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6/04/05 01:48:27
Name Demicat
Subject [일반] 새벽, 아침의 문








친구들과 대화하다 보면 으레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어떻게 6년이라는 시간을 만나올 수 있었냐고. 그 연애의 비법이란게 뭔지 궁금하다는 이야기를 지나가듯이 던진다. 진지한 물음은 아니다. 더욱이나, 궁금해하는 눈빛은 아니다. 사실 지금의 연애 세태에 있어서 오랜 연애란 희귀하고도 희귀한 별종의 이야기지만, 그렇게까지 부러운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다들 자유 분방한 연애를 하는 시대이다. 그리고 그런 나이가 되었다. 짧게 6개월의 만남 정도면 권태기도 가질 것 없이 깔끔하게 헤어지는 케이스가 많아졌다. 6개월 안에 아이가 생기면, 결혼하는 시대가 되었다.


대단한 시작은 아니었다. 그녀가 너무 예뻐 보였기에 내 모든걸 던져서 들이대고, 고백했다. 그리고 간혹 다툼이 몇 번 있었지만 큰 싸움 없이, 별 탈 없이 지금껏 지내왔다. 나는 그저 그녀가 투정부리는 걸 모두 받아주려 노력했다. 내 감정을 먼저 앞세우기 보다, 그녀의 감정에서 이해하려 최선을 다했다. 경제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잘난게 없는 나였기에 그저 그런 부분에 있어서 최선을 다해왔다. 이런 사소한 면 외에는.. 내가 얼마나 잘난 놈이기에 이런 기나긴 연애의 수혜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그녀는 그저 나와 함께 해줬다. 내가 흔들리는 순간에도, 아파하는 순간에도. 중요한 순간에도. 항상 격려해주고 응원해줬다. 첫 연애였기에 서툰 나의 서툰 연애 방식과 서툰 말투를 그저 이해해주고 지켜봐줬다. 인격적으로 덜 성숙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옆에서 함께해줬다. 아직까지도 자리를 못 잡고 방황하는 결혼 적령기의 커플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안정적으로 나를 바라봐준다. 나는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가끔은 너무 미안함 마음에 이 연애를 내려 놓을까,하는 고민도 몇 번 한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마운 마음 때문에 나는 끝까지 이 연애를, 아니 만남을 지탱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잡곤 한다.


언젠가, 유머게시판에서 본 글이 떠올랐다. 은반지를 창피해하는 여자친구. 내 그녀는 5년 동안이나 그 멋대가리 없는 은반지를 끼고 다녔다. ost에서 맞춘 싸구려 반지였다. 월 50시간의 근로 학생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와 데이트 비용을 겨우 겨우 충당하는 나에게 있어 ost반지를 맞추는 그 금액조차 맞추기 어려웠다. 그녀는 나를 만났을 그 시점부터 직장인이었다. 아릅답고 예쁜 그 나이의 꽃다운 신입 사원이 나를 위해 항상 은반지를 끼고 다녔다. 그 은반지는 5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나는 아직까지 금으로 바꿔주지 못했다. 그리고 동년배의 여자들은 은반지를 창피해한다는 사실을 그 글을 보고나서야 알았다.


가진 것이 없고, 그렇게까지 성실하지 못한 인간이었기에 더 좋은 반지를 해주지 못했다. 난 참 능력 없고 쓸모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날 저녁은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이런 나와 오랜 시간 함께해주며, 은반지를 껴온 여자친구는 어떤 심정으로 나와 함께해주는 걸까. 주위의 시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5년간 내 곁에서 은반지를 껴주는 내 여자친구에게 한없이 미안하고, 그저 고마울 뿐이다.




언젠가는 더 좋은 금붙이를 손에 끼워줄 그 날이 오기를. 그 때까지 함께만 해준다면 평생을 사랑하며 아껴줄 것을.






새벽, 아침의 문은 내가 아는 노래 중 제일 최고로 멋대가리 없고 혼자 주절거리는 노래에 불과하다.
새벽에 문득, 잠든 그녀에게 바치는 헌사. 
어쩌면, 그렇기에 가장 로맨틱한 노래.

멋대가리 없고, 주절거리는 지금 나의 기분에 가장 적합한 노래일 것이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카롱카롱
16/04/05 01:50
수정 아이콘
당연히 박민규 인줄 알았느데!
16/04/05 02:04
수정 아이콘
부러운 스토리네요.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스타슈터
16/04/05 12:13
수정 아이콘
이런 고마움을 아는 분이시기에 여자친구 분께서도 놓치 않고 계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디 좋은 결과 있으면 좋겠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4555 [일반] 이부프로펜, Cyclooxygenase, 아스피린 이야기 [29] 모모스201319653 16/04/11 19653 9
64554 [일반] 사직서를 두번 내며 그만둘까 합니다. [19] 팔랑스7868 16/04/11 7868 2
64553 [일반] NCT U/박진영/블락비/유성은/히스토리/샘킴의 MV, 슬리피/러블리즈/정은지의 티저 공개. [14] 효연덕후세우실5502 16/04/11 5502 1
64552 [일반] 폐결핵 조심하세요. [19] 세츠나7227 16/04/11 7227 2
64551 [일반] 출사 : 삼국지 촉서 제갈량전 40 (7. 불타오르는 적벽, 뒤흔들리는 형주) [21] 글곰4711 16/04/11 4711 36
64550 [일반] [야구] 2016프로야구 2주차 감상 [44] 이홍기7997 16/04/11 7997 0
64549 [일반] [K팝스타] 결승전이 끝이 났습니다. [18] 공룡7687 16/04/11 7687 3
64548 [일반] [I.O.I] 주간 떡밥들.. [32] Leeka7948 16/04/11 7948 0
64546 [일반] 제목없음 [18] 삭제됨10841 16/04/10 10841 48
64545 [일반] 그리운건 그대인지, 그때인지 [14] 김긍정쌤5258 16/04/10 5258 8
64544 [일반] 인간의 지능과 인공지능의 비교... [49] Neanderthal11745 16/04/10 11745 6
64543 [일반] 남미를 뒤흔든 어떤 전쟁 이야기: 루쏘에서 니체의 여동생까지 [16] santacroce9739 16/04/10 9739 29
64542 [일반] 드라이브나 갈까? [39] 영혼의공원7849 16/04/10 7849 30
64540 [일반] 김성근 감독 이대로 괜찮을까요? [174] 달콤한인생17435 16/04/10 17435 10
64539 [일반] 한달간 세계증시 이야기 - 미국 금리와 영국의 Brexit [6] Elvenblood5950 16/04/10 5950 10
64537 [일반] 가온 월간 스트리밍차트 탑 3 정리 및 이야기 [7] Leeka4951 16/04/10 4951 0
64536 [일반] [4.9] 김치찌개의 오늘의 메이저리그(박병호,이대호 MLB 데뷔 시즌 1호 솔로 홈런) [4] 김치찌개5810 16/04/09 5810 0
64535 [일반] [스포츠] 오승택 부상 소식/프랭크 미어 도핑 양성 반응 소식 [9] The xian6430 16/04/09 6430 0
64534 [일반] [연애가 필요한 시간] 그녀를 놀리지 말아요 [12] Eternity7938 16/04/09 7938 27
64533 [일반] 바운티 호의 반란과 뒷 이야기...문명의 의미 [15] santacroce9527 16/04/09 9527 41
64531 [일반] [NBA] 올해도 험난한 서부컨퍼런스 플레이오프 티켓전쟁 [17] SKY926431 16/04/09 6431 0
64530 [일반] 토요일 오전의 소소한 일상. [7] 라덱6334 16/04/09 6334 17
64529 [일반] 스페이스X, 인류 최초로 바다 위에 로켓을 착륙시키다. [28] Quarterback7201 16/04/09 7201 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