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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4/12 00:44:16
Name santacroce
Link #1 http://santa_croce.blog.me/220667517638
Subject [일반] 벨기에 이야기: 두 지역의 뒤바뀐 운명 그리고 벌어지는 격차

벨기에에 관한 3 번째 글은 벨기에의 역사와 경제 변화를 통해 두 언어권의 갈등이 어떻게 시작했는지 그리고 어떤 변화를 거쳤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당초 이번 글로 벨기에 이야기는 마무리하려고 했으나 내용이 많다 보니 4 번째 글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벨기에 독립: 두 가지 통합의 상징과 내재된 반목


1830년 네덜란드에서 독립한 벨기에의 역사를 모두 다룰 수는 없지만 현재 벨기에의 분열과 근근이 이어온 통합에 초점을 맞추어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원래 벨기에는 1814년 네덜란드에 귀속되기 이전에 여러 국가의 지배를 받았는데 특히 빈 협정 이전 프랑스 지배 시절에는 강력한 프랑스 언어 사용 정책으로 프랑스 문화와 언어의 보급이 벨기에 상류층에 확산되었습니다. 

더욱이 프랑스와 인접한 왈로니아 지역은 공업지대로 북부 플랜더스 지역에 비해 더 부유했고 지리적 이점도 있어서 프랑스화가 빠르게 진전되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쟁(워털루도 왈로니아 지역에 있음)에서 패하면서 빈 협정으로 벨기에는 1814년 네덜란드에 병합되고 다시 네덜란드어가 공식 언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1830년 네덜란드 국왕 빌렘(윌리엄) 1세의 16년 지배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고 국왕의 고집과 무능(초기의 자치권 확대 요구마저 들어주지 않고 무력 진압을 시도한 점 등)이 겹치면서 결국 벨기에는 독립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미 언어권이 불어와 네덜란드어로 구분되어 있고 다른 언어는 다른 지역과 부의 차이를 의미하는 상황이었기에 벨기에는 초기부터 분열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벨기에가 그래도 하나의 국가로서 유지하며 민족적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새로 영입한 국왕과 종교 덕분이었습니다.   

새 왕은 독일계인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의 레오폴트 1세였는데 2013년 7월 현 Philippe 왕까지 벨기에 왕실은 7대에 걸쳐 우여곡절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름 국가의 통일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써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가톨릭입니다. 네덜란드로부터 독립을 한 명분 중 하나가 비록 언어가 같긴 하지만 신교를 믿는 네덜란드와 가톨릭이 중심인 벨기에의 정체성이 다르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당시 기준으로 보면 국왕과 가톨릭교회 정도면 언어의 이질성을 누를 수 있는 통합 기제로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언어 심지어 혈연이나 지역보다도 종교를 정체성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종교 공동체가 매우 중요했던 시기에는 당연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단적으로 1923년 로잔 조약으로 그리스와 터키가 거의 200만 명의 인구를 맞교환하는 극적인 일이 벌어졌는데 당시에도 언어보다는 종교가 기준이 되었습니다. 즉, 비록 터키어를 하는 터키 지역의 사람으로 혈연적으로도 터키인과 전혀 구분이 되지 않았음에도 그리스 정교회를 믿고 있다는 기준 하나로 터키에서 130만 명이 대부분의 재산을 그대로 둔 채 그리스로 추방되었으며 그리스에 살던 무슬림들 58만 5천 명도 터키로 추방되었습니다. 

물론 이들 난민들은 결코 적은 수는 아니었지만 소수자로서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정착에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이들은 시간이 갈수록 주류 언어권에 편입(모국어나 다름없는 언어 포기의 과정은 강압적이었을 것 같지만) 되었습니다.  

그리스 비극 5: 대살육 속 영웅의 의미- 아타튀르크와 베니젤로스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등 노르딕 국가를 비롯한 상당수 유럽국가의 벗기 힘든 굴레였습니다.)       


상황의 역전과 분리의 고착화 그리고 이상적(?) 지방자치제


그런데 2차 대전 종전 이후 두 지역의 운명은 극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북해에 접해있는 안트워프를 비롯하여 플랜더스 지역의 경제가 크게 부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에 반해 벨기에의 공업국 도약에 중추적 역할을 했던 중공업 지대가 있었던 왈로니아의 산업은 점차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상황의 변화에 대해 더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왈로니아의 불어 사용자들이었습니다. 

플랜더스 지역의 경제력이 크게 번성하고 인구도 더 많아지자 왈로니아 사람들은 자칫 인구와 경제력을 기반으로 벨기에 전체의 주도권이 네덜란드어 사용자들에게 넘어갈 것을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왈로니아 사람들은 언어 경계선(taalgrens) 설치를 주장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1963년 아래 지도처럼 네 개의 경계선이 확정되었습니다. 

그리고 브뤼셀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 안에서는 언어의 독점성을 인정해 단일 언어권을 만들기로 합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전 글에서 소개한 1968년 루뱅 대학 분할이 일어났고 어쨌든 이전까지 아웅다웅하면서도 섞여 살았던 벨기에 내 불어 사용자와 네덜란드어 사용자들은 이제 언어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자기의 모국어에 따라 분리되었습니다.  

벨기에의 언어 분리는 그리스와 터키, 또는 인도와 파키스탄처럼 집단적 대이주와 대량 학살의 어떤 조짐도 없이 평화적이었지만 분리의 효과는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우선 모든 정당들은 사용 언어별로 두개로 나뉘었으며 각각의 지도자 밑에서 거의 겹치지 않는 선거구를 대상으로 자신들의 세계를 구축해나갔습니다. 

기독당이나 자유당에서 사회당까지 이념을 공유하고 있었던 남과 북의 정당들은 선거의 교집합이 사라지자 정책보다 언어가 정체성을 더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총선은 양측 지역에서 각각의 정당들에 투표를 하는 방식이었고 중앙정부는 양 지역의 대표들이 장관을 맡아 공동정부를 구성하였습니다. 이때 벨기에 국왕이 적극적으로 중재를 해야 중앙정부 구성이 이루어졌습니다. 

덕분에 벨기에는 거의 완벽한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는 나라가 되었고 이전 글의 BHV 지역처럼 서로 섞여 사는 극소수의 지역을 제외하면 더 이상 두 언어권의 갈등은 피할 수 있었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 브뤼셀 언어 사용 지역 구분: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 사용 지역



하지만 전국적인 방송국이나 신문사가 하나도 없으며 하다못해 초등학교의 공통된 커리큘럼도 없으며 특히 전국 정당이 없다 보니 벨기에 국민은 자기 언어권이 아닌 상대 지역 정당의 정책에 어떤 의사표시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구조를 두고 이상적 국가라고 하기는 매우 힘들 것입니다. 

실제 벨기에 정치를 보면 중앙정부는 일반적 민족국가는 물론 연방국가도 아닌 지역 연합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벨기에는 국가 연합체인 EU와 여러 가지 면에서 유사합니다.  


그러나, 점점 벌어지는 경제력의 차이


한때 벨기에는 왈로니아의 산업단지를 기반으로 해서 대륙에서 산업혁명을 선도적으로 이끌며 공업국으로 올라섰지만 2차 대전 이후 경제는 플랜더스 지방이 선도하고 있습니다. 

2013년 기준으로 지역별 GDP를 보면 인구의 60%가 있는 플랜더스가 40%가 거주하는 왈로니아에 비해 2배 이상 많습니다. 


* 지역별 GDP 비교


왈로니아 지방은 아래 사진처럼 점점 경쟁력이 떨어져가는 중공업과 농경지대로 구성되어 있다 보니 안트워프를 중심으로 세계 무역의 증가에 힘을 얻고 신산업의 유치에 적극적인 플랜더스와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10여 년 간의 경제 성과를 보면 플랜더스의 실업률은 글로벌 경제 위기 와중에도 5% 정도에 그치면서 EU 평균을 넘는 왈로니아의 10% 이상 실업률과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왈로니아의 실업자 중 56%는 장기 실업자로 1/3에 불과한 플랜더스와 차이가 매우 큽니다. 

3차 교육기관 즉 전문대 이상의 고급 학력 인구 비중도 플랜더스는 왈로니아에 비해 3.3%P 나 높습니다. 관광객 유치를 알 수 있는 호텔 숙박 성장세를 보면 최근 들어 플랜더스가 왈로니아를 10% 정도 앞서고 있습니다. 


* 벨기에의 지역별 실업률/대졸자 비중/숙박업 성장 추이


1인당 GDP를 비교하면 플랜더스는 EU 평균을 넘는 수준이지만 왈로니아는 평균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제조업과 무역이 플랜더스의 특화된 산업이라고 한다면 왈로니아의 총부가가치에 상대적으로 특화된 부문은 교육, 건강 등 공공부문과 부동산업 정도입니다. 

단정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각 지역의 주력 산업을 보면 경제력 격차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 1인당 GDP외 총부가가치 비교


벨기에의 지역 간 경제 차이는 아래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스페인을 넘고 있습니다. 지역별 1인당 GDP의 하위 20% 지역과 상위 80% 지역의 차이를 보면 벨기에는 프랑스, 영국은 물론 동독 지역을 뺀 독일과 카탈루냐 독립 이슈가 있는 스페인 보다 큽니다. 

물론 이탈리아에 비해서는 아직 양호하지만 벨기에의 지역별 경제력 격차가 유럽의 분리 독립 이슈가 있는 지역에 견줄만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지역별 상하위 소득 격차 국가별 비교


* 분리 독립 이슈가 있는 국가의 지역별 소득 격차(빨간색이 분리 이슈가 있는 지역들) 

 


벨기에 시리즈의 마지막 글이 될 다음 글에서는 현 벨기에의 정치적 구도를 정리해 보고 실제 통합 또는 분열의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또한 왜 벨기에가 EU의 어두운 미래를 예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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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건창
16/04/12 00:58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몽키.D.루피
16/04/12 01:32
수정 아이콘
아래에 이런 차별법이 어떻게 유지되고 있냐고 했었는데 불어사용자들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을 때 만든 거 였군요. 반전인데요...
달과별
16/04/12 10:29
수정 아이콘
차별법이라고 부르기엔 이쪽이 현대 유럽의 주요 정책입니다. 서로 선을 그어 놓아서 저기서부터는 너네, 여기는 우리언어지역 땅으로 보는거죠. 크크. 핀란드가 정말 특이한 예외입니다. 정부차원에서 핀란드-스웨덴어 공용정책을 펼치고 있거든요. 핀란드 전역에서 전체 인구의 5%만 제 1언어로 사용하는 언어로 모든 공공업무를 볼 수 있습니다.
몽키.D.루피
16/04/12 10:51
수정 아이콘
동쪽 끝에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드네요;;
난이미살쪄있다
16/04/12 01:47
수정 아이콘
스페인이나 영국 독립이슈는 알고있었는데 벨기에는 처음 알게되었네요. 비정상회담에서 벨기에 대표가 불어를 사용하기에 그런가보다했는데 그 청년이 왈로니아 지역 사람이었나봐요.
달과별
16/04/12 11:16
수정 아이콘
지역 내 언어 차이도 상당하더군요. 브뤼셀과 왈로니아 불어가 상당히 다릅니다.

저도 처음에 벨기에 불어가 퀘벡 불어랑 비슷하다고 주장한 프랑스인의 말을 듣고 "아니 얘가 지금?" 생각을 했었는데, 전에 샤를루아에 공항을 이용하러 가면서 상점을 들렀다가 기절할 뻔 했습니다. 벨기에 내에서도 왈로니아 불어랑 퀘벡 불어가 비슷하다는 이야기가 꽤 나오는 모양이더군요.
http://www.larevuetoudi.org/fr/story/laccent-du-qu%C3%A9bec

실제 프랑스에서 퀘벡 / 왈로니아인들이 서로 가끔씩 오인당하나 봅니다. 벨기에에서 먼 남서부로 갈수록 심해지구요.
바람이라
16/04/12 08:04
수정 아이콘
벨기에 내부의 문제가 이렇게 클 줄이야... 사실상 다른 국가나 다름없는 수준이네요
16/04/12 09:56
수정 아이콘
지금까지 벨기에는 단순히 종교가 달라(신교/구교)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런 사정이 있었군요. 어떻게 보면 EU 수도로써 브뤼셀만한 곳이 없을 것 같네요. 작년인가.. 예전에 벨기에가 무정부상태라는 뉴스를 들었을 때 잘나가는 유럽국가일텐데 저래도 되나 했는데.. 지방자치가 저 정도면 이해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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