 달라졌을 때의 충격이란.....
몸무게는 모르고 사는데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크크크크.
다혜헤헿
16/05/29 18:58
수정 아이콘
그런 외딴 마을을 저도 경험한 적이 있어서 심히 공감이 가네요...
정말 차 없이는 아무 생활할 수도 없고 옆집(이라지만 조금 떨어진)은 알파카 농장을 하고
이 때 정말 사람에 대해 많이 경험했었습니다. 나쁜 것도 좋은 것도 결국에는 경험이 되더라고요.
지금은 잘 못 느끼는 것들도 이 후에는 살과 뼈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16/06/02 10:31
수정 아이콘
오오오! 도시에 살 때는 모르는 차에 대한 필요성이 그렇게 절절하게 느껴질줄은 몰랐습니다.
한국 와서 운전면허증 꼭 딸거라 다짐했는데 이제는 쓸모없는 것 같아서 안 따고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경험이라는게 정말 시간이 지날수록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아리아
16/05/29 18:59
수정 아이콘
저는 오히려 교환학생가서 못 챙겨먹어서 살이 빠졌었다는 크크
16/06/02 10:32
수정 아이콘
그런 분도 있더라고요! 저는 가리는 게 많은데 안 가리는 것도 의외로 많아서요.
스트레스성 아이스크림 폭식과 운동부족이 주 원인이라고 하겠습니다.
강정호
16/05/29 20:24
수정 아이콘
타지 음식이 참 복불복인것 같습니다. 저도 스페인에서 유학할때 음식은 참 맛있긴 한데 왜 내몸은 수용하지를 못하니..ㅜ 가서 7키로 빠져서 왔어요
16/06/02 10:33
수정 아이콘
저.... 저랑 체질을 바꾸실까요!!! 스페인이면 엄청 맛있었을텐데요!
다시 외국 나갈 계획인데 또 그렇게 찌면 어쩌나 벌써부터 걱정이 앞섭니다. 크흑.....
빠져서 오셨다면 한국오셔서는 어땠나요? 유지하고 계시나요?
강정호
16/06/02 20:27
수정 아이콘
한국 와서 하이퍼 요요가 왔습니다...14키로 정도 쪘네요...
16/06/20 14:24
수정 아이콘
댓글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요요란 무서운 것이군요.....! 힘내세요!!
결혼해도똑같네
16/05/31 08:16
수정 아이콘
뭘 경험하셨는지 에피소드를 풀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넘 궁금해욧
16/06/02 10:34
수정 아이콘
솔직히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서 뭘 적어야 할지 정리가 안 됩니다. 기억나지 않는 것도 많아서 아마 다이어리를 뒤져봐야 하지 않나 싶은데.... 우선 기말고사를 무사히 끝내놓고 시도해 보겠습니다.........ㅠ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6117 [일반] (머투) 세계 금융시장 '브렉시트'에 웃었다…"모두가 승자" [6] blackroc9964 16/07/03 9964 1
66054 [일반] 영국 재무장관 "브렉시트로 국민들 더 가난해지는 건 분명" [53] 군디츠마라10683 16/06/29 10683 6
65992 [일반] NYT편집부 사설: 브렉시트의 안보적 결과 [1] aurelius5531 16/06/27 5531 1
65970 [일반] 브렉시트(Brexit): 런던의 패배, 나홀로 번영의 비극적 결말 [80] santacroce13987 16/06/26 13987 45
65902 [일반] [세계증시] 6/23 Brexit을 앞두고 [7] Elvenblood4712 16/06/23 4712 6
65803 [일반] 오늘 겪은 이상한 일. [59] 로즈마리10102 16/06/17 10102 0
65750 [일반] 타인을 위해 배려한 적이 있습니까? [9] 마제스티4458 16/06/15 4458 1
65674 [일반] 배달 식당 자영업자분들이 전화폭탄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29] 어리버리12174 16/06/10 12174 0
65651 [일반] 시빌 워를 원합니다. (한 걸그룹 이야기) [53] 토다기6077 16/06/09 6077 0
65599 [일반] 라마단 (Ramadan)이 시작되었습니다 [56] 힙합아부지9833 16/06/06 9833 2
65449 [일반] 미국 작은 마을로 교환학생 갔다온 이야기 [14] 루꾸5928 16/05/29 5928 4
65194 [일반] 은행 면접 후기 [7] 마제스티8536 16/05/16 8536 12
65189 [일반]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생물들, 동물들의 신비한 능력 [22] 모모스201311834 16/05/15 11834 19
65012 [일반] 쌀, 보리, 밀 이야기 (자화수분-자웅동주식물) [8] 모모스20137904 16/05/06 7904 5
64989 [일반] 코카인과 코카콜라 [14] 모모스201314054 16/05/04 14054 12
64883 [일반] 비가 내리고, 잠은 못들고... 우울한 밤 [1] 서큐버스2584 16/04/28 2584 0
64806 [일반] [증시] 다음주 4월 FOMC미팅을 앞두고 1주간 미국 증시 요약 [10] Elvenblood3975 16/04/24 3975 10
64784 [일반] 수어사이드 스쿼드 '할리퀸'에 대해 알다. [25] 마음속의빛11348 16/04/23 11348 5
64780 [일반] 나우루 공화국 이야기: 어떤 공동체의 타락과 그 이면 [27] santacroce8805 16/04/22 8805 50
64758 [일반] 아이폰의 한국 가격을 통해 본 애플코리아의 가격전략 [80] 훈련중11305 16/04/21 11305 7
64756 [일반] 왜 유럽의 사민주의 정당은 끝없이 추락할까? [16] santacroce10058 16/04/21 10058 15
64706 [일반] 15배 대박 투자의 비밀: 엘리엇의 아르헨티나 투자 이야기 [11] santacroce6313 16/04/19 6313 9
64598 [일반] 샌더스와 데일리뉴스의 인터뷰 발췌 및 비판 [15] 달과별6977 16/04/13 6977 6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