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6/02/26 02:11:15
Name 王天君
File #1 top_secret.jpg (47.8 KB), Download : 72
Subject [일반] [노스포] 특급비밀 보고 왔습니다.


바야흐로 냉전이 한참이던 때, 아직 분열중이던 동독은 음모를 꾸밉니다. 문화 축제를 벌려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후 그 틈을 타 서독을 흡수하려는 계획을 세우죠. 그리고 눈요기 용으로 여러 음악인이 초청되는데 거기에는 미국에서 한참 떠오르는 닉 리버스도 끼어있었습니다. “스킷 서핑”이라는 노래로 슈퍼스타가 된 닉 리버스는 고압적인 동독의 관리들이 마음에 들진 않습니다. 그러나 빡빡한 이 나라에서 운명처럼 어떤 여자를 만나고, 그는 걷잡을 수 없는 사랑과 모험에 휘말립니다.

<특급비밀>(일급비밀로도 불리더군요)은 도대체가 진지해질 수 없는 코메디영화입니다. 전형적인 줄거리에 말도 안되는 유머와 패러디로 가득 차있어요.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유머를 발휘하는 방식입니다. 엉뚱하고 황당한 캐릭터, 세련된 위트 같은 게 아니라 영화적 공식을 뒤집는 거죠. 이를 드러내는 이 영화의 가장 유명한 장면은 아마 전화기 씬일 겁니다. 화면 가까이에 있는 전화기가 울립니다.멀리 있던 인물은 전화기로 다가갑니다. 아마 누구든 이 크기의 차이는 원근감을 강조하는 배치라고 생각할겁니다. 그런데 인물이 손에 든 수화기는 진짜로 엄청나게 큰 전화기입니다. 영화는 무언가를 강조하거나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전통적인 규칙들을 죄다 파괴하거나 탈선해버립니다. 보여서는 안 될 게 보이고, 긴장시키는가 싶다하면 알아서 바람을 빼버리고, 심각한 상황에서 뻘짓을 해대는 겁니다.

이 영화에는 코메디 영화로서의 욕심보다도 그 방법에서 어떤 창의성과 실험정신이 돋보입니다. 이 전까지는 이런 상황이면 이런 연출을 썼지, 그런데 이걸 따라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라며 기존의 영화문법을 답습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그 결과 영화는 매우 뻔뻔하고 능청스러워집니다. 지금 무슨 일 있어? 이 영화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야!! 라며 아무것도 모르는 척 관객들과 농을 주고받는거죠. 거기서 소격 효과가 생깁니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단순히 작품 자체로 보는 게 아니라 영화가 제작된 배경과 현실까지도 고려하면서 즐기게 됩니다. 저런 장면은 저렇게 찍었었구나, 저기서는 이런 장면이 나와야 할 텐데? 라며 영화를 영화로서 더 넓은 시점에서 즐길 수 있게 되죠. 영화보다는 영화제작에 관한 메타 영화처럼도 보입니다.

지금 보면 템포도 살짝 늘어지고 촌스러운 유머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유머들이 아직도 유효합니다. 블루라군 패러디처럼 시대의 정취를 함께 가지고 가는 코드들도 있구요. ZAZ 사단의 첫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영화사적 의미도 있습니다. 얼마전까지 유행하던 허무주의 개그에 비하면 이 영화의 코메디가 얼마나 풍성하며 재기넘치는지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요즘 우리를 둘러싼 웃음 코드는 본질을 잊고 있는 게 아닐까요. 똘기도, 잰체도, 쎈 척도 아닌 천연덕스러움으로 피식 날숨을 빼는 이 영화에 그 정답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마음껏 감탄하고 싶지만 욕을 못해주니 갑갑하네요!

@ 의외로 관객이 많아서 좀 놀랐습니다.

@한 때 발 킬머는 저리도 풋풋하고 잘 빠진 청년이었던 것입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리듬파워근성
16/02/26 09:29
수정 아이콘
엇 이거 전설의 코미디 아닌가요? 얘기만 들었는데.. 어디서 볼 수 있나요? 저도 꼭 보고 싶습니다!!
王天君
16/02/26 10:12
수정 아이콘
어제 시네마테크에서 했던게 마지막이었어요.
리듬파워근성
16/02/26 10:52
수정 아이콘
아이고 그렇군요 ㅠㅠ
지나가다...
16/02/26 10:43
수정 아이콘
발킬머는 툼스톤 때만 해도 간지 폭풍이었는데...
두꺼비
16/02/26 11:56
수정 아이콘
처음 보았을 때 진정한 의미의 "문화충격"을 안겨주었죠.

만담 코메디와 영구없다 보던 저에게 선진국의 코메디는 이런 것이다 라는 걸 선사한 대작입니다. 민메이를 처음 본 젠트라디가 그런 기분이었을거에요.

특히 수중격투씬(?)과 공중러브씬(?)은 잊혀지지 않는 명장면입니다. 옛날 코메디 영화는 보통 세월이 가면 진부해지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애초에 진부하지 짝이 없는 스토리 라인에 감당하기 힘든 비틀기가 들어가서 결코 진부해 지지가 않더군요.

극장 개봉하는 줄 몰랐고, 알아도 가기 힘들었겠지만, 정말 다시 보고싶은 명작입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3899 [일반] 피지알러를 위한 가격대별 기계식 키보드 선택 가이드 [123] 꼭두서니색19834 16/03/04 19834 25
63898 [일반] 기억하는 최강최악의 체벌 [64] 삭제됨23099 16/03/04 23099 1
63897 [일반]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37] 후추통10219 16/03/04 10219 11
63896 [일반] 탈북자들은 국제법상 한국 국적일까? [14] 달과별11499 16/03/04 11499 12
63895 [일반] [집밥] 장모님의 김치. [25] 종이사진5281 16/03/04 5281 7
63894 [일반] 1 [93] 삭제됨12019 16/03/04 12019 2
63893 [일반] <귀향>에 관한 논란을 바라보며 드는 생각 [153] 마스터충달10859 16/03/04 10859 6
63892 [일반] 솔지하니/이승기/에릭남x웬디/마마무/크나큰의 MV, 스누퍼/이하이 티저 공개 [6] 효연덕후세우실4211 16/03/04 4211 0
63891 [일반] [스포] 스티브 잡스 보고 왔습니다. [13] 王天君5126 16/03/04 5126 1
63890 [일반] 웹툰 하나로 한달 매출 9억원?…"짭짤하네" [73] 마르키아르17424 16/03/04 17424 0
63889 [일반] 여지까지 본 하렘물 애니 간단 감상 [34] 좋아요20449 16/03/04 20449 2
63888 [일반] 30살, 30대를 맞이하며(feat. 너와 나의 인연, 시작) [19] 삭제됨3553 16/03/04 3553 6
63887 [일반] 캐치 유 타임 슬립! - 6 튜토리얼(5) (본격 공략연애물) [8] aura4935 16/03/04 4935 3
63886 [일반] 출사 : 삼국지 촉서 제갈량전 11 (3. 죽은 자와 죽지 않은 자) [31] 글곰5737 16/03/04 5737 48
63885 [일반] LED 조명 Philips Hue가 비싸다면? [24] RoseInn6106 16/03/03 6106 4
63884 [일반] 내맘대로 뽑아보는 디즈니 사운드트랙 10선 [95] VKRKO7371 16/03/03 7371 6
63883 [일반] 시집이 전체 베스트셀러 1-3위에 오른 까닭은? [37] KOZE8156 16/03/03 8156 0
63882 [일반] 오레모노가타리 감상문 [18] 좋아요5158 16/03/03 5158 1
63881 [일반] 오타니 올해 무시무시 할듯 합니다 [61] 대당가11638 16/03/03 11638 1
63880 [일반] <단편?> 카페, 그녀 -36 (부제 : 연애하고 싶으시죠?) [6] aura4606 16/03/03 4606 3
63879 [일반] 스웨덴 정부가 영국 언론에 선전포고 [9] 달과별9667 16/03/03 9667 0
63878 [일반] 교복의 통일. 통일교복으로! by. 정부 [210] 최강한화13595 16/03/03 13595 2
63877 [일반] 정치글을 기계적으로 선거게시판으로 이동시키는 문제 [159] 영원이란8843 16/03/03 8843 2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